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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함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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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카치오 성의 지하뇌옥은 사실, ‘함정’ 같은 것으로 기획된 컨텐츠가 아니었다.
다만 에피소드의 흐름이 기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역할을 하게 된 것 뿐이었다.
‘인간계 유저들이 이렇게 빨리 리치 킹을 트라이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으니까.’
원래 지하뇌옥은, 마계와 어둠의 군단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기존의 시나리오대로 에피소드가 진행되었더라면, 인간계의 유저들에 의해 어둠의 군단이 무너지기 시작할 즈음 리치 킹 샬리언이 마계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마계의 유저들이 인간계로 진입할 수 있는 루트가 바로 이 팔카치오성의 지하 뇌옥이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옥의 지하 3층에 열려 있는 카오스 게이트Chaos Gate가 두 개의 차원을 연결해 주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방송을 보던 나지찬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한 10분 정도만 있으면 지하 3층에 진입하겠군.”
그렇다면 이 카오스 게이트는 무한정 이용이 가능한 것일까?
당연히 그것은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대부분의 마계 유저들이 넘어와 버려서 에피소드의 밸런스가 붕괴될 테니 말이다.
어둠의 군단만 해도 충분히 강력한 마당에 마계의 유저들까지 무한 유입된다면, 에피소드 클리어가 가능할 리 없다.
때문에 이 카오스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은 마계의 유저들 중에서도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다.
난이도가 무척이나 높은 ‘리치 킹의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만, 이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게다가 카오스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횟수 또한 단 한번 뿐이었다.
조건을 충족시킨 마계의 랭커들이 전부 모이고 나면 카오스 게이트가 발동되고, 그들이 전부 넘어오고 나면 이 지하 뇌옥은 폭파되어 사라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리치 킹 샬리언이, 마계의 랭커들을 ‘용병’으로 쓰는 개념의 콘텐츠였던 것.
한데 마계의 유저들이 리치 킹의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속도에 비해서, 어둠의 군단이 너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버렸다.
리치 킹이 부른 마계의 용병들이 인간계로 넘어오기도 전에 원정대가 팔카치오 성에 도달해 버렸고, 이 지하 뇌옥의 존재까지 알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공성전이 벌어지는 시점에 지하 뇌옥은 존재하지도 않는 던전이었어야 했는데, 시기가 엇갈리는 바람에 ‘함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재밌어. 역시 기획한 대로 진행되는 것보다 이런 변칙적인 전개가 흥미진진하지.”
어느새 이안이라는 거대한 변수 덕분에 했던 고생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인지, 나지찬은 실실 웃으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쯧쯧, 에피소드 최종 콘텐츠인 팔카치오 성을 쉽게 클리어할 수 있도록 편법을 만들어 놨을 리가 없잖아?”
지하 뇌옥은 외부에서 쉽게 내성으로 들어올 수 있는 ‘지름길’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때문에 샬리언이 언제든 폭파시켜 없애 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곳이기도 했다.
그 말인 즉 로터스와 타이탄의 정예군들은, 언제든 폭파되어 무너질 수 있는 ‘함정’에 들어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 * *
띠링-!
-‘팔카치오 지하 뇌옥’ 던전의 최종 보스, ‘본 드래곤’을 처치하셨습니다!
-모든 파티원의 명성이 5만 만큼 증가합니다!
-‘팔카치오 지하 뇌옥’ 던전을 성공적으로 클리어하셨습니다!
-2분 뒤, 던전의 바깥으로 자동으로 이동됩니다.
거대한 본 드래곤을 처치하고 나자 유저들의 눈앞에 클리어 메시지가 주르륵 떠올랐다.
원래 같았더라면 던전의 밖으로 이동되기까지 주어지는 2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 정비를 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특별한 상황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던전 내부에, 샤크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비밀 통로를 찾아라! 2층 내부 어딘가에 3층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을 것이다!”
지하 3층.
즉, 내성까지 이어지는 팔카치오 성의 비밀 통로.
던전을 처음 클리어했던 랭커들은 우연히 비밀 통로를 찾아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치로 정확히 안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던전의 보스가 존재하는 보스 존의 경우, 던전에 입장할 때마다 랜덤으로 지형이 변동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원정대의 유저들은, 비밀통로의 입구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다녔다.
“에밀리, 넌 북쪽으로 뛰어!”
“알겠어, 세일론!”
그리고 그것은 이안의 소환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은 할리에게 바람의 가호까지 걸어가며 맵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던전이 재설정되기까지 (00:01:30)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던전이 재설정되면, 자동으로 던전의 입구로 워프됩니다.
시간이 1초씩 줄어들 때마다, 원정대 유저들의 마음은 다급해져만 갔다.
만약 저 시간이 전부 지나기 전에 비밀 통로의 입구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던전을 처음부터 다시 클리어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 밖에서 시선을 끌고 있는 원정대 병력들의 손실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 번에 비밀 통로의 입구를 찾아야만 했다.
-남은 시간 : 00:00:49
“50초 남았다! 어서 움직이라고!”
“저 방향 아직 아무도 안 가 본 것 같은데, 내가 움직여 볼게!”
