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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임과의 재회 (5)
* * *
“우와아!”
“크으, 대박이다.”
“헐, 나 전사의 투혼 발동되는 거 처음 봤어!”
“너만 처음이냐? 나도 처음이야. 저거 무도가 클래스 350레벨인가 돼야 배울 수 있는 스킬이라던데……. 우리가 볼 일이 있겠냐? 350레벨은 고사하고 무도가 자체도 엄청 희귀한 히든 클래스인데.”
“하긴……. 350레벨 넘은 무도가가 서버에 세 명이 넘지 않을 테니까.”
컴퓨터실의 앞쪽에 있는 대형 스크린.
그리고 그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전사의 투혼’스킬의 황금빛 광채.
이안의 전투 영상을 라이브로 구경 중인 가상현실과 학생들은 신이 나서 시끌벅적 떠들어 대었다.
“이야, 그나저나 소진 누나 수정구 컨트롤 진짜 잘하시네요. 역동감 장난 아니다.”
“그러게. 괜히 진성 선배 전속 에디터가 아니었어.”
쉴 새 없는 장면 전환과 깔끔한 화면 이동에 감탄한 학생들이 침을 튀기며 소진을 칭찬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소진은 땀방울까지 송글송글 맺혀 가며 컴퓨터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우스는 마치 프로게이머의 그것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 진짜 이것도 생 노가다라니까…….’
애초에 수정구를 컨트롤하며 영상을 촬영하는 작업 자체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에는 유저의 개인 영상을 전문적으로 촬영해 주는 업체까지 생겨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냥 멀찍이 띄워 놓고 촬영만 하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소진처럼 여러 개의 수정구를 띄워 놓고 쉴 새 없이 하나하나 움직여 주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 대상이 이안임에야.
이안이 전투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을 때면, 고민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워낙 신출귀몰한 데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많이 만들어내다 보니, 포커싱을 잡기 애매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어, 뭐지? 전사의 투혼 발동되면 바로 광역 스킬 연계할 생각 아니었나?’
매일같이 이안의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소진 또한 상당한 카일란 지식을 갖게 되었다.
무도가 클래스의 가장 유명한 스킬 중 하나인 전사의 투혼은, 그녀가 모를 수 없는 것이다.
더해서 이안의 영상을 완벽히 담아 내려면, 게임에 대한 이해도도 필수였다.
때문에 소진은 어지간한 해설자들과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게임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런 그녀로서도 쉬이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타이밍 제대로 잡은 것 같았는데, 왜 물러나게 그냥 두는 거야?’
연달아 광역기가 터지며 언데드들이 몰살당할 것을 예상했던 소진은, 수정구를 허공으로 높이 띄워 놓은 상태였다.
광역 스킬들로 한 번에 적들을 몰살시키는 시원한 장면을 화면 한가득 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사의 투혼에 피해를 입은 언데드들은 추가 광역공격을 피하기 위해 썰물처럼 후방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소진의 예측은 완벽히 빗나가 버렸다.
‘뭐지? 뭘 하려는 거야 또?’
소진의 동공이 빠르게 화면을 훑는다.
다음에 일어날 장면을 예측해 내야만, 최고의 영상을 담아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컴퓨터실의 커다란 스피커에서 익숙한 대사가 흘러나왔다.
-어둠이…… 내려앉는다.
* * *
히든 클래스를 포함한 모든 흑마법사들이, 300레벨이 되면 배우는 최상위 스킬이 있다.
이름 하여 애니메이트 데드Animate Dead.
물론 훈이처럼 상위티어의 히든 클래스 흑마법사라면 조금 더 빠른 레벨에 배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300레벨에 애니메이트 데드 스킬을 습득한다.
그리고 이 스킬은 ‘흑마법사’라는 직업군을 300레벨 전후로 나눠 버릴 만큼 특별한 스킬이었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쓰러진 모든 유닛들을 되살려, 불리하던 전황을 한 번에 역전시킬 수 있는 스킬이었으니 말이다.
특히 지금처럼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밀집되어 있을 때는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10초 이내에 사망한 모든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언데드화시켜 버리는 애니메이트 데드.
이 스킬은 광역기의 카운터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스킬인 것이다.
