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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의 신수 (3)
* * *
“흐음, 이게 엘리샤의 목걸이란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그리퍼.”
“가품은 아닌 것 같군. 만약 가짜였다면, 이렇게 강력한 물의 정기를 머금을 수 없을 테니 말이야.”
“그럼요. 내가 언제 그리퍼 속이는 거 봤어요?”
“본 것도 같은데…….”
“그럴 리가요.”
이안에게서 정령왕의 목걸이를 건네받은 그리퍼는, 목걸이의 가운데 박혀 있는 영롱한 사파이어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녀석 말이 맞다.”
“뭐가요?”
“이 목걸이가 있으면, 정령계로 연결되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지.”
“그럼 얼른 열어 줘요.”
그리퍼의 주름진 눈이 이안을 슬쩍 응시했다.
이어서 씨익 웃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맨입으로?”
“예?”
“너, 공짜 좋아하면 머리털 다 빠진다?”
“아, 그리퍼, 치사하게 이럴 겁니까?”
이안과 그리퍼의 친밀도는 최상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수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비록 NPC기는 하지만, 이안과 그리퍼는 서로를 오랜 친구로 느낄 만큼 가까웠다.
때문에 이안은, 그리퍼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이안이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수 연성의 비밀이 궁금한 거죠, 그리퍼?”
기다렸던 이안의 말에, 그리퍼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후후, 역시 척 하면 척이군.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한다는 말이지.”
“하, 시간 없는데……. 나 엄청 바쁜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냥 나 말고 세르비안한테 물어보면 안 돼요?”
“이미 물어봤지.”
“에?”
“치사한 늙은이가 알려 주지 않더라고.”
“…….”
“마수 연성한다고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오라고, 축객령을 내리더군.”
“켁.”
이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세르비안, 그 노인네가 마수 연성 이론을 시험해 본답시고 주구장창 마수연성만 하고 있나 보군.’
세르비안은 한 번 뭐에 빠져들면 다른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그리퍼에게 축객령을 내린 것도, 충분히 이해는 되었다.
“마수 연성 공식을 내게도 알려 준다면, 내가 그에 상응하는 정보를 주도록 하지.”
“정보……요?”
“그렇다네. 어떤가, 이제 좀 얘기해 줄 마음이 생겼는가?”
사실 이안은 그리퍼에게 마수 연성 공식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한번 궁금한 것은 절대로 참지 못하는, 그리퍼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리퍼가 알려 준다는 ‘정보’에 대해 흥미가 동하기 시작하였다.
이안은 관심 없는 척 연기를 하며, 툭 하고 미끼를 던져 보았다.
“에이, 그게 대충이라도 어떤 건질 알아야 정보 교환을 하죠. 마수 연성 공식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알아냈는데…….”
그리고 단순한 그리퍼는, 그 미끼를 곧바로 물 수밖에 없었다.
“후후, 좋아. 그럼 살짝 운을 떼 보도록 하지.”
“어디 한번 들어 보죠.”
“자네가 일전에 가지고 있었던 ‘마룡 칼리파의 영혼결정’말이야.”
“……?”
“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하는데…….”
이안의 두 눈이, 순식간에 확대되었다.
그리퍼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뭐지? 이 할배……. 혹시 전생에 점쟁이였나?’
이안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퍼가 언급한 마룡 칼리파의 영혼 결정.
그렇지 않아도 이안은 이 아이템에 대한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리퍼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이안은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안. 자네의 인벤토리 안에는, 아마도 칼리파의 영혼 결정이 아직 들어 있을 거야. 마수 연성 재료로 집어넣어 봤겠지만, 마법진에게 거부당했겠지. 그렇지?”
“그, 그걸 어떻게…….”
“후후. 어떻게 알기는. 이 그리퍼에게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았나?”
“마수 연성 공식 모르잖아요.”
“그, 그건……! 험험, 어쨌든. 이제 좀 대화를 나눠 볼 의사가 생겼는가?”
