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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526화 (54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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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콘텐츠, 정령술 (4)

* * *

쿠쿵- 쿵-!

“뭐지?”

빙하의 첨탑, 25층.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진동음에, 힐끗 시선을 돌린 남자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사내가 핀잔을 준다.

“랄프, 뭐하는 거야? 제한시간 얼마 안 남았다고!”

“알아, 체스크. 정확히 5분 30초 남아있지.”

“여유 부리지 마, 랄프. 조금이라도 빨리 클리어해야 보상이 더 좋다는 거 몰라?”

“잠깐 기다려 봐. 밑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아서 그래.”

“……?”

카일란 미국 서버의 최상위 랭커이자, 전사 랭킹 2위의 유저인 랄프.

며칠 전 겨우 정령계 원정 파티를 구성하는 데 성공한 그는, 지금 서리동굴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파티의 숫자는 파티장인 랄프를 포함하여 총 넷.

미국 서버 전사 랭킹 2위인 랄프와, 궁사 랭킹 4위인 체스크. 사제 랭킹 14위인 뮤엘과 소환술사 랭킹 7위인 이니스코였다.

사실 랄프는 정령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조건을 충족한 ‘소환술사’를 구하지 못해서였다.

현재 미국 서버에는 400레벨이 넘는 소환술사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여 랄프 파티가 정령계에 입성한 것은 바로 어제의 일.

때문에 그는 지금의 상황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벌써 정령계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간 건가? 어떻게 후발주자가 벌써 들어올 수 있는 거지?’

현재 미국서버의 다른 랭커들은 거의 대부분이 리치 킹 에피소드 클리어에 투입되어 있었다.

랄프가 아는 한 미국 서버에 지금 정령계를 공략할 만한 인물은 없는 것이다.

난간 아래를 훑어보는 랄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대체 누구냐?’

까마득하게 뻥 뚫려 있는 첨탑의 중정中庭.

그리고 그 공간을 휘감고 있는 나선형의 계단.

랄프의 눈동자가 빠르게 던전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찾았다!’

그의 눈에, 검과 방패를 든 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장비의 외형으로 보아서는 기사 클래스인 듯 보이는 한 남자.

그런데 랄프는, 곧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지? 설마…… 혼자 들어온 건가?”

랄프의 중얼거림을 들은 체스퍼가 옆에서 끼어들었다.

“뭐야, 정말 누가 있어?”

“그렇다니까.”

랄프의 시선을 따라 난간 아래쪽을 내려다 본 체스퍼는, 랄프와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저거, 뭐 하는 놈이지?”

“누군지 짐작 가는 랭커는 있어?”

“아니, 모르겠어. 딱 보니 기사클래슨데……. 투구에 얼굴이 다 가려져 있어서 확인이 안 되네.”

랄프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구겨졌다.

콘텐츠를 독점하기 위해 리치 킹 에피소드 공헌도까지 전부 포기하고 정령계에 들어왔건만, 이렇게나 빨리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히니 기분이 좋을 수 없는 것이다.

‘PK라도 할 수 있으면 싹을 잘라 버릴 텐데……. 이거 정말 거슬리는군.’

체스퍼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랄프의 손을 잡아끌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고민은 나중에 하고, 우린 다음 구역이나 넘어가자, 랄프. 뮤엘이랑 이니스코가 기다리고 있어.”

“크흠, 그래야겠지?”

“그리고 걱정할 필요 없어.”

“왜?”

“저 녀석, 이번 관문에서 좌절할 테니 말이야.”

“……?”

“파티 다 잃고 혼자 남은 기사 클래스가 여기까지 어떻게 뚫고 올라오겠어?”

“파티를 다 잃다니?”

“생각해 봐. 쟤 딱 봐도 기사클래슨데 소환술사 없이 어떻게 여길 혼자 들어와?”

“아……!”

“우리처럼 파티 꾸려서 들어왔다가, 전멸하고 혼자 남은 게 분명해.”

체스퍼의 설명에 랄프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황한 나머지 너무 간단한 전제를 놓쳐 버리고 만 것이었다.

소환술사 없이는 판의 관문에 도전할 수 없다는 전제.

그리고 이쯤 되자, 구겨졌던 얼굴이 조금 펴질 수 있었다.

‘그래. 차이야 벌리면 그만이지.’

십수 마리의 정령들에게 둘러싸인 채 공격당하고 있는 기사(?) 클래스 유저를 보며, 랄프는 미련 없이 걸음을 돌렸다.

