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령술이란? (2)
* * *
소환술사 클래스인 이안과 바네사, 마법사 클래스인 사라.
이안과 바네사의 선택지는 네 마리의 정령들이었고, 사라의 선택지는 네 개의 완드였다.
하지만 이 선택지들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네 가지 속성을 가진 정령들과 마찬가지로 지팡이들에도 각각 다른 속성이 부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합을 짜는 데 있어 이안이 첫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바로 ‘속성’이었다.
“다들 최상위 랭커니까 속성의 상성 관계쯤은 알고 있겠지?”
이안의 물음에, 사라와 바네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당연하지.”
쌍둥이 자매가 동시에 대답하는 모습에서 뭔가 귀여움을 느낀 이안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렇다면 이미 깨달았겠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네 가지 속성은 서로 먹히고 먹히는 속성들이야.”
바네사가 고개를 갸웃 하면서 반문했다.
“그건 당연한 얘기 아냐? 어떤 속성이든 상성은 존재하잖아.”
이안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아니. 그 얘길 하는 게 아냐.”
“그럼?”
“이 네 가지 속성들의 관계가 마치 가위바위보와 비슷하단 얘기를 하고 싶었어.”
“아…….”
불 속성은 물에 약하고, 바람 속성은 불에 약하다.
땅 속성은 바람에 약하지만, 물 속성에 강하다.
카일란에 있는 수많은 속성이 있다.
하지만 모든 속성이 이렇게 완벽한 상성의 순환 고리 안에 들어가 있지는 않다.
그래서 이 네 가지 속성은, 사실상 카일란에 존재하는 모든 속성들의 베이스가 되는 속성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안은 속성 선택이 이 관문을 돌파하는 데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안의 감은, 여기에 기획자의 의도가 들어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 바네사가 선택한 ‘샐러맨더’는 화염 속성이야.”
“그렇지.”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어떤 녀석을 선택해야 우리 팀의 속성 밸런스가 가장 이상적일까?”
이안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가장 먼저 대답한 사람은 사라였다.
“땅 속성의 정령인 노움이겠지.”
“빙고. 역시 정확해.”
“우쒸, 나도 방금 말하려고 했는데!”
화염 속성은 바람에 강하지만 물에 약하다.
땅 속성은 물에 강하지만 바람에 약하다.
때문에 화염 속성과 땅 속성은, 서로의 약점을 커버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조합이다.
이안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
“그게 뭔데?”
“땅 속성인 노움의 고유 능력보다는, 바람 속성인 실프의 고유 능력이 샐러맨더와 더 궁합이 좋다는 거지.”
바네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나도 방금 읽어 봤는데, 실프의 고유 능력이 가장 조합이 잘 맞을 거야.”
이안은 사라에게 보여 주기 위해 실프의 고유 능력을 채팅창에 공유하였다.
고유 능력
*돌개바람 (재사용 대기 시간 50초)
-커다란 회오리바람을 소환하여, 반경 5미터 이내의 적들을 끌어들입니다.
돌개바람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적들에게 10초 동안 마법공격력의 20퍼센트만큼의 바람 속성 피해를 입힙니다.
돌개바람에 피해를 입은 모든 적들은, 15초 동안 마법 방어력이 3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사라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확실히 샐러맨더의 고유능력과 만나면 시너지가 엄청나겠네.”
사라는 마법사 클래스의 랭커답게, 두 고유 능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곧바로 머릿속에 그려 낸 듯했다.
이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라, 혹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네 개의 지팡이 중에, 실프의 돌개바람보다 더 시너지 좋은 고유 능력을 가진 게 있을까?”
이안의 말에, 사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는 것 같아.”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이안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결정된 것 같네.”
“좋았어!”
이어서 두 사람은, 동시에 선택하였다.
-파티원 ‘이안’님이, ‘실프’ 정령을 선택하셨습니다.
-파티원 ‘사라’님이, ‘땅의 지팡이’ 무기를 선택하셨습니다.
* * *
“흠, 오늘은 좀 재밌는 뉴스 없으려나?”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은 카노엘은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 들어가 이것저것 기사를 뒤지기 시작했다.
요즘 카노엘이 컴퓨터만 켜면 하는 것은, 카일란 관련 정보를 서치하는 일이었다.
“에이, 역시 신선한 정보가 하나도 없네. 거의 다 로터스 길드카페에 올라와 있는 정보들이잖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카노엘은 화면에 떠 있던 창을 끄더니 새로운 창을 오픈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이트의 모든 글자가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괜찮은 정보를 구하려면, 글로벌 커뮤니티에 들어가야 해.”
카노엘이 접속한 페이지는, 다름 아닌 카일란 글로벌 정보공유 커뮤니티였던 것.
오픈한 지는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사이트였지만, 이곳에는 이미 만 명이 넘는 회원들이 가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노엘이 이 사이트를 서치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안의 지령 때문이었다.
-노엘아, 내가 너한테 임무를 하나 줄게.
-임무? 어떤 임무……?
-너 몇 년 전까지 미국에서 살았다고 했지?
-응, 그랬었지.
-그럼 영어 잘하겠네?
-뭐, 내가 학교에서 시험 보면 유일하게 풀고 나오는 과목이 영어이긴 해.
-자랑이다.
-쳇. 근데 그건 왜?
-너 오늘부터, 하루 30분씩 정보 수집 좀 하자.
-정보…… 수집?
-그래. 내가 얼마 전에 괜찮은 사이트를 하나 찾았는데…….
-그런데?
-읽을 수가 없더라고.
-……?
당시 이안과 했던 대화를 떠올린 카노엘은, 더욱 의욕 넘치는 표정이 되었다.