마계와의 차원 전쟁, 그 최후의 전투.
당시 최종 보스였다 할 수 있는 마룡 칼리파를 처치한 것은 이안이었고, 이안은 거기서 ‘마룡 칼리파의 영혼 결정’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템은, 다름 아닌 ‘최강의 마수 연성’을 위한 재료 아이템이었다.
‘내가 최고의 마수를 연성해 내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게 이 아이템을 먹었던 시점이었으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강의 마수 연성에 성공한 이 시점, 이안의 인벤토리에는 아직 마룡 칼리파의 영혼 결정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마룡 칼리파의 영혼 결정이, 마수 연성 마법진에서 튕겨 나왔던 탓이었다.
연성 재료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문의 메시지만 남긴 채 말이다.
‘그리퍼는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이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무심코 영혼 결정 아이템의 정보 창을 열어 보았다.
-마룡 칼리파의 영혼 결정
분류 : 잡화
등급 : 신화
마룡 칼리파가 소멸하기 직전에 남긴 영혼의 결정체이다.
마수 연성술을 익힌 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릴 법한 최고의 연성 재료.
뛰어난 마수 연성술사라면 이 영혼 결정을 통해 칼리파를 부활시킬 수도 있으며, 전혀 다른 또 다른 마룡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혼결정을 사용한 연성술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최강의 마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마수 연성술이 10레벨에 이른 연성술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마신의 제단에 공양하면 신화 등급의 장비 상자와 교환받을 수 있습니다.
*유저 ‘이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정보 창을 다시 한 번 정독해 본 이안이, 떨리는 눈으로 그리퍼를 다시 응시했다.
이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 좋아요, 그리퍼.”
“후후, 역시 그렇게 나올 줄 알았네.”
“마수 연성 공식을 알려 드리도록 하죠.”
“좋아. 자네가 그 비밀을 다 듣고 난 뒤에, 내가 가진 정보를 내보이도록 하지.”
“별것 아닌 정보는 아니겠죠?”
“그럴 리가. 내가 이래 봬도 차원의 마도사일세.”
“…….”
“장담컨대, 자네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을 얻어 갈 수 있을 거야.”
그리퍼의 호언장담에, 이안은 슬슬 썰을 풀기 시작하였다.
말하기 전에는 좀 귀찮았지만, 막상 설명을 시작하자 금세 몰입하였다.
그리고 설명을 다 들은 그리퍼가 경악하였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크으, 멋져! 심오해!”
감탄사를 연발하는 그리퍼를 보며, 이안은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후후, 제 마수 연성 인생의 정수가 담긴 이론이라고 할 수 있죠.”
“인정. 인정하네.”
이어서 이안은 은근한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자, 그럼 이제 말해 주시죠. ‘칼리파의 영혼 결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말입니다.”
이안의 말에 그리퍼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문제? 자네는 칼리파의 영혼석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당연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마법진에서 튕겨 나올 아무런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리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칼리파의 영혼 결정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네.”
“그럼……?”
“다만 자네의 레시피와 맞지 않았을 뿐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퍼의 이야기에 이안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무슨…….”
하지만 이안의 반문이 이어지기 전, 그리퍼가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자, 일단 이걸 먼저 받아 보시게.”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태초의 마룡 연성 레시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안은 허겁지겁 레시피의 정보 창을 오픈해 보았다.
-‘태초의 마룡’ 연성 레시피
분류 : 잡화
등급 : 신화 (초월)
베이스 마수 : ‘신화’등급 이상인 드래곤 종족의 마수.
재료 마수 : ‘신화’등급 이상인 태초의 마수.
재료 A. ‘마룡’의 영혼결정.
재료 B. 마신의 혈옥血玉
재료 C. 천룡天龍의 비늘
재료 D. 최상급 원소 결정
*마수 연성술이 10레벨에 이른 연성술사만이 시도할 수 있는 레시피입니다.
