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61화 (47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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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길 (2)

* * *

한가롭기 그지없는 어느 주말의 오후.

오랜만에 업무에서 벗어나게 된 나지찬은 게임 방송을 시청하며 휴식을 즐기기로 결정했다.

“역시 카일란은 보는 게 재미지단 말이지.”

장시간 카일란 방송을 시청하기 위해 감자칩까지 세 봉지 준비한 나지찬은 얼마 전 구입한 빔 프로젝터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프로젝터를 구매한 이유는 답답한 모니터를 벗어나 대형 스크린으로 카일란 방송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지찬이 선호하는 게임 방송은 TV의 게임 채널에서 나오는 정규 방송이 아니었다.

변수도 많고 콘텐츠도 더욱 다양한, 게다가 특정 유저의 플레이 위주로 시청할 수 있는, 날 것에 가까운 인터넷 BJ들의 방송이 나지찬에게는 더욱 재미 있었던 것이다.

아그작-!

바삭바삭한 감자칩의 식감을 음미하며 천천히 방송 목록을 살피기 시작하는 나지찬.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그의 첫 번째 타깃은 이안의 방송이었다.

‘최근에 이안갓 방송을 본 지가 좀 된 것 같은데……. 오늘은 또 뭘 하고 있으려나?’

나지찬은 이안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꿰고 있었지만, 근 일주일 동안은 그러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의 제공자가 바로 이안이었다.

‘후, 새 콘텐츠 만든다고 피똥싼 걸 생각하면…….’

심지어 이안 덕분에 생긴 새 일거리는, 아직 마무리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오늘 하루 쉬고 나면 다시 야근지옥이 펼쳐질 예정이었던 것이다.

이안이 뮤란으로부터 받은 ‘영웅의 책임’ 퀘스트를 완료하기 전에, 즉 이안이 리치 킹을 처치하기 전에, 꼭 완성해 내야만 하는 ‘유니크 듀얼 클래스’ 콘텐츠가 기획 팀에게 생각보다 더 큰 골칫덩이였던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퀘스트 실패하라고 고사라도 지내고 싶지만…….”

탁- 타탁- 탁-!

능숙하게 인터넷 방송으로 접속한 나지찬은, 곧바로 검색창에 ‘BJ 라오렌’을 입력하였다.

‘이안’을 검색어로 사용하여 검색하면, 너무 방대한 양의 영상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안의 플레이영상 외에도, 이안과 전혀 관련되지 않은 쓸모없는 영상도 비일비재했다.

가령…….

-이안갓 따라잡기(소환술사 지침서)

-BJ 케인의 이안급 매드무비

……라든가, 심지어는 낚시 성 제목도 종종 눈에 보였다.

-이안과의 24시간 파티 사냥

“어? 이안이랑 파티 사냥을 한다고?”

혹해서 클릭해 보면…….

-헐 님들, 이건 사기죄로 고소각 아님?

-그러게. 당장 고객센터에 문의 때려야겠음.

-ㅋㅋㅋ 왜요. 재밌기만 하구만.

-……이안이랑 파티 사냥이라고 해서 들어왔더니 소환수 이름이 이안일 줄이야…….

소환수나 가신의 이름을 이안이라고 지어 놓고 ‘이안과의 파티 사냥’ 따위의 낚시 성 제목을 올려 놓는 BJ가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전속 BJ인 ‘라오렌’을 검색하여 들어가면 곧바로 이안의 최신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라오렌 이 친구는, 줄 한번 기가 막히게 잘 섰지…….”

나지찬은 피식 웃으며, 라오렌의 개인 방송 채널에 곧바로 접속하였다.

방송이 시작된 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은 걸 보니, 앞으로 최소 12시간 정도는 방송을 즐길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이안이 카일란 접속 후 12시간 안에 게임을 종료할 확률은, 나지찬이 내일 칼퇴근 할 확률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타이밍 좋고……!”

흡족한 표정으로 쇼파에 몸을 기댄 나지찬은 느긋하게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인지라, 본격적인 게임 방송이 시작되기 전 송출되는 광고조차도 재밌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문득 라오렌의 방송에 걸려 있는 타이틀을 확인한 나지찬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뭐? 켠 김에 엘리카 왕성까지?”

