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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472화 (48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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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죽지세 (1)

“후,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같긴 하지만…….”

퀭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 벽에 걸려 있는 TV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

거의 보름 동안 하루 평균 3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한 남자의 이름은, 다름 아닌 나지찬이었다.

“그래도 이 방송은 끝까지 보고 자야겠지.”

나지찬과 기획 팀은 지옥의 스케줄을 소화한 끝에 이안이 던져 준 과제를 완수할 수 있었다.

물론 새 콘텐츠가 개발 단계까지 100퍼센트 끝난 것은 아니었다.

기획이 마무리된 것일 뿐, 이제 게임에 적용시키는 일이 남은 것이다.

하지만 개발은 개발 팀의 일이지 기획 팀이 해야 할 일은 아니었기에, 나지찬에게는 모처럼의 휴가가 주어졌다.

벌컥벌컥.

각성제가 잔뜩 들어간 에너지드링크를 단숨에 마신 나지찬은 한층 맑아진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TV의 화면에는 인간계의 유저들과 어둠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나지찬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인간계 랭커란 랭커는 전부 모아 놨네. 용케도 죄다 꼬여 냈군. 다른 길드들은 그렇다 쳐도……. 타이탄 길드는 대체 어떻게 회유한 거지?”

나지찬은 수석 기획자인 만큼 현 카일란 유저들의 판도를 거의 꿰고 있었다.

때문에 이렇게 인간계 유저들이 한 마음으로 에피소드 공략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역시 이안인가?”

하지만 방송을 지켜보던 나지찬의 입가에, 곧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타이탄 길드의 정예부대가, 성벽을 넘어 내성으로 침투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타이탄이 주도권을 곱게 로터스에 쥐여 줄 리가 없지.”

전방에 수성군의 시선이 몰린 틈을 타 내성으로 침투하는 전략은 사실 나쁜 것이 아니었다.

후방에서 수성군의 뒤를 친다면, 방어선을 훨씬 빠르게 뚫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획자인 나지찬의 눈에는 타이탄의 정예부대가 그렇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뻔히 보였다.

‘어떻게든 로터스보다 공헌도를 많이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그러다 보면 클리어 시간은 지체될 테고 말이야.’

타이탄은 네임드 몬스터들을 독식하기 위해서라도 전방이 빨리 뚫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성이 함락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자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로터스라도 타이탄의 지원 없이는 외성 뚫는 게 쉽지 않을 터.’

사실 나지찬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 외성의 성벽은 이미 뚫린 상태였다.

다만 나지찬이 TV를 조금 늦게 켰기 때문에 아직 ‘토르’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나지찬은 타이탄의 용기병들이 성벽을 넘는 부분부터 시청을 시작했고, 때문에 이러한 오해를 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오해도 잠시뿐.

콰아앙-!

어디선가 벼락이 떨어져 내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TV에 송출되는 영상의 시점이 바뀌었다.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벌써부터 목이 쉬어 버린 듯한 캐스터들의 목소리가 연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 토르! 정말 엄청난 소환수가 등장했습니다!

-3단계 대공 타워를 망치질 한 방에 부숴 버리다니요!

-하인스 님, 어둠군단의 1차 방어전선이 앞으로 얼마나 버텨 줄까요?

-글쎄요. 지금 공성군의 기세를 봐서는 5분도 채 힘들지 않을까요? 게다가 이미 타이탄 길드의 용기병은 후방으로 침투에 성공했거든요.

-그렇죠!

-게다가 이안이, 용기병들이 활약하기 좋도록 대공 타워를 모조리 철거하고 있어요. 이거 이대로 고속도로 뚫겠다는 얘기거든요!

황금빛 광채가 벼락같이 솟아오르며, 거대한 대공 타워가 힘없이 무너졌다.

화면으로 그 모습을 확인한 나지찬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저 미친 소환수가……. 어떻게 벌써 등장한 거지?”