*성공률이 무척 낮은 레시피입니다. ‘전설’등급 이상의 마령석과 함께 연성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유저 ‘이안’ 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다른 유저에게 양도하거나 팔 수 없으며 캐릭터가 죽더라도 드롭되지 않습니다.
레시피를 확인한 이안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런 레시피가 있었으면 진작 보여 줬어야죠!”
“내가 왜?”
“우리 우정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나요, 그리퍼……?”
이안의 격한 반응에, 그리퍼가 피식 웃으며 대답하였다.
“워, 워. 흥분하지 마시게 이안. 이 레시피는, 나조차도 얼마 전에 발견했으니 말이야. 얼마 전 마계의 고문서를 뒤지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레시피라네.”
“그 거짓말……. 믿어도 됩니까?”
“거짓말이라니! 이거 섭섭하구먼. 만약 내가 이 레시피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자네에게 가장 먼저 보여 주지 않았겠나.”
“흐음……. 한 번 믿어 보도록 하죠.”
날뛰는 이안을 진정시킨 그리퍼가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이제 자네가 궁금했던 이야기에 대해 설명해 주겠네.”
그리고 그의 말을 듣는 이안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하였다.
그리퍼로부터 얻게 된 정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급 정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안이 그리퍼에게 서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리퍼가 준 레시피만 하더라도,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그리퍼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이 레시피를 보면, 베이스 마수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가?”
“‘신화’등급 이상의 드래곤 종족 마수라고 되어 있네요.”
“그렇지. 자네가 알고 싶은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네.”
“……?”
“마룡의 영혼 결정은, ‘드래곤’ 종족의 마수가 베이스일 때만 연성 재료로 사용가능하다 하더군.”
“아…….”
이안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궁금증이 풀린 것이다.
‘그래서 아예 마법진 자체가 받아들이질 않았던 거였군.’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것도 ‘고문서’에 적혀 있던 건가요?”
“그렇다네.”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던, 마룡의 영혼 결정이 마법진에서 튕겨져 나온 이유.
모든 이야기를 마친 그리퍼가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약속했던 대로 차원의 문을 열어 주도록 하겠네.”
말을 마친 그리퍼는, 돌연 손에 들고 있던 정령왕의 목걸이를 허공에 던졌다.
“……!”
그러자 놀랍게도, 목걸이에서 푸른빛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푸른빛은 커다란 포털의 형상을 띄었다.
아마 정령계로 통하는 차원의 포털일 터.
눈을 빛내는 이안을 향해, 그리퍼가 다시 입을 떼었다.
“그리고 이안. 레시피에 쓰여 있던 재료들 중, 혹시 ‘원소결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아뇨.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역시 그렇군.”
“그건 왜요?”
“자네가 정령계로 간다니, 문득 생각나서 말이야.”
“……?”
“정령계로 가는 김에 원소 결정을 구해 오시게. 원소 결정은 정령계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재료 아이템이라네.”
“아!”
“하지만 최상급의 원소 결정은 구하는 게 만만치 않을 거야.”
“그렇군요.”
이쯤 되자 이안은, 그리퍼에게 서운한 척을 한 것이 괜히 미안해졌다.
‘역시 그리퍼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어…….’
그리퍼에게서 얻게 된 정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최상급 원소 결정은, 가능하면 많이 구해 오시게. ‘태초의 마룡’을 연성해 내기 위한 레시피에도 필요하지만, 강력한 아티펙트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도 많이 쓰이는 물건이니까 말이야.”
“알겠어요, 그리퍼. 내가 많이 구해서 그리퍼 것도 몇 개 챙겨 올게요.”
“후후, 그래만 준다면 정말 고맙겠군.”
그리퍼와의 작별인사를 마친 이안은, 차원의 포털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드디어……. 정령계 입성인 건가?’
히죽 웃어 보인 이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시 후면 눈앞에 펼쳐질 새로운 콘텐츠들이 벌써부터 몹시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