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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계 입성 (1)
띠링-!
-새로운 차원, ‘정령계’에 입장하셨습니다.
-‘정령계’ 차원의 차원 타입은 ‘중간계’입니다.
-이제부터 ‘초월 레벨’이 적용됩니다.
-지상계에서 얻은 모든 능력치에 비례하여 초월 능력치가 설정됩니다.
-현재 ‘이안’님의 초월 레벨은 Lv.3입니다.
-‘용사의 자격’을 얻을 때까지 초월 레벨의 레벨 업이 제한됩니다. (Lv.10을 초과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정령들의 고향, 정령계를 발견하셨습니다.
-정령마력(초월)이 10만큼 증가합니다.
-소환마력(초월)이 30만큼 증가합니다.
……후략……
상쾌한 공기.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푸르른 초목들.
정령계에 도착한 이안은 양팔을 쭉 펼치며 심호흡을 하였다.
“후아, 여기가 정령계……!”
이안은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을, 빠르게 스캔하였다.
‘정령계도 역시 중간계에 속하는 곳이었어. 그나저나…….’
이안의 눈이 무언가를 찾아 아래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뭐야, 최초 발견 왜 없어……?”
당연히 떠오를 줄 알았던 최초 발견 버프와 보상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이안은 황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이 공간에 들어온 이가 있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 드넓은 맵에서, 누군가를 발견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대체 누굴까. 샤크란? 아니면, 마계 랭커들?’
이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최초 발견 보상이 없다고 해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생각했던 계획이 처음부터 어긋나자 기분이 상한 것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여기부터 좀 더 빨리 왔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사실 이안은 이미 두세 달 전에도 정령계에 입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정령왕의 퀘스트 조건인 400레벨에 도달한 지가 벌써 세 달 가까이 지난 것이다.
‘후, 세 달이라는 시간이 충분히 길긴 하지만, 그 사이에 누가 여길 찾은 건지 짐작도 안 되는데…….’
이안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먼저 여길 들어올 만한 인물이 없어. 그나마 가능할 만한 유저가 레비아 님이나 레미르 누나. 그리고 림롱 아니면 샤크란 정도인데…….’
이안이 알기로 레비아와 레미르는, 각자 클래스 티어 상승 퀘스트로 바쁜 상황이었다.
샤크란이야 알다시피 명계의 어비스에서 신나게 사냥 중일 것이었고, 림롱은 이안에게 당한 대미지를 회복한다고 마계에서 고생 중일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정령계에 먼저 입성했다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
이안의 머릿속에 번뜩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 혹시?”
오래 전,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 것이다.
‘그래, 내가 그때 세웠던 가정이 진짜였다면……!’
당시 루가릭스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중간계가 전 세계 서버로 이어지는 새로운 개념의 차원계일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정말이었다면, 누군가 이안보다 먼저 정령계에 도착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한국 서버가 아닌 해외 서버의 랭커들에 대한 정보는 베일에 싸여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이안은 그때의 가정이 맞다는 확신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다.
“이거…… 재밌는데?”
이안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렸다.
콘텐츠를 선점하려던 계획이야 조금 틀어졌지만, 결과적으로 더욱 재밌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쩌면 이편이, 더 흥미진진할지도…….”
씨익 웃은 이안이, 한 발짝 걸음을 떼었다.
대략적인 상황이 파악되었으니 이제 부지런히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띠링-!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령들의 친구’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정령들의 친구’ (직업 퀘스트)
오랜 옛날, 소환술사는 정령들의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정령계가 기계문명에 잠식당한 뒤, 힘을 잃은 정령들은 더 이상 차원의 벽을 넘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정령들은 지금, 오랜 친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순록의 숲’에 있는 ‘서리동굴’을 찾으십시오.
서리동굴의 깊숙한 곳에, 고대의 소환술사가 남겨 놓은 유산이 잠들어 있습니다.
유산을 찾고 그 힘을 받아들이면, 기계문명과 싸울 힘이 생길 것입니다.
퀘스트 난이도 : D+
퀘스트 조건 : 400레벨 이상의 소환술사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알 수 없음
* * *
‘순록의 숲’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퀘스트 창에 쓰여 있는 좌표를 따라가니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30분이 걸린 것도, 이안의 사냥 욕심 때문이었다.
“라이, 도망 못 가게 막아 줘!”
“카르세우스, 브레스!”
정령계는 이안에게,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사냥감은 차고 넘칠 정도로 여기저기 널려 있었으며, 맵 전체에 이안 말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안은 아직까지 3레벨에 머물러 있는 초월 레벨을 빨리 10까지 올리고 싶었다.
‘그래야 용사의 마을인지 뭔지, 그곳에 대한 실마리가 잡힐 테니까.’
하지만 초월레벨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3레벨에서 4레벨을 올리는 것이, 일반 레벨 300레벨대에서 1업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3레벨까지는 올릴 만했지만, 4레벨부터는 정말 지옥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이안의 파티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정말 오랜만에 ‘짹이’가 파티원으로 합류한 것이다.
