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95화 (5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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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리언의 몰락 (1)

‘리치 킹 샬리언’ 에피소드는, 최소 1년 정도는 울궈먹을 계획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였다.

더해서 실무진인 개발자들조차도 아무리 빨라도 클리어까지 9~10개월을 예상하며 개발한 콘텐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카일란 개발 팀의 책임 PD중 한 명인 양광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한 큐에 끝내 버리는 건가? 괴물 같은 이안 놈.”

개발 팀 작업실 안쪽에 설치되어 있는 작은 TV 화면을 슬쩍 응시한 양광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화면 안에는 거대한 어둠의 신룡이 포효하고 있었다.

-캬아아오오!

사실 책임PD이자 수석 개발자인 양광진은 이미 다음 콘텐츠 개발에 투입된 지 오래였다.

이안과 루가릭스의 친밀도가 최대치까지 오른 것을 확인한 순간, 에피소드의 클리어가 머지않았음을 기획 팀에서 직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이러한 전개는 정말이지 기획 팀과 개발 팀을 통틀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최후의 보루가 이렇게 쉽게 파훼될 줄은 생각조차 못했었지…….’

양광진이 말하는 ‘최후의 보루’란, 바로 샬리언의 결계였다.

던전의 차원 타입을 일시적으로 ‘중간계’로 바꾸는 차원왜곡의 결계.

이 결계로 인해 생기는 차이는 사실 ‘컨트롤’과 같은 게임 실력의 개념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 있게 ‘최소 10개월’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샬리언의 결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바로 정면 돌파.

유저들이 에피소드를 공략하기에 앞서 중간계 콘텐츠를 어느 정도 진행하여, 초월 레벨을 샬리언과 대등한 수준까지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수준까지 유저들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1년이라는 시간도 한참 부족했다.

때문에 사실상 큰 의미 없는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방법은 ‘초월적인 존재’를 결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

이것이 사실상 리치 킹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기 위한 열쇠라고 할 수 있었다.

샬리언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결계 안으로 끌어들여서, 그로 하여금 샬리언을 상대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이안이 루가릭스를 데려온 것처럼 말이다.

‘루가릭스 퀘스트를 찾아내고 클리어한 것까지야 그렇다고 쳐. 친밀도를 올리는 것도 분명히 쉽게 만들어 놓지는 않았었는데…….’

이안은 그야말로 특수한 케이스였다.

어둠의 신룡과 관련된 퀘스트를 하고 있던던 ‘훈이’가 곁에 있었으며, 본인이 진행 중이던 메인 퀘스트까지 그 안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거기에 루가릭스와의 친밀도를 빠르게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빛의 신룡 엘카릭스’까지 테이밍하였으니.

당초 예상했던 10개월이라는 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운도 운이지만, 실력과 에피소드에 대한 이해도가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완성될 수 없는 결과였다.

개발자인 양광진이 볼 때, 이안은 거의 게임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에휴,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일이나 어서 해야겠다. 이번에 이렇게 통수를 맞았으니, 다음 콘텐츠만큼은 기획 팀에서 좀 하드코어하게 짜겠지.”

한차례 입맛을 다신 양광진은 다시 본인의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투덜거릴 시간에 코드 한 줄이라도 더 짜 놓는 것이 빠른 퇴근의 지름길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 * *

-한낱 피조물 주제에 어찌 감히 신들의 위계를 어지럽히려 하는가!

루가릭스의 커다란 입이 쩍 하고 벌어지며, 시커먼 기운이 허공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쾅- 콰콰쾅-!

범위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파괴력만큼은 결코 드래곤 브레스에 못지 않은 강렬한 어둠의 마력탄.

블링크를 사용해 그것을 가까스로 피해 낸 샬리언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네놈은 루가릭스? 어찌 네놈이 이곳에…….”

물론 샬리언이 어둠의 결계를 펼치기 전에도 루가릭스는 전장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다만 본체로 현신하지 않고 인간의 몸을 한 채로 이안을 돕고 있었을 뿐.

그랬기에 샬리언이 루가릭스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루가릭스는 어째서 폴리모프한 상태로 전투를 돕고 있었을까?

그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이유였다.

본체의 상태로 물리적인 공격을 행사하는 것보다, 인간인 상태에서 각종 어둠 마법을 구사하는 것이 전투에 더욱 도움 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드래곤의 몸으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몸이 마법 캐스팅에 훨씬 유리하다.

상식적으로 거대한 몸체를 가진 드래곤이 작은 몸집을 가진 인간에 비해 마법을 캐스팅하는 동안 방해받기 훨씬 쉬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샬리언의 결계 덕분에 중간계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상…….

-어둠이여, 타올라라!

화르륵-!

드래곤만의 전유물이자 최고 티어의 초월능력 중 하나인.

‘용언龍言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크아아악!”

강력한 어둠의 불길에 휩싸인 샬리언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죽은 자들의 왕인 샬리언은 고통에 둔감한 편이었지만, 자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어둠’그 자체가 타오르자 견딜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원정대의 유저들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와…….”

“대박…….”

그중에서도 특히 마법사 유저들의 경우 놀람의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루가릭스가 보여 주는 마법이 너무도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미친, 저건 사기야…….”

“이건 거의 치트키라도 친 수준인데?”