후발주자가 한 팀 들어왔다는 것은 언제든 정령계에 대한 정보가 퍼질 수 있다는 이야기.

더욱 서둘러야만 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 * *

쩍 벌어진 정령들의 입에서, 용암에 잠긴 날카로운 파편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용암으로 만들어진 물대포를 연상케 하는, ‘카사’의 고유능력 ‘라바 캐논Lava Cannon’.

다섯 갈래의 용암 줄기가 사방에서 쏟아졌고, 허공에 도약한 이안의 신형은 그곳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퇴로가 없는, 즉사를 면치 못할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이안의 표정은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단지 날아드는 용암 줄기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파악할 뿐이었다.

우우웅-!

옅은 공명음과 함께, 이안의 방패가 파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귀룡의 혼!”

이안의 입에서 나직한 어조의 시동어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이안의 주변으로, 파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푸른빛들은 세 개의 반투명한 방패의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위이잉-!

이안의 주변, 세 곳의 좌표에 나타난 신비한 형상의 방패들.

알아채기 힘들 정도의 짧은 시간차로 생성된 세 개의 방패들은, 각각 쏟아지는 용암의 줄기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각도나 좌표가 조금은 틀어질 법도 하건만, 세 개의 귀룡의 혼은 완벽한 위치에 정확히 소환되었다.

콰콰콰콰-!

하지만 아직, 위기 상황을 전부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쏘아진 라바 캐논의 숫자가 세 줄기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직 두 줄기의 용암덩이들은 이안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대로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면 두 줄기의 용암 모두 이안을 정확히 직격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순간, 떨어져 내리던 이안이 방패의 각도를 슬쩍 틀어 내렸다.

‘지금……!’

먼저 도달한 용암 덩이를 향해, 방패를 들이민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

방패로 받아 낸 용암의 압력에 의해, 이안의 신형이 살짝 뒤편으로 밀려 나갔다.

쿵-!

쏘아진 용암의 미는 힘을 이용해, 원래 떨어졌어야 할 위치보다 조금 뒤쪽에 착지한 것이다.

그리고 이안이 밀려난 자리로, 마지막 한 줄기의 용암이 휙 하고 스쳐 지나갔다.

촤라락-!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세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라바 캐논’의 위력을 88.75퍼센트만큼 흡수했습니다!

-생명력이 174만큼 감소합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방금 이안이 보여 준 컨트롤은 완벽한 설계에 의한 것이었다.

세 개의 방패를 소환한 좌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순간에 용암의 반동을 이용한 것까지.

모든 행동이 계산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차가 생각보다 빠듯했어.’

다섯 마리의 카사는 동시에 고유 능력을 캐스팅하였으나, 이안으로부터의 거리는 제각각 달랐다.

하여 이안은, 가장 거리가 가까운 카사와 가장 먼 카사의 용암을 제외한 세 줄기의 용암을 먼저 차단하였다.

가장 거리 차이가 큰 두 줄기 용암이 도착하는 시간차를 이용해, 착지하게 될 좌표를 비틀어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계산과 움직임이라 할 수 있었다.

깎여 나간 생명력을 확인한 이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생각보다 센데?”

거의 90퍼센트의 피해를 흡수하였는데 174이라는 대미지가 나왔다.

그 말인 즉, 그대로 맞았으면 거의 1,600에 육박하는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세 줄기만 맞았어도, 그대로 사망했겠군.’

아이템의 능력치가 전부 0인 지금, 초월 상태인 이안의 생명력은 5천도 채 되지 않았다.

4800정도의 데미지라면, 그대로 골로 가는 게 당연한 상황인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위력이기는 했지만, 등골이 서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어.’

자세를 다잡은 이안이, 내밀었던 방패를 회수하였다.

위기를 넘겼으니 이제 반격할 타이밍이었다.

‘고유능력 빠진 껍데기들부터 처리해 볼까?’

빠르게 주변을 훑어본 이안이 순식간에 전방으로 튀어 나갔다.

타탓-!

바람의 정령 ‘실라프’들이 달려들었지만, 타깃은 뒤편에 있는 ‘카사’들이었다.

까강- 깡-!

방패를 움직여 실라프들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낸 이안이, 블러디 리벤지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띠링-!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0.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지금 이안의 전략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공격 속도가 빠른 실라프들을 이용해서 우선 버프 스텍을 풀 스텍까지 쌓으려는 것이다.

방패 막기에 한 번 성공할 때마다 0.5퍼센트씩 중첩되는, ‘귀룡의 분노’ 고유 능력의 공격력 버프.

