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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단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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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의 작은 손에 들려 있는, 새카만 어둠의 파편.
그것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안의 눈에는 그저 잡템으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뭐지? 이걸 왜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오는 거야?’
의아한 표정이 된 이안이 카카에게 물었다.
“이게 뭐야, 카카?”
이안은 묻는 동시에 물건을 받아 들었고, 그 순간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명왕의 목걸이 파편 (A) (봉인)’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
별것 아닌 줄 알았건만, 뭔가 의미심장한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는 아이템의 네이밍이었다.
하지만 이안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봉인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아이템 정보창이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안은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이템의 이름에 파편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과 (A)라는 수식이 붙어 있는 걸 보니, 파편 조각을 전부 모으면 봉인을 풀 수 있는 아이템인 건가?’
그간 주구장창 해 온 RPG 게임들로 인해 내공이 쌓였는지, 이 정도의 추론은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안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앞에서 잠시 뜸을 들이던 카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수천 년을 살아왔지만, 이 물건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인아.”
생각보다 더 거창한 카카의 이야기에, 이안은 점점 흥미가 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뭐기에?”
황홀한 눈빛으로 이안의 손에 올려진 파편을 응시하던 카카가,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명왕의 힘이 담긴 물건. 파편의 모양새를 보니, 아마도 명왕의 목걸이인 것 같다, 주인아.”
그에 이안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그걸 어떻게……!”
“그냥 딱 봐도 목걸이처럼 생겼잖아. 그러니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나 설명해 보라고.”
멋쩍은 표정이 된 카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런가? 무튼 이 명왕의 목걸이는…….”
카카의 설명은 제법 길었다.
하지만 요약하자면 그리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다.
명왕의 목걸이는 총 세 개의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 개의 파편을 전부 모으면 이안의 추측대로 봉인이 풀리며 목걸이가 완성되는 구조였으니까.
그리고 중요한 내용은 지금부터였다.
“명왕의 목걸이는, 명왕을 소환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이다, 주인아.”
카카의 설명에 이안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명왕? 뭐 하는 녀석인데? 소환수로 부릴 수 있는 녀석인가?”
카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한다.
“명왕을 소환수로 부리려면……. 아마 ‘신’쯤은 되어야 할 거다. 명왕은 명계의 왕이자, 저승으로 통하는 차원의 길목을 지키는 파수꾼이기 때문이다.”
“……!”
“아마 주인이 이 목걸이를 완성하면, 명왕이 주인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안이 눈을 빛내며 재차 물었다.
“그래서? 소환하고 나면?”
“그 뒤는 나도 모른다, 주인아. 단지 과거에 어떤 흑마법사가 명왕을 소환하는 데 성공하여 강력한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카카의 설명을 듣는 동안, 이안의 두 눈이 점점 크게 확대되었다.
이 의문의 아이템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게……. 명계로 가는 단서일 수도 있어.’
어쨌건 명왕이라는 녀석이 하는 일은, 저승으로 통하는 길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 말인 즉, 명왕이라면 명계로 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리치 킹’이라면 명계로 갈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다소 두루뭉술한 정보보다는, 이편이 훨씬 구체적이고 가능성 있어 보였다.
‘오호, 이건 의외의 수확인데.’
이안은 카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 주었다.
“짜식, 잘했다. 오랜만에 한 건 했네.”
“후훗, 오랜만이라니. 나는 항상 대단하다, 주인아.”
“그래, 그렇겠지. 그나저나 이 파편은 어디서 찾은 거냐?”
“라카메르가 죽으면서 떨어뜨린 물건이다, 주인아. 배가 부른 주인 놈이 안 줍고 지나가기에, 내가 주워 담았다.”
“……그, 그랬냐?”
카카의 말대로 요즘 이안은,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잡템은 그냥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배가 불러서가 아니었다.
잡템까지 일일이 다 주워 담는 것은 사냥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오늘의 일을 교훈삼아, 이제부턴 모든 아이템을 확인해 보기로 다짐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잡템 주워 담는 용도로 통솔력 소모값 낮은 소환수라도 하나 테이밍해야 하나…….’
어쨌든 뜻밖에 새로운 단서를 얻은 이안은 파편을 인벤토리에 고이 모셔 두었고, 남은 정비를 전부 마쳤다.
뇌옥 구석까지 하나하나 뒤지며, 갇혀 있는 죄수들을 모두 풀어 주기 시작한 것이다.
라카메르가 나타난 바로 뒤쪽의 뇌옥에 대부분의 황실기사들이 갇혀 있었기는 했지만, 다른 뇌옥에 등용할 만한 인재가 하나라도 있다면 무조건 찾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모든 색출 작업이 끝나자, 이안은 남아 있던 퀘스트 하나까지 깔끔하게 완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엘리카 왕의 눈물’ 퀘스트.
과거 엘리카 왕국의 국왕이었던 ‘레무스 엘리카’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띠링-!
