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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기지奇智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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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이 생각한 ‘기막힌 한 수’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차원의 마탑주 그리퍼로부터 받았던 차원의 구슬.
자신이 한 번 가본 곳이면 어디든 포털을 열 수 있게 해 주는 아이템인, 차원의 구슬을 활용하는 것이다.
마계의 마족들과 마물들이 넘어올 카오스 게이트의 워프 지점에 차원의 문을 설치하며, 들어온 즉시 다른 공간으로 보내 버리는 것, 그것이 이안이 생각해 낸 기발한 해결책이었다.
‘크, 내가 생각해도 감탄이 나오는군.’
이안은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아직 고민해야 할 부분이 하나 남아 있었다.
넘어올 마물들과 마족들을 어디로 보내느냐는 것이었다.
‘마계에서 누가 넘어올까? NPC 마족들과 마물들이 넘어오는 걸까, 아니면 마계의 유저들이 넘어오는 걸까? 어디로 보내는 게 최상의 선택일까?’
처음 이안이 생각했던 것은 마계에서 온 이들을 다시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그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카오스 게이트가 얼마나 유지될지 몰라서 그건 안 되겠어.’
카오스 게이트가 차원 게이트보다 오랫동안 유지된다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그들이 다시 넘어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전략은 그저 미봉책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확실한 엿을 먹일 수 있을까?
이안이 다음으로 떠올린 곳은 바로 용의 제단 지하 깊숙한 곳, 이안이 들어갈 뻔했었던 미지의 포털이었다.
‘그래, 그곳이라면 놈들도 쉽게 돌아올 수 없을 거야. 내 짐작이 맞다면 그곳은 중간계…….’
중간계.
그중에서도 용천龍天.
용신 세카이토의 권역으로 추정되는 용천에 마족들을 보내 버린다면, 그들은 쉽게 마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이 생각도 떠올리자마자 접어야 했다.
문제가 하나 있기 때문이었다.
‘아냐. 거기도 안 돼. 내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을 놈들이 먼저 밟게 도와줄 순 없지.’
마계의 유저들에게 중간계의 최초 발견 보상이 돌아가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그래, 거기가 좋겠어. 한을 한번 믿어 봐야지.’
그렇게 카오스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또 다른 차원의 문이 동시에 생성되었다.
* * *
까앙- 까앙- 까앙-!
일정한 간격으로 경쾌한 쇳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로터스 왕국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인 파이로 영지의 내성에서는, 여느 때처럼 공사가 한창이었다.
가장 번영한 도시라는 말은 곧,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라는 이야기다.
그 어느 영지보다도 가장 많은 세금이 걷히는 파이로 영지는, 지금도 쉴 틈 없이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파이로 영지는 다른 왕국들과 국경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요새를 비롯한 방어 시설이 가장 잘 갖춰져 있는 곳이었다.
아마 성곽이나 방어 타워의 티어는 NPC의 왕국들과 비교하더라도 가장 뛰어난 수준일 것이었다.
“잠깐! 그쪽이 아니고 이쪽이라네, 한. 조금만 더 왼쪽으로 틀어 봐!”
“오, 그렇군! 그레이엄, 그대는 정말 대단한 건축가일세. 역시 폐하께서 중용하시는 이유가 있다는 말이지.”
“크하핫, 당연하지. 나는 콜로나르 대륙 최고의 건축가니까 말이야!”
“오오오!”
백발이 성성한 ‘그레이엄’라는 이름의 유저.
그리고 그와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드워프 한.
두 사람의 인연은, 벌써 1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을 이어 준 중매인은, 당연히 이안이었다.
‘크으, 현실에는 왜 이런 친구가 없을까? 내 건축철학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를 가상현실 게임 안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한국대학교 건축과의 교수이자, 이진욱 교수의 절친한 친구인 박시형.
그의 카일란 아이디가 바로 ‘그레이엄’이었다.