실라프들의 공격을 막다 보면 맥시멈 수치인 100 중첩까지 어렵지 않게 쌓을 수 있을 것이었다.

까강- 까가강-!

게다가 귀룡의 분노는, 15퍼센트의 확률로 흡수한 피해를 반사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바람의 하급 정령 ‘실라프’에게 피해를 돌려줍니다.

-‘실라프’에게 487만큼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생명력이 1만에 육박하는 하급 정령들이지만, 400~500의 피해가 누적되는 것은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다.

때문에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이안은 실라프들의 생명력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수 있었다.

“흣차……!”

쉴 새 없이 방패 막기를 발동시키며 실라프들의 사이를 비집고 나온 이안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카사를 먼저 공략하기 시작했다.

촤락- 촤아악-!

이미 공격력 버프가 제법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안의 검날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게다가 카사의 경우 마법 공격형 정령이었기 때문에, 실라프보다 탱킹 능력이 훨씬 약했다.

-불의 하급 정령 ‘카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사’의 생명력이 502만큼 감소합니다.

-‘카사’의 생명력이 635만큼 감소합니다.

제대로 공격이 박히기 시작하자, 생명력 게이지가 쭉쭉 깎여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생명력 게이지도 그렇게 상태가 좋지만은 못 했다.

-남은 생명력 : 2,984

방패 막기에 성공하더라도 0의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적된 대미지가 제법 되었던 것이다.

물론 피하거나 막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하는 경우도 한 번씩 있고 말이다.

이안은 줄어드는 생명력을 수시로 확인하며, ‘귀룡의 분노’ 버프의 중첩 상태를 체크하였다.

‘38중첩……. 풀 스텍 쌓을 때까지 버티는 건 역시 무리겠는데.’

귀룡의 분노 스텍이 100중첩이 되면, 공격력 버프도 버프지만 또 다른 능력이 발동한다.

5초 동안, 일시적으로 ‘무적’ 상태가 되는 것.

하지만 100중첩을 쌓기 전에, 생명력이 다 떨어지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안은 더욱 공격적으로 움직이며 ‘카사’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0초 정도가 흘렀을까?

이안은 한 마리 카사를 거의 빈사 상태로 만듦과 동시에,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뒤를 따라다니던 물의 정령 ‘운디네’의 고유 능력이 발동하였다.

-물의 최하급 정령 ‘운디네’의 고유능력, ‘물의 축복’이 발동하였습니다.

파란 빛과 함께 이안의 주변에 일렁이는 투명하고 맑은 보호막.

이어서 이안은 방패를 뒤로 젖힌 채 카사의 전면으로 뛰어들었다.

카사의 입에서 불덩이가 튀어나오고 있었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불덩이를 최대한 정면으로 맞아야만 했다.

그래야 소진된 생명력을 가득 채울 수 있으니 말이다.

-‘카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물의 보호막’이 발동합니다.

-생명력을 1,209만큼 회복합니다.

더하여 후방에서 찔러오는 실라프의 공격들도 그대로 다 받아 주었다.

-생명력을 598만큼 회복합니다.

-생명력을 759만큼 회복합니다.

이로 인해 바닥까지 떨어졌던 이안의 생명력이 다시 가득 차올랐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의 축복’ 고유 능력의 지속 시간은 고작 3초였지만, 이안에겐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후우웅-!

제 역할을 다한 투명한 보호막이 스르륵 하고 허공으로 녹아든다.

이제 물의 축복을 다시 사용하려면, 27초의 시간을 더 버텨야만 한다.

‘귀룡의 분노도 있고. 그 정돈 충분히 버티겠지.’

전투 사이클을 완벽히 완성한 이안은, 거침없이 날뛰기 시작하였다.

대미지 계산부터 시작하여 모든 설계가 완벽히 끝났으니, 이제는 주춤거릴 이유가 없었다.

-‘귀룡의 분노’ 능력이 발동합니다.

-‘무적’ 상태가 되었습니다.

피를 머금은 검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정령들을 썰어 대는 이안.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안이 날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 한 마리의 정령도 사망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만 십수 마리가 넘는 정령들의 생명력이 거의 대부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이안은 한 마리를 노리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최대한 많은 정령들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띠링-!

이안의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던 시스템 메시지 한 줄이 떠올랐다.

-‘블러드 스플릿’ 고유 능력의 발동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안의 손에 들린 핏빛 검에서 다시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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