다급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유저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길이 지독한 ‘함정’으로 향하는 길인지도 모른 채, 유저들은 입구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10여초 정도가 더 지났을까?
“찾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원정대 모두의 시야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원정대원이 팔카치오 성의 숨겨진 ‘비밀 통로’ 입구를 발견하였습니다.
-‘던전의 재설정’까지 남은 시간이 3분 증가합니다.
-팔카치오 내성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 던전의 입구입니다.
-던전의 내부로 입장하시겠습니까? (Y/N)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유저들은 곧바로 시스템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이어서 유저들의 시야가 새카맣게 암전되었다.
* * *
-역시 로터스와 타이탄입니다! 단 한 번의 트라이로 히든 던전을 찾아내는 데 성공하는군요!
던전 안의 던전.
시스템 상으로 지정된 명칭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던전 안의 히든피스를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는 던전은 보통 ‘히든 던전’이라고 불려진다.
숨겨진Hidden이라는 의미와 어울리기도 했으며, 일반 던전보다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원정대가 지금 입장한 ‘팔카치오 비밀 통로’ 던전 또한 같은 맥락의 던전이었다.
물론 경우가 조금 특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 이 시점에서 우리가 특별한 게스트를 모셔 보지 않을 수 없겠군요! 포렌 님, 반갑습니다!
-하핫, 안녕하세요, 여러분. 제가 YTBC 방송도 다 타 보고, 이거 영광이네요.
포렌은 인터넷 방송에서 나름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개인방송 BJ였다.
그는 370레벨로 나름 높은 레벨을 가진 데다 컨트롤과 입담이 뛰어나서, 항상 상위권의 개인 방송 랭킹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가워요, 포렌 님. 방송 재밌게 보고 있답니다.
-이거, 루시아 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호홋, 하인스 님. 저희가 포렌 님과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많을 테지만, 그것들은 일단 뒤로 미뤄 놔야겠죠?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원정대는 ‘비밀 통로’ 던전을 빠른 속도로 뚫고 있기 때문에, 잡담을 나눌 시간이 아쉽게도 없네요.
-자, 그렇다면 포렌 님, 당시 포렌 님의 파티가 던전을 공략할 때의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팔카치오 지하 뇌옥’의 던전부터 시작해서 ‘팔카치오 비밀 통로’ 던전까지.
최초로 발견했던 파티가 바로 BJ 포렌이 속해 있던 파티였기 때문에, 그가 YTBC의 게스트로 초대된 것이었다.
포렌은 특유의 입담으로, 당시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우선 지옥같이 힘들었던 기억밖에 떠오르질 않는군요.
-하하, 얼마나 힘드셨기에 지옥이라는 표현까지 쓰시는 건가요?
-그냥 본 드래곤을 잡은 뒤에는, 히든 던전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요.
-호호, 지금 이안과 샤크란의 원정대를 보고 있는 저희로서는 쉽게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네요.
-하아, 저런 괴물님들과 우리 파티를 비교해 주신 부분은 영광스럽게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시청자 여러분께선 이 영상을 그냥 ‘사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기……라고요?
-네. 우선 480레벨의 본 드래곤을 15분 만에 잡아 버린 것부터가 대국민 사기 아니겠습니까. 이런 영상 보고 저같이 영세한 유저들이 던전 트라이 갔다가 항상 피 본다고요.
-랭커이신 포렌 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만…….
-이안 갓 앞에서는 370레벨이나 37레벨이나 다 같은 쪼렙 아니겠습니까.
-하핫, 그게 또 그렇게 되어 버리는 건가요?
방송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우선 ‘팔카치오 비밀 통로’ 또한 단순히 통로가 아닌 ‘던전’이었기 때문에 고레벨의 다양한 몬스터들이 출몰했고, 최고의 랭커들로 구성된 원정대의 전투 화면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거기에 해설자들의 입담이 곁들여지자 기획자인 나지찬 또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 포렌이라고 했나? 다음부터 저 BJ 방송도 좀 챙겨봐야겠어. 말 참 차지게 잘하는군.”
본래의 관전 포인트조차 잊어버린 채, 순수한 시청자가 되어서 방송에 빠져들기 시작한 나지찬.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곧 나지찬의 두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저 완벽히 순항 중인 듯 보였던 원정대가 갑자기 던전 돌파를 멈추고 정비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어, 무슨 일이죠? 갑자기 원정대가 멈춰 섰어요.
-포렌 님, 혹시 무슨 상황일 지 짐작 가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아뇨, 저도 딱히 짐작 가는 부분은…….
-이안의 개인 화면으로 움직여 보겠습니다. 멀리서 봐서는 어떤 상황일지 판단이 되질 않는군요.
하인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멀찍이서 원정대를 찍고 있던 화면이 이안의 개인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안의 개인 화면에 떠 있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나지찬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흐흐, 걸렸군. 걸렸어.”
화면 구석에 붉은 글씨로 떠올라 있는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
-카오스 게이트Chaos Gate가 작동을 시작합니다.
-던전 내부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체크 메이트Checkmate.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도저히 빠져 나갈 방법이 없어 보이는 외통수였다.
완벽한 함정이 발동되어 버린 것이다.
적어도 나지찬이 생각하기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