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69화 (48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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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의 망치질 (1)

루시아와 더불어 YTBC의 양대 간판 리포터인 하인스.

그는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방송국에 들어섰다.

‘후후, 오늘은 여러모로 재밌겠는걸.’

하인스의 기분이 상기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오랜만에 인간계의 모든 유저들이 힘을 합치는 초대형 전투를 중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LB사에서 개발하여 이번에 처음 배포한 신상품인 ‘방송용 캡슐’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 가지 이유 중에서도, 사실 하인스를 흥분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후자였다.

지금까지 게임 방송사의 카일란 중계는 거의 대부분이 ‘수정구’를 통한 중계로 한정되어 있었다.

전장에 떠다니는 수정구를 통해 송출되는 화면을 방송국에 있는 리포터와 캐스터가 해설하며 진행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가끔 리포터가 카일란에 접속하여 직접 개인영상을 송출하며 방송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방송으로 편성되는 대부분의 콘텐츠가 리포터들의 수준으로 범접하기 힘든 높은 레벨대의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LB사에서 최초로 보급한 ‘방송용 캡슐’은 이야기가 달랐다.

카일란 최초로 ‘마스터 옵저버 모드Master Observer Mode’를 지원하는 캡슐인 것.

옵저버 모드는 말 그대로 관찰자의 시점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카일란은 이 옵저버 모드를 따로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어떤 RPG 게임도 옵저버 모드를 지원하는 경우가 없었으니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었다.

그러나 게임 방송사를 비롯한 수많은 유저들은 카일란에서 만큼은 옵저버 모드를 지원해 주기를 바랐다.

방송 중계의 편의를 위함은 물론, 일반 유저들 중에도 직접 플레이하는 것만큼이나 옵저버 모드로 다른 유저의 플레이를 함께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여 LB사에서 첫 번째로 선보이게 된 옵저버 모드가 바로 ‘마스터 옵저버 모드’.

마스터 옵저버 모드는 LB사에서 제공하는 특별한 캡슐로만 이용이 가능하다.

또, 이용 약관을 어길 시에는 LB사에서 임의로 IP를 밴Ban할 수 있다.

이 새로운 모드에 이처럼 제약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마스터 옵저버 모드의 권한이 상당히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이든 좌표든, 원하는 모든 시점으로 접속하여 화면을 송출할 수 있는 권한. 심지어는 몬스터나 NPC의 시점으로도 접속이 가능했으니, 활용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권한이 아닐 수 없었다.

‘원하는 모든 대상의 시점으로 옵저빙을 할 수 있다니……. 정말 다이나믹한 연출이 가능하겠어.’

때문에 LB사에서는 마스터 옵저버 모드로의 접속을 사전에 고지된 정규 방송 일정에 한해서만 할 수 있도록 약관을 명시해 놓았다.

그렇지 않으면 유저들의 개인 정보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방송 중 옵저버가 머문 시간에 비례하여 방송 수익의 일부분을 유저에게 분배해야 한다는 약관도 명시되어 있다.

물론 그밖에도 수많은 까다로운 약관들이 존재했지만, 그 어떤 게임 방송사에서도 개의치 않았다.

이 마스터 옵저버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에 따라, 영상의 퀄리티 차이가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안이나 샤크란 같은 랭커를 상대하는 시점에서 촬영한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

방송실로 향하는 하인스의 걸음이 점점 더 빨라진다.

아직 방송 시간까지는 한 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지만, 얼른 신형 캡슐에 접속하여 마스터 옵저버 모드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 * *

최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회사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김영우는 오랜만에 TV 앞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지금도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무리를 해서 반차를 내고 일찍 퇴근을 한 그였다.

‘오늘만큼은 YTBC 정규 방송을 놓칠 수 없지.’

이미 엊그제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어둠의 군대 섬멸전’ 방송.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는 물론 LB사에서도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번 방송은 모든 카일란 유저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일란의 광팬인 김영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연출법을 도입한 방송이라는 홍보 문구도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다른 것들을 전부 떠나서 인간계 랭커들이 대거 참전하는 ‘어둠의 군대 섬멸전’이라는 콘텐츠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리 시켜 놓은 치킨의 다리 한쪽을 뜯어 낸 영우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아, 언제 시작하는 거야? 쓸데없는 광고 좀 줄었으면 좋겠네.”

시선은 TV 화면에 고정한 채로 연신 툴툴거리는 영우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고대하던 카일란 방송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YTBC의 리포터 루시아.

-하인스입니다.

-지금 이곳이 어딘가요, 하인스 님?

-여기가 바로 카일란에 현존하는 최고 레벨대 사냥터, 유피르 고원입니다.

-와아, 그렇군요. 전 오늘 처음 구경하네요. 하인스 님은 유피르 고원에 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하하, 저도 직접 와 본 적은 없습니다만, 방송을 통해 본 적은 몇 번 있습니다.

-그렇군요.

두 리포터의 방송 진행은 언제나처럼 물 흐르듯 매끄럽게 연결되었다.

영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방송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크, 저기 저 시커먼 성곽 안쪽에 어둠의 군대가 있다는 말이지?”

두 리포터는 오늘 진행될 전투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 뒤, 이어서 새로 도입된 마스터 옵저버 모드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옵저버 모드에 관한 설명은 참을성 없는 영우에게 지루할 따름이었다.

