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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카치오 왕성의 전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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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일란을 플레이하는 유저들 중 이안보다 보스 레이드를 많이 트라이해 본 이들은 아마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한 번 공략에 성공한 레이드는 웬만해서 다시 가지 않는 이안과 달리, 대부분의 유저들이 같은 보스를 여러 번 사냥하기 때문이었다.
보스에게서 드롭되는 아이템들 중 비싼 값에 팔리는 특정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한 노가다 같은 개념이라고 할까.
물론 이안도 꼭 필요한 아이템을 위해서라면 보스 노가다를 마다하지 않을 테지만, 지금까지 그럴 필요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안의 아이템은 항상 남들보다 앞서가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또 이안이 공략해 온 대부분의 보스 몬스터들이 한 번 클리어하면 더 이상 사냥할 수 없는 메인 스토리의 보스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었다.
어쨌든 이안은 보스 트라이 횟수 자체는, 일반적인 유저들보다 훨씬 적었다.
그렇다면 이안의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것은 결코 아니다.
이안은 하나의 보스를 여러 번 트라이하지 않은 것일 뿐, 그 누구보다도 많은 종류의 보스 공략을 성공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카일란 스토리 전개상 단 한 번만 등장하는 강력한 에피소드 보스의 경우, 지금까지 등장했던 보스들 중 대부분이 이안의 손에 클리어 되었기 때문에,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안의 보스 레이드 경험은 누구보다도 풍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이안의 순간적인 상황 판단 능력과 뛰어난 임기응변은, 지금 원정대의 상황에 다른 무엇보다도 필요한 능력이었다.
누구도 트라이해 본 일 없는 에피소드 보스인 리치 킹 샬리언.
그에 최초로 도전하는 지금의 상황에 이안의 통솔 능력은 더욱 빛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원정대의 유저들은 이안의 오더를 믿고 따라 움직였다.
“세일론 님, 우측 방어선 조금 밀어 주시고, 헤르스, 좌측 방어선 홀딩!”
“오케이!”
“알겠습니다!”
“샤크란 님은 지금처럼 적 근거리 딜러 위주로 견제해 주시면 되고요, 혹시 공격형 사제 유저분 계신가요?”
“저, 저요!”
“아, 유리나 님, 후방에 보이는 어둠술사들 저격 좀 해 주세요. 홀리 애로우 날려서 디버프만 묻혀 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홀리 애로우는 평범한 단일 공격력을 가진 빛 속성의 원거리 공격 스킬이다.
하지만 그 사정거리가 엄청나게 길고 ‘언데드’에 한해서 ‘회복 불가’라는 강력한 디버프를 걸 수 있기 때문에, 언데드와의 전투에서 이안이 전략적으로 많이 애용하는 스킬이었다.
어둠 군단의 가장 짜증나는 특징이, 어둠술사들이 가진 강력한 언데드 재생 스킬이었으니까.
그리고 홀리 애로우의 디버프가 적에게 명중되고 나면…….
“피올란 님, 레미르 누나, 회복 불가 걸린 어둠술사들부터 잘라 줘요!”
“알겠어!”
“네, 이안 님!”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을 집중시켜 디버프가 끝나기 전에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이안은 이렇게 전장의 곳곳을 누비며, 원정대를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갔다.
‘상대가 리치 킹이라 당연한 부분이겠지만, 마지막 보스전까지도 대규모 전투 양상이네.’
리치 킹의 손아귀에서 보랏빛의 섬광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여지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나는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들.
하르가수스의 위에서 전장을 쭉 훑던 이안의 시선이 종래에는 던전 정 중앙에 떠올라 있는 샬리언에게로 향했다.
샬리언은 강력한 네임드 언데드들에 둘러싸여 철통같은 엄호를 받고 있었다.
네임드 언데드들의 외형은 다양했다.
머리가 여러 개 달린. 마치 신화 속 히드라 같은 외형을 한 몬스터도 있었으며, 칠흑의 갑주를 쫙 빼입은 채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강인한 기사의 모습을 한 데스 나이트도 존재했다.
‘그나저나 샬리언은 대체 레벨이 몇이나 되는 걸까?’
이안의 시선이 샬리언의 머리 위로 향했다.
-리치 킹 샬리언 : Lv. ???
본래대로라면 그 옆에 레벨도 명시되어 있어야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샬리언의 레벨은 비공개 처리되어 있었다.
다만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샬리언의 레벨이 500보다도 훨씬 높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주변을 지키는 네임드 몬스터들의 레벨이 정확히 500레벨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잔챙이들은 아무리 죽여 봐야 계속 소환될 테니 의미 없고…….’
이안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 네임드 몬스터부터 하나씩 잘라야 뭔가 진전이 있겠군.’
보스전이 시작된 지 5분여 정도가 지나자, 원정대 유저들 모두가 안정된 플레이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샬리언의 공격 패턴 안에서 방어선을 지켜 낼 수 있는, 저마다의 역할을 완벽히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이안과 샤크란이 기다려 왔던 순간이기도 했다.
“꼬마, 슬슬 움직여 볼까?”
“좋죠!”
현재 리치 킹의 왕성 안에 들어와 있는 원정대 유저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350~400명 정도.
이안은 그 안에서도 20여 명 정도의 최정예유저들만을 데리고, 네임드 몬스터를 하나씩 줄여 나갈 생각이었다.
