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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모스와의 재회(?) (2)
* * *
머리에 돋아 있는 우악스럽고 커다란 세 쌍의 뿔과, 콧등에 솟아 있는 붉고 두툼한 뿔.
코뿔소를 연상케 하는 얼굴에 공룡과도 같이 거대한 몸.
등줄기를 따라 꼬리까지 울긋불긋 돋아 있는 돌기들을 확인하자마자, 이안은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앗, 심봤다!”
그리고 이안의 비명이 끝나자마자 반가운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크아아오오!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거대한 포효는, 분명히 이안이 알고 있고 찾고 있던 ‘그 녀석’의 것이었다.
-베히모스 : Lv. 19(초월)
최강의 마수를 연성해 내기 위해 이안에게 꼭 필요했던 마지막 한 조각의 열쇠.
하지만 누구 덕분에(?) 마계에선 멸종해 버린 탓에,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되었던 녀석이었다.
‘이제 이 녀석을 봉인시키기만 하면……!’
이안의 두 눈에 희열이 차올랐다.
벌써 몇 개월째 인벤토리 한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던, ‘베히모스의 알’을 드디어 부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니 말이다.
베히모스의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중 하나인 ‘극마염極魔炎’은 이미 준비해 두었으니, 이제 녀석의 영혼을 봉인하여 봉인석만 완성하면 되는 것이다.
‘역시 우리 그리퍼 아재는 모르는 게 없어!’
신이 난 이안은, 들고 있던 정령왕의 심판을 집어넣은 뒤, 그리퍼로부터 받은 봉인석을 꺼내어 쥐었다.
이제 녀석에게 다가가서, 이 봉인석을 사용할 차례였다.
-크르렁-!
어느새 이안을 발견한 베히모스가 사나운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녀석을 응시하면서 이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녀석에게 한 대라도 제대로 맞으면, 그대로 난 죽어 버릴 거야. 절대로 그럴 수는 없지.’
이안은 긴장한 표정으로, 녀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잠시 후, 그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
이안을 발견한 베히모스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레벨도 높은 녀석이 왜 저러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안은 고개를 갸웃하였지만, 베히모스가 뒷걸음질 친 이유는 사실 간단했다.
녀석의 기억 속에는, 마계에서 이안에게 당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끄어, 끄어어어-!(오지마 이 괴물같은 놈아!)
온몸을 격렬하게 휘저으며, 이안에게서 도망치려는 베히모스.
하지만 녀석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 길이 없는 이안은, 더욱 긴장감만 높아질 뿐이었다.
‘저게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차라리 날 공격하려 해야 접근하기 더 쉬울 것 같은데…….’
원래 이안의 계획은, 베히모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역으로 지근거리까지 접근할 생각이었다.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무척이나 둔해 빠진 녀석의 움직임 정도는, 충분히 피해서 접근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이 이상한 녀석은, 생각지도 못했던 행동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안을 공격하는 대신, 온몸을 휘저으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이안으로서는 더욱 곤란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저 움직임을 뚫고 접근하는 건 너무 도박일 것 같은데…….’
쉴 새 없이 휘두르는 거대한 꼬리와 늪지대를 전부 뭉개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끊임없이 쿵쾅거리는 네 개의 거대한 다리.
몸집이 작은 이안으로서는, 잘못 접근했다가 저 흙탕물 안쪽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었다.
‘흐음……. 방법은 이것뿐인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난 이안은 핀과 뿍뿍이를 동시에 소환했다.
-끼요오오-!
-뿍, 뿌뿍-!
그리고 핀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핀, 뿍뿍이를 태우고 올라가서 베히모스의 등에 떨어뜨려 줘.”
베히모스는 네 발로 지면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공룡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허공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물체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아예 몸을 뉘이지 않는 이상 말이다.
‘조금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공간왜곡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겠어.’
핀이 뿍뿍이를 허공에서 떨어뜨리면, 타이밍 맞춰서 뿍뿍이와 본인의 위치를 바꾸려는 것.
한편 영문도 모른 채 핀의 발톱에 등껍질이 부여 잡힌 뿍뿍이는 사색이 되어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었다.
“뿍! 핀아, 왜 이러냐뿍? 어제 네 미트볼 몰래 먹어서 이러는 거냐뿍?”
하지만 뿍뿍이의 반항에도 아랑곳않고 이안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핀.
이 위험천만한 작전에 뿍뿍이가 선택된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뿍뿍아, 네가 제일 작고 단단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
“주, 주인아, 내가 잘못했뿍!”
폴리모프를 풀지 않았을 경우 몸집이 작기 때문에 베히모스의 등 위까지 접근할 확률이 가장 높고, 빡빡이를 제외하고는 가장 방어력이 높은 뿍뿍이가 선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뿍뿍이를 태운 날아올랐고 이안은 베히모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구, 오랜만이지? 너 찾느라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다고.”
-끄어어어! 쿠와아쿠아아!(저승까지 쫓아오다니! 저승사자보다 더한 놈!)
“다시 지상계로 부활시켜 줄 테니까. 이 형만 믿고 좀 따라와 주면 안 되겠니?”
-꾸웩- 꾸워어어!(싫어! 싫다고!)
베히모스는 이안이 정말 싫은지, 거구를 들썩이며 이안의 접근을 열심히 막아 내었다.
거대한 몸으로 늪지대를 계속해서 두들기자 소용돌이가 생겨나서 이안이 접근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잠시 후…….
-꾸워어?
