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92화 (50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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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레벨의 비밀 (1) (22권 시작)

꿀꺽.

TV에 연결된 스피커를 타고, 침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전장.

그에 더해, 말을 잃은 해설진들.

평소에는 매 장면 장면 곧바로 해설을 풀어 내는 하인스 조차도 두 눈을 부릅뜬 채 아무런 말이 없다.

마치 잠시 동안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듯 보였다.

“야, 세미!”

“왜 불러?”

“설명 좀 해 줘 봐.”

“훗, 이해 못 했구나?”

“아 씨, 현기증 나니까 빨리 설명 좀 해 줘 봐! 대체 이거 어떻게 된 건데? 대체 스킬을 어떻게 썼길래 쿨타임도 없이 7연타를 쳐?”

“설명 못 해.”

“……?”

“나도 이해 못 했거든.”

“우씨.”

한국대학교 가상현실과의 구석 끝에 있는 작은 세미나실.

세미와 영훈을 비롯한 너댓 명의 1학년 학생들이 스크린에 YTBC 게임방송을 틀어놓고 오순도순 모여 시청 중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세미와 영훈은 거의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TV에서는 루시아와 하인스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 하인스 님, 일단 스킬 정보부터 좀 띄워 주시겠어요?

-아무래도 그게 낫겠죠?

-네, 어떻게 된 상황인지 해설하기 위해서는, 우선 스킬 정보부터 띄워 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블러드 스플릿이야 이미 알려져 있는 고유 능력이니, 띄우는 건 어렵지 않죠.

하인스와 루시아의 대화가 이어지더니, 스크린의 한쪽 구석에 ‘블러드 스플릿’ 스킬의 스킬 정보 창이 떠올랐다.

스킬의 공격 계수부터 시작해서 부가 옵션들까지 상세히 적혀 있는 정보 창.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세미와 영훈은 흥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 스킬 정보 떴다!”

“오오, 이거 역시 조건부 옵션 때문에 쿨타임 없이 쓸 수 있었던 거네.”

“영훈, 예상했던 척하지 말아 줄래?”

“우씨.”

하지만 그 정보들을 확인했음에도, 의문이 완전히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조건부 발동 옵션들을 어떤 식으로 활용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치 시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 이 옵션을 활용한 건가?”

“그런 것 같은데? 한 번 발동시킬 때마다 정확히 각을 재서, 생명력 얼마 남지 않은 다른 언데드까지 동시에 맞춘 것 같아.”

“일곱 번 전부?”

“어……. 생각해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아. 정확히 보진 못했지만, 스킬은 못해도 대여섯 번 발동되었거든.”

“막타 친 언데드는 총 셋이고?”

“그렇지.”

“헐……?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버그인가?”

“버그가 아니라면, 방법은 하나인데…….”

“세 번째 옵션 말하는 거지? 3연속 치명타 시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

“그래. 그 옵션. 아, 되감기라도 해서 다시 봐야 정확히 이해가 되겠는데…….”

세미와 영훈에 비해 게임 이해도가 떨어지는 다른 학생들은 그저 멀뚱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두 사람은 방금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화면 속에서 가만히 있던 하인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부터 집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다문 영훈과 세미의 두 눈이 스크린으로 고정되었다.

* * *

사실 블러드 스플릿은 이전부터 유명했던 스킬이다.

그동안 마계에서 림롱이 활약할 때마다 등장했던, 림롱의 상징과도 같은 고유 능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암살자 클래스의 1위 유저인 림롱의 주무기인 데다 무척이나 강력하고 화려한 스킬이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던 것.

이 블러드 스플릿이 처음 유명세를 타게 되었던 계기는, 마계의 ‘반란군 토벌전투’ 에피소드 때였다.

당시 반란군으로 등장했던 마족 NPC 다섯 명을 림롱이 한순간에 처치하는 매드 무비가 떠돌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림롱이 주로 사용했던 스킬이 이 블러드 스플릿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림롱이 그때 보여 주었던 블러드 스플릿 컨트롤은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했다.

완벽한 대미지 계산과 타깃팅.

거기에 정확한 명중률까지.

그것은 어지간한 랭커들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매드 무비’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재밌는 것은, 림롱의 매드 무비를 처음 중계했던 해설자도 하인스였다는 것이다.

하인스는 당시의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때 그 장면은, 소름 돋게 놀라웠을지언정 이해가 불가능할 수준은 아니었지.’

당시 림롱의 플레이는, 사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블러드 스플릿을 사용하여 생명력이 얼마 남지 않은 다섯 마족을 정확히 맞춘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마족 하나를 처치할 때마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되었고, 때문에 연속적으로 스킬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뿐.

다만 붉은 잔영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섯 번의 스킬을 전부 발동시켰으며, 그 다섯 번을 전부 맞췄다는 사실이 놀라운 부분이라 할 수 있었다.

즉 누구나 생각해 낼 수는 있는 플레이지만, 실제로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그런 플레이를 보여 줬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반해 지금 이안이 보여 준 플레이는 애초에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일곱 번의 블러드 스플릿이 연속해서 발동되었다면 적어도 일곱 이상의 언데드가 죽었어야 하는데, 처치된 언데드는 셋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버그 없이 이 상황이 성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 번째 조건부 옵션뿐이었다.

-세 번 이상 연속해서 치명적인 공격을 성공시킬 시,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된다.

