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96화 (5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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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언의 몰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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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펠 제국과 카이몬 제국.

양대 거대 제국의 대립 구도로 만들어져 있던 과거 콜로나르 대륙의 경우, 각 제국의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사냥터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형태로 맵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처음 유저들이 나라를 선택하고 캐릭터를 생성하면, 두 제국 중 하나의 수도에서 게임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일란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는 제국전쟁 에피소드 엔딩 이후로는, 콜로나르 대륙의 몬스터 분포 구조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원래 두 개의 거대한 중심지를 기준으로 멀어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형태였다면, 그 중심지가 수없이 많아지면서 다핵화 되어 버린 것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왕국을 국적으로 캐릭터 생성이 가능해지면서, 수십 곳이 넘는 스타팅 포인트가 생겨 버리게 된 것.

심지어 로터스 왕국과 같이 인기가 많은 몇몇 왕국의 경우, 두 개의 스타팅 포인트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한 개의 도시에서 신규 유저들을 전부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왕국의 수도인 로터스 영지와, 가장 번화한 도시인 파이로영지.

이 두 곳이 바로 로터스 왕국을 국적으로 택할 시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스타팅 포인트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파이로 영지는, 카일란 한국 서버에서 가장 핫한 스타팅 포인트라 할 수 있었다.

파이로 영지에서 스타트하기 위해 캐릭터 생성 대기를 걸어 놓는 인원이 수천 명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 중 하나인 유민.

그녀 또한 그 수많은 대기자들 중 하나였다.

띠링.

-‘유민’ 님, 수용 인원 초과로 인해 로터스 왕국의 ‘파이로’영지에 캐릭터를 생성하실 수 없습니다. (185,000/185,000)

-다른 영지를 다시 선택하시겠습니까? (Y/N)

-다른 영지를 다시 선택하실 시 캐릭터 생성 대기 순번이 초기화됩니다.

-현재 ‘유민’님의 대기 순번 : 972

스케쥴이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캡슐에 앉았던 유민은,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시무룩한 표정이 되어 캡슐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매니저이자 절친한 언니인 이예진에게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예진 언니, 오늘은 대기 풀릴 거라며!”

“어? 아직도 대기 걸려 있어? 지금 순번 몇인데?”

“몰라. 900 정도였었나? 정확히 안 읽어봤어.”

“그, 그래? 히잉, 오늘은 게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유민의 말에 덩달아 시무룩해진 예진이 옆에 있는 자신의 캡슐을 오픈했다.

그러자 유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핀잔을 주었다.

“아직 대기 걸려 있다니까, 뭐 하러 캡슐은 열어.”

“민아, 그냥 다른 영지에서 시작하는 건 어때? 벌써 일주일째 게임도 못 하고 있잖아.”

“그, 그건 안 돼!”

“왜?”

“이안갓의 영지가 아니면 이 게임 시작하지 않을 거라구.”

“하, 넌 연예인이라는 애가 무슨 게이머 덕질을 하고 앉았냐?”

“아무튼 안 돼. 일주일을 더 기다려서라도 난 무조건 파이로 영지에서 시작할 거니까.”

“어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예진이, 자신의 캡슐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유민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 혼자 다른 곳에서 시작하려는 거야 설마?”

“에이, 그럴 리 있겠어?”

“그럼 캡슐에는 왜 들어가는 건데?”

“순번이나 정확히 확인해 보려고 그런다. 우리 배우님 보필하려면 그 정돈 해 줘야지.”

눈을 찡긋 하며 대답하는 예진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유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헤헤, 역시 언니가 최고야!”

위이잉- 척-!

이어서 예진이 캡슐 안에 완전히 몸을 눕히자, 캡슐의 뚜껑이 자동으로 닫히며 게임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류스타인 예진이 억 단위의 돈을 들여 가며 주문한 캡슐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별 쓸모없는 외관 디자인조차도 무척이나 훌륭한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예진은 배시시 웃으며 캡슐을 쓰다듬고 있었다.

“히히, 빨리 게임하고 싶다. 열심히 게임해서 나도 언젠간 로터스 길드에 들어가야지!”

아직 캐릭터 생성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원대한 꿈을 품고 있는 한류스타 유민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뭐야, 이 언니? 대기 순번 확인하는데 뭐 이리 오래 걸리는 거야?”

대기 순번을 확인하겠다며 캡슐로 들어갔던 예진이 몇 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캡슐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유민의 머릿속에 불길한 가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호, 혹시! 그 사이에 대기 순번이 풀려서 혼자 먼저 게임 시작한 건 아니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친 유민은 서둘러 옆에 있는 자신의 캡슐에 들어가 앉았다.

상식적으로 천명에 가까운 대기 순번이 그 사이에 돌아왔을 리는 없었지만, 직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위이잉-!

잠시 후 캡슐은 작동하기 시작했고, 유민의 눈앞에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카일란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민’님.

-로터스 왕국, ‘파이로’영지의 영지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영지의 최대 수용 인원이 증가하여, 지금 바로 캐릭터를 생성하실 수 있습니다.

-캐릭터를 생성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유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음은 물론이었다.

* * *

-죽은자들의 왕. ‘리치 킹 샬리언’이 사망하였습니다.

-리치 킹 샬리언이 인간 영웅들에 의해 처치되었습니다.

-‘리치 킹 샬리언’ 에피소드가 클리어되었습니다.

-에피소드 공헌도 순위가 산정됩니다.

-길드 순위

-1위 : 로터스

-2위 : 타이탄

-3위 : 퓰리오스

-4위 : 벨리언트

(후략)

-유저 순위

-1위 : 이안

-2위 : 샤크란

-3위 : 세일론

-4위 : 레비아

-5위 : 레미르

(후략)

-유저 ‘이안’에게 ‘어둠을 지배한 자(신화)’ 칭호가 주어집니다.

