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85화 (50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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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킹과의 조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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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의 공성전에 임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준비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함락시키고자 하는 성의 구조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물론 적진敵陣의 구조를 구체적으로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카일란에는 ‘공중 병력’이 존재했고, 이안에게는 ‘카카’와 같은 특수한 하수인도 존재했다.

빛 속성의 공격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경우에도 피해를 입지 않는 존재인 카카.

이안은 카카를 통해 팔카치오 성의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던전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온 이안이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디 보자……. 삼지창이 서북 쪽으로 보이는 걸 보니, 여긴 동문 쪽에 가깝겠군. 이거 의외인데?’

여기서 ‘삼지창’이란 팔카치오 내성 안에 솟아 있는 거대한 첨탑을 의미했다.

마치 세 개의 첨탑이 특이한 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에 이안이 삼지창이라고 칭한 것이다.

이안은 바로 옆에 두둥실 떠올라 있는 카카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카카, 지금 우리 위치, 혹시 기억 나?”

그 물음에 카카는 한껏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내가 누구냐, 주인아.”

“시끄럽고.”

“난 고대의 전설, 카르가 팬텀의 일족…….”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냐? 엘이한테 한 대 맞아야 정신 차릴래?”

이안의 다그침과 동시에 옆에서 볼을 부풀린 엘카릭스가 작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그러자 카카가 기겁한 표정으로 멀찍이 움직여 날아갔다.

“히익……! 난 엘이한테 맞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주인아.”

“그러니까 얼른 질문에 대답이나 하라고.”

이안의 위협(?)에 입술을 삐죽인 카카가 슬쩍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주변을 둘러본 뒤 이안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여기 어딘지 안다, 주인아.”

“어딘데?”

“저쪽에 보이는 벽 따라서 쭉 움직이면, 곧바로 서문이랑 연결될 거다.”

그런데 카카의 설명을 들은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카카의 대답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엥? 여긴 분명 동문이랑 훨씬 더 가까운 위치일 텐데…….”

이안이 판단하기로는 동문과 가까운 위치인 것 같았는데 카카가 서문을 언급하니 조금 당황한 것이었다.

이어진 카카의 말을 들은 이안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주인 말이 맞다. 여긴 동문이랑 가까운 위치다.”

“그런데?”

“하지만 동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가 없는 게 문제다. 여기서 동쪽으로 움직이면 동문에 도달하기 전에 거대한 벽에 가로막힐 거다.”

“아하…….”

“아마 여기서 동문으로 가고 싶다고 해도, 역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서 움직여야 할 거다.”

“벽을 넘는 방법은?”

“불가능하다. 만약 시도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내성의 성벽을 넘는 걸 추천해 주고 싶다.”

“그렇군. 이해했다, 카카.”

카카의 설명을 들은 순간 이안은 완벽히 팔카치오 성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아무리 비밀 통로라 해도, 곧바로 동문이랑 이어지게 만들어 놨을 리가 없지.’

지금 이안 일행이 있는 위치는, 내성과 외성의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하를 통해 외성 안쪽으로 무혈입성에 성공한 것이며, 곧바로 내성을 공격할 수 있는 포지션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성과 내성의 사이는 허허벌판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에피소드의 마지막 콘텐츠인 팔카치오 성이 그렇게 단순하게 구축되어있을 리 없다.

외성과 내성의 사이에도 각종 방어 타워들과 내벽들이 촘촘히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안이 ‘동쪽’에 집착하는 이유는 바로 내성으로 통하는 출입구 때문이었다.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의 문을 가진 외성과는 달리, 팔카치오 성의 내성은 동쪽에만 문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외성 안쪽으로 침입한 사실을 놈들은 아직 모를 테니 내성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을 가능성도 있지.’

해서 이안은 내심 비밀 통로가 내성 동문의 근처로 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팔카치오 성이 그렇게까지 녹록한 구조는 아니었다.

지하 뇌옥에 진입하기 전에 세리아에게 토르를 맡겨 외성의 동쪽을 뚫으라고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내려놓았던 오더였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가장 효율적으로 내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까?’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안과 원정대는 활용할 수 있는 카드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좀 진부한 전략이기는 하지만……. 성동격서聲東擊西. 원래의 전략을 유지해야겠어. 이만한 전략을 찾기도 힘드니까 말이야.’

이안은 고개를 살짝 돌려 던전의 출구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안이 잠깐 생각에 잠긴 사이 대부분의 원정대원들이 빠져나와 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어서 이안의 오더가 떨어졌다.

“모두 카카를 따라오세요. 우린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이안은 말을 마치고 앞장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동시에, 어디론가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 * *

‘후후, 귀여운 녀석들. 아직 외성 근처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군.’

리치 킹과의 조우를 마친 림롱은 계획했던 대로 팔카치오 외성 쪽으로 나와 있었다.

리치 킹에게 강력한 어둠의 군대를 얻어, 수성병력을 지원하러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곳은 바로 외성의 서문西門 쪽이었다.

“좋아, 슬슬 움직여 볼까?”