‘한 번에 전부 쓸어 버리려면……. 브레스부터 시작해서 남아 있는 모든 광역기를 남김없이 퍼 부어야 하겠지. 그리고 스킬이 다 빠진 상황에서 애니메이트 데드라도 터지면…….’
아군의 고위 스킬은 전부 빠졌는데 적들의 숫자는 그대로라면, 그만큼 난감한 일도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애니메이트 데드 에 대해 잘 모르는 유저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훈이가 먼저 애니메이트 데드를 발동시켜서 시체들을 선점하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애니메이트 데드는 고위 흑마법인 만큼 캐스팅 시간이 긴 편에 속했고, 마법의 캐스팅시간은 레벨이 높아질수록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상대인 리치메이지들은, 아직 400레벨이 되지 않는 훈이에 비해 거의 100 가까이 높은 레벨을 가지고 있었고, 이 차이는 컨트롤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지간한 피해는 금세 회복시키고, 그렇다고 한 번에 스킬을 퍼 부어서 쓸어 버리면 죄다 살려 내는 괴랄한 네임드 몬스터 리치 메이지.
그래서 이 전투에 이기려면, 필연적으로 리치메이지들을 먼저 제거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승산이 없다는 게 이안의 판단이었다.
“레비아 님, 엘카릭스한테 빛의 수호 좀 걸어 주세요!”
이안의 오더에 레비아가 곧바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어떤 이유에서 내리는 오더인지는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궁금증은 나중 문제였다.
“알겠어요!”
위이잉-!
이어서 이안의 앞쪽에 서있던 엘카릭스의 주변으로, 하얀 빛줄기가 빨려 들어갔다.
-파티원 ‘레비아’가 소환수 ‘엘카릭스’에게 ‘빛의 수호’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소환수 ‘엘카릭스’의 방어력이, 60초 동안 78퍼센트 만큼 증가합니다.
사실 빛의 수호는, 사제 클래스가 100레벨 이전에도 배울 수 있는 낮은 티어의 버프 스킬이었다.
계수는 무척 높은 편이었으나 지속 시간이 1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데다 단일 대상에게만 적용되는 버프였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은 스킬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빛의 수호 스킬은, 그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곧 사용할 드라고닉 베리어의 방어력이, 엘카릭스의 방어력에 비례하여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엘카릭스에게 걸린 방어력 버프가 베리어로 전이되어, 모든 파티원들에게 이어지게 되는 것.
게다가 두 스킬이 조합되는 순간, 빛의 수호 스킬의 짧은 지속 시간도 완벽하게 커버되게 된다.
엘카릭스가 스킬을 발동시키는 그 ‘순간’의 방어력이 드라고닉 배리어의 방어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버프의 지속 시간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단일 방어력 버프인 ‘빛의 수호’가 이안의 놀라운 스킬응용 능력으로 인해 광역 버프로 탈바꿈되어 버렸다.
이안의 오더가 다시 이어졌다.
“레비아 님, 이제 공격 스킬 캐스팅 준비하세요!”
또 다시 이어지는, 이해하기 힘든 오더에 이번에는 레비아도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 그럼 힐은요?”
“앞으로 10분 동안은, 힐 하실 필요 없을 겁니다.”
“……?”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레비아였다.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나자마자, 던전 전체에 카카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어둠이…… 내린다.
고오오오-!
시커먼 기류가 스멀스멀 피어올라 전장을 잠식했다.
이어서 파티원들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파티원 ‘이안’의 노예, ‘카카’의 ‘꿈꾸는 악마’ 고유 능력이 발동되었습니다.
-‘어둠의 지배’가 지속되는 동안, 모든 파티원의 공격력이 5퍼센트만큼 상승하게 되며, 모든 어둠 속성 피해가 50퍼센트만큼 감소하게 됩니다. 또한 반경 안의 모든 은신 상태의 적이 시야에 드러나게 됩니다.
동시에 이안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려 퍼졌다.
“카르세우스, 뿍뿍이, 퇴로 차단해!”
“알겠다, 주인.”
“알겠뿍.”
“나머지는 전부 리치 메이지만 극딜하고!”
레비아가 이안의 오더를 한차례 더 확인했다.
