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05화 (5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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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명계 탐방기 (2)

* * *

“이곳이, 에레보스……!”

드넓게 깔려있는, 짙은 회색 빛깔의 대지.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장엄한 풍경.

카론의 나룻배에서 처음 발견한 암흑의 대지 에레보스는, 이안이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리치 킹이 다스렸던 어둠의 땅과 비슷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온통 하얀 눈과 음산한 운무.

거기에 도처에 깔려있는 수 많은 해골들까지.

리치 킹 샬리언이 다스리던 어둠의 땅은, 그야말로 죽음의 땅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안의 눈앞에 펼쳐진 에레보스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냥 콜로나르 대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숲속의 풍경을, 흑백사진으로 찍어 놓은 느낌이랄까?’

흑백사진.

에레보스의 풍경은 말 그대로 흑백사진이었다.

땅에 솟아 있는 나무를 비롯해서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하늘.

심지어는 화려하게 피어있는 꽃들의 색상까지도.

그 밝기와 톤만 다를 뿐, 모조리 흑백으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누런 빛깔을 띄고 있는 비통의 강 아케론의 색상만이 이안의 눈앞에 펼쳐진 모든 풍경들 중에 가장 눈에 띄었다.

그극, 그그극!

듣기 거북한 마찰음과 함께, 소가죽으로 만들어진 카론의 나룻배가 강가에 정박하였다.

이어서 이안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에레보스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띠링-!

-짙은 망자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암흑의 땅 에레보스에 도착하셨습니다.

-암흑의 땅 에레보스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20만 만큼 증가합니다.

-‘죽은 자’ 상태이므로, 경험치 및 아이템 드롭률 상승 버프를 받을 수 없습니다.

-* 주 의 *

-* ‘죽은 자’ 상태에서도 명계에서는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 ‘죽은 자’ 상태일지라도 명계에서는 공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죽은 자’ 상태에서 생명력이 모두 소진될 시, ‘영혼의 안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영혼의 안식 : 일주일간 게임에 접속할 수 없으며, 초월 레벨이 한 계단 떨어지게 됩니다. 초월 레벨이 1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이안의 시선이, 순간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죽은 자 상태에서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었을 시 받게 되는 ‘영혼의 안식’ 페널티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자칫 실수라도 하면 정말 큰일 나겠는데?’

사실 ‘초월 레벨 1레벨 다운’이라는 페널티는, 지금으로서는 체감을 하기 힘들다.

단체로 리치 킹을 처치하고 얻은 경험치 외에는 초월 경험치를 쌓아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안이 기겁을 한 이유는 ‘일주일’이라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접속 금지 페널티였다.

‘하루 페널티도 충분히 큰데, 일주일이라니…….’

이제는 자타공인의 카일란 한국 서버 랭킹 1위인 이안.

그가 만약 이 ‘영혼의 안식’ 페널티를 얻게 된다면, 그 금전적 손실은 정말 천문학적인 수준일 것이었다.

사실상 마음 먹고 돈을 벌기 위해 플레이한다면, 하루에도 억대의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지금 이안이 가진 네임벨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에게는 그 금전적인 손실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었으니…….

‘일주일 동안 카일란을 못 하게 되면, 심심해서 죽어 버릴 지도 몰라.’

단지 카일란을 플레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

그 페널티 자체의 본질이었다.

‘그럴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거겠지만, 만약 일주일 접속불가가 되면 하린이랑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려나.’

잠깐 암울한 상상을 해 보았던 이안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휘저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이안과 하린 커플은 만약 휴가차 여행을 하게 되더라도, 카일란 안에서 하는 여행이 더 행복한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이안이 뒤를 돌아보며 카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배 빌려 주셔서 고마웠어요. 다음에 또 보자구요!”

저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맑은 표정으로, 뱃사공 카론에게 작별 인사까지 마친 이안.

이어서 이안은, 힘차게 걸음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어어엇!”

하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지더니,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뱃사공 카론’이 ‘어둠의 속박’을 시전합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

온몸에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과 함께,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두 줄의 시스템 메시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양발이 그대로 묶여 버리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직면한 이안은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뭐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안의 등줄기를 타고 한 방울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카론이 자신을 적대시 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위기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초월 25레벨인 카론에게 한 대라도 잘못 맞는다면, 그대로 영혼의 안식 상태가 되어 버릴지도 모를 노릇이니 말이다.

온갖 가정을 세우며 머리를 굴려 보는 이안의 등 뒤로, 카론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약간의 노여움도 깃들어 있는 듯했다.

“어딜 그냥 가려는 겐가?”

“예?”

“뱃삯은 주고 가야지 않겠나.”

“뱃삯……이라면…….”

정확한 상황 파악은 되지 않았지만, 이안은 서둘러 인벤토리를 오픈해 보았다.

뱃삯이 얼마가 되었든 이 자리에서 카론에게 맞아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안의 눈앞에는 또 다른 재앙이 떠오르고 말았다.

띠링-!

-‘죽은 자’ 상태에서는 인벤토리를 오픈할 수 없습니다.

“……!”

이쯤 되니 아무리 이안이라고 할지라도, 멘탈에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어, 어쩌라는 거야 대체……?’

