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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콘텐츠, 정령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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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5층으로 이루어진 빙하의 첨탑.
이안 일행은 5층까지 엄청난 속도로 주파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난이도가 첫 번째 구역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데다, 아이템에 걸려 있던 고유 능력들의 제약이 전부 풀렸으니 말이다.
이안 일행이 5층까지 주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5분.
하지만 이안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니,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이거 시간제한이 너무 빠듯한데…….’
이 이상 빠르게 돌파할 수 없다 생각될 정도로 움직였음에도, 제한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무려 1분에 한 층씩 뚫은 것이지만, 문제는 20분 안에 25층까지 뚫어야 된다는 것.
이 속도로 올라가다가는 제한 시간이 되기 전에 꼭대기에 도달할 수 없다.
-관문 2구역, ‘빙하의 첨탑’ 5층을 돌파하였습니다.
-‘빙하의 첨탑’ 6층에 입장합니다.
심지어 6층에 입장하자마자, 던전의 양상이 일변하였다.
쿵- 쿠쿵!
1~5층에서는 본 적 없었던, 새로운 정령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상위 등급 정령인 것 같지?”
사라의 말에, 바네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맞아. 저기 보이는 ‘카사’라는 녀석. 불의 하급 정령이야. 내가 소환해서 써 본 적이 있거든.”
사라의 말을 들은 이안은, 살짝 굳은 표정이 되었다.
짹이를 진화시켜 본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정령의 등급 차이 하나가 얼마나 큰 차이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해.’
검의 손잡이를 한차례 고쳐 잡으며, 이안은 6층의 맵을 빠르게 스캔하였다.
카일란 기획 팀이 돌파가 불가능한 관문을 만들어 놨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안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5층까지는 천장이 막혀 있었는데, 6층부터는 위로 뻥 뚫려 있네?’
첨탑의 5층까지는, 무척이나 단순한 구조였다.
널따란 탑의 내부를 돌파하여 반대편으로 이동하면, 상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존재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6층부터는 거의 최상위 층까지 통째로 이어진 구조인 듯했다.
탑의 외곽을 따라 마치 용수철의 모양처럼 나선형으로 끝없이 솟아 있는 계단들.
그리고 그 계단 곳곳에는 수많은 하급 정령들이 길목을 지키고 서 있었다.
‘일일히 뚫고 지나가다간 절대로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없어.’
하급 정령의 생명력은, 모르긴 몰라도 최하급 정령들의 두 배 이상이 될 것이다.
정상적으로 모든 정령들을 처치하며 길을 뚫었다가는, 아무리 빨라도 지금부터 30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이안의 생각이었다.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려면, 몬스터들을 무시해야 해.’
이안의 눈이 전방을 향했다.
어느새 사라와 바네사는 합을 맞춰가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어쨌든 이안에게 주어진 것은 프리 롤이기에, 이안과 관계없이 두 사람의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지 못했던 가정이 떠올랐다.
‘혹시, 관문을 뚫는다는 게……. 한명만이라도 마지막 구역에 도달하면 되는 건 아닐까?’
퀘스트 창에는 어디에도, 몬스터를 섬멸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없다.
게다가 첫 번째 관문의 경우를 생각해 보니, 이안의 가정은 더욱 그럴싸해졌다.
‘맞아. 첫 번째 관문에서도, 마지막 지점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나였어. 그리고 나머지 둘이 도착하기 전에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떠올랐었지.’
물론 이안이 먼저 도착한 것은, 몇 초도 채 되지 않는 근소한 차이였다.
차이가 많이 났었더라면, 이안이 그때 바로 알아챘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양손에 블러디 리벤지와 귀룡의 방패를 꽉 움켜 쥔 이안은, 운디네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운디네, 내 바로 뒤에 바짝 따라붙어야 돼.”
스륵- 스르륵.
운디네가 작은 머리를 까딱이며, 이안의 말에 대답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이안의 신형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파아앗-!
블러디 리벤지의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시킨 것이다.
“어, 어엇!”
