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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모스와의 재회(?) (1)
사흘간의 ‘죽은 자’페널티가 끝나고, 이안은 드디어 ‘산 자’의 상태로 명계에 입성하였다.
‘이제는 명계를 제대로 탐험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이안의 완벽한 오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암흑의 땅 ‘에레보스’는 ‘산 자’들에게 결코 친절한 땅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우선 이안이 알게 된 첫 번째 문제는 명계의 모든 몬스터에게 공격받아 사망하게 되면, 다시 ‘죽은 자’ 페널티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명왕 뮤칸 역시 명계의 NPC였고, 때문에 그에게 죽어서 ‘죽은 자’ 페널티를 받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것까지는 애교였다.
분명 죽은 자 페널티가 일반 데스 페널티보다 더 큰 페널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위험을 무릅쓸 만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보다 이안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명계의 파수꾼’으로 불린다는 ‘저승 감찰관’이라는 NPC였다.
‘타나토스 안에서 정보를 최대한 얻어 보길 잘했어. 대장장이 우퍼 아저씨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단 말이지. 만약 그냥 돌아다니다가 감찰관을 만났다면……. 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카일란에서 ‘산 자’의 상태로 죽은 자의 땅인 에레보스를 돌아다니는 것은 신이 정해 놓은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때문에 ‘저승 감찰관’에게 이것이 적발된다면, 그는 바로 ‘어둠의 심판’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그 어둠의 심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둠의 심판 : 저승의 감옥, 타르타로스에 열흘 동안 갇히게 되며, 타르타로스에 갇힐 시 매 시간마다 1퍼센트만큼의 경험치가 감소합니다.
열흘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며, 심지어 총 2레벨이 넘는 경험치가 다운되게 되는 무시무시한 형벌.
어쨌든 이러한 페널티 때문에, 이안은 명계에서 거의 사냥을 할 수 없었다.
타나토스 마을의 근처에 있는 대부분의 사냥터에 저승 감찰관이 어슬렁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는 저승 감찰관들을 피해서 조심스레 명계, 정확히는 에레보스를 탐방해 왔다.
지금까지 이안이 이곳에서 얻은 정보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1. ‘산 자’도 에레보스에 거주할 수는 있으나, 만약 저승감찰관에게 적발당하면 열흘 동안 타르타로스에 갇히게 된다.
2. 아케론 강을 건너기 전 즉, 에레보스의 바깥쪽 세계를 다크 어비스(Dark Abyss)라고 한다.
3. 초월 레벨이 낮을 때 사냥하기 좋은 사냥터들은 오히려 에레보스보다 다크 어비스에 훨씬 많다.
4. 보통 죽은 자의 영혼은 다크 어비스를 거치지 않고 바로 에레보스로 유입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최소 1년 이상을 머물게 된다.
5. 타나토스 마을에서 알바(?)로 얻을 수 있는 데스코인들은 명계 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인데, 다크 어비스에서는 데스 코인을 얻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6. 데스 코인을 가지고 있으면 다크 어비스에 있는 숨겨진 던전에 입장할 수 있다. 때문에 좋은 던전일수록 많은 양의 데스 코인이 필요하다.
7. 명계의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어 사망하면, 기존의 데스 페널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 페널티를 받게 된다.
이안이 이 모든 정보를 얻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열흘 정도였다.
‘죽은 자’로 활동한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십삼 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을 쏟은 것.
하지만 이안은 이 성과들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진짜 핵심적인 정보를 얻었으니 말이지.’
이안이 생각하는 핵심적인 정보는 과연 이 일곱 가지 중에 어떤 것일까?
다른 정보들도 충분히 매력적인 것들이었지만, 이안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4번 정보였다.
이 정보가 바로, 이안이 ‘베히모스’를 찾게 해 줄 중요한 단서였으니 말이다.
‘내가 베히모스를 죽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대충 4~5개월 정도 전. 그렇다면 녀석의 영혼은, 분명 아직까지 이 에레보스 안에 있겠지.’
이안이 착안한 부분은 바로 이것.
이안 본인이 마계에서 사냥한 베히모스가 아직까지 이 에레보스 안에 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이안의 손에 죽은 베히모스는 지금쯤 어디에서 이안을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은 타나토스 마을의 촌장, ‘우르스 케인’으로부터 얻은 정보에서 알 수 있었다.
-에레보스에는 네 개의 강이 흐르고, 그 강을 기점으로 구역이 나눠진다네. 그건 알고 있는가?
-총 세 구역으로 나뉜다고 알고 있습니다, 촌장님.
-맞네. 카론이 말해 줬나 보군.
-그렇습니다.
-어쨌든 알고 있다니 설명이 편하겠구먼.
-경청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타나토스 마을이 있는 곳. 즉, 에레보스의 첫 번째 구역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최소 5개월을 머물게 된다네.
-아, 구역별로 다른가 보군요.
-맞아. 여기서 5개월 머물고 난 영혼은 코퀴토스Cocytos를 건널 자격을 갖게 되지.
-아, 그래서 ‘최소’라고 하신 거로군요.
-맞아. 자격이 생겼더라도 꼭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해했습니다.
-좋아. 그럼 말을 이어 가도록 하겠네. 코퀴토스를 넘어 에레보스의 두 번째 구역에 도착한 영혼들은, 4개월을 머물러야 또 다음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네.