“아, 쓸데없는 설명 그만하고 빨리 전투 화면을 보여 달라니까…….”

그러나 잠시 후, 영우의 중얼거림에 어린 불만은 곧 의아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안 개인 방송도 아니고 정규 방송인데, 어떻게 이안 시점으로 영상이 송출되는 거지?”

옵저버 모드에 대한 설명을 흘려들은 영우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화면 전환이었다.

그리고 영우의 ‘의아함’이 ‘감탄’으로 바뀌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키야아, 미쳤다!”

어느새 화면에 송출되고 있는 영상은 황금빛 갑주를 두른 ‘거대한 해골기사’의 시점이 되어 있었으니까.

콰콰쾅- 콰쾅-!

황금빛의 거대한 망치가 허공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더니,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져 내린 듯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영우는, 마치 자신이 해골기사가 되어 망치를 휘두르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 * *

“서포터들, 토르한테 보호막 좀 걸어 줘!”

“예, 폐하!”

“알겠어요, 이안 님!”

지금 로터스의 전력은 최대한 빨리 적진을 뚫고 성벽 가까이 다가가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이안의 소환수 ‘토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삼각형의 구도가 되어 어둠군단의 방어전선을 집요하게 공략하는 로터스의 대군.

선두에서 열심히 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를 보며 이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토르의 망치질은, 골렘조차도 맞아주질 않는군.’

어둠군단의 주병력 중 하나인 다크골렘은 골렘류 중에서는 가장 민첩성이 빠른 몬스터이다.

하지만 골렘 중에서 ‘비교적’ 빠르다는 것일 뿐.

답답할 정도로 느린 움직임을 가진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토르의 망치는 잘만 피해서 움직였다.

이안과 함께 토르가 나아갈 길을 뚫던 훈이가 답답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이거 진짜 비밀병기 맞아?”

“그렇다니까.”

“골렘도 못 맞추는 멍텅구리를 대체 어디다 쓸 건데?”

“공성에 쓴다니까?”

“공성?”

하지만 이안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훈이의 답답함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공성에 사용한다는 이안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저 망치로 성벽이라도 부수겠다는 거야, 뭐야?’

사실 이안의 말을 훈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저 무식한 녀석이 공성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성벽을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것 정도밖에 없어 보였는데, 그것은 훈이가 생각하기에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성벽을 부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공격력이 아무리 세 봐야 몇 만이 나오진 않을 텐데, 저 느린 공격속도로 어느 세월에 성벽을 부숴?’

성벽의 내구도는 몇 백만을 넘어 1천만 단위에 육박한다.

어쭙잖은 공격력으로 부술 만한 레벨이 아닌 것이다.

만약 이안이 아닌 다른 유저가 같은 말을 했더라면 속으로 실컷 비웃어 주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이안이다.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적어도 훈이 자신보다는 빠를 게 분명한 이안이, 말도 안 되는 전략을 생각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대체 뭘까?’

훈이는 거대한 해골기사의 갑주에 무슨 비밀이라도 담겨 있는 것은 아닐지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로터스의 군대는 점점 성벽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전투는 점점 더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키아아악, 감히 인간들이 샬리언 님의 땅에 발을 들이다니!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네임드인 듯 보이는 어둠술사의 포효와 함께 성벽 위쪽에서 수많은 어둠의 구체가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이안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는 상위 티어의 어둠속성 공격 마법이었다.

“데스 메테오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낮은 읊조림.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시커먼 운석들이, 로터스의 대군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후방에 있던 피올란이 다급한 표정으로 이안에게 물었다.

“이안 님, 일단 한 템포 물러설까요?”

데스 메테오는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투사속도가 무척이나 느리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발동된 것을 확인한 뒤에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해서 일반적인 경우라면, 피올란의 말처럼 한 템포 뒤로 물러서는 것이 대응책이다.

메테오가 전부 바닥에 떨어져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진입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퇴각하는 과정에서 진영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병력 손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실드 계열의 마법으로 막아 내는 것보다는 한 발 물러서는 편이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안은 피올란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뺄 필요 없어요, 피올란 님. 그대로 밀고 들어가죠.”

“네에?”

“여기서 한 발 빼면 악순환이 시작될 겁니다. 데스 메테오 쿨타임 엄청 짧은 건 알고 계시죠?”

“그건…… 그러네요.”

로터스의 군대가 물러서는 동안 어둠술사들의 데스 메테오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안의 말처럼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럼 어쩌죠? 실드 마법이라도 전부 다 연계해야 할까요?”

피올란은 이 난전 속에서도 침착하게 이안과 의사소통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안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안이 씨익 웃으며 피올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물러설 필요도, 실드 마법 쏟아부을 필요도 없어요.”

“……?”

“그냥 무시하고 돌파하면 됩니다. 뒷일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죠.”

말을 마친 이안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뛰어오른다.

타탓-!

이어서 눈 깜짝할 사이 소환수 ‘토르’의 어깨에 올라선 이안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오더를 내렸다.

“눈앞에 방어선을 뚫는 데 집중하라!”

멀리서 다가오는 운석들을 발견한 로터스의 유저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곧바로 이안의 오더에 따라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안의 오더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단 한 명의 길드원도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잠시 후면 수십, 수백의 병력이 증발해 버릴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그 순간, 전장 한복판에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아아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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