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71화 (48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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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망치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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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쏟아지는 데스 메테오들을 피해 한 템포 뒤로 물러서 있던 샤크란은 멀찍이 무너져 내리는 성벽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체 뭐지? 어둠의 성벽 내구도가 너프라도 먹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부서지는 건 말도 안 되는데…….’

거리가 멀어서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성벽이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10초, 아니, 그조차도 되지 않는 듯 보였다.

황금빛의 광채가 몇 번 번쩍이는 듯 싶더니, 그 거대한 성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어둠의 성벽 내구도가 적어도 3천만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3천만이라는 수치 자체도 엄청난 것이지만, 성벽이 가진 내구도는 숫자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벽의 방어력에 적용되는 대미지 공식은, 일반적인 몬스터나 유저의 방어력에 적용되는 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성벽의 방어 속성은 ‘무생물’ 타입.

‘무생물’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방어 속성 중 효율이 가장 뛰어난 속성이다.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는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저들이 연구해 놓은 공략 게시판이 있는데, 그곳에 올라와 있는 ‘무생물’ 방어 타입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무생물 방어 타입

무생물 방어 타입을 가진 개체는, ‘내구도’가 ‘생명력’ 대신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지형지물이나 방어 시설, 갑옷이나 무기 같은 아이템 등이 ‘무생물’ 방어 타입을 가지고 있다.

(착용할 수 있는 장비의 경우, 착용했을 시 내구도 소모가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다.)

무생물 방어 타입은, ‘마법’ 속성의 공격에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는다.(Magic Immune)

무생물 방어 타입은, ‘물리’ 속성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90~95퍼센트만큼 감소시킨다.

무생물 방어 타입은, ‘공성’ 속성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200~250퍼센트만큼 입는다.

*모든 계수는 실험을 통해 추측된 대략적인 수치이며, 정보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위 글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듯, 성벽을 일반적인 방법으로 파괴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다.

그리고 이것은 가상현실의 현실성을 좀 더 높여주기 위한 카일란 기획 팀의 기획 의도였다.

공격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성벽에 창이나 검을 휘둘러서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과거 뿍뿍이가 ‘어비스 터틀’이었던 시절, 등껍질 안으로 들어가 ‘무생물’ 상태가 되었을 때 괴랄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이러한 설정에 기인했던 것이다.

물론 위의 내용에도 써 있듯 ‘공성’타입의 공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최상급 공성병기를 여러 대 끌고 가서 프리 딜을 할 수 있다면, 10초가 아니라 5초 안에도 부술 수 있는 것이 성벽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는 공성병기들의 내구도가 일반적으로 무척이나 약하다는 점이었다.

방어 타워의 공격에 잠시만 노출되도 부서져 버리니, 여러 대는커녕, 한 대조차 성벽 앞까지 가져가는 게 불가능한 수준인 것이다.

어쨌든 샤크란은 눈앞에 펼쳐진 놀랍다 못해 당황스러운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결국 저게 가능하려면, 저 망치 든 놈의 공격 타입이 공성이라는 건데…….’

샤크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공성 타입의 공격 속성을 가진 소환수가 있다는 얘기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다.

“저 미친놈은 어떻게 까도 까도 계속 뭐가 나오는 거지?”

카일란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도 높은 샤크란이기에,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는 괴물 같은 유저.

‘이안’은 카일란 한국 서버에서 샤크란이 유일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있을 순 없지.’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샤크란은 더욱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분명히 놀라기는 했으나, 이 정도로 전의를 잃을 그가 아니었다.

‘어쨌든 성벽이 뚫렸으니 저쪽으로 방어 병력이 집중될 테고…….’

샤크란의 눈에서 굳은 눈빛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

전마戰馬에 올라탄 샤크란이 검을 높이 치켜들며 큰 소리로 오더를 내렸다.

“용기병, 전원 출정한다!”

타이탄 길드에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내보이지 않고 숨겨두고 있었던, 그야말로 회심의 패.

샤크란이 그것을 꺼내들자, 옆에 있던 에밀리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마스터, 용기병은 최후에 리치 킹을 상대할 때 꺼낸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공중 유닛인 ‘용기병’은 방어 타워들이 즐비한 공성전에서는 쉽사리 꺼내 들기 힘든 패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성병력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적의 허점을 찌를 수 있는 훌륭한 카드가 될 터였다.

“이번 전투에선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겠어, 에밀리.”

“예?”

“오늘은 공성 보너스를 포기하고, 에픽 보너스로 노선을 바꾼다.”

샤크란의 말을 잠시 곱씹던 에밀리의 두 눈이, 잠시 후 살짝 확대되었다.

그의 판단이 무척이나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용기병들을 이용해 450레벨쯤 되는 에픽 어둠술사 위주로 암살하는 전략을 쓰면……. 공성 보너스 못지않은 공헌도를 쌓을 수도 있겠어.’

타이탄 길드의 책사답게 순간적으로 샤크란의 전략을 이해한 에밀리가 감탄어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마스터……!”

“로터스 녀석들이 정면을 뚫는 동안, 후방으로 들어가서 허를 찔러 보자고.”

캬아아오!

십수 마리 정도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용들이, 타이탄의 진영에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샤크란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후후, 이안. 이번에는 네놈이 놀랄 차례다.’

