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84화 (50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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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 킹과의 조우 (1)

원래의 시나리오대로라면 ‘폭파’되도록 기획되어 있었던 팔카치오 성 지하의 비밀 통로.

이 비밀 통로가 폭파될 예정이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비밀 통로의 존재 자체가 사실 치트Cheat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팔카치오 성은 에피소드의 최종 콘텐츠답게 수많은 수성병력들과 방어 시스템들이 구축되어 있었는데, 이 비밀 통로를 지나는 순간 그런 것들의 절반 이상이 무력해져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비밀 통로의 폭발 자체가 무효화된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생각하면 될까?

“게임 터진 거지 뭐. 젠장…….”

나지찬은 끓여 두었던 차 한 잔을 홀짝이며, 씁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안을 진심으로 응원하기는 했었지만, 이런 기발한 방법을 찾아낼 줄은 몰랐었다.

“그것도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방향으로 말이지.”

나지찬은 포털을 겹치는 방식으로 마계의 유저들을 따돌리는 이안을 보며, 그가 이 함정을 탈출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전개는 아니었다.

비밀 통로가 무너지는 것까지 막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는 말이었다.

이것은 일견 큰 차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실상 엄청난 차이였다.

만약 이안이 그저 던전을 탈출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팔카치오 성을 외성부터 다시 공략해야 하겠지만, 비밀 통로의 붕괴까지 막아 냄으로 인해서 바로 내성에 진입하게 생겨 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리치 킹 하나 뿐인가?”

물론 리치 킹에 도달하기 전에도, 400레벨 후반대의 강력한 네임드 중간 보스들이 줄줄이 포진되어 있다.

하지만 이안과 샤크란의 원정대가 그들에게 패배해 돌아서는 그림은 애초에 그려지지를 않았다.

내성에 입성한 원정대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중심부까지 돌파할 것이고, 아마 오늘이 지나기 전에 리치킹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숨 자야겠군. 한 5시간쯤 뒤에 다시 켜면 리치 킹과 조우하고 있겠지.”

삑.

리모컨을 들어 TV의 전원을 꺼 버린 나지찬은 하품을 쩍쩍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안의 위기를 보기 위해 미뤄 뒀던 잠을, 이제는 찾으러 가도 될 것 같았다.

* * *

폭발하는 어둠의 결정체들을 성공적으로 제어한 이안과 원정대 유저들은, 비밀 통로의 종착지까지 금방 돌파해 내었다.

그것은 원정대 유저들의 기세가 오른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주요했다.

던전의 뒤쪽에 존재하던 몬스터들은 대부분 고레벨인 마계의 패잔병들이었는데, 카오스 게이트가 파괴되자 전투 능력의 30퍼센트만큼을 디버프 당한 것이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캬, 이거 완전 보너스 스테이진데?”

“디버프 한 개 걸려있다고 이렇게 약해져도 되는 건가?”

“정확한 계수는 몰라도 최소 40퍼센트 이상은 너프먹은 거 같은데 이놈들?”

몬스터가 디버프를 먹었다고 해서 드롭하는 보상까지 디버프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신이 나서 몬스터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평균 400레벨대인 원정대의 유저들이 300레벨 초반 정도의 능력치로 너프된 몬스터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것은 그야말로 대학살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날뛰는 원정대의 유저들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두 사람은 이안과 샤크란이었다.

띠링-!

-‘부상당한 마계의 검투사’ 몬스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79,809,312만큼 획득합니다!

-‘절름발이 키릅코스’ 몬스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82,887,981만큼 획득합니다!

쉴 새 없이 정령왕의 심판을 휘두르며, 앞을 막는 마계의 몬스터들을 베어 넘기는 이안.

하지만 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상황에서도, 이안은 일말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시간만 좀 더 많았어도 싹 다 쓸어 담고 가는 건데…….’

‘팔카치오 지하 비밀 통로’는 이안과 원정대가 가장 처음 입장한 던전이었다.

그 말인 즉, 던전 최초 발견 버프가 걸려 있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이런 보너스 스테이지까지 겹쳐 버리니, 각 잡고 노가다 뛰기에 최적의 사냥터가 된 것이다.

경험치뿐만 아니라 보상 면에서도 아주 훌륭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안에게는 노가다할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사냥한다고 보낸 1분 1초의 시간이, 차후에 어떤 아쉬움으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발한 전략으로 함정들을 무사히 극복하여 많은 시간이 단축되었다고는 하지만, 리치 킹을 잡고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다.

이안은 쉴 새 없이 오더를 내리며, 빠르게 던전을 뚫는 데에만 주력했다.

“세일론 님, 뮈란 님, 계속 샤크란 님 후방 엄호해 주시고, 원딜러 분들은 센터로 지원사격 집중해 주세요!”

그리고 이런 이안의 오더에 의문을 갖는 에밀리 같은 유저들도 당연히 있었다.

“이안 님, 정비도 할 겸 천천히 하나하나 잡으면서 뚫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몬스터 디버프 먹어서 엄청 약하잖아요.”

그러나 이안은 잔머리를 굴려 현명하게 대처해 나갔다.

“아뇨. 아직 방심할 수 없습니다. 이 던전, 어떤 식으로 함정이 또 나타날지 몰라요.”