자신의 옆을 쏜살같이 스쳐가는 핏빛 그림자에, 사라의 입에서 놀란 음성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붉은 그림자는, 사라와 바네사가 공격 중이던 정령의 전면에 그대로 작렬하였다.
콰아앙-!
이어서 세 사람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파티원 ‘이안’이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시켰습니다.
-불의 하급 정령 ‘카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카사’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순간적으로 놀란 사라가 가슴을 쓸어내렸고…….
“어후,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바네사가 삐죽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앞에 딴 놈도 많은데 왜 여기다가 고유 능력을 낭비한 거야?”
하지만 다음 순간, 두 자매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카사를 처치한 이안의 신형이 다시 한 번 허공을 향해 도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이안의 그림자가 쏘아진 곳이 뻥 뚫린 던전의 중심부라는 것이었다.
“기껏 올라가 놓고 왜 내려오는 거야?”
“차라리 전방에서 계속 뚫어 주지!”
블러드 스플릿을 사용하여 이안이 도착한 곳은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언저리 정도.
거기서 다시 중앙을 향해 도약했으니, 6층으로 떨어져 내릴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허공에 붕 뜬 이안의 주변에 다시금 붉은 혈무血霧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되었다는 의미.
이안의 두 눈동자는 날카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한 놈. 그리고 뒤에 둘.’
모든 장비의 능력치가 제로인 상태에서, 블러드 스플릿 한방에 정령을 처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이안은, 최대한 많은 정령에게 블러드 스플릿을 맞출 생각이었다.
‘약점 포착도 사용할 수 없으니, 최소 다섯 마리는 맞춰야 안전해.’
약점 포착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안은 거의 100퍼센트의 확률로 치명타를 띄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템의 능력 외에 다른 스킬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치명타를 띄울 수 있는 확률은 반반 정도였다.
약점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카사’를 처치하면서 쌓아 놓은 치명타 1스텍.
그리고 치명타 3스텍이 쌓여야,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다.
이번 블러드 스플릿으로, 2마리 이상의 정령에게 치명타를 띄워야 하는 것이다.
각을 재던 이안의 온 몸이, 완전히 빨갛게 물들었다.
‘지금……!’
파앙-!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힘을 잃고 떨어져 내리던 이안의 신형이 튕겨져 나가듯 상층부로 솟구쳐 오른다.
허공을 가르는 핏빛의 섬광.
그 강렬한 섬광은, 계단에 비스듬히 모여 있던 정령들의 사이를 거침없이 헤집고 들어갔다.
-불의 하급 정령 ‘카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땅의 하급 정령 ‘노에스’에게 피해를 입혔습니다.
-바람의 하급 정령 ‘실라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블러디 리벤지를 역수로 움켜쥔 이안이, 정령들 무리 사이에서 튀어 나왔다.
그리고 여지없이, 붉은 핏빛 안개가 다시 피어올랐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순식간에 8층까지 뛰어오른 이안을 보며, 바네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블러드 스플릿’이라는 고유 능력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다.
멍한 표정의 바네사를 보며, 사라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조건부 쿨 초기화 옵션 달린 고유 능력이야.”
“그, 그래?”
“하지만 초기화 조건 충족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두 자매가 대화하는 사이, 이안의 신형은 또다시 상층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연달아 세 번이나 더 이어졌다.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블러드 스플릿’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이안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10층까지 올라서 버렸다.
파앙-!
하지만 그렇게 연속해서 블러드 스플릿을 사용하는 것도, 무한하게 이어질 수는 없었다.
운 나쁘게 치명타 스텍이 덜 쌓이면서, 스킬 연계가 끈긴 것이다.
11층에 올라선 이안은, 모여드는 정령들을 보며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생각보다 빨리 끊겼네.”
하지만 이 또한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아니다.
귀룡의 방패를 치켜든 이안이, 정령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 딱 다섯 놈만 잡아 볼까?”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 * *
수많은 하급 정령들의 사이에 둘러싸인 이안.
사라와 바네사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이안을 향해 소리쳤다.