-유저 ‘샤크란’에게 ‘어둠을 거역한 자(전설)’ 칭호가 주어집니다.

-유저 ‘세일론’에게 ‘어둠을 거역한 자(전설)’ 칭호가 주어집니다.

(중략)

-로터스 왕국의 성장 경험치가 1.500만 만큼 부여됩니다.

-타이탄 왕국의 성장 경험치가 1,300만 만큼 부여됩니다.

(후략)

카일란에 접속 중이던 모든 인간계 유저들의 채팅 창에 보랏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월드 메시지’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올라왔다.

인간계의 모든 유저들이 진행 중이던 초대형 에피소드가 마무리되었으니, 이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초월 능력을 각성한 루가릭스의 브레스 한 방에 샬리언은 소멸되고 말았으며, 샬리언의 손에 펼쳐진 어둠의 결계 또한 점차 사라져 갔다.

샬리언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던 것에 비해, 어쩌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안만큼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유저가 바로 이안이었기 때문이다.

‘루가릭스 없이는 샬리언을 상대할 수 없다는 얘기가 바로 이거였군.’

샬리언과 루가릭스의 전투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허무했지만, 루가릭스가 여기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샬리언이 흑염黑炎 속에 타들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며, 이안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 갔다.

‘샬리언을 잡았으니, 중간계 콘텐츠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겠지. 중간계 콘텐츠를 선점하려면 머리를 잘 굴려야 할 텐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월드 메시지에 이어 개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이안은 헤벌쭉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안의 눈앞에, 끝도 없는 개인 보상 목록이 나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띠링-!

-‘리치 킹 샬리언’ 에피소드에서 최고의 공헌도를 달성하셨습니다!

-명성치가 100만 만큼 증가합니다.

-에피소드 공헌도를 500만 만큼 추가로 획득합니다. (에피소드가 종료된 뒤에도, 공헌도 상점에서 아이템이나 골드로 교환이 가능합니다.)

-경험치를 198,742,500만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403’이 되었습니다.

-‘리치 킹의 크리스탈 버클’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죽음의 부적’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중략)

-‘용사의 마을’에 입장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초월 경험치가 245만큼 증가하였습니다.

-초월 레벨이 상승합니다.

-초월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인간계 전체가 참여하는 대형 에피소드의 최고 공헌자답게, 어마어마한 보상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안의 상태 메시지 창.

이안은 실실 웃으며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고,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방금 이안에게 들어온 보상만 하더라도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시스템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던 이안의 두 눈이, 어느 한곳에서 고정되어 반짝이기 시작했다.

‘역시……. 찾았다!’

막대한 보상에 흡족해하는 한편, 시스템 메시지 속에서 찾고 있었던 명계에 관한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명왕의 목걸이 파편 (C) (봉인)’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카카의 말에 의하면, 명왕의 목걸이 파편은 총 세 개라고 했었지.’

명계로 가는 길목을 지킨다는, 명계의 수문장 명왕.

그를 소환할 수 있게 해 주는 명왕의 목걸이 조각이 전부 이안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인벤토리를 열어 목걸이 파편을 확인한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A, B, C 세 개의 목걸이 조각이 한데 모인 채, 하얗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파편들을 전부 꺼내어 봉인을 해제한다면, 아마 명계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었다.

‘이제 내가 공략 가능한 중간계는 명계와 정령계. 더해서 용천까지. 이 세 곳인가?’

이안은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진입이 가능한 중간계는 총 세 곳이었으나, 동시에 세 곳을 공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안이 가장 먼저 선택한 곳은, 바로 ‘명계’였다.

‘처음 공략해야할 곳은 어쩔 수 없이 명계가 되겠어. 정령계부터 먼저 가 보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지.’

이안이 명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리치 킹을 잡기 위해 샤크란과 했던 거래.

‘원정대에 합류한다면 명계입성을 돕겠다.’는 그 거래를 이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샤크란과 타이탄 길드에게 명계로 가는 길을 열어 주면서, 이안 본인은 다른 중간계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것이야말로 죽 쒀서 개 주는 격이라 할 수 있는데, 이안이 그것을 용납할 리 없었다.

‘명계의 콘텐츠를 최대한 선점해 놓은 뒤에, 정령계를 공략하러 가야겠어. 너무 늦으면 정령왕 아줌마가 슬퍼할 테니까. 베히모스를 얻은 뒤에는 미련 없이 아줌마를 만나러 가야지.’

물의 정령왕 ‘엘리샤’가 들었다면 부들부들 떨었을 호칭을 속으로 남발한 이안은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적으로 계획들이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안이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샬리언으로부터 퍼져 나가기 시작한 흑염이 팔카치오 성 전체를 뒤덮었다.

어둠에 물들었던 성은 새카만 불길에 잠겨 활활 타올랐고, 종래에는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백색과 금빛이 어우러져 환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고대 왕궁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이안의 개인 시스템 창에 몇 줄의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리치 킹 샬리언을 처단하고 인간계의 평화를 수호하셨습니다.

-루스펠 제국의 영웅 ‘뮤란’과의 약속을 이행하셨습니다.

-영웅의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영웅의 책임 (히든)’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이안이 근 한 달간 미친 듯이 게임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 그 이유.

‘영웅의 책임’ 퀘스트를 완수했다는 메시지가 드디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크으!”

특히 그 마지막에 반짝이는 한 줄의 메시지는 그 어떤 보상 메시지보다도 이안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유니크 듀얼 클래스 ‘서머너 나이트Summoner Knight를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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