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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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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계 유저들의 대대적인 어둠의 군단 원정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모든 게임 방송사에서는 이번 북부원정을 대대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했으며, 덕분에 시청자들은 행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같은 콘텐츠를 여러 채널에서 방송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사실 콘텐츠 나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볼거리가 무궁무진한 이번 북부 원정 방송의 경우에는, 하나의 채널만으로는 20퍼센트의 콘텐츠도 채 담아 내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여러 방송사에서 각자의 콘셉트에 맞춰 다각도로 원정 영상을 송출하는 지금의 상황이,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원정의 전체적인 진행 상황이 보고 싶을 때, 랭커들의 화려한 컨트롤이 보고 싶을 때, 원정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보고 싶을 때, 퀘스트에 엮여 있는 스토리 위주로 감상하고 싶을 때 등 각자의 취향에 맞춰, 원하는 채널을 돌려보며 시청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저마다 특별한 콘셉트를 잡아 방송을 진행하였고, 영세한 방송사일수록 더욱 기발한 콘셉트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대형 방송사와 차별점이 있어야, 시청자들이 유입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원정대 방송에서, 신박한 콘셉트를 가지고 제대로 성공한 채널이 한군데 있었다.
-이건 미쳤어! 샤크란과 이안의 진검승부라니……!
-저도 동감. tvM인지 뭔지, 처음 보는 채널이 생겼기에 한번 틀어 봤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꿀잼 때문에 벌써 다섯 시간 째 TV앞에 앉아 있는 중.
-ㅋㅋ 난 앞으로 여기 자주 애용할 듯. 이거 기획한 PD 누군지 몰라도 아주 칭찬해.
-크으, 진짜 대박이다. 난 언제쯤 저런 플레이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스코어 몇 대 몇이죠?
-음…… 스코어라고 표현하긴 좀 뭣하지만, 이안이 약간 우세한 거 같네요. 굳이 숫자로 따지자면 7:6 정도?
-윗 님 ㄴㄴ. 제가 지금까지 다 세면서 봤는데, 정확히 8:6이에요. 방금 군단장 이안이 처치하면서 조금 더 앞서가는 중.
-ㅋㅋ진짜 우열을 가리기 힘드네요. 솔직히 방금도 한끝 차이 아니었음?
-우열은 이미 가려졌고,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겁니다. 왜냐면……. 이안은 갓이니까요.
게임방송 tvM의 이번 방송 콘셉트는 다름 아닌 ‘이안’과 ‘샤크란’의 경쟁구도였다.
전쟁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었다.
사실 tvM에서 처음부터 두 사람에 포커싱을 둔 것은 아니었다.
tvM의 기존 콘셉트는 ‘랭커 따라잡기’였다.
랭커들의 플레이를 세심하게 분석하면서, 그들의 플레이에 대한 세세한 해설을 메인 콘텐츠로 잡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tvM이 처음 선택한 랭커는 바로 이안이었다.
사실상 한국 서버 랭킹 1위라고 할 수 있는 이안이니, 그가 첫 번째 순서에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초반 시청자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고 말이다.
그러나 이안 위주로 진행되던 방송의 노선이 틀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안과 샤크란이 경쟁적으로 네임드 몬스터를 잡는 모습을 포착한 기획 PD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 콘셉트를 바꿔 버린 것이다.
심지어 방송의 타이틀까지, ‘분석으로 랭커 따라잡기’에서 ‘이안vs샤크란’으로 변경해 버렸다.
이것은 카일란 한국 서버의 유저라면 누구나 혹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사실상 인간계의 랭킹 1, 2위나 다름없는 유저들의 이름을 가져다 놓고 대결 구도를 만들었으니, 한 번쯤 틀어 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흥행에 부흥이라도 하듯, 이안과 샤크란을 필두로 한 인간계의 원정군은 순식간에 어둠의 성을 정복해 나갔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인간계의 원정군은 드디어 ‘어둠의 강’을 건널 수 있었다.
칠흑의 철옹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리치 킹의 거대한 성.
‘팔카치오’성에 도착한 것이다.
* * *
“여기가 팔카치오 성인가?”
절벽 위로 드높이 솟아있는 거대한 성벽을 올려다보며, 이안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안은 이 팔카치오 성에 처음 와 봤지만, 다른 랭커들 중에는 이곳에 와 본 경험이 있는 이들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팔카치오 성이 아닌, 그 인근의 필드인 어둠의 강.
이곳이 바로 현존하는 사냥터들 중 최고의 경험치를 주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안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퀘스트를 진행하느라 따로 사냥터를 찾아다니지 않았지만, 사냥 노가다 위주로 레벨 업을 하는 랭커들의 경우 경험치를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 필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랭커들 중에는 리치 킹의 눈을 피해 사냥해야 하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이 ‘어둠의 강’ 필드 사냥을 고집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샤크란은 그런 랭커들 중 한 명이었다.
“쳇, 이제 길이 뚫렸으니 이곳에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지겠군.”
샤크란의 중얼거림에, 이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이미 꿀은 다 빨았을 텐데, 뭐 그리 아쉬워합니까?”
“딱히 아쉬운 건 아니다, 꼬맹아. 어차피 에피소드를 클리어하고 나면, 여기보다 더 좋은 사냥터가 생겨날 테니까.”
원정대가 모든 어둠의 성을 격파하였으니 ‘어둠의 강’에 도달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고, 그렇다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유저들이 이 사냥터를 찾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긴, 그렇겠지요. 항상 새 콘텐츠 초기에 가장 먹을 게 많은 법이니까요.”
“그렇지. 그게 내가 네 녀석의 장단에 놀아나 준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야.”
“후후…….”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까지였다.
