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45화 (46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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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단서 (1)

-업무일지 -G30

게이머의 성향에 따른 플레이 방식으로는…….

(중략)

대체로 게임을 잘 못하는 하수들은,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보통의 게이머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즐기려는 목적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면서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하지만 그저 즐기기 위한 게임을 하는 유저들만큼, 승부욕이 강한 유저들도 많다.

이들 중 대부분이 중상위권의 영역에 있는 이들인데, 이들은 다른 유저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어 하고, 더 나은 실력을 갖고 싶어 하며, 더 좋은 아이템을 얻고 싶어 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남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던전 공략에 실패했으면 어째서 실패했는지 생각해 봐야 하며, PK에서 졌다면 패배한 원인에 대해 연구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며 하루하루 실력이 나아지는 유저들.

여기까지가 바로, 중수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단계를 지나 상위권의 랭커가 된 유저들은 어떤 플레이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기획자의 기획 의도를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퀘스트를 받았으면 이 퀘스트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스킬을 얻었으면 이 스킬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이템의 작은 옵션 하나를 확인할 때도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옵션인지를 생각해 보며, 어떤 식으로 옵션을 세팅해야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연구한다.

핵심은, 게임 시스템에 대한 ‘연구’.

끊임없이 연구하고 그 안에서 최고의 효율을 찾아내는 유저들이 상위 10퍼센트 이내의 상위 랭커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노력만으로도 상위 10퍼센트 안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보다 위에 있는 최상위의 영역은, 아쉽지만 노력만으로 될 수 없는 부분이다.

피지컬과 게임 센스.

즉, ‘재능’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가능한 대부분의 플레이를 성공시키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게임 재능을 가진 유저들.

이들이 바로, 카일란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는 랭커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상위 1퍼센트. 아니, 퍼센트의 개념으로 나누기도 애매한 한 자릿수의 랭킹을 가진 유저들은, 어떤 느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을, 단 한 마디로 정의하고자 한다.

‘규격 외의 존재들.’

기획자의 기획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허점을 찾아내고 시스템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공식을 적립시키는, 거기에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한계 이상의 플레이를 기복 없이 보여 주는, 그런 특별한 유저들이 바로 카일란의 최정점에 서 있는 게이머들인 것이다.

수많은 카일란 유저들이 동경하는 대상인 스타플레이어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유저는 단연 ‘이안’일 것이다.

-카일란 수석 기획자 나지찬의 리포트, ‘게이머의 성향 분석’ 중

* * *

라카메르의 회복 스킬은, 소환된 언데드가 입은 ‘피해량’만큼 본인의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안은 이 시스템 안에서 ‘파훼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열쇠는 바로 ‘소환물이 입은 피해량’이라는 부분이다.

이안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그러니까…… 결국, 소환물이 입을 피해만 최소화시킬 수 있으면 된다는 얘기잖아?’

만약 그의 생각을 누군가 듣기라도 했다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들릴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방금 전 이안의 실험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입힌 피해량’이 아닌 ‘입은 피해량’.

즉, 회복 계수에 적용되는 ‘피해량’이 피격자의 기준에서 적용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풀어 설명하자면, 수백만의 공격력을 가진 공격에 당하더라도 생명력이 10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10을 초과하는 피해를 입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라카메르는 10의 생명력밖에 회복하지 못하리라.

이안은 방금 실험으로 확신을 얻을 수 있었고, 곧바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훈아, 소울 러스트Soul Rust 스킬 가지고 있지?”

이안의 물음에, 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거야 당연하지.”

소울 러스트는 흑마법사들에게 무척이나 유용한 광역 공격마법 스킬이다.

범위 내의 적들에게 매초 남은 생명력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고정 피해를 입히는 광역 공격 마법.

범위 내에 적을 묶어 둘 수만 있다면, 어떤 적이든 5~10분 내에 빈사상태로 만들 수 있는 스킬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스킬은, 움직임이 느리고 마법 저항력이 강한 골렘 같은 몬스터를 사냥할 때 많이 쓰인다.

움직임이 느리다는 말은 범위 내에 묶어 두기 쉽다는 말이었고, 어차피 피해량은 마법 저항력과 무관하게 적용되니 말이다.