“죽을 것 같으면 밑으로 그냥 뛰어내려!”
“그래, 우리가 어떻게든 살려 볼게!”
그녀들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안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지금의 상황이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녀들로서는 서너 마리 상대하기도 벅찬 하급 정령들이 십수 마리 넘게 이안을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안은 여유 넘치는 표정이었다.
‘이제 두 번째 카드를 꺼내 볼까?’
이안의 두 번째 카드는 바로, ‘귀룡의 방패’에 부여되어있는 고유 능력들.
방패의 고유 능력인 ‘귀룡의 혼’과 ‘귀룡의 분노’ 또한, 블러드 스플릿 못지않게 훌륭한 능력들이었다.
‘쿨감 8퍼센트 초월 옵션은 덤이고 말이지.’
이 두 개의 능력은, 이안이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었다.
*귀룡의 혼魂
귀룡의 혼과 교감하여, 원하는 위치에 즉각적으로 방패의 분신을 소환할 수 있게 됩니다.
소환된 분신은 3초간 모든 투사체를 흡수하며, 15초 동안 사라지지 않고 유지됩니다.
-한 번에 최대 세 곳에 분신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장비하고 있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단, 인벤토리에 보유 중이어야만 함.)
-귀룡의 혼이 유지되는 동안, 모든 소환수들의 생명력이 초당 1퍼센트씩 회복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10분
*귀룡의 분노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할 시, 15퍼센트의 확률로 흡수한 피해의 50퍼센트만큼을 돌려줍니다.
또, 적의 공격을 방어한 횟수가 1회 누적될 때 마다 0.5퍼센트만큼씩 공격력 버프가 걸리게 되며, 100회가 누적될 시 5초 동안 무적 상태가 됩니다.
-버프는 최대 100회까지 누적이 가능하며, 15초 동안 지속됩니다.
-버프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공격 방어에 성공할 시, 지속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특히 ‘귀룡의 분노’는, 최강의 버프 스킬이자 생존 스킬이었다.
‘블러드 스플릿이 돌아올 때까지 딱 다섯 놈만 잡아 보자.’
타탓-!
목표를 세운 이안의 신형이 전방을 향해 튀어 나갔다.
그를 처음 막아선 것은 하급 바람의 정령인 ‘실라프’였다.
까강- 깡-!
이안의 검과 실라프의 장창이 맞부딪치며 낭랑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녀석도 실피드처럼 물리 공격형 정령인 것 같군.’
불의 하급 정령 카사와 바람의 하급 정령 실라프.
지금 이안을 에워싼 적들은, 이 두 종류의 정령들이었다.
‘일단 전투를 주도하려면 카사의 고유능력을 알아야만 해.’
실라프의 고유 능력은 이미 대충 알고 있었다.
상층부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실라프의 고유 능력 발동 장면을 확인한 것이다.
창을 빠르게 휘둘러 연속해서 전방을 찌르는 단거리 딜링 스킬.
반면에 카사의 고유 능력이 발동되는 것은 아직 보지를 못하였다.
‘어그로를 한번 끌어 볼까?’
까강-!
이안은 달려드는 실라프를 힘껏 밀어내어, 그 반동을 이용해 반대편으로 도약했다.
그리고 카사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고유 능력이 논타깃 범위 스킬이라면, 지금쯤 캐스팅을 시작할 텐데…….’
대상의 움직임이 빠르고 실력이 뛰어날수록 논타깃 스킬을 맞추는 것은 어려워진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논타깃 스킬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으니, 바로 허공으로 도약할 때였다.
특별한 고유 능력이 아니고서는 허공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이 도약하는 순간 낙하 지점 예측은 어렵지 않았고, 미리 그 위치를 향해 투사체를 날리면 되니까.
그래서 일정 수준 이상의 AI를 가진 몬스터들은, 그 시점을 노려 스킬을 발동시키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안은, 바로 이 시스템을 노린 것이다.
‘역시……!’
그리고 이안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우우웅-!
이안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다섯 마리의 ‘카사’들의 주변에 붉은 화염이 일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