이제 곧 전투가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거의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어둠의 군대와의 전쟁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돌파한 시간을 보면 무척이나 빠르다고 할 수 있었지만, 원정대의 전략 자체가 무척이나 공격적이었기에, 제법 많은 병력들이 죽어 나갔던 것이다.
심지어 원정대에 속한 유저들 중에는 전쟁 기간 동안 사망 페널티를 두 번 이상 받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한 페널티를 받으면서도 유저들이 원정대를 떠나지 않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헌도 보상 때문이었다.
타이탄과 로터스를 비롯한 상위권 길드들에서 많은 부분 공헌도를 포기했기 때문에, 일반 유저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엄청나게 커진 것이다.
덕분에 원정대에 참여한 일반 유저들의 의욕이 더욱 상승되었고, 그것은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샤크란을 견제하기 위한 이안의 한수가, 이런 식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둥- 둥- 둥-!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전고戰鼓의 커다란 울림소리가, 드넓은 평원 위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각 진영 리더들의 우렁찬 오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군, 진격!”
“우린 절벽을 돌아 북동쪽으로 들어간다!”
“우리는 절벽 아래쪽의 지하통로를 뚫는다!”
수천이 넘는 병력이 순식간에 흩어져서 팔카치오 성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 높은 곳에서 본 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제각각 멋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형의 움직임에 짜임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YTBC의 해설을 담당하는 루시아와 하인스는, 전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봉우리에서 방송을 해설하기 시작했다.
“아, 하인스 님, 원정군이 총 다섯 갈래로 쪼개져서 각기 다른 루트로 공략을 시도하는데요?”
“그렇습니다. 각 병력들의 움직임을 보니, 사전에 계획된 전략 같군요!”
“하인스 님, 원정군의 전략에 대해 혹시 설명을 좀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원정군의 전략요?”
“네. 저는 지금까지처럼 모든 부대가 한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서 돌파할 줄 알았거든요. 저렇게 병력이 분산되면, 오히려 공성이 힘들어지는 것 아닐까요?”
두 사람은 여유롭게 해설을 진행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무척이나 긴장한 상태였다.
수많은 유저들이 지켜보는 라이브 방송이다 보니, 해설에서 실수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두 사람 중에서도 직접적인 해설을 담당하는 하인스가 더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었다.
하인스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예상하는 원정군의 전략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하,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제가 생각하는 전략을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오오, 역시 하인스 님!”
“크흠. 하지만 저 역시 예측일 뿐이니 틀리다고 너무 나무라시면 안 됩니다?”
“호호, 물론이죠. 원정군의 수뇌부가 아니고서야 전략을 어떻게 완벽히 예측하겠어요?”
“그럼 한번 브리핑해 보도록 하죠.”
하인스가 말을 마치자, 두 사람의 앞쪽에 방송국에서 미리 준비해 둔 영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팔카치오 성의 구조를 위에서 내려다 본 ‘평면도’였다.
“팔카치오 성의 진입로는, 사실상 총 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인스는 말을 이어감과 동시에, 허공에 떠올라 있는 팔카치오성의 평면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성의 북쪽과 동, 서쪽에 각각 하나씩 있는 성문이 빨갛게 표시되었다.
“하지만 팔카치오 성에는 이 세 곳 외에도 숨겨진 진입로가 두 군데 더 있습니다.”
하인스가 말을 마치자, 팔카치오 성의 남쪽 언저리에 두 개의 붉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하인스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루시아가, 진행을 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오, 남쪽에 숨겨진 진입로가 있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팔카치오성의 남쪽은 엄청나게 높은 낭떨어지인 걸요? 설마 저 절벽을 타고 올라가기라도 하는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하인스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 당연히 그것은 아닙니다. 저 절벽을 타고 올라가다간, 성벽에 닿아 보지도 못하고 전부 다 전멸을 당할 테니까요.”
“그렇다면……?”
“절벽 아래쪽에 팔카치오 성과 이어져 있는 지하 뇌옥이 존재합니다. 지난달에 리치 킹 관련 퀘스트를 진행 중이던 몇몇 랭커분들이 발견하신 던전이죠.”
“그런 곳이 있었나요?”
“예. 지금까지 극비로 숨겨져 있던 내용입니다만, 이 하인스가 원정대 관계자분들께 부탁해서 힘들게 얻은 정보입니다, 하핫.”
“오오, 정말요? 그런데 이런 비밀 정보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풀어도 되는 건가요?”
“하하, 괜찮습니다. 원정대 수뇌부에는 이미 허락을 받았거든요. 어차피 적들이 NPC이기도 하고, 이미 전투는 시작되었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요.”
“아아……!”
“제 생각엔 아마, 나머지 세 개의 부대가 수성군의 시선을 끄는 동안 지하 뇌옥을 통해 내성으로 침투를 시도할 것 같습니다.”
루시아가 커다란 두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군요! 심지어 지하뇌옥 던전이 클리어된 상태라면, 정말 수월하게 내성으로 진입할 수도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마 가장 강력한 전력인 로터스와 타이탄이 지하 통로로 진입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인스가 허공에 띄운 스크린에는 시청자들의 설명을 돕기 위한 화살표들이 하나둘 그어졌고, 정말 원정군은 그 경로대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과연 에피소드 최종 보스 공략의 시작답게, 처음부터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전개였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눈을 떼지 못한 채 방송을 지켜보기 시작했고, 그들 중에는 이 에피소드의 수석 기획자인 ‘나지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급한 불을 끄고 돌아와, 다시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그작-!
여느 때처럼 감자칩을 맛깔나게 베어 문 나지찬은, 집에 도둑이 들어도 모를 만큼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시청 포인트는 뭔가 여느 시청자들과는 많이 다른 듯 보였다.
‘후후, 역시 지하 통로로 공략을 시도하는군.’
화면을 응시하는 나지찬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