소울 러스트를 사용해 생명력을 1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뜨린 뒤 다른 광역 공격 마법을 사용해 마무리를 지으면, 제아무리 골렘이라도 금방 사냥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훈이는, 지금 상황에서 이안이 소울 러스트를 언급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지금은 효율이 안 나올 것 같은데?’

상대는 마법 저항력이 별로 높지 않은 데다 대부분 빠른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언데드들이다.

그렇다고 보스 몬스터인 라카메르를 소울 러스트의 범위 안에 묶어 둘 방법도 없었다.

묶어 둔다 하더라도, 바로바로 회복할 테니 의미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안의 말을 들을수록, 훈이는 점점 이안의 큰 그림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소울 러스트로는 적을 죽이는 게 불가능하지?”

“그게 무슨……?”

“최대 생명력이 아니라 남은 생명력의 1퍼센트를 깎는 거니까. 결국의 1에 수렴할 거 아니야.”

“아, 그렇겠다.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네. 그렇게 오랫동안 소울 러스트만으로 공격해 본 적이 없어서 말야.”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게 포인트야. 소환된 언데드들의 생명력을 죄다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그 다음에 광역 마법으로 한 번에 잡으려는 거지.”

“……!”

“이렇게 하면 아무리 강력한 마법을 터뜨려도, 라카메르가 회복할 수 있는 생명력은 얼마 되지 않을 거야.”

“미친……!”

훈이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이런 역발상은, 생각해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라카메르의 생명력은 보스 몬스터 치고 높은 편이 아니었다.

브레스를 비롯해 이안 파티가 보유한 모든 광역 마법을 한 번에 터뜨린다면, 거의 모든 생명력을 한 번에 깎아 낼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다만 그와 동시에 회복되는 생명력이 문제인 것이었는데, 지금 이안이 제시한 방법대로라면, 그 문제가 해결되게 된다.

소울 러스트로 인해 언데드들의 생명력이 두 자릿수 이하로 떨어진다면, 아무리 강력한 광역 마법을 터뜨려 봐야 1만 이상의 생명력이 회복될 일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1만 정도의 생명력은, 정령왕의 심판에 스쳐도 지워질 의미 없는 수치였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레미르가 탄성을 터뜨렸다.

“정말 가능하겠는데?”

물론 치명적인 공격을 당한 라카메르가 가만히 있을 리는 없다.

새로운 언데드를 소환하며, 어떻게든 대응하려 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라카메르가 한 번에 소환할 수 있는 언데드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고, 연속해서 소환 스킬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새로 소환된 많지 않은 언데드들은 무시한 채, 극딜을 넣어 라카메르를 잡아 버리면 되는 것이다.

이안은 시선을 살짝 돌려, 남은 제한 시간을 확인했다.

-00:13:27

‘13분이면, 조금 빠듯하기는 하네.’

그러나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파티원들이 실수하지 않고 설계대로 완벽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이론상 10분 안으로 충분히 라카메르를 잡아 낼 수 있었으니까.

이안은 채팅 창에 간결하게 작전을 설명하였고, 훈이의 소울 러스트가 곧바로 발동되었다.

“소울…… 러스트!”

스하아아-!

마치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전장에 검보랏빛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라카메르는 훈이의 소울러스트를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클클, 그런 저급한 흑마법으로 이 몸에게 대항하려 하다니!”

소울 러스트는 흑마법사의 기초 마법 중 하나였으니, 무려 리치 위저드인 라카메르의 입장에서는 비웃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훈이의 소울러스트가 발동되자마자, 이어서 레미르의 광역 화염 마법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레미르가 가진 가장 강력한 광역 마법 중 하나인 잉걸불이었다.

치이익- 콰콰쾅-!

잉걸불의 이펙트는 비교적 단출한 편이지만, 파괴력만큼은 그 어떤 광역 마법과 비교해도 강력하다.

단 한 방에 전장의 언데드들의 생명력 게이지가 깜빡거리기 시작한 것만 봐도, 그 위력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음이었다.

그리고 잉걸불을 발동시킨 것은 당연히 전략의 일환이었다.

소울 러스트로 모든 생명력을 깎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양념’을 먼저 쳐 놓은 것이다.