용언 마법이란, 쉽게 말해 ‘클래스’라는 기본적인 개념을 초월한 마법의 형태였다.

‘마법의 일족’인 드래곤이 원소 그 자체와 교감하여 발동시키는 마법이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유저들이 구사하는 마법들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초월적인 존재가 되는 순간…….

- 마법의 일족 -

드래곤은 태생이 ‘마법의 일족’이다.

완전체가 된 드래곤은 지능 능력치에 비례해 더욱 고위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며, 스킬북을 통해 새로운 마법을 습득할 수도 있다.

(단, 마법사 클래스 유저가 사용하는 스킬보다는 그 위력이 떨어진다.)

이‘마법의 일족’ 특성에 부여되어 있던 페널티조차도, 완벽하게 사라지게 된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인간에게 맞춰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드래곤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루가릭스가 구사하는 공격 마법들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과는 별개로 마법사 유저들이 경악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용언 마법의 강력한 위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더 강력한 위력의 마법이야 상위 콘텐츠로 넘어가면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들이 당황한 것은 용언 마법만의 ‘특별한 권능’ 때문이었다.

그 권능이란 바로…….

“어떻게 마법을 캐스팅 없이 쓸 수가 있지?”

마법사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캐스팅 시간’이라는 것이 용언 마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캐스팅 시간 감소 아이템으로 도배한 랭커 마법사가 최하위 클래스의 마법을 사용한다면, 거의 의미 없을 정도로 캐스팅 시간이 짧아질 수는 있다.

하지만 짧은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정말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용언 마법을 구사하는 루가릭스는 샬리언을 향해 한 번에 서너 가지의 공격 마법을 동시에 퍼붓고 있었으니까.

-하찮은 권능을 믿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루가릭스의 용언이 발동할 때마다 샬리언의 입에서는 고통에 찬 비명이 새어나왔다.

-탈혼脫魂!

“크아악, 안 돼!”

-용신 세카이토 님의 이름으로, 네놈을 벌하노라!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와 어른의 싸움을 보는 것 같은 상황이었다.

레이드 보스 몬스터인 샬리언의 생명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탓에 오랜 시간 버티고 있는 것뿐.

샬리언과 루가릭스의 전투는 ‘전투’라는 단어를 가져다 대기조차 민망할 지경이었다.

샬리언이 쓰는 모든 어둠마법은 루가릭스의 손짓 한 번에 흩어져 버렸으며, 루가릭스의 용언 마법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샬리언의 생명력 게이지가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이안을 포함해 유저들 중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샬리언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당하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성.

사실 루가릭스야말로 샬리언의 완벽한 천적이었던 것이다.

용언 마법은 낮은 티어인 같은 계열의 마법에 한해 전부 무력화시킬 수 있는 특성을 갖는데, 샬리언의 속성이 안타깝게도 어둠이었다.

초월 레벨이 두 배 이상 차이나는 데다 상성마저 지독하게 나빴으니 샬리언이 탈탈 털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다른 유저들과 다를 바 없이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이안이 문득 파티 시스템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전투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평소에는 어지간해서 오픈하지 않지만, 구경꾼(?)인 지금의 상황에서는 꿀 같은 옵션이었다.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가, 리치 킹 ‘샬리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샬리언의 생명력이 143,265만큼 감소합니다!

-샬리언의 생명력이 178,273만큼 감소합니다!

루가릭스의 마법이 발동될 때마다, 연달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들.

그것들을 자세히 확인한 이안은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초월 레벨이 적용된 상태에서도 40레벨대가 되면 1십만 단위의 대미지가 박히네?’

이안은 이 와중에도, 루가릭스의 마법 공격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초월 레벨이 45인 루가릭스의 대미지를 분석하면, 초월레벨 1레벨이 오를 때마다 스텟이 얼마나 상승할지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안이기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크, 초월 레벨이 100레벨이 되면, 인간계에서 500레벨 찍은 것보다도 훨씬 강력한 대미지가 찍히겠군. 역시 숫자가 높아야 타격감도 살아나는 법이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실실 웃고 있는 이안.

그리고 이안이 실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 루가릭스와 샬리언의 전투 또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크아아아, 허망하도다! 루가릭스, 네놈만 아니었으면…….”

-그러한 가정은 의미 없다, 샬리언. 차원의 율법을 어긴 이상 어차피 네놈은 신의 심판을 받았을 테니까.

루가릭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샬리언의 주변으로 보랏빛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 보랏빛 기운들은, 사슬 형태로 변하여 샬리언의 전신을 휘감았다.

“끄윽- 끄으윽-!”

보랏빛의 사슬에 전신이 속박당한 채,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리는 샬리언.

그리고 그런 샬리언을 향해, 루가릭스가 커다란 입을 쩍 벌렸다.

-이제 그만, 무無로 돌아가거라.

‘팔카치오 왕성’ 던전의 내부를 온통 뒤덮고 있던, 거대한 어둠의 기운들이 루가릭스의 입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마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웅장하기 그지없는 광경.

루가릭스의 입에 모인 시커먼 기운들은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하나의 구체로 응집된 그 덩어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커져 갔다.

고오오오-!

던전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커다랗게 울리는 강렬한 공명음.

이어서 루가릭스의 숨결이 속박된 샬리언을 향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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