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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병기의 등장 (3)
* * *
쾅- 콰콰쾅-!
거대한 망치가 떨어져 내린 순간, 강렬한 번개가 내리치더니 그 일대가 그대로 초토화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번개가 ‘내려친’ 것은 아니었다.
번개를 닮은 강렬한 기운이 스파크처럼 튀어 올라가며 거꾸로 솟구치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땅에서부터 역으로 솟구쳐 오르는 번개라고 해야 할까?
“크, 이펙트까지 완전 취향저격이구만.”
이안은 흡족한 미소를 베어 물며, 새롭게 얻은 소환수인 ‘토르Thor’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고대 게르만족의 신이자, 묠니르Mjolnir라는 거대한 망치를 휘두른다는 전설 속의 존재인 토르.
묠니르는 철퇴라는 말도 있고 망치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녀석의 망치가 떨어져 내리며 모든 것을 부숴 버리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바로 ‘토르’였으니까.
“토르, 파괴의 망치질!”
그어어어-!
토르의 고유 능력은 단 두 개.
그리고 그중에서도 하나는 패시브 스킬이었기 때문에, 전투 중에 발동시킬 만한 스킬은 한 개뿐이었다.
바로 ‘파괴의 망치질’.
파괴의 망치질은 그 이름과 무척이나 어울리는 고유 능력이었다.
떨어져 내린 자리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벼락같은 망치질이었으니 말이다.
고오오오!
토르가 망치를 하늘 높이 치켜들자, 허공에서 거대한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어서 집채만 한 쇠망치의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기의 파동이 빨려 들어갔다.
‘5초’라는 비교적 긴 차징 시간을 가진, 누구도 맞아 주지 않을 것 같은 기술.
하지만 이안은 처음부터 이 ‘핵 망치’를 맞추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떡대, 어비스 홀!”
쿠오오오-!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소환수 ‘떡대’가 가진 최고의 CC기인 ‘어비스 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떡대의 어비스 홀이 던전 내의 수많은 스켈레톤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그 위치는 바로 핵망치가 떨어져 내릴 지점이었다.
키에에엑-!
켈켈-!
CC에 걸려 옴짝달싹못하는 스켈레톤들이 처량한 표정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토르의 망치가 멈출 리는 없었다.
허공을 가득 채운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황금빛 망치가 어비스홀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콰쾅- 콰콰콰쾅-!
-소환수 ‘토르’의 고유 능력, ‘파괴의 망치질’이 발동하였습니다.
-소환수 ‘토르’가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스켈레톤 워리어’의 생명력이 289,809만큼 감소합니다.
-‘스켈레톤 아처’의 생명력이 318,982만큼 감소합니다.
-소환수 ‘토르’가 경혐치를 9,801,928만큼 획득하였습니다.
-소환수 ‘토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소환수 ‘토르’가 126레벨로 성장하였습니다.
-소환수 ‘토르’가 127레벨로 성장하였습니다.
파괴의 망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맞추기 힘들만큼 긴 차징 시간을 가진 대신, 그만큼 강력한 계수를 가지고 있는 공격스킬이다.
게다가 토르의 공격력은, 지금까지 이안이 보아 온 어떤 소환수들과 비교하더라도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심지어 카르세우스보다도 말이다.
‘모든 전투 능력이 공격력이랑 방어력에 몰빵되어 있으니까.’
물론 DPS로 따지자면, 카르세우스가 토르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이다.
레벨이 같다고 가정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히 ‘민첩성’의 차이 때문이었다.
공격력 자체는 토르가 더 높겠지만, 공격 속도가 배 이상 차이나는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 보여 줄 수 있는 최고 피해량은, 단연 토르의 압승일 것이었다.
고작 127레벨로 30만이 넘는 대미지를 띄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현재 토르의 공격력은 5,334.
이것은 거의 카르세우스가 150~160레벨 정도일 때 보여 주었던 수치였다.
‘거기에 파괴의 망치질 계수가 2,500퍼센트니까 말 다했지.’
더해서 이렇게 무지막지한 토르의 공격력은, 토르의 레벨 업 속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1레벨에서 사냥을 시작한 지 3시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127레벨이 된 것이다.
토르의 공격력이 강력하다고 해 봐야 아직 사냥 속도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레벨 업 속도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일까?
그 비밀은 카일란의 경험치 획득 시스템과 관련이 있었다.
‘막타 경험치 보너스가 이렇게 요긴할 줄은 몰랐지.’
카일란의 경험치 획득 시스템은 무척이나 복합적이다.
기본적인 분배방식에 더하여, 전투에 기여한 수준에 따라 보너스 경험치를 더 얻기 때문이다.
특히 적이 사망하는 순간 마지막 타격을 가했을 경우 가장 많은 보너스 경험치를 얻게 되는데, 토르의 강력한 공격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토르의 공격력이 아무리 강하다 하여도, 100레벨이 겨우 넘은 주제에 400레벨대 몬스터들을 때려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안이 양념해 놓은 몬스터들의 ‘막타’ 정도는 가능한 공격력이 나오는 것이다.
덕분에 피닉스를 키울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토르의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속도대로라면, 전쟁이 시작될쯤 180~200레벨 정도는 노려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흐흐, 피닉스도 이제 300레벨이 다 되어 가고……. 두 녀석 다 제대로 써먹어 볼 수 있겠어.’
