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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콘텐츠, 정령술 (5)
* * *
“바네사, 좌측으로 뚫자! 나 좀 엄호해 줘!”
“알겠어, 언니!”
파티의 전력에서 이안이 빠져나갔지만, 두 자매는 꿋꿋이 탑을 오르고 있었다.
이안이 앞서나간 5분 동안, 두 자매가 올라온 층수는 총 세 층.
2분마다 한 층씩은 돌파한 셈이었으니,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10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제한시간을 생각해보면, 암울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휴, 이거……. 이대로 실패해야 하는 건가?’
아직도 까마득하게 남아있는 상층부를 올려다본 사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는 정말, 이안이 변수를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블링크 고유 능력 붙어 있는 완드를 하나 사놨어야 하는 건데…….”
사실 이 관문이 어려운 이유는, 아이템에 붙어 있는 고유 능력을 제외한 스킬이 전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스킬 사용이 가능했더라면, 순간 이동 스킬인 블링크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상층부까지 도착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사라의 중얼거림처럼, 블링크 고유 능력이 붙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면 정말 쉬운 관문이 되었을 것이다.
문득 사라의 뇌리에, 먼저 올라간 이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블러드 리벤지의 고유 능력을 활용하여,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치고 올라간 이안.
‘따로 파티 메시지가 안 뜬걸 보니, 사망한 건 아닐 텐데…….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먼저 올라간 이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무슨 속셈으로 올라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정령을 처치했다는 메시지조차 뜨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대단한 녀석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기대를 버리는 게 좋겠지?’
사라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어쨌든 한 번 밖에 도전할 수 없는 퀘스트를 실패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운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띠링-!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파티원 ‘이안’이, 하급 불의 정령 ‘카사’를 처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가 16만큼 상승합니다.
“어……?”
“으응?”
메시지를 확인한 사라와 바네사의 시선이 동시에 위쪽을 향하였다.
5분이 넘게 소식이 없던 이안으로부터 뜻밖의 메시지가 공유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바네사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상층부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때, 두 사람의 눈앞에 수많은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파티원 ‘이안’이, 하급 불의 정령 ‘카사’를 처치하셨습니다!
-파티원 ‘이안’이, 하급 불의 정령 ‘카사’를 처치하셨습니다!
……중략……
-파티원 ‘이안’이, 하급 바람의 정령 ‘실라프’를 처치하셨습니다!
“……!”
“이게 뭐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두 자매의 눈이 동시에 확대되었다.
3초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무려 열댓 마리가 넘는 정령을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전투를 지켜보지 않은 두 사람으로서는 납득이 불가능한 메시지들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상대하던 정령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바네사.
그리고 그 순간, 붉은 빛깔의 그림자가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것이 두 자매의 눈에 비쳤다.
* * *
쐐액- 쐐애애액-!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붉은 핏빛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힌 첨탑의 한복판에, 어지러이 수놓아지는 붉은 섬광의 그림자들.
그리고 그림자가 지나간 자리에는, 정령들의 사체가 그대로 내려앉았다.
‘처치 시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라는 블러드 스플릿의 부가 효과를 이용한, 그림과도 같은 한 장면.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띠링-!
-특정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정령 학살자’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칭호도 얻었지만, 이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색깔이 보랏빛인 것으로 보아 ‘영웅’등급의 칭호.
이안이 가진 칭호들 중 전설 등급의 칭호만도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신경 쓸 여유가 없기도 했다.
지금 이안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25층을 뚫는 것이었으니까.
파앗-!
순식간에 열댓 마리의 정령들을 몰살시킨 이안이, 허공을 향해 도약하였다.
이어서 꼭대기 층까지 쭉 뚫려 있는 첨탑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가능해!’
우우웅-!
잔잔한 진동음과 함께, 이안의 신형이 다시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은 질주의 시작이었다.
파아앙-!
