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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임과의 재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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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안의 피나는 노력으로 엘카릭스의 레벨은 비약적으로 상승한 상태였다.
드라고닉 배리어를 발동시킨 이 순간, 엘카릭스의 레벨은 무려 325나 되었다.
물론 400레벨을 목전에 둔 이안에 비해서는 아직 한참 부족한 레벨이지만 말이다.
‘빛의 수호 스킬의 방어력 버프 계수가 78퍼센트였으니까…….’
현재 엘카릭스의 방어력은 8천에 육박한다.
거기에 78퍼센트의 추가 효과를 받았으니, 1만4천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드라고닉 배리어의 방어력 계수는 엘카릭스 방어력의 쉰 배라는 괴랄한 계수를 자랑하니, 산술적으로 70만에 달하는 방어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리치 메이지들의 공격력은 아무리 높아 봐야 2만 정도다.
물론 리치메이지들의 공격 스킬에도 수십 배에 달하는 공격계수가 달려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카일란의 대미지 산출 공식은 공격자와 피격자의 공격력과 방어력 비율을 우선적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아무리 계수가 높은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공격력이 낮으면 데미지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리치 메이지’가 고유 능력 ‘죽음의 손길’을 시전합니다.
-어둠 속성의 공격이므로, 피해량이 5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7만큼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드라고닉 배리어의 내구도(4,112/4,217)가 7만큼 감소합니다.
-‘스켈레톤 아처’의 공격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어둠 속성의 공격이므로, 피해량이 50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드라고닉 배리어의 내구도(4,111/4,217)가 1만큼 감소합니다.
죽음의 손길은, 흑마법사 클래스의 단일 공격 마법 중에서 최상위의 계수를 자랑하는 스킬이었다.
300레벨대의 흑마법사가 시전하는 죽음의 손길만 되어도, 많게는 70만까지 딜이 나오는 스킬인 것이다.
한데 드라고닉 배리어의 위에 시전되니, 7만도 7천도 아닌 7의 피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리치 메이지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요망한 드래곤이 이상한 마법을 쓰는구나!”
리치 메이지의 절규에, 엘카릭스가 손가락을 까딱이며 대꾸했다.
“히힛, 이상한 마법이라니, 그럴 리가. 이건 나의 강력한 권능일 뿐이라구.”
옆에 있던 다른 리치메이지가 불만을 토로했다.
“이건…… 버그다! 버그가 분명해!”
그에 이안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NPC 혹은 몬스터 주제에, 버그라는 말을 쓰는 게 어이없었기 때문이었다.
“버그? 너 버그가 뭔지는 아냐?”
그런데 이어지는 리치메이지의 대답이 더욱 황당했다.
“네놈은 그것도 모르는가!”
“응……?”
“원래 내가 잘 모르는 강력한 마법을 버그라고 하는 거다!”
“…….”
묘하게 가슴에 와 닿는, 탁월한 리치메이지의 통찰력.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내 강력한 마법에 당한 인간들이 버그라고 그러더군.”
“켁.”
놀라운 학습 능력을 보여 주는 NPC의 AI에 감탄한 이안이, 헛웃음을 지으며 창을 내질렀다.
농담 따먹기도 재밌기는 했지만, 지금은 배리어가 풀리기 전에 리치 메이지들을 전부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4천 정도 되는 배리어의 내구도는 지금도 깎여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적처럼 보이는 드라고닉 배리어에도 치명적인 약점은 존재했다.
0.1초 단위로 피해를 입히는 도트 공격 스킬에 집중적으로 당하면, 4천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내구도는 금세 사라질 테니 말이다.
다만 리치 메이지들이 이러한 약점에 대해 모르는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 나한테 배리어 벗겨 내라고 하면, 1분 정도면 싹 벗겨 낼 자신이 있으니까.’
어쨌든 배리어를 두른 이안 파티의 폭주로, 리치 메이지들의 생명력은 순식간에 바닥까지 떨어졌다.
쾅- 콰쾅-!
방어나 회피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은, DPS에도 생각보다 큰 영향을 주었다.
힐러인 레비아의 DPS가 어지간한 딜러를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리치 메이지 중 하나의 생명력이 드디어 전부 소진되었다.