“정말 저도 딜 포지션으로 바꿔요?”
그리고 이안은 지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극딜 부탁합니다, 레비아 님.”
레비아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오랜만에 공격 마법 써 보겠네요.”
쐐애액-!
레비아의 등에 돋아난 새하얀 날개가 펄럭이며,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안의 오더가 떨어지기 무섭게 리치메이지를 공략하기 위해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리치메이지가 있는 곳까지 접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전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언데드들이 후방으로 빠져나갔기에 리치메이지들의 앞이 텅텅 비어 버린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리치메이지들이 노성을 터뜨렸다.
“어설픈 잔꾀를 부리는구나!”
“한심한 인간들이군.”
“네놈들이 우리를 당해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냐!”
쿠오오오-!
리치메이지들이 손을 번쩍 들어 완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어둠의 구체들이 이안 일행을 향해 빠르게 쇄도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로 물러났던 언데드들이 다시 이안 일행을 덮쳐 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퇴양난처럼 보이는,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당황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기까지도 예측 범위 안이었기 때문이다.
이안의 커다란 목소리가, 던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엘, 드라고닉 베리어!”
“알겠어요!”
이어서 모든 파티원들의 주변에, 새하얀 보호막이 생성되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미친 방어력을 가진, 무적에 가까운 보호막이었다.
* * *
“와…….”
소진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컨트롤하던 수정구는 그대로 허공에 높이 떠올라 있는 상황.
하지만 잠시 동안은 더 이상 힘들게 수정구를 컨트롤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전장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이 장면 그대로가, 지금의 상황에 가장 완벽한 세팅이었으니 말이다.
‘드라고닉 베리어랑 어둠 지배를 같이 활용할 생각을 하다니…….’
일반 유저들이 보기엔 이안 파티의 판단 미스로밖에 보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카의 ‘꿈꾸는 악마’스킬에 붙어 있는 어둠 지배 효과야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지만, 드라고닉 베리어에 대한 정보를 아는 유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보이는 전장의 형국은, 이안 파티가 자살기도를 하는 모습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소진을 제외한 다른 시청자들은 당황한 목소리로 탄성을 터뜨렸다.
“뭐지? 잘 싸우다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으……. 진성 선배도 이럴 때가 있구나.”
“그러게. 아무리 컨이 좋아도 저렇게 뿔뿔이 흩어져서 언데드들 사이에 묻히면 방법이 없을 텐데…….”
“글쎄. 일단 지켜보자. 진성선배가 언제 실수하는 거 봤어?”
“그래도 이건 좀…….”
하지만 그 탄성에 담겨 있던 ‘안타까움’들이 ‘의아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치 메이지들을 향해 뛰어든 이안의 파티원들이 쏟아지는 공격을 그냥 맞아 주는 데도 불구하고 실드의 내구력이 닳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아예 방어를 도외시한 채 공격에 올인하고 있었다.
“우, 우와. 저거 뭐야?”
“미쳤다. 저 실드 대체 뭐지? 어떻게 저렇게 쳐 맞는데 내구력이 안 깎여?”
그 와중에 시동어를 들은 세미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드라고닉 베리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엘카릭스의 고유능력인 것 같아.”
“헐……. 저거 완전 사기 아님? 이거 완전 벨붕인데?”
“글쎄. 뭔가 있겠지. 지금까지 카일란에서 벨붕 스킬을 내 놨던 적은 없었잖아.”
“하긴. 처음 나올 땐 벨붕이라고 말 많았다가도 나중 되면 희한하게 다 밸런스가 맞아떨어졌지.”
이 안에서 유일하게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소진은 입을 꾹 다문 채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야 끝도 없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핀의 등에 올라탄 이안이 어느새 허공을 날고 있었고, 리치메이지를 향해 뛰어들기 일보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다시 수정구를 컨트롤하여 이안의 전투 장면을 근접 촬영해야 할 때였다.
‘미친 방어력에 대미지 감소까지 중첩되니……. 진짜 모르는 사람이 보면 광역 무적인줄 알겠어.’
소진은 영상을 보며 오랜만에 설레기 시작했다.
방어를 도외시한 이안의 무차별 공격이 무척이나 기대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