강렬한 파동음과 함께 이안의 신형이 수직으로 쏘아져 올라갔다.
대각선으로 쏘아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안의 신형은 한 번에 거의 서너 개의 층을 돌파해 버렸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파앙- 파아앙-!
발동된 블러드 스플릿의 추진력이 사라짐과 동시에, 또다시 고유 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려 네 번이나 연속해서 이어졌다.
쐐애애액-!
사방으로 파공성을 흩뿌린 이안의 신형이, 첨탑의 꼭대기까지 솟구쳐 올라갔다.
이어서 이안이 착지한 곳은, 2관문의 종착지가 보이는 지역.
첨탑의 25층이었다.
탓-!
가볍게 꼭대기 층에 내려앉은 이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해냈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걷어 낸 이안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이번에는 이안조차도,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안은, 어떻게 블러드 스플릿을 연속으로 네 번이나 발동시킨 것일까?
아무런 몬스터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서 말이다.
그것의 비밀은, 바로 ‘치명타’ 스텍에 있었다.
치명타를 3회 발동시킬 시 재사용 대기 시간을 초기화시킬 수 있는 블러드 스플릿의 조건부 옵션.
이안은 무려 열두 개가 넘는 치명타 스텍을 쌓은 것이다.
사실 치명타 스텍을 네 개 이상 쌓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불가능하다.
치명타 스텍이 세 개가 되는 순간,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며 스텍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의 경우가 있었으니.
치명타 스텍이 세 개 이상임에도 불구하고, 블러드 스플릿 스킬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도 딱 하나가 있었다.
세 번째 치명타가 모이는 순간, 적을 처치하는 것.
블러드 스플릿이 발동되며 적이 사망한다면, 치명타 스텍과 관계없이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오니 말이다.
이안은 바로 이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정령들을 처치하지 않고 빈사 상태로 모아 둔 것이었다.
죽을 위기를 몇 번 넘기면서까지 말이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 가며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기다린 전략은, 보다시피 완벽하게 먹혀들어갔다.
“자, 그럼……. 이제 끝내 볼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이안의 신형이, 종착지를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달려드는 정령들이 있었지만, 상대해 줄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클리어해야 공헌도가 높게 책정되기 때문이었다.
첨탑의 25층.
그 북쪽에서 새하얗게 일렁이는 하나의 포털.
그곳에 도착한 이안은,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시야에 기다렸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두 번째 관문을 성공적으로 돌파하셨습니다!
-공헌도가 산정됩니다.
-이안 : 1,765 - SS+
-사라 : 479 - C-
-바네사 : 510 - C
-공헌도가 D이하일 경우, 관문에서 탈락합니다.
-공헌도 부족으로 탈락했을 경우, 재도전이 가능합니다.
관문을 성공적으로 돌파했다는, 기분 좋은 시스템 메시지들.
이안의 예상대로 아무나 한 사람만 먼저 도착하면 관문이 클리어되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술사 판의 시험 Ⅱ (직업)(연계)’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를 125만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을 10만 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잔여 시간 : 8분 56초/20분
-클리어 등급 : S+
-S 이상의 등급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정령 마력(초월)을 50만큼 획득합니다.
-소환 마력(초월)을 30만큼 획득합니다.
무려 50이나 되는 초월 정령 마력과, 30이나 되는 소환마력 보상을 보며, 이안은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역시 A등급 클리어와 S등급 클리어는 보상 수준이 엄청나게 차이나네.’
그리고 포털 안으로 들어선 이안의 시야가 환해지며, 더욱 기분 좋은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초월 레벨 상승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초월 레벨이 상승합니다!
-초월 5레벨이 되었습니다.
* * *
-‘소환술사 판의 시험 Ⅲ (직업)(연계)’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정령 ‘운디네’가 소환 해제됩니다.
-정령 ‘노움’이 소환 해제됩니다.
-정령 무기 ‘불의 지팡이’가 소멸합니다.