물론 그동안 300명이 넘는 나머지 원정대원들이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네임드를 공략하는 정예 유저들의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줘야 하는 것이다.
타탓-!
허공으로 번개처럼 도약한 샤크란이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디부터 조져 볼까?”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안이, 원정대의 채팅 창에 빠르게 오더 메시지를 올렸다.
-첫 번째 타겟은 아리아네스. 시체 폭발 스킬만 조심하면 어렵지 않은 상대일 겁니다.
네임드 몬스터가 ‘네임드’인 이유는, 카일란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한 몬스터이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 즉 눈앞에 있는 이 네임드 몬스터들은, 리치 킹의 왕성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몬스터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안은 어떻게 이 네임드 몬스터의 고유 능력들과 특징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이안은 바로 1~2시간 전까지 눈앞에 있는 일곱의 네임드 보스들을 전부 상대해 봤던 것이다.
팔카치오 내성에 진입한 뒤 리치 킹이 있는 왕성에 도달하기까지 이안과 원정대의 앞길을 막았던 네임드 몬스터들이, 바로 이곳에 다 모여 있었던 것.
이안은 그때 이들의 공격 패턴과 고유 능력에 대해 전부 파악해 놨었고, 때문에 거침없이 오더를 내릴 수 있었다.
‘어쩐지 끝까지 싸우지 않고 중간에 도망가더라니.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서였군.’
리치킹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일곱의 강력한 하수인들.
애초에 이들은, 두 번 상대해야만 하는 구조로 스토리가 짜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기획자의 배려’라고 할 수도 있었다.
각자 위협적인 공격 패턴을 갖고 있는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들을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한 번에 상대하게 된다면,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스르릉-!
림롱에게서 빼앗은 ‘블러디 리벤지’를 뽑아 든 이안이, 네임드 몬스터 아리아네스의 후방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인 ‘메두사’를 닮은 외형을 한 몬스터인 아리아네스.
이안이 이 녀석을 첫 번째 타깃으로 지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네임드 몬스터들 중 가장 생명력과 맷집이 약함과 동시에, 각종 까다로운 CC기를 고유 능력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
특히 ‘메두사’의 능력을 닮은 광역 석화 고유 능력은 한순간에 원정대 전체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스킬이었다.
빠르게 아리아네스의 뒤로 움직인 이안은, 두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지금 손에 쥐어져 있는 블러디 리벤지의 고유 능력, 블러드 스플릿Blood Split을 발동시키기 위한 각을 재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왼쪽으로……!’
블러드 스플릿은, 순식간에 직선상의 모든 적을 베고 지나가는 강력한 돌진 기술이다.
여러 대상을 타격할 수 있는 범위 스킬임에도 불구하고 계수가 2천에 육박하는, 최상위 등급의 고유 능력인 것이다.
게다가 이 블러드 스플릿에는 몇 가지의 조건부 발동 옵션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블러드 스플릿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블러드 스플릿으로 하나 이상의 대상을 처치할 시, 즉시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된다.
*블러드 스플릿으로 대상의 후방을 정확히 공격할 시, 공격력이 150퍼센트만큼 강화되며 치명타 확률이 35퍼센트만큼 증가한다.
*세 번 이상 연속해서 치명적인 공격을 성공시킬 시, 블러드 스플릿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된다.
이안은 종종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때, 다른 랭커들의 플레이 영상을 시청하곤 했다.
때문에 그는, 림롱의 전투 영상도 제법 여러 번 시청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림롱의 전투 영상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이 이 블러드 스플릿을 이용해 순식간에 적을 암살하는 부분이었다.
‘후후, 블러드 스플릿이 이런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고유능력이었군.’
한눈에 보아도 높은 수준의 컨트롤 능력을 요하는 스킬인 블러드 스플릿.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안은 이 고유 능력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난이도가 높은 컨트롤을 성공시켰을 때 온몸에 차오르는 쾌감은 그 어떤 자극보다도 강렬했으니 말이다.
마치 암살자가 되기라도 한 듯 은밀히 몸을 움직이던 이안이, 순간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지금까지 전투 중에 몇 번 블러드 스플릿을 발동시켜 보며 손에 익혔으니, 이제는 머릿속에 떠올린 그림을 그려 낼 때였다.
파팟-!
이어서 이안의 신형이, 한 줄기 붉은 빛이 되어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촤아악-!
허공을 가르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날카롭기 그지없는 강렬한 파공음.
붉은 섬광이 된 이안의 신형은 정확히 아리아네스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고,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아리아네스는 고통에 찬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키아아아!”
그런데 그 파공음은 놀랍게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촤악!
촤아악!
촤촤촥!
마치 허공을 붉은 핏물로 수놓기라도 하겠다는 듯 시뻘건 피의 섬광이 연속해서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것이다.
정확히 일곱 번.
붉은 기운이 ‘아리아네스’의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간 뒤…….
스하아아아!
네임드 몬스터 아리아네스는, 그대로 까만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이, 이게 대체……!”
열심히 아리아네스에게 합공을 펼치던 원정대의 랭커들은 말 그대로 벙찐 표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 바로 앞에서 흑마법을 캐스팅하던 훈이의 입은 쩍 벌어진 채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
한쪽 입가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깨닫지 못한 훈이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떠올려 낼 수 있었던 것은…….
“괴, 괴물!”
이안이라는 인물은 역시 정상이 아니라는 결론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