“그래, 이안 형이 나한테 뭔가 맡긴 게 처음인데……. 이번에 진짜 확실히 보여 줘야지.”
카노엘은 의지를 활활 불태웠다.
이 막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이안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일단 메인 뉴스부터 한번…….”
카노엘은 망설임 없이 메인 페이지의 배너를 클릭하더니, 능숙하게 영문으로 된 게시물들을 읽어 내려갔다.
해외 뉴스에는, 정말 다양한 소식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중 제법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한 카노엘이 히죽거리며 게시물을 읽어 내려갔다.
“일본 서버 랭커들이 명계를 발견했다고?”
게시물의 내용은 일본 서버의 랭커들이 명계라는 새로운 차원을 발견했으며, 조만간 그곳에 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미 이안에게 명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카노엘의 입장에서는 코웃음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우리 이안느님께선 벌써 단물 쏙 빼먹고 나오셨는데……. 짜식들, 고생하는구먼.”
심지어 댓글들은 ‘명계’라는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에 엄청나게 열광하고 있었다.
-와우! 일본 서버 랭커들 정말 대단해!
-명계라고? 그건 리치 킹 샬리언을 처치해야 갈 수 있는 곳인가?
-일본 애들이 정보를 전부 오픈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아.
-키야, 우리 대만 서버는 아직 샬리언 구경도 못했는데, 일본 애들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찾았대?
-그러게. 우리 미국 서버는 엊그제 샬리언 처치하고 에피소드 클리어했는데, 명계 갔다는 랭커는 아직 없거든.
-오오, 미국 서버는 샬리언 에피소드를 벌써 클리어한 거야? 대단한데?
-응. 하지만 사실 대단할 것도 없지. 한국 애들은 샬리언 잡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 가잖아?
-하긴, 걔들은 어떻게 그렇게 매번 빠른지 모르겠어. 다 따라잡아 간다 싶으면, 항상 조금씩 앞서 있더라고.
-아냐, 꼭 그렇진 않아. 이번이 좀 말도 안 되게 빨랐던 거지, 마계 에피소드 때만 해도 미국 서버랑 별 차이 없었던 걸로 기억해.
-그랬었나?
댓글들을 읽어 내려가던 카노엘은 뭔가 뿌듯한 기분이 되어 중얼거렸다.
“짜식들, 그게 다 우리 이안형님의 업적이란다. 언젠가 서버 통합되고 나면, 니들도 이안갓을 찬양하게 될 거야.”
기분이 좋아졌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게시글을 검색하는 카노엘.
그런데 그때, 그의 눈에 한 게시물의 제목이 확 하고 들어왔다.
-중국 서버 소환술사 랭킹 1위 유저 왕 웨이. 이미 한 달 전부터 정령계 공략 중?
이안이 얼마 전 정령계에 입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카노엘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 * *
띠링-!
-파티원 전원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금부터 첫 번째 관문이 시작됩니다.
이안과 사라가 선택을 끝내자마자, 일행의 눈앞에 새롭게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번쩍 하고 떠올랐다.
-‘소환술사 판의 시험 Ⅰ (직업)(연계)’
소환술사이자 뛰어난 정령술사였던 판은, 언젠가 정령술이 실전될 것을 염려하였다.
기계문명에 의해 정령계가 완벽히 잠식되고 나면, 지상계와 완전히 단절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령계와 지상계가 단절된다면, 인간들이 정령술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
때문에 판은, 정령계의 가장 안전한 곳인 ‘서리동굴’에 정령술의 비전을 숨겨 놓았다.
만약 당신이 판의 시험을 전부 통과한다면, 그가 남긴 비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판의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당신들은 선택한 정령(정령 무기)만을 이용하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만약 파티원이 선택한 정령 중 하나라도 사망한다면, 당신들은 관문 통과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오염된 정령들을 성공적으로 처치하고, 두 번째 관문의 입구까지 도착하자.
퀘스트 난이도 : C
퀘스트 조건 :‘정령들의 친구’ 퀘스트를 진행 중인 유저.
소환술사 클래스이거나, 소환술사 클래스를 파티에 포함한 유저.
제한 시간 : 30분
*모든 몬스터 웨이브를 돌파하여 두 번째 관문에 도착하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보상 : 초월 경험치 100
명성 10만
퀘스트 창을 전부 읽은 이안이 재빨리 맵의 구조를 확인하였다.
‘통로형 구조. 길은 크게 어렵지 않은 것 같고……. 제한시간이 있는 단순 몬스터 돌파 관문인가?’
그때, 이안의 눈앞에 몇 줄의 메시지들이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관문에서 선택한 아이템을 제외한 착용한 모든 아이템의 성능과 고유 능력이 100퍼센트 제한됩니다.
-관문에서 선택한 정령을 제외한 모든 소환수가 소환 해제됩니다.
-모든 버프 효과가 무효화됩니다.
-모든 스킬과 고유 능력이 ‘비활성화’ 상태가 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묘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이 예상했던 것처럼 선택한 정령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에 제약이 걸려 버린 것이다.
‘역시! 처음 선택이 진짜 중요한 거였어.’
정령 선택을 무척이나 고민했던 이안과 달리, 바네사는 무척이나 쉽게 샐러맨더를 골라 버렸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히, 선택할 정령의 비중을 크게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네사는 최하급 정령보다 강력한 소환수들을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선택한 정령이 전투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제약이 걸려 버리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초월 레벨이 3~4에 불과한 이안 일행이 템발까지 없어진다면, 최하급 정령과 별 차이 없는 전투력을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자,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바네사와 사라를 한 번씩 응시한 이안은, 천천히 던전 안쪽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통로의 어둡고 깊숙한 곳에서 정체불명의 그림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