“하,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경험치들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불길한 던전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좋아요. 일리 있는 말씀이세요. 그렇게 하도록 하죠.”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인 에밀리마저 깔끔하게 납득시킨 이안은, 빠르게 병력을 운용하여 던전 후반부를 클리어해 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1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띠링-!

-‘팔카치오 지하 비밀 통로’ 던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팔카치오성의 지하에 존재하던 ‘마계 패잔병들의 잔재’를 소멸시키셨습니다!

-경험치를 97,890,989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을 20만만큼 획득합니다!

원정대 유저들의 눈앞에 드디어 던전 클리어를 알리는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캬, 해냈어!”

“던전 한번 오지게 길었네.”

“크으, 이안 님 아니었으면 지금쯤 게임 끄고 손가락 빨면서 TV나 보고 있었겠지?”

여기저기서 원정대의 유저들의 감격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고했다, 꼬마. 오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자존심 강한 샤크란 마저도, 이안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훗, 별말씀을.”

하지만 이안은 이 와중에도 샤크란을 살짝 자극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리치 킹을 처치할 때까지, 샤크란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수준의 능력을 뽑아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이만큼 보여 드렸으니, 이젠 아재 차롄 거 아시죠?”

그리고 샤크란은 이안의 리드를 잘 따라와 주었다.

“후후, 걱정 말거라, 꼬마. 이제부터 타이탄 길드의 저력을 보여 줄 테니 말이다.”

샤크란의 호언을 들은 이안의 입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아재,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내가 히든 듀얼인지 뭔지 그거 얻고 나면, 콩고물이라도 좀 줄 테니까 말이오.’

원정대 유저들은 잠시 동안 보상을 확인하고 상태를 점검하며, 시끌벅적 떠들었다.

그러나 그 북적거림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던전 클리어 메시지가 떠오른 지 1분도 채 지나기 전, 던전의 끝을 막고 있던 거대한 철문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끼이익- 그극- 그그그극-!

녹슨 쇠붙이들이 맞물리며 나오는, 듣기 싫을 정도로 거북한 마찰음.

하지만 이안만큼은 그 소리가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그 기괴한 소리와 함께 철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쿠구궁- 쿵-!

그리고 열린 철문의 틈 사이로는,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안의 눈앞에 펼쳐진, 하얀 눈이 쌓인 성곽의 풍경.

‘됐어……!’

드디어 팔카치오 내성으로의 진입에 성공한 것이었다.

* * *

높게 솟아오른 기괴한 형상의 성채.

그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음침한 공간.

천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히 높은 층고를 가진 공간의 중심에, 일반적인 크기의 세 배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왕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왕좌의 주인은 망자들의 제왕, 리치 킹 샬리언이었다.

“수고했다, 마의 아들이여.”

“감사합니다, 샬리언 님.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커다란 묵빛의 왕좌에 앉은 리치킹 샬리언은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한 명의 마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는 어둠의 포털로 비밀 통로를 벗어난 림롱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샬리언과 림롱이 원정대 유저들이 전멸한 줄 안다는 것이었다.

“일은 확실히 처리했겠지?”

“그렇습니다, 망자들의 왕이시여. 어둠의 결정들이 부풀어 오르는 것까지 확실히 확인했나이다.”

“클클, 그렇다면 틀림없겠군. 어둠의 결정은 고작 인간들 따위가 막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말이야.”

흡족한 표정이 된 샬리언은 특유의 칼칼한 웃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그들이 원정대 유저들의 전멸을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림롱이 샬리언으로부터 받았던 퀘스트도 ‘성공’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림롱이 샬리언으로부터 받았던 퀘스트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어둠의 결정을 폭파시키는 것까지였고, 어쨌든 결정이 폭발한 것은 맞았으니 퀘스트는 성공했던 것이다.

리치 킹 샬리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폭발이 성공했다면 하찮은 인간 놈들이 제법 막심한 피해를 입었겠군.”

림롱은 폭발 속에 파묻혔을 이안과 샤크란을 떠올리며, 고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인간들 중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제 인간들은 함부로 이곳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군. 클클, 역시 인간이란 우매한 존재들이군.”

샬리언과 림롱은 죽이 척척 잘 맞았다.

림롱은 인간계 유저들에게 성공적으로 엿을 먹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고, 그것은 샬리언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림롱은 샬리언과의 친밀도가 높아질수록 떨어질 콩고물이 많아질 것이었으니, 그와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이어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마계에서 지원 온 전사들 중 그대 하나만이 남은 것인가?”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하지만 걱정 마옵소서. 다시 마계로 돌아갈 때까지, 저 하나만이라도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그래, 그래. 믿음직스럽군.”

리치킹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조금씩 올라가는 친밀도를 확인하며, 림롱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후후, 지금쯤 인간계 놈들 게임 끄고 나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러 갔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음 짓는 림롱이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리치 킹과의 친밀도를 올리기 위한 지금의 대화들이, 결국 인간계 유저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림롱과 리치 킹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리치 킹은 더욱 안심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곧 방심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로터스와 타이탄이 전멸했으니 나머지는 쭉정이들뿐이겠군. 여기까지 놈들이 도달하려면 최소 이틀은 걸리겠지? 그래도 이대로 로그아웃하는 건 조금 아쉬우니……. 외성에 마실이나 나가 볼까?’

그러나 이안과 원정대가 사망했다고 굳게 믿는 림롱으로서는, 그러한 사실을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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