-파티원 ‘레미르’가 ‘리치 메이지’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37,982,014만큼 획득합니다!
-명성을 15만 만큼 획득합니다!
“크으윽, 원통하다!”
새카만 연기와 함께 재가 되어 사라지는 리치메이지.
그러자 남은 두 녀석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마법을 발동시켰다.
“일루젼 워프Illusion Warp!”
이안을 비롯한 파티원들은 처음 듣는 시동어에 긴장하였고, 훈이는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흑마법사인 훈이에게 450레벨대의 리치메이지가 쓰는 새로운 마법은, 차후 자신이 배울 수 있는 마법일 확률이 높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일루젼 워프가 발동되자, 장내에 수많은 그림자가 생성되었다.
쉬이익-!
‘이게 뭐지?’
스킬 이름을 가지고 추론해 보아도, 쉽사리 어떤 마법인지 짐작되지 않는 일루젼 워프.
하지만 잠시 후, 이안 일행은 이 마법의 용도를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쉬잉- 쉬잉- 쉬이잉-!
파티에게 공격받고 있던 두 명의 리치 메이지들이, 전장에 생성된 그림자의 위치에 연속적으로 순간이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자의 위치가 정해져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마법이었다.
어림잡아 3초에 한 번 정도는 캐스팅 없이 순간이동이 가능한 것 같은데, 그 순간순간마다 포커싱이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특히 공격 사정거리가 짧은 유신이, 짜증 섞인 어투로 투덜거렸다.
“뭐 이런 거지같은 스킬이 다 있어?”
이안 또한 창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유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메이지들의 생명력은 얼마 남지 않았고, 짜증날 뿐이지 공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안이 레미르에게 오더를 부탁했다.
“레미르 누나, 라이랑 할리한테 헤이스트 좀!”
“알겠어!”
이안의 소환수들 중 가장 민첩성이 빠른 두 마리의 소환수.
특히 할리의 경우 평타 패시브에 스턴이 묻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지라 할 수 있었다.
휘이잉-!
레미르의 손에서 마법이 캐스팅되자, 라이와 할리의 몸에 하얀 바람이 감긴다.
이안은 곧바로 할리의 등에 올라탔고,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라이, 내가 타깃팅하는 녀석부터 조져!”
“크르륵! 알겠다, 주인!”
이어서 이안은, 두 소환수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고유 능력을 활성화시켰다.
먼저 아껴 두었던 라이의 고유 능력.
-소환수 ‘라이’의 고유 능력, ‘펜리르의 분노’를 발동시켰습니다.
-소환수 ‘라이’가 3분간 ‘분노’ 상태가 됩니다.
-모든 전투 능력치가 50퍼센트 상승하며, 치명타 확률이 20퍼센트 상승합니다.
-공격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때마다, ‘펜리르의 분노’ 고유 능력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5초씩 줄어듭니다.
-소환수 ‘라이’의 고유 능력, ‘어둠 잠식’을 발동시켰습니다.
-소환수 ‘라이’가 3분간 ‘어둠 잠식’ 상태가 됩니다.
-지속 시간 동안 모든 공격이 치명타로 적용되며, 모든 피해의 70퍼센트를 무효화시킵니다.
-어둠이 깔려 있으므로, 지속 시간 동안 모든 움직임이 50퍼센트만큼 빨라집니다.
늑대들의 제왕인 ‘소버린 펜리르’.
라이의 경우 고유능력들을 발동시켰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전투력이 배 이상은 차이난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듯 자체 버프의 효과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었다.
“크르릉, 크르르륵!”
게다가 지금 전장의 환경은 라이에게 최적화되어 있었다.
전설 등급의 소환수임에도 거의 신화 등급과 맞먹는 공격력을 가진 라이.
라이의 약점은 드래곤과 비교하면 종잇장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약한 방어력과 생명력이었는데, 드라고닉 배리어 덕에 그 부분이 완벽히 커버된 것이다.
거기에 카카의 장판으로 인한 추가 버프 효과는 덤.
게다가 단일 대상을 공격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라이의 특성상, 이 순간만큼은 어떤 소환수보다 강력한 딜을 뽑아낼 수 있었다.
“아우우!”