당황하다 못해 이제는 거의 울고 싶은 마음이 되어 버린 이안.

그런데 바로 그때, 다행히 이안의 눈앞에 한 줄기 구원의 빛과도 같은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뱃사공 카론의 요구’

‘죽은 자’가 되어 명계에 도착한 당신은, 뱃사공 카론의 배를 타고 비통의 강 아케론을 건넜다.

그런데 카론의 나룻배를 타기 위해서는, 정해진 뱃삯을 내야 하는 것이 명계의 율법이다.

하지만 당신은 뱃삯 없이 카론의 배에 올랐고, 때문에 에레보스에 도착한 지금 뱃삯을 지불해야만 한다.

세 시간 내로 다섯 닢의 데스 코인Death Coin을 구하여, 카론에게 돌아오자.

만약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면, 카론에게 쫓기게 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F+

퀘스트 조건   : 뱃삯을 지불하지 않고 카론의 배를 이용한 유저.

제한 시간 : 180분

보상 : 연계 퀘스트 발동.

‘뱃사공 카론’와의 친밀도 상승.

*퀘스트를 거절할 시, 뱃사공 카론이 당신을 ‘적대’ 합니다.

*퀘스트에 실패할 시, 뱃사공 카론이 당신을 ‘적대’합니다.

퀘스트 내용을 확인한 이안은 당황한 동시에 한편으론 안도할 수 있었다.

‘휴우, 난이도 F등급이라니……. 이건 무슨 기억조차 하기 힘든 난이도잖아? 이런 난이도가 있기는 했었나?’

카론과 적대 상태가 된다는 무시무시한 페널티에 당황했으나, 퀘스트 난이도를 확인한 뒤에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래, 뭐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퀘스트만 빨리 처리하고 다른 퀘스트는 받지 말아야지.’

사실 이안은 ‘죽은 자’ 상태일 때 퀘스트를 진행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 상태에서는 경험치나 아이템과 같은 실질적인 보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가지고 있던 계획은, 사흘이라는 시간동안 최대한 명계의 넓은 구역들을 돌아다니며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명계에 도착하자마자, 저승사자를 쫓아내듯 돌려보냈던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주어진 카론의 퀘스트 같은 경우 거부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상 이안의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크게 어렵지 않음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머릿속으로 빠르게 판단을 마친 이안이 카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뱃삯이라면 당연히 지불해 드려야죠. 그렇지 않아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헤헤.”

입에 침 한 방울 바르지 않고 마음에도 없던 소리를 서슴없이 얘기하는 이안이었다.

‘어차피 수행해야 할 퀘스트라면, 보상만큼은 확실히 뽑아먹어야 하는 법이지.’

‘카론과의 친밀도’라는 다소 추상적인 보상이었지만, 그것이라도 1포인트 더 받아 먹자는 게 이안의 게임 철학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태세 전환이 잘 먹혀 들었는지, 약간의 노기가 어려 있던 카론의 목소리가 살짝 누그러졌다.

“흐흠, 자네가 설마 뱃삯도 내지 않고 도망치는 파렴치한일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네만, 그래도 혹시 모를까 봐 알려 준 것이었다네.”

“그, 그렇군요.”

“뱃삯은 단돈 다섯 냥일세. 이곳 에레보스의 화폐인 데스 코인으로 가져오면 된다네.”

-‘어둠의 속박’ 상태 이상이 해제되었습니다.

-이동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카론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고, 이어서 이안을 휘감고 있던 어둠의 기운들이 말끔히 씻겨 나갔다.

하지만 이안은 곧바로 에레보스의 안쪽으로 다시 움직일 수 없었다.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카론 님.”

“말씀하시게.”

“다섯 냥의 데스 코인은 어떻게 하면 구해 올 수 있을 까요?”

그리고 이안의 물음을 들은 카론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을 꺼내었다.

이안의 질문은, 명계에 처음 온 망자로서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자네의 눈앞에 나 있는 숲길을 따라 15분 정도 걷다 보면, 망자들의 도시인 ‘타나토스’가 나온다네.”

“그렇군요.”

“타나토스 마을의 서남쪽에 작은 푸줏간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토끼의 가죽을 가져다 팔면 어렵지 않게 코인을 구할 수 있을 걸세. 가죽 한 장을 한 냥으로 쳐줄 테니, 총 다섯 장의 토끼 가죽을 판매하면 되겠군.”

“토……끼의 가죽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그거야 더욱 어렵지 않지. 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널리고 널린 게 토끼 녀석들일 테니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얼른 다녀오도록 할게요.”

“좋네. 시간은 3시간 정도면 충분하겠지?”

“물론입니다! 금방 다녀오도록 하죠.”

“그래. 잠시 이곳에서 쉬고 있겠네.”

퀘스트 내용 자체가 너무도 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뭐, 딱 F등급 난이도다운 퀘스트 내용이네. 토끼 까짓거 금방 잡아서 가죽 벗겨 내면 되겠지.’

기분 좋게 카론과 헤어진 이안은 서둘러 숲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난이도로 보나 퀘스트 내용으로 보나 분명히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 제한 시간이 걸려 있는 퀘스트이기도 했고 어떤 변수가 작용하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숲길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이안은 방금까지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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