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04화 (520/1,027)

========================================

이안의 명계 탐방기 (1)

스하아아- 스하아아-!

노를 한 번 저을 때마다, 소름 돋을 정도로 음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으, 닭살 돋아.’

분명 생김새는 일반적인 강물과 다를 바 없건만, 강물에서는 물소리 대신 알 수 없는 사이한 소리가 퍼져 나왔다.

‘이거 무슨 호러 체험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무섭게 해 놓은 이유가 뭔데?’

움찔움찔 놀라다 못해, 급기야 보내 버린 저승사자가 아쉬울 정도였다.

‘그 아저씨라도 있었으면 덜 무서웠으려나…….’

엉뚱한 생각을 한 번 해 본 이안은, 더욱 빠르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래야 이 공포 체험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스하아아- 스하아아-!

정체불명의 음산한 소리와 함께 빠르게 강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이안의 나룻배.

그런데 잠시 후,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

짙은 녹색 빛이던 강물의 색깔이, 갑자기 누렇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띠링-!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을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이 5만 만큼 증가합니다!

-어둠 속성 면역력이 3만큼 증가합니다.

-‘공포’상태 저항력이 5만큼 증가합니다.

찬찬히 시스템 메시지들을 읽은 이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비통의 강이라고? 거 강 이름 한번 무섭게 지어 놨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5포인트나 되는 상태 저항 스텟을 얻은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5라는 수치가 사실 그 자체로 체감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상태 이상 저항 스텟이 워낙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열심히 노를 젓는 이안의 뒤쪽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락도 없이 내 배에 오르다니. 겁 없는 영혼이로구나.”

화들짝 놀란 이안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휙 하고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 쓴 한 노인이 이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뱃사공 카론 : Lv. 25(초월)

이어서 노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정보를 확인한 이안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와 씨, 무슨 뱃사공 주제에 리치 킹보다 레벨이 높은 거야?’

초월 2레벨에 불과한 이안으로서는, 감히 덤벼 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고레벨의 NPC.

그런데 다음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가만, 난 지금 죽은 상태잖아? 만약 여기서 한 번 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안은 자신이 떠올린 의문에 몇 가지 가정을 해 볼 수 있었다.

첫 번째 가정은.

‘혹시 죽은 자 페널티를 받는 동안은 무적 상태가 되는 걸까?’

더 이상 죽지 않는 상태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 가정은.

‘원래 게임에서 사망할 때처럼, 24시간 접속 금지 페널티와 함께 로그아웃될지도 모르겠군.’

데스 페널티가 중첩되면서 게임 바깥으로 튕겨 나갈지도 모른다는 가정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안은 일단 조심스레 행동하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이 배에 주인이 있는 줄 몰랐어요. 하핫.”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며 사과하는 이안을 보며 카론은 조금 누그러진 어조가 되었다.

“흐음, 산 자는 아닌 것 같고. 죽은 자임이 확실한데……. 저승사자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더냐?”

카론의 물음에, 이안은 어쩔 수 없이 저승사자를 팔기로 결정했다.

“네. 그냥 휙 하고 가 버리던데요?”

“……?”

“저는 그냥 배가 보이기에 탔을 뿐이에요.”

애처로운 표정으로 혼신의 연기를 하는 이안을 보며, 카론의 주름진 얼굴이 험상궂게 변하였다.

“저승사자가 감히 직무태만이라니! 내 뮤칸 님께 고해야겠군.”

“하, 하핫.”

이안은 뭔가 양심에 살짝 찔리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카론 님.”

“음?”

“이 강을 넘어가면 어디가 나오나요?”

이안의 질문에 잠시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 카론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에레보스Erebus.”

“예……?”

“이곳을 지나면, 암흑의 땅 에레보스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는 뭐 하는 곳인데요?”

“아직 생生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망자들이 살아가는 곳이지.”

“미련……요?”

“정확히는 망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자들이라 해야 하려나.”

“그, 그렇군요.”

그 후에도 배가 움직이는 동안, 이안은 카론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이 명계라는 곳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뽑아 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론과의 대화 덕분에 이안은 제법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동네에서는 강을 건넌다는 게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었군.’

카론에 의하면 에레보스라는 곳은 총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비통의 강 아케론을 넘어서부터, 통곡의 강 코퀴토스Cocytos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코퀴토스를 넘어서부터, 불길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에 이르기까지.

마지막으로 플레게톤을 넘어서부터, 망각의 강 레테Lethe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강을 기준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는데, 강을 한 번 건널 때마다 더욱 강력한 원혼들이 서식할 것이라 하였다.

“자네가 언제쯤 망각의 강을 건널지는 알 수 없지만, 너무 빨리 그 강을 건너지는 마시게나.”

카론의 말에, 이안은 살짝 의아한 표정이 되어 반문했다.

“망각의 강이라면, 에레보스의 끝자락에 있다는 그 강이겠군요.”

