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31화 (54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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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문명의 발견 (3)

* * *

바람의 평원으로 이동하는 동안 이안은 바네사에게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녀석이……. ‘대지의 신룡’이라는 거지?”

이안의 질문에, 바네사는 거만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안. ‘대지의 구원자’ 연계 퀘스트를 전부 깨고 최종 보상으로 받은 녀석이지. 대지의 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던 초 유니크 슈퍼 히든 퀘스트였다구.”

“그……래?”

“하지만 이제는 받을 수 없는 퀘스트가 됐을 테니, 코르투스를 얻을 생각이라면 지금 바로 접는 게 좋을 거야.”

바네사의 이야기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왜? 너는 독일 서버에서 얻은 거고, 나는 한국 서버잖아. 우리 한국 서버에는 아직 대지의 신룡을 얻은 유저가 없는 걸?”

바네사는 손가락을 까딱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론은 변함없어.”

“어째서?”

“차원전쟁 에피소드가 끝난 이 시점에는, ‘대지의 축복’ 퀘스트를 받을 수 없거든.”

바네사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사실 그는 다른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바네사의 이야기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안은 기억 깊숙한 곳에 있던 하나의 사실을 끄집어 내었다.

‘한국서버의 대지의 신룡은……. 이름이 코르투스가 아니었어.’

사실 이 드래곤을 처음 본 순간, 이안은 대지의 신룡을 떠올렸다.

짙은 녹빛의 아름다운 비늘을 가진 드래곤은 차원 전쟁에서 잠깐 보았던 대지의 신룡 외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코르투스’라는 이름을 듣고 난 뒤, 대지의 신룡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었다.

한국 서버에서 대지의 신룡의 이름은, 코르투스가 아닌 ‘밀라이카’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서버마다 신룡이라는 것은 똑같이 존재하되, 고유한 이름과 정체성은 각기 다르다는 얘기겠군.’

이어서 이안의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다른 서버의 신룡을 용천에서 만날 수 있다면, 같은 신룡을 두 마리 테이밍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피식 웃은 이안의 입이 다시 열렸다.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그럼 바네사.”

“응?”

“혹시, 대지의 여신 이름은 기억나?”

이안의 물음에, 바네사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제법 오래 전의 기억이기에, 잘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으음? 아니, 이름은 기억 안나.”

“그렇군.”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말해 줄 수 있어.”

“……?”

“대지의 여신이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 내 기억속의 대지의 신은 확실히 남자였거든.”

“어?”

대화를 하던 이안의 두 눈이 살짝 반짝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으나, 궁금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던 가설이 맞아 들어가는 듯했으니까.

‘대지의 신이 남자라면……. 확실히 한국서버의 신과는 다른 녀석이겠군.’

차원 전쟁 당시, 이안은 그 누구보다 에피소드의 중심에 있던 유저였다.

때문에 등장했던 모든 신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안의 기억 속에 있는 대지의 신은, 확실히 여성체였다.

대지의 여신 샌디애나.

이안은 그녀를 바로 앞에서 본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각 서버마다 인간계를 관장하는 신들도 전부 개별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겠는걸?’

이안은 바네사와의 대화를 통해, 조금 더 세계관에 대한 윤곽이 잡혀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이안 일행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띠링-!

-‘바람의 평원’에 진입합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바람’ 속성의 정령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지금부터 ‘바람’ 속성의 공격 마법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지금부터 ‘바람’ 속성의 정령력이 50퍼센트만큼 더 빠르게 축척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으, 지금 바람의 정령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어서 가벼운 몸짓으로 코르투스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탓!

그러자 앞쪽에 먼저 도착해 있던 랄프가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친구, 여긴 처음 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 계획을 설명해 주겠네.”

랄프와 눈이 마주친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뭐, 일단……. 들어 보도록 하죠.”

* * *

무척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낯선 유저에 대한 경계심은 이안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의 평원에 도착하는 동안, 랄프 일행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랄프 : 혹시 저 녀석들, 아는 사람 있어?

-체스크 : 아니? 셋 중 아무도 모르겠는데?

-랄프 : 그래도 랭커들일 텐데……. 지인들도 아무도 모른대?