-‘엘리카 왕의 눈물 (히든)(돌발)’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남은 제한 시간 : 35분
-클리어 등급 : SSS
-경험치를 17,805,500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치를 20만 만큼 획득합니다.
-‘엘리카 국왕의 징표’ 아이템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무스 엘리카’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그대는 루스펠 제국의 영웅, 이안 대공이로군. 아니, 이제는 로터스 왕국의 국왕이라 해야겠지.”
옥에서 풀려난 레무스 엘리카는 이안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보았다.
그에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어 반문했다.
“나를 어떻게 알고 있지?”
“제국 전쟁에서 활약한 그대의 명성이 온 대륙에 닿았으니, 모르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이 아닌가.”
“…….”
명성이 온 대륙에 닿았다는 둥 낯 뜨거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레무스였다.
그래도 이안으로서는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긴, 내 명성이 이제 2천만이 넘었으니까……. 카일란의 세계에서는 유명인사일 수밖에 없긴 하네.’
피식 웃는 이안을 향해, 레무스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그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과거 나는 루스펠 제국군의 대장군을 지낸 적이 있다. 그대와 같은 전장에서 싸웠던 적이 있다는 말이지.”
“그랬던가?”
사실 레무스 엘리카가 과거 루스펠 제국의 장군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울 것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동남부에 세워진 대부분의 왕국들이, 과거 루스펠 제국 소속의 귀족들에 의해 건국된 곳이었으니까.
또한 이안이 레무스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제국 전쟁이 벌어졌던 3년은, 유저들에게 있어 6시간의 트레일러 영상으로 대체된 기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으로서는 멋쩍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나를 기억하는 옛 친구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난처하면서도 썩 미안한 상황인 것이다.
비록 상대가 NPC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레무스는 무척이나 쿨한 남자였다.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하군.”
“미안할 것 없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뭐 그렇다면야…….”
어쨌든 레무스는, 이안에게 무척이나 우호적인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로터스의 왕인 그대가 이 라타펠의 지하뇌옥을 찾았다는 건……. 지금 나의 왕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뭐, 비슷하다.”
엘리카 왕국은, 레무스에 의해 건국된 왕국이다.
때문에 레무스로서는 왕국에 대한 애착이 없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터스 왕국이 적은 아니었다.
로터스가 왕국을 공격하고 있기는 하나, 이미 엘리카 왕국에는 레무스의 지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안, 그대와 거래를 하나 하고 싶다.”
“거래?”
“그렇다. 결코 그대에게 손해될 만한 제안은 아닐 것이다.”
턱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이야기를 듣던 이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들어나 보도록 하지.”
그리고 대답이 떨어진 순간,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엘리카 왕의 눈물 Ⅱ (히든)(연계)’
당신은 라타펠 영지의 지하 뇌옥에 갇혀 있던 레무스 왕을 구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레무스 왕은, 자신을 지옥 같은 지하뇌옥에서 구출해 준 당신에게 큰 호감을 느끼고 있다.
하여 레무스 왕은 당신에게 하나의 거래를 제안했다.
본인에게 로터스 왕국의 ‘대공’ 자리를 하나 내어 준다면, 엘리카 왕성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비책을 주겠다는 것이다.
일국의 왕이었던 레무스로서는 자존심을 굽히고 들어가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
만약 당신이 제안을 거부한다면, 레무스는 당신에게 크게 실망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없음
퀘스트 조건 : 라타펠 영지 지하 뇌옥 던전을 클리어한 자.
‘엘리카 왕의 눈물 Ⅰ’ 퀘스트를 완수한 자.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연계 퀘스트 발동.
‘레무스 엘리카’와의 친밀도 상승.
*퀘스트를 거절할 시, 레무스와의 친밀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퀘스트의 내용을 빠르게 읽은 이안은, 약간의 고민에 빠졌다.
‘이건 남는 장사일 것 같기는 한데…….’
어차피 레무스를 대공으로 임명한다는 건, 그를 로터스 왕국의 신하로 등용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였다.
그에게 대공의 작위와 그에 걸맞은 영지를 하나 내어 준다고 한들, 이안의 입장에서는 딱히 잃는 게 없는 것이다.
다만 걱정인 부분은 레무스의 능력치가 어떤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국의 왕이었던 레무스의 능력치가 최하위 등급일 리는 없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스텟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가 통치하는 영지의 성장 속도가 더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안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작은 리스크에 비해 남는 것이 훨씬 많은 장사였기 때문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레무스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좋아, 그러도록 하지. 다만 ‘비책’이라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어야 할 거야.”
이안의 말에 레무스는 환한 표정이 되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물론이다. 이것은 오직 나의 도움이 있어야만 실행할 수 있는 비책. 그대가 이 계획에 성공한다면, 어렵지 않게 왕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레무스의 말이 끝난 순간, 이안의 눈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엘리카 왕국의 꼭두각시 (히든)(연계)’퀘스트가 발동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퀘스트의 내용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