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뜻밖의 함정 (3)
* * *
‘카오스 게이트라고? 이게 대체 뭐지?’
처음 던전을 진입할 때부터 느껴졌던, 알 수 없는 불안감.
그리고 이안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불안감의 실체가 이제 드러난 것임을 말이다.
“카오스 게이트가 뭐야?”
“메시지 저만 떠오른 거 아니죠?”
“네, 원정대 전체적으로 떠오른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일까요?”
“일단 진행 속도를 조금 늦춰 보도록 하죠. 조심해서 천천히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공격적인 진형으로 던전을 뚫던 원정대의 파티는 원형의 방진을 구성한 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오스 게이트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장치가 발동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울 이유는 충분했다.
이안이 파티의 선두에 있던 랭커인 ‘테이판’을 향해 물었다.
그는 이 던전의 최초 발견자 중 하나였기 때문에, 어떤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저, 테이판 님.”
“아, 네, 이안 님.”
“혹시 카오스 게이트에 대해 아시는 것 있으신가요?”
“그, 글쎄요. 저도 처음 들어 보는지라…….”
던전의 최초발견 파티는 ‘팔카치오 비밀 통로’ 던전까지 트라이하지는 않았었다.
비밀 통로 자체가 팔카치오의 내성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트라이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컸던 것이다.
때문에 이안 또한 큰 기대를 하고 질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 아쉽기는 했다.
‘역시 아는 게 없군. 그래도 뭔가 단서를 얻었으면 좋겠는데…….’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럼 혹시, 지하 뇌옥 최초로 클리어하실 때 뭔가 특이점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특이점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지?”
“이번에 원정대에서 클리어할 때와 달랐던 부분이 기억나시면 뭐라도 좋습니다.”
카일란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떤 던전이 되었던 최초 발견 및 클리어를 했을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
대부분의 경우는 경험치나 아이템으로 보상이 주어지곤 했지만, 특별한 연계 퀘스트나 카일란 세계관의 숨겨진 스토리 같은 것으로 보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안이 물어보는 것은, 혹시나 그런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음……. 생각해 보니 그런 게 하나 있긴 했네요.”
“오, 어떤 건가요?”
어느새 원정대의 수뇌부들은 이안과 테이판의 주위로 모여들어 있었고, 모두의 시선이 그의 입을 향해 집중되었다.
테이판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본 드래곤을 잡고 나서 히든 에피소드 영상이 떴었거든요. 특별한 보상 같은 것도 없고 내용 자체도 별거 없어서 조금 보다가 스킵해 버리긴 했지만요.”
테이판의 말을 들은 이안의 두 눈이 살짝 빛났다.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기억나는 게 있나요?”
“네, 뭐……. 이 지하 뇌옥이 오래전 마계의 패잔병들을 가둬 놓았던 곳이라는 스토리였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으음, 그러니까…….”
테이판의 이야기는 그의 말처럼 크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의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이러했다.
-팔카치오 성의 지하 뇌옥은, 수천 년 전 마계의 침공 당시 마족들을 가둬 놓기 위해 최초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중부 대륙의 북부지대가 신들에 의해 봉인되며 팔카치오 성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되어 버렸고, 뇌옥에 갇힌 마족들은 그대로 잊혔다.
신들의 힘에 의해 외부와 단절되어 버렸으니, 그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백 년 뒤, 북부지대를 탐사하기 위해 올라온 인간들에 의해 지하 뇌옥이 다시 발견되었다.
하지만 뇌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갇혀 있던 마족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대신 뇌옥의 깊숙한 곳에 커다란 폭발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이안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서 끝인가요?”
“네. 그 내용을 마지막으로 비밀 통로가 열렸어요. 아마 다음 내용은 이 안으로 들어와야 이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렇군요.”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방금 들은 내용은 사실, 이안도 대부분 알고 있던 것이었다.
‘이 뇌옥이 원래 마족들을 가둬 두었던 곳이라는 사실이야 이미 알고 있었고……. 특별한 부분은 갇혀 있던 마족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정도인가? 아니면 폭발의 흔적?’
생각이 복잡해진 이안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테이판의 말대로라면, 이 던전의 끝에 다음 스토리가 있다는 내용인데…….’
유추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범위가 너무 광대했다.
때문에 이안은 쉽게 예측해 낼 수 없었다.
‘폭발의 흔적만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마족의 패잔병들. 그 다음 스토리는 대체 뭘까?’
그리고 고민에 잠긴 것은 이안뿐만이 아니었다.
카일란의 콘텐츠들은 이러한 작은 스토리 하나하나에 단서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랭커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원정대의 수뇌부들이 각자 머리를 굴리는 동안에도, 일행은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시야 한쪽 구석에 떠올라 있는 ‘팔카치오 비밀 통로’던전의 진척도도 벌써 50퍼센트가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조용하기 그지없던 던전의 내부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히 나의 권위에 도전하려 하다니…….
-하찮은 인간들이여, 지금부터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거칠고 묵직한, 더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사이邪異한 음성.
던전에 울려 퍼지는 벼락같은 음성을 들은 이안은, 그 목소리가 어쩐지 낯익다고 생각했다.
‘뭐지? 분명히 들어 본 목소리였는데……?’
이안은 빠르게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고, 곧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샬리언……!”
과거 마계에서 맞닥뜨렸던 언데드들의 제왕.