‘휴우, 마음 같아서는 교수고 뭐고 다 접고 하루 종일 카일란 안에서만 살고 싶은데 말이지.’
그레이엄, 아니, ‘박시형’은 사실 게임을 별로 좋아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게임을 좋아할 나이가 아니기도 하거니와 세상에서 ‘건축’이 가장 재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게임에만 빠져 있는 아들들 때문에 오히려 게임이라면 진절머리를 치던 인물이었던 것.
하지만 이진욱의 꼬드김으로 카일란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 생각이 완벽히 달라졌다.
요즘은 오히려, 시형의 아들들이 그의 게임을 자제시키는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카일란’에서는 그가 좋아하는 건축을 무한정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초에 게임이라면 고개를 젓던 그가 이진욱의 꾐에 넘어간 것도 그 때문이었고 말이다.
처음에는 게임이라기에 현실 고증이 많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도 호기심에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보았던 것인데, 그대로 카일란의 세계에 빨려 들어오고 말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말이다.
“대체 이 게임의 물리엔진은 어떻게 만든 거지? 역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단체로 투입되어 만들기라도 한 건가?”
“이건…… 정말 미쳤어! 여기서라면 내가 건축해 보고 싶었던 모든 건물들을 지어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때부터 미친 듯이 게임을 플레이하여 ‘건축가’라는 직업으로 전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건축가의 길은 험난했다.
건축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것은 카일란이라고 해서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건축에 필요한 자본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사냥했고, 밤새 노가다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인 이진욱을 통해 ‘박진성’이라는 녀석을 소개받게 되었다.
“내가 아끼는 제자일세, 시형. 자네에게 무한한 일거리를 만들어 줄 친구이기도 하지.”
이진욱의 말은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이안’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진욱의 제자 녀석은 정말 끊임없이 그에게 일을 던져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형에게 있어서 축복이었다.
카일란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길드인 로터스.
작은 영지부터 시작해 어엿한 왕국으로 성장하기까지 시형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도시가 없었던 것이다.
도시계획부터 시작해서 모든 건축물들을 디자인하고 시공할 수 있는 경험은, 그야말로 건축가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크으, 이 도시가 오롯이 내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니!”
그리고 뛰어난 건축가였던 시형의 손에서 탄생한 도시들은, 카일란의 그 어떤 도시들보다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다.
그것은 그의 자랑이기도 했지만, 분명 로터스의 빠른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었다.
“교수님, 정말 대단해요!”
“후후, 그렇지?”
“이제 밀리네르 영지로 가주세요.”
“음?”
“영지 전반적인 도시계획부터, 전부 교수님께 맡길게요. 예산은 370억 골드예요.”
“……!”
그러던 어느 날, 박시형 교수는 ‘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운명의 지기를 만나게 되었다.
이안이 마계에서 데려왔다는, 짜리몽땅하기 그지없는 난쟁이 NPC.
그는 시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고, 그것은 시형으로서도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인간, 나와 함께 요새를 만들어 보지 않겠나?”
“요새라면 이미 여러 번 설계해 보았네만?”
“아니, 아니. 그런 평범한 요새를 말하는 것이 아닐세.”
“……?”
“모든 방어 타워의 사정거리와 공성병력의 동선. 마법사들과 공성병기의 사정거리까지 계산한, 완벽한 요새를 만들어보자는 말이야.”
“오호.”
“적어도 수성병력의 열 배 이상은 있어야만 공격할 엄두를 내 볼 수 있는, 그런 완벽한 요새 말이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레이엄’이라는 아이디가 파이로 영지에 상주하게 된 것은.
애초에 파이로 영지에 지어 놓았던 방어성 또한 그레이엄의 작품이었으나, 한과 머리를 맞대기 시작하면서 전부 뜯어고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제국전쟁 이후 단 한 번도 실전에 써먹어 본 적 없던 요새였으나, 한과 그레이엄은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이 요새는 방어 시설의 개념이라기보다 하나의 ‘작품’ 같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깡- 깡- 깡-!
