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502화 (5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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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로 향하는 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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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아도 눈이 휘둥그래질 만큼 화려하고 아슬아슬한 명왕과 이안의 전투.

샤크란 또한 이안의 전투를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명왕이라……. 과연 그 이름값은 하는 NPC라는 말이지.’

이안도, 명왕도 강력해서 둘 중 누가 이기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상황.

그리고 샤크란의 입장에서는 누가 이겨도 상관이 없었기에, 여유롭게 전투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설렁설렁 보는 것은 아니었다.

명왕의 모든 스킬들과 공격 패턴, 전투 방식들을 최대한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으니 말이다.

샤크란은 바로 어제, 이안과의 대화를 살짝 떠올려 보았다.

-꼬마, 이제 약속은 어떻게 이행할 생각이지?

-어떻게 이행하기는요. 명왕인지 뭐시긴지 불러서, 명계로 가는 길 열어야죠.

-명왕이라는 놈이 명계로 가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건 확실한 부분인가?

-그건 아마 확실할 겁니다. 카카의 머릿속에서 나온 지식이니까요.

-흠, 그렇군.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긴 합니다.

-그게 뭐지?

-이 명왕의 목걸이. 이게 소모성 아이템이라서요.

-……?

-명왕의 목걸이로 명왕을 소환할 수 있는 횟수는 단 세 번. 그 안에 명계로 가는 길을 열지 못하면,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이 되겠죠.

-흐음……. 명왕이 명계로 가는 길을 순순히 열어 주지 않을까 봐 그러는 거냐?

-그렇죠. 물론 세 번의 기회 안에 명계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만약 세 번 다 실패하면 약속을 이행할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요.

-하긴. 아직 접해 보지 않은 콘텐츠니 성공을 속단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말입니다.

-음?

-제가 제안을 하나 해 볼까 합니다.

-말해 봐라, 꼬마.

-이 세 번의 기회 중 한 번을 아재한테 드리겠습니다.

-오호?

-물론 제가 처음부터 명계로 가는 길을 열어 버린다면 그대로 계약 이행이 되는 것이겠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두 번째 트라이는 타이탄 쪽에 넘기도록 하지요.

-그거 괜찮은 딜이군.

-대신, 그것으로 우리 사이의 빚은 청산하는 걸로 하는 겁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명왕의 목걸이에 부여되어 있는 세 번의 기회.

그리고 이안과 샤크란은 그 기회 중 각 한 번씩을 타이탄과 로터스가 나눠 갖기로 했다.

그렇다면 남은 마지막 한 번의 기회는?

그것은 이안과 샤크란, 두 명 모두가 실패했을 때 다시 이야기해 보기로 잠정 결정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후후, 차라리 꼬마 녀석이 실패하는 게 나에겐 더 좋을 수도 있겠군.’

명왕과 이안의 전투를 지켜보면서 샤크란은 점점 더 확신이 생기고 있었다.

명왕이 분명 강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지금까지 전투를 지켜보면서, 명왕 뮤칸이 사용하는 모든 스킬들을 분석하고 나름대로 파훼법을 생각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꼬마야, 좀 힘들면 일찌감치 포기해도 된다고.’

샤크란은 씨익 웃으며, 명왕의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명왕의 목걸이

분류 : 잡화

등급 : 신화

명계의 다섯 번째 왕 명왕 뮤칸의 목걸이.

인세에 떠돌아다니고 있다는 세 개의 파편을 모아 완성할 수 있으며, 강력한 망자의 힘을 담고 있다 전해지는 신화 속의 목걸이입니다.

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으면 명왕 뮤칸을 인세로 소환할 수 있으며, 만약 당신이 그의 시험을 통과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강력한 힘을 선물할 것입니다.

*명왕의 목걸이를 보유하고 있을 시 어둠 마력의 최대치가 2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명왕의 목걸이를 보유하고 있을 시 모든 어둠 계열 마법의 캐스팅 속도가 15퍼센트만큼 빨라집니다.

*명왕의 목걸이는 세 번 사용하면 그 힘을 잃게 됩니다. (목걸이를 세 번 전부 사용할 시 다시 세 개의 파편으로 분해되어 인간계 어딘가로 흩어집니다.)

-현재 사용 가능한 횟수 (2/3)

-재사용 대기 시간 (359 : 15 : 27)

명왕의 목걸이를 사용하기 위해 남은 횟수는 이제 두 번.

만약 이안이 여기서 실패한다면, 이제 샤크란 본인의 차례가 올 것이었다.

‘후후, 기회가 좀 왔으면 좋겠는데.’

보름이나 되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할 일은 쌓여 있었고, 그 보름 동안 명왕을 상대하기 위한 더욱 만반의 준비를 하면 되니 말이다.

이안이 명왕을 이겨 명계로 가는 길이 바로 열린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새로운 콘텐츠를 접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이고, 만약 이안이 져서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온다면, 명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인해 생기는 부수입과 명성들 때문에 더욱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샤크란이 더욱 집중해서 전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10분 여 정도가 더 지났을까?

고오오오-!

한창 이안과 막상막하로 겨루고 있던 명왕의 기세가 갑자기 일변하였다.

“놈, 제법이구나! 그렇다면 어디, 이번에도 한번 버텨 보거라!”