이 목소리는 바로, 리치 킹 샬리언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안의 중얼거림을 들은 샤크란이 이안을 향해 짧게 물었다.
“샬리언? 그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지?”
“그야, 일전에 마주친 적이 있으니까요.”
“그게 무슨……?”
이안의 대답에 의문만 더욱 짙어진 샤크란이었지만, 그의 질문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던전 내부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쿵- 쿠쿵- 쿵-!
원정대의 뒤쪽에서부터 커다란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퇴로가 차단됐어!”
“미친! 함정이었던 건가?”
“젠장!”
그리고 일행이 지나온 비밀 통로가 거대한 돌 더미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
어지간해서는 잘 당황하지 않는 샤크란조차도 순간 평정심이 흔들렸을 정도.
원정대에서 유일하게 어느 정도 이 상황을 예견했던 이안만이 최소한의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함정이라고 해도 극복하면 그만이지.’
그는 앞으로 이어질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그때,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연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카오스 게이트가 오픈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카오스 게이트의 차징Charging이 시작됩니다.
우우웅-!
커다란 공명음과 함께 던전의 중앙에서부터 시뻘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로 어떤 형태를 만들어 갔다.
게다가 떠오르는 메시지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돌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카오스 게이트를 파괴하라’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이안을 비롯해 모든 원정대원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카오스 게이트를 파괴하라 (히든)(돌발)’
당신은 지하 뇌옥을 정복하고, 그 내부에 있던 ‘비밀통로’를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팔카치오 성의 내성으로 이어지는,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숨겨진 지하 통로.
그런데 지하 통로를 지나던 과정에서 커다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비밀 통로에 잠들어 있던 카오스 게이트가 어쩐 일인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카오스 게이트는 과거 지하 뇌옥에 갇혀 있던 마계의 패잔병들이 마계로 돌아가기 위해 만들었던 차원 포털이다.
이 차원 포털이 어째서 다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마족들과 마물들이 포탈을 통해 넘어올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서둘러 카오스 게이트를 파괴하자.
카오스 게이트가 완전히 충전되기 전에 성공적으로 파괴한다면, 마물들이 넘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SS
퀘스트 조건 : ‘팔카치오 비밀통로’ 던전을 공략하던 중 ‘카오스 게이트’가 작동할 시 퀘스트 생성.
카오스 게이트 작동까지 남은 시간 : 19분 59초
*카오스 게이트를 파괴하면, 퀘스트가 완료됩니다.
*보상 : 알 수 없음.
*유저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들은, 더욱 당황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 * *
“크크큭, 당황스럽겠지. 이건 아무리 이안이라 해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야.”
널찍한 TV화면을 보며, 나지찬은 연신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최근 카일란 방송을 보며, 나지찬이 이렇게 행복해했던 적은 단연코 없었다.
이안을 모니터링하며 겪었던 그간의 서러움과 고통(?)들.
이안이 변칙적인 행보를 보일 때마다 졸이고 졸인 탓에 한껏 쪼그라져 있던 심장이, 그야말로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받은 것이다.
“그래, 이안갓도 한 번쯤은 실패를 경험해 봐야 하지 않겠어?”
나지찬에게 이안은 애증의 존재였다.
팬으로서는 무한한 존경과 애정의 대상이었지만, 기획자로서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콘텐츠 파괴자였던 것이다.
때문에 나지찬의 마음속에는, 이안을 응원하는 마음과 동시에 실패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후후, 공개적으로 방송만 안 때렸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나지찬은 인간계뿐 아니라 마계에서 활동하는 모든 랭커들의 움직임을 전부 꿰고 있었다.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멍청한 에밀리랑 카윈 덕에 결국 함정에 빠지고 말았군.’
퀘스트 창 하단에 떠올라 있는 ‘퀘스트 조건’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이 ‘함정’이 발동하기 위해서는 카오스 게이트가 작동해야만 한다.
아마 지금 던전 안에 있는 이안의 일행은 본인들이 던전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카오스 게이트가 작동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카오스 게이트의 작동은 인간계가 아닌 마계의 퀘스트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마계의 퀘스트를 진행 중이던 랭커들이 YTBC의 방송을 통해 원정대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했고,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카오스 게이트를 작동시킨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만약 원정대의 행보가 방송에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공성전이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아마 원정대가 이 비밀 통로에 들어서는 일 자체가 없었겠지.’
원래 마계의 랭커들은 며칠 더 빨리 카오스 게이트를 작동시킬 예정이었고, 원정대가 팔카치오 성에 도착할 쯤에는 이미 비밀 통로가 폐쇄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정대의 행보가 고스란히 TV 방송을 통해 노출되었기 때문에, 마계의 유저들이 이런 함정을 팔 수 있었던 것이다.
“자, 이제 원정대가 얼마나 버텨 내는지, 구경이나 한번 해 볼까……?”
아마 이안이라면, 아니, 이안을 비롯해 최고의 랭커들로 구성된 원정대의 능력이라면 카오스 게이트가 작동될 때까지 밀려들 수많은 언데드 군단 정도는 어찌어찌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게이트는 작동될 수밖에 없고, 게이트를 통해 들어온 마계의 랭커들은 로터스와 타이탄의 정예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그들마저 이겨 낸다고 하더라도……. 결말은 파멸일 수밖에 없지.”
앞으로 이어질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린 나지찬은 싱글싱글 웃으며 방송을 다시 시청하기 시작했다.
방송은 갈수록 더욱 재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