그런데 대체 그 짧은 시간 안에 세 번의 치명타를 어떻게 터뜨렸으며, 스텍Stack 계산을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하인스로서는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식은땀을 훔치며 느리게 재생 중인 이안의 전투 장면을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적어도 느리게 재생되는 영상을 보면서는 시청자들이 납득할 만한 해설을 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진중한 표정의 하인스가 해설을 위해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자, 이 부분이 첫 번째 블러드 드플릿이 발동되는 장면입니다!”

느린 화면 안의 이안이 붉은 기운에 휩싸이는 순간, 전방으로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이안은 아리아네스를 관통하고 지나갔으며, 그 순간 여지없이 ‘치명타’가 발동했다.

-죽음의 마녀 ‘아리아네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아리아네스를 지나친 이안의 붉은 신형은, 그 뒤쪽에 있던 해골기사 하나를 연속해서 뚫고 지나갔다.

생명력이 절반도 채 남아 있지 않았던 해골기사는 그대로 사망에 이르렀다.

-‘스켈레톤 나이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블러드 스플릿’ 고유 능력을 사용해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여기까지 확인한 하인스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여, 여기서 벌써 치명타가 2스택이야……!’

대상 하나를 치명타로 맞추는 것은, 대부분의 랭커들이 어렵지 않게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논타깃 스킬로 동시에 둘 이상의 타깃에 치명타를 띄운다?

이건 그야말로 이론상으로나 생각해 볼 수 있는 전개였다.

하인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치명타 2스택이면, 곧바로 3스택이 가능하겠지.’

방금 이안은 해골기사를 처치함으로써 치명타 2스택을 얻음과 동시에 블러드 스플릿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인 즉 다시 아리아네스에게로 블러드 스플릿을 사용하여 한 번 더 치명타로 맞춘다면, 그 순간 치명타가 3스택이 되면서 재사용 대기 시간이 또다시 초기화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하인스의 예상처럼, 이어진 이안의 블러드 스플릿은 여지없이 치명타로 격중되었다.

-죽음의 마녀 ‘아리아네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연속 세 번의 공격을 ‘치명타’로 명중시켰습니다!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적 처치 시 재사용 대기 시간 초기화’라는 첫 번째 옵션이 발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스킬 초기화에 성공한 것.

이제 모든 매커니즘을 이해한 하인스는 자신도 모르게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거였어요! 처치할 적이 나오지 않는 타이밍에 정확히 치명타 스택을 만들어서, 같은 적을 대상으로 연속 일곱 번의 스킬 발동이 가능하게 했던 거였습니다!”

이어서 느린 화면 속의 이안은 순간적으로 지면을 박차며 위치를 살짝 움직여 주었다.

미리 봐 두었던 다음 타깃과 아리아네스의 위치를 전면으로 일직선상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같은 패턴의 반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인스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 것처럼, 이안은 중간 중간 치명타 스택을 활용하였다.

연속 일곱 번의 핏빛 섬광이 아리아네스를 난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밝혀진 것이다.

영상이 다 끝나고 난 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루시아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건, 진짜 엄청난 것 같아요, 하인스 님!”

경악스런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 루시아.

하인스는 심지어 거의 울고 있었다.

“아, 저는 오늘 이 장면을 라이브로 봤다는 사실, 제가 직접 중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이안갓! 역시 명불허전이에요!”

“그렇습니다. 대체 어떻게 게임을 하면 이런 컨트롤이 가능할까요? 아니, 그에 앞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건, 타고난 게임 센스가 아닐까요?”

“하……. 이건 게임이 아니라 예술입니다! 예술이에요!”

하인스는 도무지 여운이 가시지를 않는지, 이안의 블러드 스플릿 컨트롤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과 감탄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것을 지겨워하는 시청자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번의 설명 덕에 겨우 이해한 유저들이 대다수였으며, 금방 이해한 유저들조차도 연신 되뇌며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원정대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느린 화면이 재생되는 사이에 하나의 네임드 보스가 추가로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다섯의 보스들도 빠르게 생명력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임펙트 있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었지만, 이안의 블러드 스플릿만 한 명장면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와 별개로 중계 열기는 갈수록 달아올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더 흘렀을까?

쿵-!

리치 킹의 앞을 마지막까지 지키던 거대한 고스트 드래곤을 마지막으로 일곱의 하수인들이 전부 사망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은 리치 킹 레이드가 절반 이상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페이즈가 지날수록 리치 킹 자체는 더 강력해질 게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곱의 하수인과 함께 상대해야 할 때보다 어렵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허공에 떠 있던 리치 킹이 진부한 대사와 함께 이안의 앞에 내려앉았다.

쿵-!

“크흘흘. 과연, 인간 나부랭이들 주제에 제법이로군.”

리치 킹이 떨어져 내린 자리를 중심으로 어둠의 기운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재빨리 그것을 피해 낸 이안과 원정대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리치 킹을 응시했다.

레이드의 다음 페이즈가 어떤 양상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리치 킹을 감싸고 있던 어둠의 기운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이안과 원정대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띠링-!

-리치 킹 ‘샬리언’의 하수인들을 전부 처치하셨습니다!

-명성이 15만만큼 증가합니다!

-공헌도가 140만만큼 증가합니다!

-샬리언을 지키고 있던 어둠의 기운이 모두 사라집니다.

-이제부터 샬리언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던 이안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다.

그것은 메시지의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공개된 샬리언의 레벨 때문이었다.

-리치 킹 샬리언 : Lv. 500

‘뭐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훨씬 강력한 샬리언의 레벨이, 방금 처치한 하수인들의 레벨과 완벽히 똑같았던 것이다.

최소 550정도는 될 것이라 예상했던 샬리언의 레벨이 하수인들과 같은 500레벨로 세팅되어 있었던 것.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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