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94화 (51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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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레벨의 비밀 (3)

* * *

-이게 무슨 말일까요? ‘중간계’라뇨?

-그러게요. 또 새로운 차원계가 등장하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하인스 님, 중간계에 대해서 아시는 것 없으세요?

-네. 저도 중간계라는 말은 지금 처음 봤습니다. 상황이 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요?

어두운 방 안.

한 남자가 소파에 등을 푹 묻은 채, 흥미로운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치 해설자와 대화하기라도 하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흘러가긴. 저 멍청한 리치 킹 AI가 제 무덤 판 꼴이지 뭐.”

그런데 특이한 점은, 남자의 한국말이 어딘지 모르게 어눌하다는 점이었다.

어휘 자체는 한국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지만, 발음은 누가 들어도 외국인의 그것이었다.

“이안이라고 했나? 확실히 한국 서버의 톱클래스라고 할 만 하군. 대단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 남자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리모컨들 들어 TV를 꺼 버렸다.

핑-!

“결과야 뭐, 보나마나일 테니까…….”

남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검은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 * *

‘이거 흥미진진한데?’

일시적으로 차원 타입이 ‘중간계’로 변경되면서 그에 따라 여러 줄의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하지만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간계’만의 콘텐츠로 보이는 ‘초월 레벨’에 관한 것들이었다.

-‘팔카치오 왕성’ 던전의 차원 타입이 일시적으로 ‘중간계’로 변경됩니다.

-지상계에서 얻은 모든 능력치에 비례하여 초월 능력치가 설정됩니다.

-이제부터 ‘초월 레벨’이 적용됩니다.

-현재 ‘이안’ 님의 초월 레벨은 1Lv입니다.

-‘용사의 자격’을 얻을 때까지 초월 레벨의 레벨 업이 제한됩니다. (10Lv을 초과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이안은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재빨리 상태 창을 열어 스탯들을 확인해 보았다.

-이안

초월 레벨 : 1(0/200(0%))

차원 계급 : 없음

종족 : 인간

직업 : 소환술사(테이밍 마스터)

칭호 : 여의주의 주인:(신화)

명성 : 35,975,250(명성이 0 이하로 떨어지면 악명으로 변환됩니다.)

-전투 능력

생명력 : 96,250(+93,200)

힘 : 625(+250)

민첩 : 815(+310)

지능 : 448(+170)

체력 : 495(+225)

*지상계에서 얻은 모든 장비의 능력치는 10분의 1로 감소되어 적용됩니다.

(후략)

그리고 상태 창을 빠르게 읽어 내려간 이안의 두 눈은, 종전보다 살짝 확대되어 있었다.

‘뭐야? 능력치가 왜 이래?’

아이템으로 인해 올라간 수치를 제외한다면 거의 10~20레벨 유저 수준의 능력치로 모든 전투 능력들이 낮아져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템의 성능마저 10분의 1로 적용되 다보니, 상태 창에 보이는 능력치는 완벽히 초보자 수준이 되어 있었다.

이안은 당황하여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고,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뭐, 뭐야? 능력치가 다 초기화됐어!”

“헐……. 능력치뿐만이 아니에요! 스킬 레벨도 전부 1레벨로 변했다고요!”

“뭐지? 난 소환수들도 전부 1레벨로 초기화됐어!”

“장비들은 또 왜 이래? 내 갑옷 방어력이 이상해졌어!”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이안은 그 속에서 침착하게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지상계에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은 500레벨인 게 분명해. 방금 등장한 초월 레벨이라는 것은 중간계 콘텐츠를 통해 올릴 수 있는 레벨인 것 같고. 그렇다면 리치 킹, 저 녀석의 레벨도 초월 레벨로 바뀌어 있겠지?’

이안의 시선이 리치 킹의 머리 위를 향했다.

그리고 리치 킹의 머리 위에는 이안의 예상대로 새로 적용된 레벨이 떠올라 있었다.

-리치 킹 샬리언 : Lv.20(초월)

“역시……!”

결계를 펼치기 전.

리치킹은 ‘지상계의 힘’이라는 단어를 언급했었다.

마치 본인은 그 이상의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지금 리치 킹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20’이라는 초월 레벨이 바로 그 힘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20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안 되네. 장비로 커버하는 게 불가능한 차이려나?’

초월 레벨이 상승할 때 어느 정도의 스텟이 오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만약 일반 레벨 업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20레벨 정도의 차이는 장비 옵션으로 충분히 커버될 것이었다.

하지만 초월 1레벨에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텟 자체가 일반 1레벨의 10배가 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았다.

‘샬리언 녀석이 자신만만해할 만하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의 스컬 완드를 높이 치켜든 샬리언.

샬리언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핫, 네놈들 전부를 모조리 망자로 만들어 친히 나의 종으로 거둬 주겠노라!”

샬리언의 완드에서 강력한 어둠의 마력탄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당황한 탓에 그것을 미처 피하지 못한 원정대원 하나가 그대로 게임아웃 당하고 말았다.

“크허어억!”

“헉, 로칸 님!”

“미친! 한 방이야?”

무척이나 간단해 보이는 공격 마법 한 방에, 생명력이 가득 차 있던 유저 하나가 게임아웃 당해 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 유저의 클래스는 모든 직업군 중 가장 탱킹 능력이 좋은 기사 클래스였다.

당황하는 원정대 유저들을 본 리치 킹이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크큭, 크크큭!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이제야 상황 파악이 좀 되시는가?”

쿠오오오-!

