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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의 기지奇智 (1)
토르의 거대한 망치가 거대한 황금빛의 기운을 뿜어내며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쾅- 콰쾅- 펑-!
뿌연 흙먼지가 퍼져 나옴과 동시에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커다란 굉음.
무너져 내리는 바윗덩이를 보며 세리아가 입을 쩍 벌렸다.
“이게 정말…… 되는구나…….”
쿠쿠쿵- 쿵-!
흙먼지가 가라앉자,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토르의 무식한 망치질이 억지로 작은 협곡을 만들어 낸 것이다.
‘역시 폐하께선 대단하셔!’
두 눈을 반짝이며 토르의 뒷모습을 응시하는 세리아.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은 세리아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뒤로는 수백이 넘는 원정대의 병력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오오, 여길 가로질러 갈 수 있다면, 정말 해볼 만하겠어!”
“그러게. 이거 비밀통로로 잠입해 들어간 정예부대보다 우리가 먼저 성벽을 넘는 거 아닐까?”
“크, 그나저나 이런 작전은 사전에 못 들었는데, 갑자기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뭐, 이안 님 머릿속에서 갑자기 생각이 났나 보지. 사실 우리 병력도 적지 않은데, 타워 시선이나 끌고 있기는 아까웠잖아?”
지하 뇌옥에 진입하기 전.
이안은 세리아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렸었다.
-세리아.
-네, 폐하.
-내가 토르를 네게 맡길 테니까, 너는 외성 동쪽으로 이동해 줘.
-예에……?
-서쪽은 방어 타워도 너무 견고하고 지형 자체가 굽어 있어서 답이 없지만, 동쪽에 있는 바위봉우리는 토르를 데려가면 넘을 수 있을 거야.
-네? 봉우리를 넘는다니요. 제가 잘 이해가 안 되서…….
-저기 저쪽 보면, 비교적 바위벽이 낮은 부분이 있지?
-아, 네, 보여요. 움푹 들어가 보이는 부분!
-내가 원정대에는 따로 명을 내려 놓을테니까, 토르를 데리고 저기로 먼저 이동해.
-그런 다음에는요?
-뭐겠어. 냅다 후드려 패는 거지.
-……!
-저 정도 높이 바위는 토르가 1시간 정도 두들기면 뚫을 수 있을 거야.
-설마 저 바위를 부수라고요?
-그래. 저기만 가로지를 수 있으면, 동쪽 성벽까지 직선거리로 이동할 수 있잖아.
-아!
-부탁해, 세리아. 이 비밀 통로만 믿고 있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클 것 같아서 그래.
-해…… 볼게요, 폐하! 믿어 주세요!
-고마워, 세리아.
지하뇌옥에서 불길함을 느낀 이안은,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이용할 방법을 생각해 보았었다.
‘만약 이 지하뇌옥이 함정이라면, 어둠군단의 병력들이 오히려 외성이 아닌 이쪽으로 집중되어 있겠지.’
만약 이안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 떨어지더라도, 그 상황을 이용해 다른 루트를 뚫을 생각을 한 것이다.
‘지하 뇌옥에 적 병력이 모인 틈을 타서 동쪽을 뚫어 보는 거야. 바위벽을 뚫고 동쪽 성벽까지 한 번에 접근할 수 있다면, 공략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어.’
만약 지하 뇌옥의 비밀통로가 함정이 아니라면, 이 전략은 통하기 쉽지 않을 것이었다.
적 병력이 정상적으로 포진되어 있다면, 바깥에 있는 원정대의 병력만으로 성벽을 넘는 것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이 되면 이미 이안의 정예부대가 내성까지 침투해 있을 터였고, 동쪽 성벽을 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내성에 침투한 이안의 부대가 팔카치오 성의 정문을 그대로 열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세리아와 토르를 따로 보낸 것은, 일종의 보험이라 할 수 있었다.
플랜A가 실패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도록, 두 번째 플랜을 짜 놓은 것이다.
쿵- 쿵- 쾅-!
토르는 쉴 새 없이 망치질을 했고, 잠시 후 바위봉우리 사이로 원정대의 병력이 충분히 지날 만한 통로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동쪽의 원정대를 통솔하던 유신이 깃발을 힘껏 치켜들며 소리쳤다.
“자, 우리 퓰리오스 정예들도 한 건 제대로 보여 주자고! 전부 이안에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으니 말이야.”
“와아아!”
성 내부에 있는 어둠의 군단은 물론, 전투를 열심히 중계중인 하인스를 비롯해 수많은 시청자들이 모르는 사이 팔카치오 필드의 동쪽에서 하나의 변수가 생겨나고 있었다.
* * *
‘저걸 대체 어떻게 부숴야 하지?’
붉게 타오르며 점점 제 형상을 찾아가고 있는, 거대한 카오스 게이트.
확인 가능한 카오스 게이트의 정보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다.
-카오스 게이트
-내구도 : 162,800,000/162,800,000
-작동까지 남은 시간 : 00:15:23
‘이거 깨라고 만든 퀘스트는 맞는 거야?’
1억6천이라는 미친 내구도를 가진 카오스 게이트.
방어력이 얼마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 부술 수 없는 녀석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아무런 방해 없이 게이트만 죽어라 공격하면 20분 안에 터뜨릴 수 있겠지만, 방해가 없을 리 없었다.
