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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콘텐츠, 정령술 (1)
림롱으로부터 ‘블러드 리벤지’를 약탈한 이후, 이안은 항상 기본 무기로 블러드 리벤지를 설정해 놓았다.
물론 블러드 리벤지가 정령왕의 심판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서머너 나이트의 고유능력인 바이탈리티 웨폰 Vitality Weapon이 있었다.
에고 웨폰Ego Weapon에 한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고유 능력인 바이탈리티 웨폰.
이 고유 능력을 사용한다면, 굳이 장착하지 않더라도 정령왕의 심판을 컨트롤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모든 스킬과 아이템 능력이 봉인된 지금 상황에서는, 더 손에 익는 무기인 정령왕의 심판을 사용하는 게 맞았으니까.
“바네사, 왼쪽부터 점사해!”
“이안, 샐러맨더 엄호 좀 부탁해!”
어둑한 던전의 벽을 타고 사라의 오더 소리가 쉼 없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안은 사라의 오더에 따라 묵묵히 역할을 수행해 내었다.
까강- 깡-!
평소에도 ‘오더’가 포지션이었는지 사라는 무척이나 능숙하게 전장을 파악하고 알맞은 오더를 내렸다.
‘역시 제법…….’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라의 오더가 완벽히 이안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오더가 뛰어나고 그렇지 않고를 떠나서 전투 스타일에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부터 내가 오더하고 싶지만…….’
사라를 슬쩍 응시한 이안은 달려드는 정령을 쳐 내며 샐러맨더를 향해 도약하였다.
오더를 넘겨받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실력을 보여 주는 것.
두 자매가 이안의 실력을 인정한 뒤에 오더를 넘겨받아야,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말이다.
탓-!
바닥에 내려앉은 이안이 샐러맨더를 둘러싼 정령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실피드에 이어 나타난 적들은 땅의 정령인 ‘노움’들이었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난쟁이의 형상을 한 노움들은 실피드보다 느리고 둔하지만, 높은 방어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실피드를 상대할 때처럼 한 번에 다 녹이려는 전략은 쓸 수 없어.’
모든 스킬을 한 번에 쏟아 붓는 전략은, 치명적인 단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스킬이 전부 다 빠지고 나면, 번 아웃Burn Out 상태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 한 방으로 적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피드의 배가 넘는 탱킹 능력을 가진 노움들은 아무리 스킬 연계가 완벽히 되어도 한 번에 녹이는 게 불가능했다.
거기에 하나 더.
‘사실 이게 제일 큰 문제지.’
태생이 탱커인 노움은 고유 능력도 탱킹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든든한 친구
(패시브 고유 능력)
땅의 정령 노움은, 정령들의 든든한 친구입니다.
지켜야 할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노움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반경 3미터 이내에 아군 정령이 늘어날 때마다 노움의 방어력이 10퍼센트만큼 상승하며, 생명력 회복 속도가 15퍼센트만큼 상승합니다.
반경 3미터 이내의 아군 정령이 공격받을 때마다 노움의 공격력이 3퍼센트만큼 상승하며, 공격 속도가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최대 100회까지 중첩 적용됩니다).
아군 정령이 사망할 시, 노움의 생명력이 전부 회복됩니다.
현재 이안 파티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위력적인 스킬연계는, 실프의 ‘돌개바람’과 샐러맨더의 ‘작은 불꽃’이다.
돌개바람으로 적들을 가깝게 모은 뒤, 작은 불꽃을 던져 스플레쉬 대미지를 입히는 전략.
그런데 노움의 ‘든든한 친구’ 고유 능력은 이 스킬 연계에 완벽한 카운터라 할 수 있었다.
‘모일수록 괴물이 되는 노움들에게……. 돌개바람을 쓴다는 것 자체가 에러니까.’
이안 파티가 상대해야 하는 노움은 총 열두 마리다.
돌개바람으로 이 친구들을 전부 모아 버리면 괴랄한 버프를 걸어 주는 꼴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방어력 120퍼센트 상승에 생명력 회복 속도 180퍼센트 상승.