명왕 뮤칸을 중심으로, 강렬한 어둠의 회오리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하였다.

-명왕 뮤칸의 고유 능력. ‘사령의 포효’가 발동합니다.

-‘경직’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동속도가 일시적으로 1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모든 전투 능력이 일시적으로 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명왕 뮤칸의 모든 전투 능력이 15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모든 어둠 속성 스킬의 공격력이 2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중략)

-모든 소환물들의 전투능력이, 5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뮤칸을 중심으로 솟구치던 어둠의 회오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가 싶더니, 종래에는 그의 흑갑으로 전부 스며들어 갔다.

그리고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헉 소리가 날 만한 어마어마한 버프와 디버프의 향연이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펼쳐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지막에 떠오른 한 줄의 메시지는…….

‘제기랄. 이거 완전 소환술사 저격 디버프잖아? 모든 전투능력 40퍼센트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환술사인 이안의 입장에서 너무나도 크리티컬한 디버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개인의 전투 능력이 어지간한 전사보다 뛰어난 이안이기에 타격이 덜한 것이지, 만약 일반적인 소환술사였더라면 이 디버프를 확인한 순간 그대로 자포자기해 버렸으리라.

디버프의 수치들을 정확히 점검한 이안은, 마른침을 삼키며 검병을 고쳐 쥐었다.

‘후우, 어쩐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쉽다 했지.’

이안의 두 눈이 잠시 뮤칸의 머리 위를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 떠올라 있는 생명력 게이지는, 정확히 절반 정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만 계속 갔으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는데…….’

물론 이안 자신도 아직, 모든 것을 보여 준 상태는 아니었다.

위기 상황을 대비해 아껴 뒀던 고유 능력도 있었으며, 사용했던 셀라무스의 스킬들과 버프들도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온 상황이었다.

특히 카카의 장판 스킬은 최후까지 아껴 놓는 중이었다.

‘어떡하지?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하나. 아니면…….’

언월도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천천히 이안을 향해 다가오는 뮤칸.

놈을 상대로 계속해서 버티려면, 이제 남은 패를 하나씩 꺼내 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무 일러. 지금부터 전력투구를 하다 보면……. 분명 뮤칸의 생명력이 다 닳기 전에 내 버프들이 전부 꺼져버리고 말 거야.’

저벅저벅.

뮤칸의 나직한 발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고요한 전장의 한복판.

이안은 블러디 리벤지의 검병을 꾹 말아 쥔 채 뮤칸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내가 만약 여기서 실패하면, 샤크란 아재는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샤크란이라도 명왕을 잡는 데 성공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쨌든 명계로 가는 길은, 열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명왕을 처치함으로 인해 얻게 될 명성을 비롯한 각종 보상들은 아깝겠지만, 그래도 크게 의미 둘 만한 것들은 아닌 것이다.

‘으, 목걸이 횟수 남겨서 훈이한테 선물하기로 했는데.’

1초, 1초.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하는 이안의 두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

이안의 머릿속을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거 말도 안 되게 쉬운 방법이 하나 있었잖아?’

어떻게든 명왕을 이겨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지금까지 고려조차 하고 있지 않았던, 대체 왜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허탈하고 쉬운 방법이 머릿속에 떠올라 버린 것이다.

이안은 말려 올라가려던 입꼬리를 꾹 눌러 내린 채, 이전까지와 다름없이 명왕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 * *

‘저 꼬마가 왜 저러지? 실성이라도 한 건가?’

뮤칸의 고유 능력인 사령의 포효는, 이안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다.

디버프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 건지 맵 전체에 있던 거의 모든 유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때문에 샤크란의 눈에는 이안에게 걸린 모든 디버프의 효과가 똑같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샤크란이 생각하기에도 답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디버프들이었다.

그러니 이안의 입꼬리에 슬쩍 걸려 있는 웃음이 의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좀 더 나앗겠지.’

샤크란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이렇게 되면 본인이 생각하고 있던 최상의 시나리오로 전개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꼬마 녀석이 실패할 확률이 높아졌군. 나도 물론 쉽진 않겠지만, 적어도 저 녀석보단 내 상황이 더 나을 테니까.’

가장 크리티컬한 부분인 소환수의 전투 능력을 깎는 디버프가 샤크란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꼬마 녀석, 아예 포기해 버린 건가?’

샤크란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이안의 입에 걸려 있던 웃음은 찰나지간에 다시 지워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다시 예의 그 진지한 표정이 채워졌다.

타탓- 탓-!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이안의 신형이 전방을 향해 튀어나갔다.

이어서 이안의 주변으로, 정확히는 이안의 옆에 떠 있는 카카의 주변으로 새카만 연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확인한 샤크란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꿈꾸는 몽마라……. 승부수를 거는군, 꼬마.”

하지만 샤크란이 보기에, 지금 이안이 보여 주는 것은 회광반조回光返照와 같은 것이었다.

해가 지기 직전, 잠깐 동안 밝아지는 그 하늘.

이대로라면 이안이 명왕을 이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죽기 전의 마지막 발악으로 보인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수고했다, 인간. 이제 그만, 저승으로 보내 주마.”

나직한 뮤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의 언월도가 이안의 머리위에 떨어져 내렸다.

콰쾅- 콰콰쾅-!

그리고 그것이 이 전투의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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