“맞네.”

“그 뒤에는 뭐가 있는데요?”

이안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카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알 수 없다네.”

“어……. 그런가요?”

“나는 이곳에 묶여 있는 몸이기 때문이지.”

“에이, 여기 묶여 계시면서도 에레보스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잖아요?”

너스레를 떠는 이안을 보며, 카론의 주름진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맺혔다.

“코퀴토스나 플레게톤은 일방통행이 아니거든.”

“네?”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 이들이 제법 많다는 말이네.”

“아……!”

“에레보스의 전역을 떠도는 망자들이 오며가며 이야기를 해 주었지. 그게 벌써 수천 년이 넘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나?”

“그도 그렇군요.”

잠시 후 카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반면에 망각의 강 레테. 거긴 한 번 건너가면 그걸로 끝이야.”

“……!”

“그러니 너무 빨리 그 강을 건너지는 말라는 말이야.”

카론의 이야기를 들은 이안은 뭔가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 말라는 건 꼭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데……. 기왕 이렇게 된 거, 명계 끝까지 한번 찍어 볼까?’

기획 팀에서 듣기라도 했다면 거품을 물었을 만한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린 이안은, 새로운 콘텐츠들을 만날 생각에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리고 이안이 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던 아케론 강에도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하아아- 스하아앗-!

육지(?)가 가까워질수록, 이안의 노 젓는 소리도 더욱 빨라졌다.

평범한 물에서 노를 젓는 것과 달리 큰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배에 오래 있다 보니 얼른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싶어진 것이다.

그런데 배가 육지에 닿기 전, 이안은 문득 궁금한 것이 하나 더 생겨났다.

“그런데 카론 님.”

“말해 보시게.”

“혹시 죽지 않은 자도 이 아케론 강을 건널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안의 질문을 들은 카론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땅.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잖은가.”

“……?”

“나의 배는 산 자를 태울 수 없네. 생기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배는 가라앉고 말지.”

“그, 그렇군요.”

카론의 대답을 들은 이안은 머릿속이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자 상태가 아니고서는 이 강을 지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럼 명계로 가는 길을 열어 주겠다던 뮤칸의 말은 무슨 말이지?’

뮤칸은 분명, 자신을 이긴다면 명계로 가는 길을 열어 주겠다 하였다.

또한 이안이 느끼기에, 적어도 인간계에서는 뮤칸을 이길 방법이 분명히 존재하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뮤칸이 말한 명계는 혹시 아케론을 건너기 전, 에레보스의 바깥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가정에 가정을 거듭할수록 이안은 뭔가 급격히 꼬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이안을 향해, 카론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만, 예외는 존재한다네.”

“어떤 예외죠?”

“‘용사의 자격’을 얻어 ‘중간자’의 위격을 갖게 된 영혼이라면, 망자가 아니더라도 이 강을 건널 수 있지.”

“아!”

“그리고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의문이네만…….”

“……?”

“중간자가 아닌, 그렇다고 망자도 아닌 이가 에레보스에서 지낸 적이 있다는 기록도 있기는 하다네.”

카론의 마지막 말을 들은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후후, 이안. 역시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말이지.”

모니터링실에서 3시간도 넘게 이안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이안이 그걸 생각해 내지 못했으면, 내가 오히려 실망할 뻔했지.”

차원의 구슬을 이용하여, 명계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 이안.

하지만 이 정도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예측 범주 안에 두고 있던 변수였다.

차원의 구슬은 분명 사기적인 아이템 중 하나였지만, 어쨌든 기획 팀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템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타이탄 길드와의 거래가 아니었더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명계에 입성했으려나?’

만약 이안이 타이탄 길드와 거래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명왕을 이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명왕을 이기고 페널티 없이 명계에 오는 것이 베스트 시나리오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명계에 진입했다면, 아마 에레보스에 들어설 수 없었을 것이다.

초월레벨을 올리고 용사의 자격을 얻기 전까지는, 아케론강을 건널 수 없게 설정되어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에레보스에 입성하는 것이, 과연 이안에게 좋기만 한 일인 것일까?

“후후, 뭐든지 급하게 먹으려 하면 체하는 법이지.”

중간단계를 전부 생략하고 상위 컨텐츠로 훌쩍 뛰어넘는 것이 가능하다면, 게임의 벨런스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다.

때문에 카일란의 기획팀에서도, 그런 것이 가능하게 방치해 두었을 리 없었다.

-이곳이, 에레보스……!

에레보스의 땅을 밟는 화면 속의 이안을 보며, 나지찬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래도 이안갓이라면, 조금은 소화해 낼 수 있을지도.”

핑-!

화면을 끈 나지찬은 탁자에 놓아 두었던 텀블러를 챙겨 모니터링실을 빠져나갔다.

중요한 부분은 다 챙겨 보았으니, 이제 기획실로 올라갈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