‘아마 작은 불꽃 대미지가……. 아예 박히지 않을 거야.’
쿨타임 초기화를 이용해 계속해서 불꽃을 날려 봐야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빠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모아 놓은 채로 계속 공격하다 보면, 탱커 주제에 딜러 급 공격력을 갖게 되겠지.’
모여 있는 열두 마리 노움에게 동시에 화염 피해를 입힌다면, 그 순간 모든 노움들의 공격력이 30퍼센트, 공격 속도가 15퍼센트 증가하게 된다.
두어 번 불꽃을 날리다 보면, 순식간에 두 배에 가까운 괴랄한 공격력을 갖춘 노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휘리릭.
허공에서 날아드는 진흙덩이를 가볍게 피해 낸 이안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한 방에 울면서 도망가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이 변태 같은 고유 능력을 가진 노움을, 가장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론 자체는 너무나도 간단하다.
‘든든한 친구’ 고유 능력이 작동하지 않게 만들면 되니 말이다.
한 마리씩 멀찍이 격리시킨 뒤, 화력을 집중해서 제거하면 되는 것.
하지만 말이 간단하지, 실행까지 간단하지는 않았다.
“바네사, 이안 도와서 쟤들 접근 못하게 막아 줘!”
“알겠어, 언니!”
“대지의 기둥!”
쿠쿵- 쿠쿠쿵-!
열두 마리의 노움 중 한 마리를 겨우 빼내기는 했으나, 다른 노움들의 접근을 막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한 마리 노움의 생명력을 절반 정도 깎아 냈으나, 다른 노움들이 붙기 시작하면 도로 아미타불 될 게 분명했다.
“으으, 화력이 부족해!”
“안 되겠다. 이안, 이쪽으로 와서 딜부터 같이 넣자! 쟤들 접근하기 전에 한 놈 잘라야 돼!”
다른 노움들이 가까이 접근할수록, 쌍둥이 자매는 더욱 다급해졌다.
가장 바깥쪽에서 노움들의 접근을 막는 포지션이던 이안까지 불러들여서, 딜을 넣게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은 처음으로 사라의 오더를 따르지 않았다.
타탓-!
이안은 함께 노움을 밀어내던 실프까지 데리고, 오히려 전장의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에 두 자매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 어디가!”
“오더 못 들었어?”
하지만 이안은 대답 대신 빠르게 좌표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배는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돌개바람의 범위는 5미터. 내가 지금 여섯 걸음 정도 움직였으니까…….’
관문의 통로는 좁고 기다란 구조를 가지고 있다.
통로의 폭은 어지간하면 5미터라는 범위 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까가강-!
창을 휘둘러 다가오는 노움을 밀쳐낸 이안이, 또렷한 어조로 실프에게 오더를 내렸다.
“실프, 돌개바람!”
그리고 이안의 오더를 들은 사라와 바네사는 더욱 사색이 되고 말았다.
“이안, 미쳤어?”
“얘들 상대로 돌개바람을 쓰면 어쩌자는 거야?”
사라와 바네사는 노움의 고유 능력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돌개바람이 불러올 ‘재앙’까지도 그대로 머릿속에 떠올라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을 뿐.
“……!”
“어엇?”
두 자매가 이안의 의도를 알아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휘이잉- 휘이이잉-!
멀찍이 소환된 돌개바람이, 정확히 한 마리를 제외한 노움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사라는,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미친, 이게 가능해?’
어둡고 안개 낀 통로.
조금만 멀어져도 제대로 된 위치 파악이 힘든 이 좁은 맵에서 이안의 범위 계산이 말도 안 되게 정확했기 때문이다.
사실 돌개바람을 역으로 이용해서 노움들을 격리한다는 발상은, 기발하지만 생각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난전 속에서 5미터의 거리 계산을 해 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어떻게 이런 유저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을 수 있는 거지?’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플레이라 할 수 있었다.