벌떡 일어난 나지찬의 시선은 미친 듯이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를 향해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

“부, 분명…… 파괴의 해골기사야 저건.”

‘파괴의 해골기사’라는 이름을 가진, 그야말로 ‘공성전’을 위해 태어난 소환수.

나지찬은 허탈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명계에 가야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위 콘텐츠의 소환수가 지금 로터스의 진영에서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개발 팀에 전화해야겠어!”

명계 콘텐츠가 풀리지조차 않은 이 시점에, 저 괴물 같은 녀석이 어떻게 등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이안이 리치 킹 처치 퀘스트를 클리어할 확률이, 1할 정도에서 거의 5할 이상까지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클리어 시점이 예상보다 이삼일 정도 더 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리치 킹을 만나려면 다섯 채의 어둠의 성을 전부 함락시켜야 하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하루에 한 채씩 함락될 수도 있어 보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이 때문에 개발 팀에는 심각한 비상이 걸리고 말았다.

* * *

“세일론, 후방 좀 막아 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타이탄의 정예부대는 용기병들을 필두로 하여 내성에 성공적으로 침투하였다.

전체적으로 스텟이 높은 유닛인 용기병들이 길을 열어 주면, 그 뒤로 플라이곤Flygon을 타고 따라 움직인 것이다.

플라이곤은 쉽게 말해 ‘수송기’ 같은 역할을 해 주는 공중유닛으로, 한 기당 최대 열 명 정도의 유저를 태울 수 있는 커다란 익룡이다.

어쨌든 내성에 발을 디딘 샤크란은 빠르게 안으로 침투하여 네임드 몬스터들을 찾아다녔다.

로터스를 비롯한 다른 유저들이 내성까지 돌파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네임드 공헌도를 독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크하하, 좋았어! 이대로 전부 쓸어 버리자고!”

타이탄 길드의 초창기 멤버이자 전사 클래스의 랭커인 하쿰의 걸걸한 목소리에, 옆에 있던 에밀리가 핀잔을 주었다.

“목소리 좀 줄여, 하쿰. 너 때문에 어그로 끌려서 포위되면 곤란해진다고.”

“크하핫, 일일이 찾아다니기 귀찮은데 포위되면 좋지!”

“닥치고 도끼나 휘둘러.”

“아, 알겠어…….”

타이탄의 정예부대는, 과연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숫자만 놓고 보았을 땐 로터스보다도 더 많은 랭커들을 보유하고 있는 타이탄 길드였기 때문에, 어쩌면 이러한 전력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크아아오, 인간, 샬리언 님의 권능 앞에 무릎 꿇을지어다!”

일반적인 인간보다 세 배 이상은 거대한 몸집을 지닌 데스나이트가 샤크란을 향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생전에 오우거였다고 해도 믿을 만큼 우락부락한 외형을 가진 데스 나이트.

-죽음의 기사단장 록페르 : Lv.465

녀석은 465라는 무지막지한 레벨까지 가지고 있었지만, 샤크란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샬리언이 먼저 내 앞에 무릎 꿇는다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감히……!”

분노한 ‘록페르’가 거대한 언월도를 위협적으로 휘두른다.

그리고 그에 맞서 샤크란은 빠르게 쌍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크기 차이만 놓고 보았을 때는 언월도에 상대조차 되지 않을 듯 왜소한 샤크란의 쌍검.

하지만 실상 맞부딪치자, 작아만 보이던 쌍검은 언월도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 강력한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록페르의 언월도와 샤크란의 쌍검이 연신 맞부딪치며 파란 불꽃을 토해 냈다.

레벨이 부족한 탓에 물리적인 전투스텟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만, 샤크란은 결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부족한 스텟은 컨트롤로 충분히 극복해 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영마보!”

짧은 시동어와 함께, 샤크란의 신형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이어서 셋으로 쪼개진 샤크란의 그림자가 또다시 갈라지며 새파란 빛줄기로 퍼져 나갔다.