-이니스코 : 랄프 형, 서버에 랭커가 지금 한두 명이야? 딱 봐도 어중간한 세 자릿수대 랭커인 것 같은데 어떻게 알아봐?

-뮤엘 : 그래요, 랄프 오빠. 엊그제 통계 보니까 400레벨 넘긴 유저가 이제 1천 명이 넘었던데……. 소환술사 400레벨이야 흔치 않지만, 기사나 마법사 400레벨은 널리고 널렸지.

-랄프 : 하긴…….

-이니스코 : 그리고 랄프 형, 아까 그 기사 녀석이 그랬잖아.

-랄프 : 뭘?

-이니스코 : 무슨 특별한 퀘스트 깨서 운 좋게 들어왔다고.

-랄프 : 그랬지.

-이니스코 : 내 생각에 그 소환술사라던 쌍둥이 여자애는, 아마 400레벨도 한참 안 될 거야.

-랄프 : 그……런가?

-이니스코 : 당연하지. 내가 소환술사 상위 랭커들 대부분 아는데, 그중에 저런 여자애는 없었어.

-체스크 : 하긴, 이니스코 말이 맞네. 그렇게 생각하면 나머지 두 친구도 300레벨 후반대 정도로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어.

랄프 일행은 나름대로 이안 파티에 대해 파악하려고 노력하였고, 어느 정도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물론 그 결론은, 사실과 제법 동떨어져 있었지만 말이다.

-랄프 : 흐음……. 이렇게 되면, 좀 애매하네.

-이니스코 : 애매하다니? 뭐가?

-랄프 : 저 친구들, 괜히 짐만 될 것 같아서 말이지.

-체스트 : 짐이라……. 확실히 그럴 수도.

-이니스코 : 하긴,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어쭙잖은 랭커들이 1인분 해 줄 수 있을 리가 없지.

-뮤엘 :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랄프 : 흠, 그래?

-뮤엘 : 인간계였다면 레벨 차이가 크니 짐이 됐을 수도 있겠지만, 여긴 중간계잖아요.

-랄프 : 그건 그렇지.

-뮤엘 : 어차피 초월 레벨은 엇비슷할 거고, 그럼 우리랑 크게 전력 차이가 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이니스코 : 에이, 뮤엘 님. 그건 아니죠.

-랄프 : 그래. 이니스코 말이 맞아.

-뮤엘 : 왜죠?

-랄프 : 레벨이나 스텟발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피지컬 차이가 너무 많이 날 테니까.

-체스크 : 맞아. 같은 랭커라고 해도, 세 자릿수 랭커들이랑 우릴 비교하는 건 좀 곤란하지. 바람의 평원에서야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부턴 정말 짐만 될걸?

-뮤엘 : 으음…….

-이니스코 : 맞아요, 뮤엘 님. 심연의 계곡에서 괜히 저 친구들이랑 파티 플레이한답시고 손발 맞추다가, 스킬 연계 꼬여서 다 같이 몰살당할 수도 있다고요.

그리고 그 잘못된 결론은, 랄프 일행의 최대 실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랄프 : 그래도 일단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어떻게든 좀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이니스코 : 그건 그래, 형. 이제 와서 수준 안 맞는다고 따로 움직이자 하기도 좀 민망하긴 하지.

-체스크 : 그렇다고 쟤들 버스 태워 줄 건 아니잖아? 콘텐츠 우리끼리 갈라먹기도 부족한데, 설마 저런 애송이들이랑 공유할 생각이야?

-랄프 : 그건 당연히 아니지.

-뮤엘 : …….

-체스크 : 그럼 어쩌게?

-랄프 : 나한테 괜찮은 방법이 있어.

-이니스코 : 그게 뭔데 형?

-랄프 : 심연의 계곡 안쪽에 있던 돌풍의 협곡. 기억나지?

-이니스코 : 당연하지. 우리 거기서 털리고 서리동굴로 돌아왔던 거잖아.

-체스크 : ……!

-랄프 : 거기 있는 괴물 녀석을 저 친구들한테 맡기는 거야.

-이니스코 :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랄프 :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우리는 심연의 계곡을 건너가는 거지.

* * *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양쪽 모두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파티 플레이는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어쨌든 바람의 평원을 건넌다는 목적 자체는 공유하고 있었으니, 딱히 충돌이 일어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재밌게도, 이안은 탱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단 한 마리의 소환수도 소환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안 님, 체스크 엄호 부탁해요!”