“짹- 째잭-!”
-짹이(전격의 정령)
정령력 : 57 / 5000
속성 : 전격
등급 : 중급 정령
소환 지속 시간 : 525분 (재소환 대기 시간 : 800분)
공격력 : 427
방어력 : 218
민첩성 : 511
생명력 : 8,250
*정령력이 Max가 되면 상위 정령으로 진화한다.
(전격 속성을 필요로 하는 소환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정령력이 차오른다.)
*소환술사의 소환 마력이 높을수록 정령의 소환 지속 시간이 길어진다.
고유 능력 : 충전
*전격 속성의 정령 마법으로 입힌 피해량의 10퍼센트를 생명력으로 빼앗아 온다.
이안이 짹이를 처음 소환했던 이유는, 단순히 이곳이 ‘정령계’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곳은 짹이의 고향이었고, 때문에 생각나서 한번 소환해 본 것이었다.
하지만 짹이를 소환한 이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령계에서 소환했기 때문인지, 정체되어 있던 짹이의 ‘정령력’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전까지는 짹이에게 ‘없던 것’도 생겨났다.
‘짹이에게 전투력이란 게 생겼어!’
원래 지상계에서, 정령의 역할은 단지 정령 마법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매개체에 불과한 것이었다.
한데 정령계에서 소환된 짹이에게는 공격력부터 시작해서 생명력까지, 전투에 필요한 모든 능력이 다 갖춰져 있었다.
심지어 짹이는, 다른 소환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지지직-!
하늘로 솟아오른 짹이가 날개를 펼치자, 강력한 전류가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에 격중당한 정령의 생명력 게이지가 뭉텅이로 깎여 나갔다.
띠링-!
-정령 ‘짹이’가 ‘오염된 실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오염된 실프’의 생명력이 274만큼 감소합니다.
-‘오염된 실프’가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274’라는 대미지 수치는, 일견 너무 약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중간계였고, 초월 능력치가 적용된 상태다.
때문에 274정도의 대미지면 이안 파티의 평균 언저리는 되는 수치였다.
지상계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짹이의 공격이 명중된 것을 확인한 이안이, 재빨리 전방을 향해 튀어 나갔다.
타탓-!
이어서 이안의 신형이, 도망치는 ‘실프’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딜!”
‘오염된’이라는 수식어 때문인지 회백색의 색깔을 띠고 있었지만, 실프는 바람의 정령이었다.
그리고 바람의 정령답게 실프는 빨랐다.
‘하지만 마비가 걸렸다면 얘기가 다르지.’
이안의 창이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전방을 수놓았다.
그러자 정확히 그 끝에 관통당한 정령들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끄에엑-!
이어서 이안의 시야에 간결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오염된 실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오염된 실프’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초월 경험치를 6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정령마력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벌써 이 ‘오염된 실프’라는 녀석만 수십 마리 넘게 처치한 이안.
기분 좋은지 어깨에 내려앉아 날개를 부비적거리는 짹이를 보며, 이안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 짹이.”
짹- 째잭-!
그런데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할 때마다, 이안의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한 줄 있었다.
‘대체 저 마지막 메시지는 왜 뜨는 걸까?’
오염됨 정령을 처치할 때 마다 서너 번에 한 번 정도는 떠오르는 이상한 메시지.
정령 마력을 획득할 수 없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며, 이안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카일란에서 그냥 뜨는 메시지는 없어. 저게 뜬다는 이유는 뭔가 조건을 충족한다면 정령 마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겠지.’
처음 한두 번은 무시했지만, 계속 메시지가 떠오르자 이안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설명 창을 한번 띄워 볼까?’
소환술사의 수많은 직업 스텟 중 유일하게 정령과 관련이 있는 두 가지의 능력치.
이안은 잠시 쉴 겸 스텟 설명 창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거의 잊고 있었던 스텟들인데…….’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두 개의 설명 창이 스르륵 하고 떠올랐다.
-정령 마력
정령을 소환하여 부리는 데 필요한 능력치입니다.
강력한 정령을 소환하거나 소환한 정령을 오래 유지할수록, 더 많은 정령 마력이 필요합니다.
*레벨업과 무관한 능력치입니다.
*정령술의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정령 마력도 강해집니다.
-소환 마력
소환한 정령의 힘에 영향을 주는 능력치입니다.
소환술사의 소환 마력이 강력할수록, 소환한 정령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레벨 업과 무관한 능력치입니다.
*정령술의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정령 마력도 강해집니다.
정령 마력과 소환 마력은 소환술사 초기에 이안이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던 능력치들이었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효율이 떨어져,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는 능력치들이기도 했다.
설명 창에 쓰여 있듯, 정령 마력과 소환 마력은 레벨 업으로 올릴 수 있는 능력치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한 300레벨쯤 되었을 때부터는 아예 쓸 일이 없어진 능력치들이었지.’
그런데 오랜만에 설명 창을 읽어 보던 중 이안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