원래대로라면 방송에 접속하기 전, 타이틀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지만 나지찬은 방송의 제목을 보고 들어온 게 아니라 BJ라오렌의 이름을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뒤늦게 타이틀을 확인한 것이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영지 19개 점령 24시간 컷이라니.”

일반적으로 아무리 허접한 영지라도, 공략하는 데 반나절 정도는 잡아야 하는 게 상식이었다.

로터스의 전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인 것이다.

“허…….”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버린 나지찬의 두 눈동자에 깊은 불신이 차올랐다.

‘뭐지? 내가 모니터링 하지 않은 사이에 이안갓이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지?’

불안으로 인해 가늘게 떨리는 나지찬의 동공.

‘유니크 듀얼 클래스 완성하려면, 아무리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아도 보름은 더 필요한데……. 이 타이밍에 벌써 엘리카 왕성을 점령하겠다고?’

게다가 계획 자체도 비현실적이기 그지없었다.

24시간 안에 열아홉 개의 영지를 점령하겠다는 말은, 거의 1시간에 한 곳씩 격파하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기획자인 나지찬이 보기에 이 계획은, 버그성 플레이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 타이틀을 걸고 방송하는 BJ가 라오렌이 아니었더라면 나지찬은 콧방귀를 끼며 넘겨버렸을 것이다.

그저 어그로를 끌기 위해 허황된 제목을 올려놓은, 흔하디 흔한 게임 방송이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BJ가 라오렌인 이상 이것은 절대로 허투루 생각할 수 없는 방송 제목이었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한 나지찬이 광고 하단에 떠 있는 -SKIP 버튼을 클릭했다.

“어디, 이안갓이 또 무슨 미친 짓을 하는지 구경이나 해 볼까?”

스크린 가득 게임 화면을 띄운 나지찬이, 푹신한 쇼파에 몸을 더욱 깊숙이 묻어 버렸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은 소파에서 한시도 엉덩이를 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 * *

여러 번 설명하지만, 엘리카 왕국은 어떤 왕국과 비교해도 그 규모나 세력이 뒤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왕국이었다.

때문에 방송을 시청하는 유저들은, 지금 그들의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적’을 도무지 믿기 힘들었다.

-니, 님들. 지금 방송 시작한지 몇 분 지난 거죠?

-정확히 42분 지났음.

-ㄴㄴ 43분 지났음. 내가 정확히 재고 있음.

-그래. 니 똥 굵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 이거 공성전 끝나가는 거 맞죠?

-ㅇㅇ 맞는 듯하네요.

-저기 내성만 파괴하면 끝인 것 같은데, 아직 50분도 안 지났다고요.

-그러니까요. 나도 지금 내 두 눈을 의심하는 중임.

-지난번에 타이탄 길드 공성전 최고 기록이 몇 분이었죠? 2시간 조금 안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아요. 1시간55분이었나?

-그때도 진짜 엄청나다고 난리였는데, 로터스는 한술 더 뜨네요. 이거 진짜 24시간에 왕성까지 점령할 각 나오나요?

-맞음. 게다가 그때 타이탄에서 점령했던 영지는 이상한 듣보 남작령이었는데, 방금 로터스가 점령한 영지는 심지어 자작령임.

-헐, 그러네. 마이카 영지 여기 자작령이었네.

-미친; 당연히 남작령인 줄 알았는데…….

BJ 라오렌의 방송의 80퍼센트 정도는, ‘로터스’ 길드, 혹은 ‘이안’과 관련된 영상이다.

때문에 라오렌의 방송이 오픈되기만 하면, 알림을 설정해둔 수많은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들어차곤 했다.

오픈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해서 5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모이는 것이 평균 수치.

그런데 오늘은 30분이 지나는 시점에 무려 세 배가 넘는 시청자들이 모여들었다.

어지간한 인기 BJ들이 방송 피크 타임에도 달성하기 힘든 15만 시청자를, 고작 30분 만에 달성해 낸 것이다.

이것은 라오렌으로서도 믿기 힘든 수준이었다.

‘와, 씨. 제목 어그로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데?’

라오렌이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며 방송하는 이 순간에도, 시청자들은 미친 듯이 유입되고 있었다.

시청자들에게 추천을 유도해서 방송랭킹을 올리는 따위의 진행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방송에 대한 정보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트래픽이 터질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개인방송 홈페이지의 메인에 노출되는 각종 랭킹순위는 이미 전부 1위를 석권한 지 오래.