-불길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을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오호, 플레게톤도 알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군. 아무튼 불길의 강을 넘어 마지막 세 번째 구역에 도달하면, 그곳에서 3개월을 머문 뒤 망각의 강을 건널 자격이 생기게 되지.
-5……. 4, 3. 총 12개월이네요.
-그래. 그래서 에레보스에 최소 12개월은 머물러야 한다는 말을 한 게지.
‘정말 운이 나쁜 게 아니라면, 베히모스는 아직 코퀴토스 강을 건너지 못했을 거야.’
이안이 베히모스를 사냥했던 시기는 어림잡아 4~5개월 정도 전이었다.
그리고 만약 판단이 틀려 5개월이 지났다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두 번째 구역으로 넘어가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다.
‘베히모스를 찾자. 일단 베히모스만 얻고 나면, 명계는 접어두고 정령계를 공략하는 게 좋겠어.’
이안이 지금까지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분석해 보면, 명계의 메인 콘텐츠들은 대부분 에레보스 안에 존재했다.
그리고 에레보스 안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면, ‘용사의 자격’이라는 것을 얻어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
‘어차피 다크 어비스에서 할 수 있는 건 초월레벨을 올리는 것뿐이야. 그리고 초월 레벨은 명계뿐 아니라 정령계의 사냥터에서도 당연히 올릴 수 있겠지.’
게다가 타이탄과 사냥터를 공유해야 하는 명계의 다크어비스와는 달리, 정령계는 아마 이안 혼자서 독점할 수 있을 것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이안의 초월 레벨은 아직까지도 2에 불과하다.
‘저승 감찰관’을 피해 다니느라 사냥을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히모스를 잡는 것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안에게는 그리퍼로부터 받은 ‘영혼 마력 봉인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혼 마력 봉인석
분류 : 잡화
등급 : 영웅
차원의 마도사 그리퍼가 자신의 마도공학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물건으로, 특정 몬스터의 영혼을 봉인할 수 있는 아티팩트이다.
만약 몬스터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는 봉인석을 가공하면, 해당 몬스터의 영혼석을 획득할 수 있다.
*하나의 영혼만을 봉인할 수 있으며, 한 번 사용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1회성 아이템입니다.
*봉인석을 가공할 시, 최소 30개에서 최대 100개까지의 영혼석을 랜덤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인간, 혹은 인간형 종족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생기가 있는 대상에게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네임드, 혹은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퍼는 이 봉인석을 사용하기 위해서 죽은 지 1분이 되지 않은 사체가 필요하다고 하였었다.
-이걸 어떻게 쓰냐고? 그거야 간단해. 베히모스를 사냥한 뒤, 그 사체에 대고 봉인석을 발동시키면 알아서 영혼 마력이 추출될 걸세. 대신 죽은 지 1분이 지나지 않은 사체여야만 하네.
그리고 이제 한 번 죽어 본 이안은, 그 1분이라는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
‘1분이란, 죽고 나서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의미하는 거겠지.’
이안이 처음 ‘죽은 자’가 되었을 때, 저승사자를 만나기까지 1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었다.
이것은 아마 카일란 세계의 기본적인 설정 같은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미 죽은 상태인 명계의 베히모스는?
‘그 앞에서 봉인석을 발동시키면, 알아서 빨려들어 오겠지.’
초월 레벨이 2레벨인 이안으로서는, 베히모스를 상대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이 봉인석을 발동시킨다면, 전투를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베히모스의 영혼을 봉인하고, 어서 이 으슬으슬한 동네를 떠야겠어.’
이안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5개월 정도 된 영혼이라면, 아마 코퀴토스 강 인근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녀석이 그 강을 건너기 전에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베히모스를 얻는 것이 영영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 * *
타나토스 마을에서 열심히 알바를 한 이안은 제법 많은 데스 코인을 모았다.
알바라고 해 봐야 마을 NPC들의 잔심부름을 해 준 것이었는데, 그래도 무려 300코인이 넘는 거액(?)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안이 보유 중인 코인은…….
-보유 중인 데스 코인 : 57코인
고작 57코인뿐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게 없었으면 베히모스를 찾아 나설 엄두조차 못 냈을 테니 말이야.’
타나토스 마을의 대장간에서만 구할 수 있는 아티팩트인, ‘죽음의 망토’를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망토
분류 : 망토
등급 : 유일
타나토스 마을의 대장장이인 ‘우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망토이다.
이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죽음의 기운으로 생기生氣를 지울 수 있다.
*저승의 감찰관을 피할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전투가 시작되면, 망토의 효과가 발동하지 않습니다.
이 망토가 있어도 에레보스에서 사냥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어쨌든 지금의 이안에게 딱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망토를 뒤집어쓴 이안은, 벌써 일주일 째 코퀴토스 강 인근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이제는 슬슬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안 뒤져 본 곳이 거의 없단 말이지.’
이안의 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런 그조차도 일주일간의 여정은 쉽지 않았다.
차라리 전투나 퀘스트라도 하면 괜찮겠는데, 어딘가에 숨어 있을 베히모스를 찾는다고 계속해서 걷고만 있으니…….
당연히 힘들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식하게 커서 어디 숨어 있기도 힘들 녀석인데…….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이미 녀석이 코퀴토스를 건넜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안의 머릿속을 엄습했다.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불안을 떨쳐 낸 이안은, 다시 힘을 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통 습기 차고 눅눅한, 늪지대와 같은 코퀴토스 강변.
그런데 그때였다.
쿠쿵- 쿠쿠쿵!
고요하기 그지없던 늪지대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