“이안, 중간으로 바로 뚫고 지나가자! 앞장서!”

오른손에는 블러디 리벤지를, 왼손에는 귀룡의 방패를.

양손에 신화 등급의 초월 장비를 야무지게 거머쥔 이안은, 누가 봐도 기사라고 믿을 정도로 완벽한 플레이를 보여 주고 있었다.

콰쾅- 쾅-!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윈드 슬래시’의 위력을 93.35퍼센트만큼 흡수했습니다!

-생명력이 12만큼 감소합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기사클래스 유저의 가장 큰 역할은, ‘얼마나 많은 피해량을 혼자 안정적으로 받아내느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 바로, ‘방패 막기’ 컨트롤 능력이었다.

같은 수치의 방어력과 생명력으로도, 방패 막기 컨트롤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버텨 낼 수 있는 피해량의 총량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컨트롤 좋은 기사들의 경우 대부분의 공격을 80퍼센트 이상의 흡수율로 막아 내는 반면, 피지컬 떨어지는 기사들의 경우 50퍼센트의 방어 흡수율도 잘 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같은 장비와 스텟을 가지고도 컨트롤에 따라 두 배 이상의 효율 차이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사 유저의 방패 막기 컨트롤 실력은 겉으로도 너무 명확히 드러난다.

방패 막기의 피해 흡수율에 따라 특별한 이펙트가 발동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방패의 결을 타고 퍼져 나오는 잔잔한 파동 같은 것이었는데, 70퍼센트 이상의 피해를 흡수했을 때부터 나타나는 이펙트였다.

특히 90퍼센트 이상의 피해 흡수율이 발동했을 때에는, 파랗고 화려한 파동이 퍼져 나온다.

그러니 이런 시스템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도 쉽게 기사클래스 유저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파앙- 파아앙-!

이안의 방패를 타고, 파란 빛깔의 물결이 연신 퍼져 나온다.

그리고 뒤편에서 그것을 발견한 사라가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생각하였다.

‘설마 한국 랭커들의 실력이 다 이 정도인 건 아니겠지? 이 녀석은 진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네.’

진짜 기사 클래스인 유저가 보여 줬어도 감탄을 금치 못했을, 새파란 파동의 향연.

그런데 소환술사라는 녀석이 그것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 사라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것이다.

-바네사 : 언니.

-사라 : 응?

-바네사 : 저 사람들, 이안이 진짜 기사 클래스라고 믿겠는데?

-사라 : 그럼 너 같으면 안 믿겠냐?

-바네사 : 하긴……. 나 같았으면 아마, 기사 클래스 아니라고 하는 걸 안 믿어 줄 듯.

-사라 : 나도…….

-바네사 : 저거 아무리 봐도 사람 아냐.

-사라 : 맞아. 어떻게 봐서 저게 사람이냐. 괴물이지.

-바네사 : 맞아, 맞아.

파티 플레이를 하는 와중에도 1:1 메신저로 열심히 이안의 뒷담화를 하는 두 자매.

그리고 이안의 플레이에 놀란 것은 사라와 바네사뿐만이 아니었다.

랄프의 파티원들도, 그들끼리 따로 열어놓은 채팅방에서 계속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체스크 : 랄프, 저 친구들……. 생각보다 실력이 나쁘지 않은데?

-랄프 : 흠, 그런가?

-이니스코 : 쌍둥이 자매도 제법이지만, 이안이라는 저 녀석이 정말 물건이야, 형.

-랄프 : 확실히 방패 컨트롤 하나만큼은 수준급이네.

-체스크 : 그렇지?

-랄프 : 하지만 거기까지야. 보니까 기사 전용 스킬들도 제대로 활용 못하는 것 같고, 계속 방패 컨트롤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고 있잖아.

-이니스코 : 하긴, 방패컨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거기에 너무 의존하는 것 같긴 해.

그들이 같은 자리에서 다른 꿈을 꾸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쉴 새 없이 정령들을 처치하며 바람의 평원을 돌파하는 동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까마득히 넓게만 느껴졌던 바람의 평원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끝에는,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깊고 어두운 계곡이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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