라오렌의 머릿속에 불안이라는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이러다가……. 매출 억대 찍는 건 아니겠지?’

라오렌이 이안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현금으로 환산하면 총 6천만 원 정도.

반면에 수익분배로 제시받았던 정산비율은 전체 수익의 30%였다.

즉, 이번 방송의 매출이 2억을 돌파하지 못해야만 라오렌의 선택이 옳은 선택으로 증명되는 것.

라오렌은 이번 콘텐츠의 매출이 2억을 돌파하는 순간, 매출 1만 원당 1분씩 배가 아파 올 것만 같았다.

‘후,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라오렌은 어질어질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다시 방송에 몰두했다.

그리고 본인이 해설하면서도, 로터스의 이 미친 공성전에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게 뭔가요? 히든 게이트Hidden Gate 좌표는 대체 로터스에서 어떻게 알아낸 거죠?”

“피올란! 피올란의 프로즌 메테오가 떨어집니다! 어떻게 이런 플레이가 가능한 걸까요? 성벽 뒤쪽에 지원 부대가 있는 걸 예측이라도 한 걸까요? 정확히 그 위치에 메테오가 연속해서 세 번 떨어집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내성이 전부 파괴됐어요! 자작령 외성부터 내성까지 뚫리는 데 걸린 시간이 정확히 49분이예요! 이정도면 방어벽이 아니라 고속도로라고 봐야죠!”

침까지 튀겨 가며 해설에 몰입 중인 라오렌.

그의 방송은 항상 열정적이었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흥분한 상태였다.

최상위 랭커들로 구성된 로터스 유저들의 화려한 컨트롤이나 강력한 스킬들도 충분히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귀신같은 공성 능력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지원부대의 퇴로를 끊어먹으며, 숨겨진 진입로를 찾아 잠입하는 등 로터스의 군대는, 마치 방어성 내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의 채팅 창도 폭발 직전이 되었음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거 실화임?

-자작령이 아니라 무슨 주인 없는 일반 거점에 깃발 꼽는 느낌인데요, 이거?

-LB사에서 잠수함 패치라도 한 거 아닌가요?

-무슨 잠수함 패치요?

-공성전 난이도 하향 조정이라던가…….

-노노, 그건 아닌 듯. 바로 옆방에서 라피레스 길드 공성전 보다 들어왔는데, 거긴 지금 남작령에서 피똥 싸는 중임.

-크, 역시 이안갓인가……?

-기승전 이안임?

방송이 오픈된 지 1시간도 지나기 전에 영지 하나를 점령해 버린 이안과 로터스 길드.

라오렌은 목이 타는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냉수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다음 공성전이 시작되기까지 5분 정도는 쉴 수 있었기에, 그동안 잠시 방송을 꺼 두고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다.

쉬지 않고 계속 떠들어 댄다면, 내일부터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후아, 이제 곧바로 다음 공성전인가?”

라오렌조차도 비현실적인 제목이라 여겼던, ‘켠 김에 왕성까지’ 타이틀.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유저라면 누구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 생각지 않을 것이었다.

“자, 다음 영지는 어디지? 라팔렘인가?”

라오렌은 엘리카 왕국의 지도를 훑으며, 로터스 왕국의 다음 루트를 예측해 보았다.

그런데 그때, 라오렌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위잉- 위이잉-!

이어서 라오렌의 시선이,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향해 돌아갔다.

‘뭐지? 지금 전화 올 데가 마땅히 없을 텐데?’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저장되어 있지도 않은 알 수 없는 번호.

만약 방송 중이었다면 라오렌은 가차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을 터였지만, 마침 쉬는 시간이었기에 한번 받아 보기로 하였다.

“여보세요?”

별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댄 라오렌.

그리고 전화 너머에서는 청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하세요?

순간 라오렌은 습관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릴 뻔했다.

평소 라오렌의 번호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동업자인 소진을 제외하고는 여자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진 외에 여자가 전화를 한다면, 대출상담이나 보험회사 광고 전화인 경우가 99%였기 때문.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을 듣는 순간, 스마트폰의 종료 탭을 향해 움직이던 라오렌의 엄지손가락은 그대로 멈춰 버릴 수밖에 없었다.

-게임 방송국 YTBC의 리포터 임은영인데요, 혹시 BJ 라오렌 씨 전화번호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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