가늘고 긴 열 손가락을 허공을 향해 쫙 펼쳐 든 샬리언은 또 다른 어둠의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죽은 자들의 왕. 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러자 그의 열 손가락에서부터, 마치 전류를 연상케 하는 보랏빛의 빛줄기들이 갈래갈래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유저들은, 더욱 우왕좌왕했다.

“원딜러들 뭐해! 캐스팅 좀 끊어 봐!”

“블랙실드 때문에 딜이 안 들어가!”

“뚫릴 때까지 퍼부어야지!”

“실드에 딜이 한 자리 수로 박히는데 무슨 수로 뚫어!”

“저거 광역기인 것 같아요! 후방으로 일단 빠져야……!”

“마법사들, 사제들, 광역 실드 좀 겹겹이 쌓아 보라고!”

“소용없어! 저거 채널링 스킬인 것 같아!”

간단한 마력탄 한 방에 랭커 기사 유저가 다운되어 버렸으니, 지금 샬리언이 캐스팅하기 시작한 광역기의 위력은 보지 않아도 짐작이 될 수준이었다.

유저들에게 선택지는 어떻게든 공격 범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샤크란이 침음성을 흘리며 이안을 향해 말했다.

“크흐음, 이제 어쩔 거냐, 꼬맹아?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할 거다.”

어지간해서는 표정에 변화가 없는 샤크란조차도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든, 급박하기 그지없는 위기의 상황.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안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전멸요? 전멸을 왜 해요?”

“음?”

태연자약한 이안의 대꾸에 할 말이 없어진 샤크란은 멀뚱한 표정으로 두 눈을 꿈뻑이고 있었고, 그에 이안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짧게 대꾸했다.

“나만 믿어요. 나만.”

샤크란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뭘 믿고 태평한 거냐? 설마 피닉스를 믿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사실 샤크란도 이번 광역기에 전멸당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상위 랭커들 중에는 특별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고, 그들의 고유 능력들을 잘 활용한다면 이 한두 번의 공격은 어찌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당장 이안의 소환수인 ‘닉’의 고유능력만 활용하더라도 어느 정도 대처가 되는 것이다.

다만 이번을 막아 낸다 하더라도, 그 다음이 문제였다.

녀석은 무식하리만치 강력한 공격을 계속해서 쏟아낼 것이었고, 두 번 세 번 막은 뒤에는 더 이상 답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안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씨익 웃어 보이며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타탓-!

이어서 핀의 등에 오른 이안이 큰 소리로 오더를 내렸다.

“원정대 전원, 최대한 안쪽으로 모이세요!”

그리고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로 오더하는 이안을 보며, 유저들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안 님이다!”

“역시, 뭔가 방법이 있으신 거야!”

“서둘러! 빨리 오더를 따르라고!”

이안이 어떤 전략을 사용하려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적어도 여기 있는 원정대 유저들에게만큼은 이안의 오더가 거의 종교 수준이기 때문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내는 그런 기적과도 같은 힘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 마법의 캐스팅이 끝난 것인지 샬리언이 다시 포효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핫, 전부 다 망령으로 만들어 주마!”

콰아아아-!

샬리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보랏빛의 빛줄기들이, 순식간에 던전 전체로 퍼져 나가며 허공을 시퍼렇게 수놓았다.

그리고 그 순간, 샤크란이 예상했던 것처럼 닉의 고유 능력이 발동되었다.

-소환수 ‘닉’의 고유 능력 ‘태양신의 비호’가 발동됩니다.

-소환수 ‘닉’의 생명력이 초당 30퍼센트만큼씩 회복됩니다.

우우우웅-!

허공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공명음과 함께 어둠의 전류다발을 집어삼키는 황금빛의 광채.

하지만 3초의 지속 시간이 전부 지나가자, 황금빛 광채는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리치 킹이 쏘아내는 어둠의 전류 다발은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샤크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안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자, 이제 어쩔 거냐, 꼬마? 네놈이 이 정도도 예상치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제 피하는 것은 늦었다.

만약 이번 광역 공격을 피해 가려 했더라면, 닉의 ‘태양신의 비호’가 발동되는 사이 진영을 뒤로 뺐어야만 했다.

어차피 ‘던전’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리치 킹으로부터 도주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시간은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샤크란을 비롯한 원정대의 유저들은 이안의 오더에 모든 것을 맡겼다.

이 선택으로 인해 모두가 전멸한다 할지라도 아무도 이안을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차피 저 꼬마 녀석이 아니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수 조차 없었을 테니까.’

‘태양신의 가호’ 효과가 벗겨지며, 금빛 광채가 가득 차있던 자리에 어둠의 기운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제 저 어둠이 공간을 잠식하는 순간, 원정대 모두가 사망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모든 원정대 유저들의 시선이 이안의 손끝을 향해 있었다.

“제발……!”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고, 거대한 어둠의 전류가 원정대 전체를 뒤덮었다.

콰아아아-!

마치 레이드 공략 실패를 알리는 듯한 거대한 폭발음.

그런데 바로 그때, 유저들은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뭐지? 딜이 안 들어오잖아?”

허공을 가득 덮은 어둠의 전류들이 어떤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그 자리에서 소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캬아아아오!

던전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거대한 드래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연하겠지만 원정대 유저들의 시선은 일제히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모아졌다.

“……!”

던전의 허공에 날개를 펼친 채 사나운 눈빛으로 리치킹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드래곤.

그곳에는 한 마리의 어둠의 신룡이 포효하고 있었다.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 : Lv. 45(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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