서리동굴의 안내양 예뿍이는, 판의 관문이 총 세 개로 이루어져 있다 하였다.
그리고 그 말인 즉, 이번 관문이 드디어 마지막 관문이라는 이야기였다.
“휘유!”
한차례 크게 심호흡을 한 이안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안의 뒤쪽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우웅- 우우웅-!
그것은 당연히, 빙하의 첨탑 8층에서 이안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두 자매의 그림자였다.
“대, 대박.”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야?”
두 자매.
그중에서도 특히 바네사는, 이안의 팔을 부여잡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이안, 진짜 대단해!”
“나, 오늘부터 널 존경하기로 결심했어.”
“진짜 엄청나!”
사실 이 연계 퀘스트는, 마법사인 사라보다 소환술사인 바네사에게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퀘스트이기 때문이었다.
소환술사의 신규 콘텐츠나 다름없는 ‘정령술’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이 퀘스트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두 자매의 호들갑을 보며 피식 웃은 이안은 전방을 향해 눈짓하며 입을 열었다.
“감사 인사는 다 끝난 뒤에 받도록 할게.”
“알겠어. 내가 정령계 퀘스트 다 끝나고 나면, 거하게 한 번 쏠게!”
“맞아 맞아. 프랑크푸르트로 놀러 오라고. 배 터질 때 까지 고기만 먹여 줄 테니까.”
이안은 신이 난 두 자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프랑크푸르트는 무슨……. 제주도도 한 번 안 가 봤는데.’
아직 비행기 한 번 타 본 적 없는 이안에게, 독일은 너무나도 먼 곳이었다.
어쨌든 성공적으로 마지막 관문에 도착한 세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며 맵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긴 통로의 형태였던 첫 번째 관문.
높은 첨탑의 형태였던 두 번째 관문.
마지막 이 세 번째 관문은, 커다란 공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공터 중앙에는, 거대한 크기의 크리스털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저게 뭐지?’
얼음과 무척이나 흡사한, 반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크리스털.
그 안쪽에 무언가 들어 있는 것도 같았지만, 빛이 굴절되어서 그런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저쪽으로 한번 가 볼까?”
사라의 물음에,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아무래도 저 안에 뭔가 있는 것 같네.”
이안 일행은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크리스털을 향해 다가갔다.
아직 세 번째 퀘스트가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어떤 변수가 존재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가 그 앞에 도달했을 때였다.
우우웅-!
커다란 공명음과 함께, 크리스털의 내부에서 하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띠링-!
이어서 이안 파티의 눈앞에 판의 마지막 퀘스트가 떠올랐다.
-‘소환술사 판의 시험 Ⅲ (직업)(연계)’
서리 동굴의 두 번째 관문까지 무사히 통과한 당신들에게 판의 마지막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세 번째 관문에서는, 당신들에게 새로운 정령(정령 무기)이 주어질 것이다.
당신들은 주어진 정령을 이용해 마지막 관문에서 살아남아야 하며, 만약 파티원에게 주어진 정령 중 하나라도 사망한다면, 당신들은 판의 시험에 낙제하게 될 것이다.
오염된 정령들로부터 끝까지 살아남아, 판이 남긴 정령술의 비전을 받아 내도록 하자.
퀘스트 난이도 : B
퀘스트 조건 : ‘소환술사 판의 시험 Ⅱ’ 퀘스트를 클리어한 유저.
소환술사 클래스이거나, 소환술사 클래스를 파티에 포함한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 모든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살아남아 마지막 적까지 처치하면,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보상 : 초월 경험치 200
명성 20만
‘이번에는 생존 퀘스트, 아니, 섬멸 퀘스트인가?’
퀘스트 창을 빠르게 읽은 이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지막 관문의 조건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중급 화염의 정령, ‘이그니스’가 소환되었습니다.
-걸려 있던 모든 제약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서리 동굴의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