베히모스는 자신의 등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감촉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등을 꼬집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입에서 스킬의 시동어가 발동되었다.
“공간왜곡!”
이어서 베히모스의 눈앞에 어느새 나타난 작고 새침한 한 마리의 거북이.
“뭘 보냐뿍? 거북이 처음 보냐뿍?”
그리고 베히모스는 이 특이한 거북이가 왠지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꾸웍? 꾸워워어? (이 거북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본 것 같은 게 아니고, 저번에 봤었다뿍. 정말 멍청한 도마뱀이다뿍.”
-크어어! (난 멍청하지 않다!)
베히모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뿍뿍이는 녀석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크워어! 크워어어!(못생긴 거북이! 용서할 수 없다!)
마침내 분노한 베히모스가, 포효하며 입을 쩍 하고 벌렸다.
“뿌, 뿌북!”
마치 자신을 삼켜 버릴 것처럼 커다랗게 입을 벌린 베히모스를 보며 겁에 질린 뿍뿍이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우우웅-!
거대한 공명음과 함께, 베히모스의 거구가 하얀 빛에 휩싸였다.
“휴우, 죽을 뻔했뿍.”
뿍뿍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어서 몸 전체가 빛에 휩싸인 베히모스는 이안의 봉인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콰아아아-!
그와 동시에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영혼 마력 봉인석’ 아이템을 사용하셨습니다!
-태초의 마수, ‘베히모스’의 영혼을 성공적으로 봉인하셨습니다!
-‘영혼 봉인’에 성공하셨습니다.
-해당 영혼이 가진 힘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초월 경험치가 57만큼 증가하였습니다.
베히모스가 사라진 드넓은 자리에, 봉인석을 틀어쥔 채 홀로 서 있는 이안.
“드디어……!”
명계에서 볼 일이 일단락된 그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 * *
스하아아-!
늪지가 우거진 코퀴토스 강의 어귀.
스산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두운 로브를 뒤집어쓴 두 구의 그림자가 연기를 타고 솟아올랐다.
후우웅-!
이어서 짧은 공명음과 함께, 그 그림자들은 각각 거대한 낫을 든 남자의 형상이 되어 그 자리에 모습에 나타났다.
그리고 두 흑의인 중 한 명의 입에서 낮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크흐음.”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발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마치 미끄러지듯 그의 신형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번에도 놓쳐 버렸군.”
한 남자의 중얼거림에, 다른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쥐새끼 같은 놈. 감히 감찰관의 눈을 피해 에레보스를 활보하다니.”
두 남자의 정체는 바로 저승감찰관.
그들은 며칠 전부터 이안의 흔적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뮤칸 님께서 분노하실 텐데…….”
“별수 없지 않겠나. 어떻게는 녀석을 잡는 수밖에.”
그렇지 않아도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두 남자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다음에는 결코 놓치지 않으리라.”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가는 두 명의 저승 감찰관.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이번이 이안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말이다.
* * *
“아이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좀이 다 쑤시누.”
콜로나르 대륙 동쪽 끝.
이제는 제법 많은 유저들이 들락거리지만, 한때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차원의 마탑.
마탑의 뒤뜰에서 오늘도 셀리파와 함께 놀고 있던 그리퍼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저 녀석 키우는 맛에 요즘 시간 가는 줄 모른다니까.”
푸르릉-!
지난번 이안의 방문 이후, 그리퍼는 셀리파에게 ‘회귀의 알약’을 복용시켰다.
즉, 1레벨로 초기화시켜 다시 키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유야 당연히 이안에게서 배운 ‘소환수 육성학개론’을 적용시켜 완벽한 소환수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
그리고 이안에게 배운 내용들은 정말 대단했다.
지금 셀리파의 레벨이 아직 두 자리 수임에도 불구하고, 125레벨이었던 초기화 전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성장한 것이다.
“후후, 역시 이안 녀석은 타고난 학자야. 소환술사가 되기는 아까운 녀석이었지.”
잠시 이안을 떠올려 보던 그리퍼는 셀리파에게 먹이를 준 뒤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 종일 셀리파를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으니, 이제는 좀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계단을 오르는 그리퍼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자 그는 다시 투덜거렸다.
“역시 장마철은 지옥이야. 지난번에 이안 녀석이 말했던 ‘에어컨’이라는 걸 개발하든지 해야겠어.”
물론 대마법사인 그리퍼는 마법으로 연구실을 시원하게 할 수도 있었다.
계단을 오르지 않고 ‘블링크’를 사용해 순간 이동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은 일이었고, 이안에게 들은 에어컨이라는 물건은 알아서 방을 시원하게 해 준다지 않던가.
어쨌든 투덜거리며 계단을 오른 그리퍼는 연구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리퍼의 주름진 얼굴이 또다시 확 하고 구겨졌다.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더워?”
연구실 안에서 마치 난로를 떼기라도 한 듯,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탑의 꼭대기 층인 연구실은 불어오는 해풍으로 인해 어지간하면 시원한 곳이었고, 그것을 기대하며 문을 연 그리퍼에게 이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은 엄청난 배신감을 안겨 주었다.
“다 얼려 버려야겠어.”
분노에 찬 그리퍼는 양손을 들어 빙계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귀찮아도 이번만큼은 얼음 마법을 발동시켜 탑 전체를 얼려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전력을 다해 마법을 캐스팅하던 그리퍼는 마나 운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 그리퍼, 멈춰 봐요!”
연구실 안쪽에서, 다급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낯이 익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