“멍 때리지 말고 빨리 마무리해!”
멀찍이서 들려오는 이안의 목소리에, 사라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안이 벌어 준 시간 안에 눈앞의 노움을 무조건 처치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퍼퍼펑-!
샐러맨더의 불꽃과 사라가 쏘아 낸 마법의 구체가 작열하면서, 노움의 생명력이 빠르게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파티원 ‘사라’가 대지의 정령 ‘노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노움’의 생명력이 275만큼 감소합니다!
-바네사의 정령 ‘샐러맨더’가 대지의 정령 ‘노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노움’의 생명력이 301만큼 감소합니다!
40퍼센트 수준에서 순식간에 10퍼센트 수준까지 노움의 생명력이 빠르게 깎여 내려갔다.
다가오는 노움 무리를 막기 위해 분산되던 공격이 한데 모이니, 안정적인 딜링이 가능해진 것이다.
‘돌개바람의 지속 시간은 10초. 이 녀석 정도는 여유 있게 잘라 낼 수 있겠어.’
여유가 생긴 사라의 시선이 다시 이안을 향해 움직였다.
돌개바람이 지속되는 시간 동안 이안이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안을 발견한 사라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퍼퍽- 퍼퍼퍽-!
돌개바람의 한복판에 들어선 이안과 실프가 노움 한 마리를 미친 듯이 쥐어 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
한 마리의 노움을 끊어 낸 것에 만족하지 못한 이안이 외곽 쪽에서 빨려 들어가던 다른 노움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파티원 ‘이안’이 대지의 정령 ‘노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노움’의 생명력이 359만큼 감소합니다!
-‘노움’의 생명력이 331만큼 감소합니다!
허둥대며 돌개바람의 중앙으로 빨려드는 노움과 쉴 새 없이 창을 휘둘러 노움을 외곽으로 쳐 내는 이안.
거기에 이안의 뒤편에서 쉴 새 없이 바람을 쏘아 대는 실프까지.
둘의 합공을 피하기 위해 노움은 발버둥치고 있었지만, 이안의 창술이 그렇게 녹록할 리 없었다.
때문에 노움은, 돌개바람의 인력引力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외곽으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노움의 생명력이 뭉텅이로 깎여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녀석이 모여 있는 노움들의 중첩된 버프를 받았다면, 절대로 이만한 대미지를 입히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만 버프의 범위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잖아?’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안이 ‘돌개바람’의 범위와 ‘든든한 친구’의 범위 차이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든든한 친구’의 적용 범위보다 돌개바람의 범위가 2미터나 넓기 때문에, 이안에게 맞아 밀려난 노움이 버프의 범위에서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곧바로 이해한 사라가, 지팡이를 들며 시동어를 외쳤다.
“대지의 기둥!”
사라는 남아 있던 두 개의 기둥을 연달아 소환하였고…….
쿠쿵- 쿵!
솟아난 기둥에 넉백당한 노움은, 아예 돌개바람 범위 바깥쪽으로 밀려 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 바네사는 첫 번째 노움을 깔끔히 처리하였다.
띠링-!
-최하급 대지의 정령 ‘노움’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가 13만큼 증가합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안이 공격하던 노움도 빈사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실프, 마무리하자!”
사륵- 사르륵-!
돌개바람의 효과로 방어력이 감소한 데다, 바람 속성에 상성이 나쁜 대지 속성을 가진 노움.
퍼퍼펑-!
-최하급 대지의 정령 ‘노움’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초월 경험치가 14만큼 증가합니다.
낑낑대며 한 마리도 잡기 힘들었던 노움이, 이안이 움직이자마자 순식간에 두 마리나 제거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쯤 되자, 사라뿐만 아니라 바네사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너……. 대, 대체 뭐야?”
놀라서 말까지 더듬는 바네사.
이안은 피식 웃으며, 정령왕의 심판을 번쩍 치켜들었다.
“자, 지금부턴…….”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내가 오더 잡는다. 이의 없지?”
사라와 바네사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