빠르게 성장하는 토르를 보며 이안의 양쪽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어서 토르의 저 거대한 망치가 방어 타워에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안이었다.
* * *
둥둥둥!
커다란 북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전고戰鼓의 묵직한 울림.
이어서 ‘새까맣다’는 표현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수많은 병력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근 몇 개월간 카일란에 있었던 어떤 전투보다도 커다란 규모.
인간계의 거의 모든 유저들이 뭉쳤으니,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널따란 설원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칠흑빛 성곽을 보며, 샤크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터스가 주도하여 시작된 전쟁이긴 하나, 기왕 이렇게 된 거 주도권을 계속 그쪽에 쥐어 줄 필요는 없겠지.”
그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마스터. 우선 공헌도부터 최대한 많이 쓸어 담아서 로터스의 콧대를 눌러 줘야 합니다.”
현재 리치 킹 에피소드의 공헌도는 로터스 길드가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로터스 왕국의 위치가 어둠의 군대와 끊임없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일하게 로터스와 대적할 만한 길드인 타이탄은, 서남부에 위치해 있다.
로터스에 비해 어둠의 군대와 맞싸울 일이 현저히 적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헌도를 쌓을 기회도 당연히 적을 수밖에 없는 것.
원래 타이탄은, 에피소드 공헌도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제국 콘텐츠를 선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기회가 온 이상 손 놓고 있을 이유도 당연히 없었다.
하여 타이탄이 이번 전쟁에 참여한 목적 중 하나가 바로, 벌어진 공헌도의 격차를 최대한 메우는 것이었다.
현재 격차가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책사인 에밀리는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남아있는 예산이란 예산은 공성병기에 전부 때려 박았으니……. 이걸로 역전을 노려 볼 수 있을 거야.’
에피소드 공헌도는, 어둠의 군대를 상대하는 모든 플레이에서 얻을 수 있다.
어둠의 군대 말단 스켈레톤 병사 하나를 사냥해도 얻을 수 있으며, 관련 던전을 클리어하거나 퀘스트를 완수해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플레이에서 같은 공헌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공헌도란 말 그대로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는 데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수치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헌도를 많이 주는 플레이 또한 따로 존재했다.
그리고 에밀리가 노리는 것은 바로, 어둠군대의 시설물들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일전에 외곽에 있던 병기창고 하나 파괴했을 때도 어마어마한 공헌도가 들어왔었지. 아마 내성이라도 파괴하면 천문학적인 공헌도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에밀리의 머릿속에 항상 능글맞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안의 얼굴이 떠올랐다.
‘녀석도 분명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텐데. 공성병기의 수준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 나려나?’
에밀리의 시선이 자연스레 로터스 왕국군의 진영을 향해 움직였다.
로터스의 진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로터스의 진영을 한차례 훑는 에밀리.
그런데 다음 순간, 에밀리의 두 눈이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저, 저건 대체 뭐지……?”
옆에 서 있는 골렘이 작아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 해골기사가 등장한 것이었다.
에밀리는 자신도 모르게 육성으로 중얼거렸고, 옆에 있던 샤크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지, 에밀리?”
그에 에밀리가 곧바로 손가락을 뻗으며 로터스의 진영을 가리켰다.
“마스터, 저 거대한 해골에 대해 혹시 아시는 게 있습니까?”
그와 동시에 샤크란은 에밀리가 말하는 ‘거대한 해골’이 어떤 녀석을 말함인지 알 수 있었다.
전장의 한복판에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우뚝 솟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눈에 잘 띄는, 휘황찬란한 황금빛 갑주를 둘둘 두른 채로 말이다.
잠시 동안 입을 다문 채 스켈레톤을 지켜보던 샤크란이,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 쓸모없어 보이는 고철덩이는 대체 뭐야?”
샤크란의 말에, 에밀리가 반사적으로 반문했다.
“예에?”
“저 녀석 움직임을 잘 보라고, 에밀리.”
“보고 있습니다, 마스터.”
“저 무식한 망치질에 과연 누가 맞아 줄까?”
“아?”
과연 샤크란의 말처럼, 스켈레톤의 망치는 연신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그나마 난전이기 때문에 가끔 피해를 입힐 수 있기는 했지만, 망치를 제대로 명중시키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망치를 한 번 휘두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거의 2초 수준.
그야말로 ‘꽝’에 가까운 공격 효율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마스터께서 눈썰미는 뛰어나시네요.”
“에밀리 너도 조금만 집중해서 봤더라면 알 수 있었을 사실이야.”
“그건 그렇지요.”
“어쨌든 저 녀석은, 딱히 신경 쓸 필요 없겠어. 이펙트가 화려해서 나도 잠깐 긴장했는데,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르겠지만 고기방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샤크란과 에밀리의 시선이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향해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두 사람의 흥미는 금방 떨어져 버렸다.
무식한 해골바가지에 신경을 쏟기에는, 전장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길을 뚫어라! 우리가 제일 먼저 성곽까지 도달해야 한다!”
샤크란의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타이탄 길드의 길드원들이 일제히 전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로터스와 타이탄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