물론 림롱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동전을 던져 순서를 정하듯, 아무런 기준 없이 방향을 정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가 서문으로 향한 데에는, 나름의 철저한 계산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분명 원정대는 대부분의 병력을 동문 쪽으로 투입했을 테지.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가 동문이니 말이야.’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팔카치오 내성으로 통하는 문은 동쪽에만 존재했다.

즉, 외성의 동문을 뚫고 들어와야 내성을 공략하기 가장 용이하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림롱은 원정대 병력의 대부분이 동문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라 예측했고, 그래서 반대로 서쪽으로 온 것이었다.

‘이안은 분명 성동격서를 선택했겠지. 대부분이 AI로 구성된 수성병력을 상대로, 그것만큼 효과가 좋은 전략도 없을 테니 말이야. 아니, 성서격동이라고 해야 하려나?’

림롱은 팔카치오 성의 서문 쪽을 공략 중인 원정대의 병력이 오합지졸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가 예상하는 원정대의 전략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서문 쪽에 쭉정이들을 배치하여 시선을 끌고, 동쪽으로 정예부대를 보내서 동문을 격파하는 전략이었다.

때문에 그는 오합지졸들로 구성되어 있을 서문이야말로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라 생각했다.

그는 어둠의 군단들을 데리고 얌전히 수성만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암살자 클래스인 림롱에게 수성전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따분한 무대였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원정대를 상대로 벌이려는 전투방식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암살자 클래스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는 전장이라 할 수 있는 게릴라전.

그리고 성 밖으로 나가 게릴라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쭉정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이었다.

“그림 좋고!”

외성 밖으로 보이는 인간계의 병력들을 확인한 림롱은, 자신의 짐작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병력의 수는 제법 많아 보였지만, 이제까지 외성에 다가오지도 못한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병력의 숫자 자체는 의미가 없었다.

어쭙잖은 랭커들 십수 명보다, 이안과 같은 알짜배기가 훨씬 더 강력한 전력이니까.

‘후후, 인간계 놈들…….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지옥을 경험시켜 주도록 하지.’

성벽 위에서 인간계 유저들을 내려다 본 림롱은 한쪽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의 새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 * *

림롱은 영리하다.

그리고 이안은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분명 원정대의 전략을 파악했을 거야. 성동격서는 뻔하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효율적인 전략이니까.’

이안은 림롱이 자신의 전략을 예측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전략대로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고작 림롱 하나 때문에 이 효율적인 전략을 버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림롱이 모르는 카드도 몇 개 가지고 있으니 말이지.’

림롱이 예측한 대로, 원정대의 전략은 ‘성서격동’이었다.

서쪽을 흔들고 그 사이 동쪽을 공략한다는, 어찌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는 전략.

이 단순한 전략이 그대로 쓰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 인간계의 유저들은 팔카치오 성의 수성병력 중 ‘유저’가 없다고 생각했었고, 두 번째로는 ‘지하 비밀 통로’라는 히든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서쪽을 흔들고 동쪽을 공격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비밀 통로를 통해 완벽히 허를 찌른다는 계획.

하지만 이 전략은 순리대로라면 실패한 전략이었다.

전략이 세워진 두 가지 이유가 전부 틀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리치 킹은 마계의 유저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며, 지하의 비밀 통로는 사실 함정이었으니, 두 가지의 전제가 전부 틀려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실패할 뻔했던 전략을 이안이 살려 내었다.

마계의 유저들이 합류했지만 모조리 게임아웃시켜 버렸으며, 폭발할 뻔했던 비밀 통로는 살려 내었다.

‘림롱’이라는 변수를 하나 남기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이안 일행이 비밀 통로를 통과했음을 꿈에서도 모를 림롱은 NPC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안은 외성 바깥의 병력들에게 처음에 생각했던 전략과 비슷하게 오더를 내려놓았다.

그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야말로 림롱과 샬리언의 허를 찌르는 전략이 될 테니 말이다.

심지어 이안은 림롱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까지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보나마나 림롱은 서쪽을 노리겠지. 녀석의 눈엔 거기가 제일 만만해 보일 테니까.’

타이탄과 로터스의 정예병력을 통솔하며 빠르게 서쪽으로 이동하는 이안.

그의 입가에는 림롱과 마찬가지로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빚을 갚아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줄 줄이야.’

과거 50레벨의 초보 소환술사 시절.

루키 리그에서의 패배를 이안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파이로 영지 공성전 때 보여 줬던 치명적인 배신까지.

사실 이안의 입장에서 림롱만큼 나쁜 놈도 없었던 것이다.

“이건 뒤끝이 아니야, 그냥 소소한 복수 같은 거지.”

이안의 바로 뒤를 바짝 따라오던 훈이가 그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흠칫 놀란 표정이 되었다.

“혀, 형, 왜 그래? 대체 누구한테 복수한다는 거야?”

영문도 모르고 제 발 저리는 훈이를 보며, 이안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런 놈 하나 있어. 내가 카일란에서 유일하게 싫어하는 놈.”

그리고 그 미소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순간적으로 로그아웃하고 싶다는 충동이 든 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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