이미 전장에는 수많은 어둠군단의 병력들이 몰려 들어온 것이다.
카오스 게이트가 작동할 때까지 게이트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안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쉴 새 없이 창대를 휘둘렀다.
쾅- 콰쾅- 쾅-!
-네임드 몬스터 ‘데스 나이트 카라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데스 나이트 카라얀’의 생명력이 1,270,983만큼 감소합니다!
게이트를 부수기는커녕 근처에 접근하는 것조차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안의 머릿속에는, 세리아에게 맡긴 토르가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으, 이런 미친 퀘스트가 생성될 줄 알았으면 토르를 데리고 있는 건데…….’
하지만 그 생각도 그냥 답답함에 한 번 해 본 것일 뿐.
사실 토르가 있더라도 달라질 게 많지 않다는 것은 이안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토르의 망치가 강력하긴 하지만 만능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토르라고 해도 게이트에 접근이 가능해야 뭘 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쏴아아아-!
훈이의 손에서 광역 공격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와 동시에 헬라임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스하아아-!
어둠을 타고 다니며 적을 베는 고유 능력인 ‘다크 비전’ 덕에, 훈이와 헬라임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이라 할 수 있었다.
쾅- 쾅- 쾅-!
헬라임의 그림자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이며, 언데드 군단의 주요 유닛들을 암살했다.
특히 살아 있으면 무척이나 까다로운 어둠술사들이 주요 타깃이었다.
“크아아, 네놈은 다크 나이트! 어둠의 아들이 아닌가! 어째서 우릴 공격하는 것이냐!”
공격 한 번에 빈사상 태가 되어 버린 어둠술사가 절규했지만, 헬라임의 대검에는 자비가 없었다.
“나는 헬라임, 로터스의 신하일 뿐.”
콰아앙-!
보랏빛 광채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대로 까만 재가 되어 쓰러지는 어둠술사들.
멀리서 죽음의 기사가 헬라임의 뒤를 향해 검기를 쏘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이안의 시야에 포착된 지 오래였다.
“헬라임, 뒤!”
타탓-!
이안의 오더가 떨어지기 무섭게, 헬라임의 허리가 대각선으로 비틀어졌다.
-가신 ‘헬라임’이 ‘데스 나이트’의 공격을 회피하였습니다.
-가신 ‘헬라임’의 고유 능력 ‘어둠의 역습’이 발동합니다.
떠오르는 두 줄의 메시지와 함께 헬라임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스르륵-!
이어서 그가 나타난 곳은 검기를 쏘아 보낸 데스 나이트의 뒤쪽이었다.
촤아악-!
공격을 회피할 시, 공격한 대상의 후방으로 순간 이동하여 공격력의 150퍼센트만큼의 피해를 입히는 헬라임의 패시브 능력.
무방비 상태에서 헬라임의 강력한 공격을 당하니, 430레벨의 데스나이트라고 해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470레벨대인 헬라임의 공격력은 사실상 원정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했으니 말이다.
-‘데스 나이트’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32,827,509만큼 획득합니다.
완벽한 컨트롤로 순식간에 네임드 몬스터 다섯을 다운시킨 이안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전혀 밝지 못했다.
‘제기랄, 방법이 없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아직 게이트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10분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차피 저걸 부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기정사실이야. 뭔가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야 해.’
카오스게이트 파괴를 포기하고 나니 다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이안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당연히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이었다.
‘차원의 구슬을 이용해 볼까? 어떻게 3초만 피해 있을 방법 없을까?’
한 번 이상 가 본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게 해 주는, 이안이 가진 최고의 아티펙트인 차원의 구슬.
하지만 구슬을 사용해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3초의 캐스팅 시간이 필요했고, 이안은 그것을 말한 것이다.
캐스팅 도중에 약간의 피해라도 입으면 차원문 오픈이 취소되니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차원의 문을 성공적으로 연다고 하더라도, 탈출하는 동안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게이트로 한 번에 다 들어갈 수는 없으니, 전원이 빠져나오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
자꾸만 떠오르는 여러 가지 걸림돌들.
‘게다가 일단 게이트가 열리면 피아 구분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도 문제야. 자칫 언데드들이 안으로 들어가며 이동을 방해할 수도 있어. 그럼 정말 답이 안 나올 거야.’
퍼엉-!
달려드는 언데드 하나를 튕겨 낸 이안이, 잠시 숨을 고르며 뒤로 물러섰다.
지금 당장 언데드 하나를 처치하는 것보다,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한 과제였으니 말이다.
‘진성아, 침착하자.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
그런데 다음 순간, 초조하기 그지없던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그래, 그거야!”
그는 돌연 주먹을 불끈 쥐며, 탄성을 내질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샤크란이 이안의 옆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뭔가 방법을 찾은 거냐, 꼬맹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건지, 이 순간만큼은 샤크란의 표정도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후후.”
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샤크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재, 우리 게이트 부수는 건 포기합시다.”
“그걸 말이라고……!”
“아따, 성질 급하시기는.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그러죠.”
“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샤크란을 향해 씨익 웃어 준 이안이, 이제는 거의 완성되어 가는 카오스 게이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게이트 열리기 전에, 나 좀 저 앞으로 데려다 줘요.”
“……?”
“내가 여기, 나갈 수 있게 해 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