거의 수십 가닥에 가까운 푸른빛의 광선이 마치 그물처럼 엮여 록페르를 덮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순식간에 뭉텅이로 잘려 나가는 록페르의 생명력 게이지.

록페르가 침음성을 흘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일개 인간이 환영검제의 힘을……?”

그런데 그 혼잣말에, 샤크란이 오히려 놀란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환영검제를 아는가?”

하지만 록페르는 샤크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채 버럭 화를 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함부로 그분의 존함을 입에 올리지 말라!”

콰쾅- 쾅-!

샤크란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전투는 점점 더 과격해졌고,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그대로 녀석의 언월도에 두 동강 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5분 여 정도가 지났을까?

촤아악-!

샤크란의 쌍검이 록페르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갔고, 록페르의 거구가 그대로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쿠웅-!

이어서 샤크란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울려 퍼졌다.

띠링-!

-죽음의 기사단장, ‘록페르’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어둠의 군단, 네임드 몬스터를 처치하셨습니다.

-에피소드 공헌도가 357,000만큼 증가합니다.

-경험치를 70,928,490만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을 10만 만큼 획득하셨습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보며, 샤크란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언데드 중에 환영검제를 아는 존재가 있단 말이지. 이거 생각지 못한 소득인데……?”

기분 좋은 표정이 된 샤크란이,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에밀리, 지금까지 네임드 총 몇 놈이나 잡았지?”

“2티어 네임드 둘, 3티어 일곱 잡았습니다.”

“흠,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군. 로터스 놈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두 배는 잡아야 할 텐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마스터.”

“시간이 제법 빠듯하겠어.”

사실 지금까지의 수확만으로도 정예부대의 잠입은 충분히 대단한 수확을 올린 것이었다.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100만이 훌쩍 넘는 공헌도를 독식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샤크란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 괴물 같은 해골바가지가 방어타워 쓸어 담았을 걸 생각하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니까.’

무식하게 거대한 이안의 해골기사를 떠올린 샤크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헌도 싸움에서 로터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마스터, 동북쪽에 2티어 네임드 하나, 3티어 네임드 다섯 기 발견입니다!”

멀찍이서 들려오는 길드원의 목소리에, 샤크란은 곧바로 그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세일론, 하쿰, 각각 양쪽을 맡아!”

“알겠습니다, 마스터.”

“예, 마스터!”

“에밀리는 날 서포팅하고.”

“옛!”

샤크란의 명령에 따라 순식간에 진형을 형성하며 뛰어가는 타이탄 길드의 정예 유저들.

게다가 그 뒤를 용기병들이 일사불란하게 따르자, 소름 돋을 정도로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다.

-오오, 역시 타이탄! 간지 쩔었다!

-크으, 대체 얼마나 훈련을 해야 저런 그림이 나오는 거지?

-캬, 이안도 이안이지만, 난 샤크란이 진짜 간지나더라.

-동감.

-샤크란도 그렇고 세일론도 그렇고. 확실히 랭커기는 한가 봐요.

-왜요?

-보면 전투 능력도 좋지만, NPC들 통솔하는 스킬도 장난 아닌 듯.

-인정인정!

네티즌들이 타이탄 정예부대의 움직임에 감탄하고 있던 그 때였다.

순간적으로 스크린의 시점이 전환되며 캐스터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어둠군단의 시점에서 보지 않을 수 없겠죠?

-그렇습니다, 하인스 님.

-지금부터, 어둠의 대마법사 시크리드의 시점에서 전투를 보시겠습니다!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날개와 날카로운 발톱.

스크린의 절반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거대한 ‘고스트 드래곤’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 쓴 어둠의 대마법사가 타이탄의 정예부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클클, 가소로운 놈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사이한 목소리를 가진 대마법사 시크리드.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거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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