하울링을 하며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리치 메이지를 향해 달려드는 라이!
촤악- 촤라락-!
라이의 발톱이 사정없이 메이지의 가슴팍에 틀어박혔고, 리치 메이지의 생명력이 뭉텅이로 깎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환수 ‘라이’가 ‘리치 메이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리치 메이지’의 생명력이 493,801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들어오는 강력한 딜에 당황한 리치 메이지는 워프를 시도하였다.
“일루전 워……!”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비는 당연히 되어 있었다.
-소환수 ‘할리’의 고유 능력, ‘후려치기’가 발동하였습니다.
-‘리치 메이지’가 1초 동안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조건부 발동인 할리의 패시브 능력들은, 연계성이 무척이나 뛰어나다.
‘후려치기’가 발동되면 연계되어 발동하는 고유 능력인 ‘백호의 분노’는, 할리의 공격 속도를 상승시켜 주는 것이다.
일반 공격 시 10퍼센트의 확률로 발동하는 후려치기.
공격 속도가 빠를수록 후려치기가 발동될 확률은 당연히 더 높아지니, 두 고유 능력 간의 상승 효과가 대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환수 ‘할리’의 고유 능력, ‘백호의 분노’가 발동합니다.
-소환수 ‘할리’ 모든 상태 이상 효과가 해제되며 10초 동안 모든 움직임이 50퍼센트만큼 빨라집니다.
워프를 하다 말고 기절 상태에 빠진 리치 메이지를 향해, 할리의 앞발이 연속해서 작렬했다.
퍽- 퍼퍽-!
라이에 비해 공격력이 많이 떨어지는 할리였지만, 그런 것은 어차피 상관없었다.
리치 메이지를 묶어놓을 수만 있다면, 이안과 라이의 공격만으로도 충분한 딜이 들어가니 말이다.
거기에 원거리에서 쏘아지는 훈이와 레미르의 마법까지 무방비 상태로 작렬하니, 리치 메이지의 생명력은 순식간에 바닥나고 말았다.
그리고 셋 중에 둘이 제거되고 나니, 하나 남은 리치메이지는 더욱 쉽게 처리되었다.
“크윽, 라카메르님께서 복수해 주실 것이다!”
“인간들! 오늘 일은 잊지 않으리라!”
죽기 직전에 꼭 한마디씩은 하고서야 사라지는 네임드 몬스터들.
세 명의 리치메이지들이 전부 제거되자, 훈이가 환호성을 질렀다.
리치 메이지들은, 그만큼 까다로운 상대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자잣, 좋았어!”
후방에서 마법을 캐스팅하던 레미르도,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파티 타임인가?”
떨어진 생명력을 회복시켜 줄 메이지들이 전부 제거된 지금, 남은 언데드들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일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 어둠 지배 효과와 배리어까지 남아 있었으니, 이제는 경험치를 쓸어 담는 것만이 남은 것이다.
“훈이, 레미르 누나, 알지?”
“오케이!”
이안이 구체적인 오더를 내리기도 전에, 훈이와 레미르는 블링크를 사용해 최후방으로 빠졌다.
배리어가 남아있다고 해도 피격당하면 캐스팅이 풀리기 때문에, 캐스팅 시간이 긴 광역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후방으로 빠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시 후…….
쿠오오오-!
화려한 광역마법의 향연과 함께, 장내 있던 모든 언데드들이 일순간에 재로 변하고 말았다.
콰쾅- 콰콰쾅-!
이어서 눈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이안 일행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데스 나이트’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9,981,029만큼 획득합니다!
-‘스켈레톤 워리어’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5,154,429만큼 획득합니다!
그리고 전장이 완벽히 정리되고 나자, 전방 복도 끝의 막혀 있던 벽이 꿈틀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극- 그그극-!
이어서 파티원들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갱신되었다.
띠링-!
-두 번째 웨이브를 돌파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돌파 등급 : SSS
-두 번째 구간을 통과하셨으므로, B섹터의 죄수들이 풀려납니다.
-높은 돌파 등급을 획득하였으므로, 15만 만큼의 명성을 획득합니다.
-‘라카메르의 실험실’을 발견하였습니다!
-리치메이지 라카메르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잠시 후, 두 번째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