잉걸불에 대미지를 입은 라카메르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물론 회복 능력으로 인해, 생명력은 다시 최대치까지 차오른 상태였지만 말이다.

“후후, 이번에는 조금 괜찮았어. 놀랍군. 인간 마법사 주제에 8서클의 마법을 쓸 줄 알다니 말이야.”

이어서 레미르는 몇 개의 낮은 티어의 광역 마법을 더 터뜨렸다.

언데드들의 생명력을 조금 더 깎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언데드들의 생명력이 15퍼센트 남짓까지 떨어졌을 때, 이안의 오더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딱, 3분만 버티자. 절대 언데드를 공격해선 안 돼!”

“알겠어!”

“버텨 보자고!”

힐러인 레비아를 중심으로, 이안의 파티원들이 빠르게 뭉쳤다.

드라고닉 베리어를 사용하면 3분은 거뜬히 버티겠지만, 그것은 뒤를 위해 아껴 둬야 했다.

모든 언데드들을 제거한 뒤, 라카메르를 집중공격할 때 발동시켜야 했으니 말이다.

“천신의 가호! 빛의 광휘!”

레비아의 손에서 새하얀 광채가 퍼져 나가며, 실드와 광역회복 마법이 번갈아 펼쳐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데드들의 공세는 대단했다.

이안의 파티는 전부 방어 태세를 취한 채, 포션까지 사용하여 언데드들의 공격을 겨우 버텨 내었다.

여기서 가장 고역인 것은 언데드들을 하나라도 죽이면 안 된다는 부분이었다.

현재 전장에 소환되어 있는 언데드의 숫자는, 라카메르의 통솔력 한계치에 도달해 있는 최대의 물량이다.

그런데 만약 이안 일행이 언데드들을 죽인다면, 통솔력에 여유가 생긴 라카메르는 싱싱한 언데드를 추가로 뽑아낼 게 분명했다.

싱싱한 언데드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라카메르의 회복량이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이안 일행은 필사적으로 반격을 자제하였다.

라카메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안 파티의 전략이었다.

당황한 라카메르가 이안 일행을 향해 일갈을 내질렀다.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것이냐! 스피릿 스톰!”

콰아아-!

라카메르의 완드에서 거센 어둠의 폭풍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구사하는 스킬들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닌 광역 마법인 스피릿 스톰.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레비아 님의 실드도 이제 남아 있는 게 없고, 저걸 맞으면 그냥 전멸이야.’

주변을 보니 언데드들의 생명력은 거의 바닥에 수렴하고 있었다.

목표치보다 조금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 드라고닉 베리어를 아낀다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찰나의 시간 동안 판단을 마친 이안이, 엘카릭스에게 오더를 내렸다.

“엘, 드라고닉 베리어!”

“네, 아빠!”

이어서 새하얀 광휘가 뿜어져 나왔다.

위이잉-!

이안 파티 전원이 하얀 빛무리에 둘러싸였고, 그것은 반격을 알리는 효시였다.

“훈이, 레미르 누나!”

“오케이!”

이안의 외침과 동시에, 훈이와 레미르가 멀찍한 곳으로 블링크해 이동했다.

이어서 빡빡이의 도발 스킬이 터져 나왔다.

“빡빡이, 귀룡의 포효!”

크아아아오!

훈이와 레미르의 광역 공격 마법 캐스팅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이안의 스킬 운용이었다.

이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모든 광역 스킬이 거의 동시에 터질 수 있도록 시간을 조율해야만, 새로 소환된 언데드가 광역기에 맞아 버리는 참사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셋……!’

잠시 후.

정확히 타이밍을 잡은 이안의 오른손이, 허공으로 번쩍 치켜 올라갔다.

“브레스, 분쇄!”

스하아아-!

브레스를 포함해 이안의 소환수들이 갖고 있는 광역 공격능력들은, 대부분이 즉발 가능한 스킬이었다.

때문에 레미르와 훈이의 마법과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타이밍을 재며 기다린 것이다.

뿍뿍이와 카르세우스의 입으로 모이는 강력한 용의 숨결.

그리고 다음 순간, 이안 파티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광역 마법들이 일시에 전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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