한의 망치가 움직일 때마다 또 하나의 방어 타워가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그레이엄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만약 여기에 누군가가 떨어진다면 정말 지옥을 맛보게 될 거야.”
“그렇겠지. 설계한 우리조차도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헷갈리는 이 미로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빠져나가겠어?”
“뭐, 공성병기로 밀어 버리는 방법 말고는 없지 않겠나?”
“공성병기가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다면 말이지.”
“크큭. 그렇게 따지자면, 적들이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 또한 사실은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긴, 그것도 그렇구먼.”
한 마디 한 마디, 궁합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때, 대화를 나누던 그레이엄의 두 눈이 천천히 확대되기 시작했다.
“저, 저기 보시게, 한!”
“왜 그러는가, 그레이엄.”
“저기에 포털이 열리고 있어!”
그레이엄의 말에, 한의 고개가 홱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보랏빛의 포털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둘은 무슨 영문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저 포털에서 강력한 적들이 나타난다면, 자신들이 공들여 설계한 요새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내심, 마계의 웨이브라도 시작되는 것이길 바라고 있었다.
“침입이다! 모든 방어 타워는 포화를 준비하라!”
“저 좌표에 슬로우 트랩을 발동시켜!”
“단 한 놈도 이 요새를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의 오더와 함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파이로 영지의 수성병력들.
하지만 잠시 후, 잔뜩 기대하고 있던 두 사람은 허탈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는 보랏빛의 게이트에서 강력한 괴물이라도 소환될 줄 알았건만, 왜소하기 그지없는 사람의 형체들이 하나씩 나타났던 것이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포털에서 누가 나오는지조차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이미 포털이 생성되기 시작한 순간, 수십 대의 타워가 그 좌표를 향해 포문을 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콰쾅- 쾅-!
이어서 그레이엄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어 타워 ‘C-76’이, 마계의 유저 ‘이라한’을 처치하였습니다.
-방어 타워 ‘C-63’이, 마계의 유저 ‘사무엘 진’을 처치하였습니다.
-방어 타워 ‘C-92’가, 마계의 유저 ‘카르에르’를 처치하였습니다.
그리고 뭔가 급박한 상황이 펼쳐질 줄 알았던 그레이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우, 마계에서 뭔가 버그가 있었던 모양이군. 마계의 초보 유저들을 여기로 보내다니 말이야.’
방어 시설에서 송출되는 시스템 메시지들은 NPC인 한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그레이엄은 속으로만 탄식을 할 뿐이었다.
‘이라한? 사무엘 진?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인데……. 아무래도 랭커의 아이디를 비슷하게 만든 친구들인 것 같군.’
그레이엄은 건축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수십 대가 넘는 최상급 방어타워들의 공격력이 한 지점에 집중되었을 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실제로 요새를 설계할 때도 대미지 계산과 같은 부분은 한이 전담했으니 말이다.
또한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으니, 이라한과 같은 유명한 유저 ID를 보아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쯧쯧, 저 친구들은 왜 자꾸 넘어오는 거야? 안쓰럽게…….’
그저 카일란의 버그로 인해 희생된 불쌍한 어린양 들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포화 속을 바라보던 한이 그레이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레이엄, 저들이 누군지 혹시 알아보시겠는가?”
“글쎄, 나는 잘 모르겠네.”
“흐음……. 포털로 뭐가 넘어오는지 도무지 확인이 안 되는구먼. 폐하께 보고 드려야 하는데 말이지.”
멍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포화를 지켜보는 한을 툭툭 건드리며, 그레이엄은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우리는 다시 일이나 하러 가세.”
“그, 그럴까?”
“더 보고 있어 봐야 시간 낭비 아니겠나.”
포화 속을 힐끗 응시한 한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 그레이엄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는 졸지에 초보 마족 유저들로 오인당한 상위 0.01%의 랭커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어 가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