* * *

타이탄 길드의 용기병은, 놀랍게도 과거 이안이 용신 세카이토로부터 지원받았던 용기병과 같은 외형을 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계의 NPC들이었던 그들보다 티어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왕국군이 운용할 수 있는 어떤 병력들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용기병들이 등장한 순간 수성병력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호, 용기병이라……. 저걸 대체 어떻게 얻은 거지?’

용기병을 발견한 이안은, 샤크란의 기대처럼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뿐, 이안의 놀라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용기병의 위력이 별로여서는 아니었다.

세카이토의 용기병들에 비해 부족하다 뿐이지, 이안이 보기에도 그들은 충분히 강력했으니 말이다.

다만 타이탄 길드의 용기병들이 이안이 알던 용기병과 외형만 같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저 용기병들이 중간계의 콘텐츠와 관련이 없는 녀석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에이, 난 또 중간계의 용기병이라도 데려온 줄 알았네.’

심지어 이안은 타이탄 길드에서 꺼내 든 회심의 카드를 오히려 쌍수 들고 환영하기 시작했다.

“이야, 역시 타이탄 길드!”

이안의 감탄에, 옆에 있던 훈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왜 그래, 형?”

“저기 용기병 보이냐?”

그리고 용기병을 발견한 훈이의 입에서도, 반사적으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용기병이라고? 정말? 오오……!”

이어서 이안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흐흐, 샤크란 아재가 우릴 작정하고 도와주는데?”

이안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대번에 파악한 훈이도 그에 맞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게. 다음에 하린 누나 가게에서 밥이라도 한번 대접해야 하겠는걸?”

애초에 타이탄 길드와의 경쟁보단 시간 내에 퀘스트를 완료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두 사람.

때문에 샤크란의 예상과는 달리 둘은 타이탄의 병력이 활약할수록 오히려 환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샤크란 아재가 저렇게 열심히 도와주는데, 우리도 더욱 분발해야겠어.”

“그러게. 나 쪼금 감동 먹었어, 형.”

씨익 웃으며 흑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하는 훈이.

그런 훈이를 보며, 이안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자, 토르! 용기병들이 뛰어 놀기 좋도록, 우린 방어 타워부터 싸그리 철거해 주자고!”

그어어어-!

토르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로터스 길드 마법사들의 집중 지원을 받아 온갖 버프들로 떡칠된 토르가, 망치를 휘두르며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쿵- 쿵- 콰쾅-!

그리고 토르가 날뛰며 망치를 휘두를수록, 성벽은 더욱 넓게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몇 분 정도가 지나자, 안으로 일개 부대가 진입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부대를 통솔하여 성 안쪽으로 진입한 이안이 소환수들의 스킬들을 빠르게 체크하였다.

‘파괴의 망치질 재사용 대기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고…….’

이안의 눈이 어둠의 성 안쪽에 있는 방어 타워들을 빠르게 스캔하기 시작했다.

‘타이탄의 용기병들이 최대한 활약하려면 대공타워들을 우선적으로 철거해야겠지.’

용기병들은 물론 와이번 나이트와 같은 공중 유닛들은, 사실상 왕국에서 양성할 수 있는 병력들 중 최상위 티어에 속하는 강력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대공타워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지상군은 공격할 수 없지만, 공중에 특화되어 무지막지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특이한 방어 타워.

카일란의 기획팀은 대공타워를 무척이나 강력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은 공성전의 밸런스 때문이었다.

성벽을 아무런 제약 없이 넘어올 수 있는 공중유닛들의 존재가 공성전의 밸런스를 붕괴시키기 너무 쉬웠던 것이다.

심지어 대공타워들은 일반 타워에 비해 배 이상 되는 내구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공성전에서는 아예 무시해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대공타워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공성전에서 공중병력 운용을 아예 포기해 버리고 지상군으로만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하지만 토르와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지!’

이안은 눈을 반짝이며,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의 뒷모습을 응시하였다.

느릿느릿한 공격 속도지만 방어 시설 철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하는 기특한 녀석.

쿵! 쿵!

‘파괴의 해골기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괴 본능이라도 있는 것인지, 녀석은 눈앞에 보이는 타워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안이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쿵- 쿵- 쾅-!

묵직한 두 번의 발소리에 이어 그대로 해머를 내려치는 토르.

-소환수 ‘토르’가 ‘어둠의 공격 타워Ⅱ’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둠의 공격 타워Ⅱ’의 내구도가 2,251,155만큼 감소합니다!

-‘무생물’을 공격하였으므로, 추가 피해가 발동합니다.

-‘어둠의 공격 타워Ⅱ’의 내구도가 1,125,102만큼 감소합니다.

단 한 방에 걸레짝이 되어 버리는 하급 방어 타워를 보며, 이안은 싱글벙글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 ‘동상이몽’중일 샤크란을 위해 성실히 타워를 철거해 줄 차례였다.

‘후후. 아재, 내성으로 진입해서 네임드 위주로 공략하려는 모양인데…….’

샤크란을 떠올린 이안의 한쪽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아주 열심히 서포팅해 주도록 하지.’

로터스 길드의 유일한 경쟁 상대이자 호적수라 할 수 있는 타이탄 길드.

하지만 지금의 샤크란과 타이탄 길드는 이안에게 단지 성실한 일꾼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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