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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임과의 재회 (2)
* * *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뮤란의 등장이었다.
그로 인해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지만, 결과적으로 던전 공략은 훨씬 수월해졌다.
이안의 히든 클래스 티어 상승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과 별개로, 뮤란의 전투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뮤란은 이안이 지금까지 봐 왔던 어떤 NPC보다도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차원의 마탑주 그리퍼나 사랑의 숲지기인 이리엘과 같이, 함께 전투해 본 일이 없는 NPC들은 예외였지만 말이다.
물론 ‘신’과 같은 특수한 케이스도 제외였다.
“캬, 뮤란이 그러니까, 제국 수도에 세워져 있던 그 동상 아저씨 맞지?”
“그렇다니까. 역시! 이쯤 되니까 동상도 세워 주는구나.”
일행은 뮤란의 강력함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안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진짜 엄청나군. 게다가 지금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원래 가진 힘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수준이라니…….’
앞장서서 언데드들을 베어 넘기는 뮤란을 보며, 이안은 혀를 내둘렀다.
궁금한 것이 생긴 이안이, 뮤란을 향해 물었다.
“뮤란.”
“왜, 부르는가. 영웅이여.”
“너처럼 검을 세 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허공을 부유하며 언데드들을 농락하는 뮤란의 세 자루 대검.
파괴력도 파괴력이었지만, 그 화려한 검술을 보고 있자니 탐이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뮤란의 대답은 이안의 심기만 더 불편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건 서머너 나이트가 가진 능력 중, 최상위 티어에 속하는 권능이다.”
“뭐?”
“자아를 가지고 있는 무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이것이 바로 서머너 나이트만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라 할 수 있지.”
“자아를 가지고 있는 무기라……. 에고웨폰을 말하는 건가?”
이안의 반문에 뮤란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바로 맞췄다. 역시 그대는 박식하군. 인간이 에고웨폰의 존재까지 알고 있을 줄이야.”
잠시 뜸을 들인 뮤란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에고웨폰의 성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 수 있는 클래스가 바로 서머너 나이트다. 물론 에고웨폰이 구하기 쉬운 녀석들은 아니지만 말이야.”
“음…….”
“그리고 아직 나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이기는 하나, 서머너 나이트의 상위 클래스를 얻는다면 직접 무기에 영혼Ego를 부여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도달하지 못했다며, 어떻게 알아?”
“중간계에는 이미 그 수준에 도달한 존재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
이안은 문득 우울한 기분이 되었다.
‘그냥 전직할 걸 그랬나…….’
현재 이안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인 정령왕의 심판.
그리고 뿍뿍이의 등껍질을 사용해 제작한 귀룡의 방패.
이미 이안은 두 개나 되는 에고 웨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인 즉, 퀘스트를 받아들여 서머너 나이트가 되었다면, 그 즉시 최상위 티어의 권능까지 활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는 무기에 에고를 직접 부여할 수 있는 경지까지 성장할 수 있다니, 이안은 절로 군침이 도는 것을 느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더니…….’
선두에서 길을 뚫는 뮤란의 세 자루 대검을 보며, 이안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아직 퀘스트가 실패한 것도 아니잖아? 성공만 시키면 듀얼 클래스로 얻을 수 있는 거니, 오히려 더 잘된 일일 수도 있어.’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무한 긍정을 하기 시작하자, 다시 이안의 마음속에 있던 의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카일란을 플레이한 이래로 처음 보는 단어인 ‘유니크 듀얼 클래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사실, 아직은 기획자조차 모르는 단어이다.) 아마 서머너 나이트의 온전한 능력을 전부 얻지는 못할 것이다.
마계가 오픈되며 처음 선보였던 기존의 ‘듀얼 클래스’도 마족 유저가 아닌 이상 100퍼센트의 능력을 부여받지는 못하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뮤란으로부터 얻은 서머너 나이트에 대한 정보가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되기에는 충분했다.
이안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옆에 있던 뿍뿍이를 응시했다.
“뿍뿍아.”
“왜 부르냐뿍.”
“우린 할 수 있을 거야.”
“……?”
고지능(?) 거북인 뿍뿍이로서도 짐작할 수 없는, 밑도 끝도 없는 이안의 말이었다.
하지만 의미는 알 수 없더라도, 그 말에 실려 있는 알 수 없는 불길함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이안과 함께한 세월이, 허투루 지나간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커다란 뿍뿍이의 눈망울이 가늘게 떨렸다.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했으면 좋겠뿍.”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당히’라는 단어는 이안의 게임 역사상 등장한 적이 별로 없는 단어인 것 같았다.
* * *
라타펠 영지의 지하 뇌옥은, 이안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거대한 던전이었다.
‘지하 5층 정도에서 끝날 줄 알았는데 어느새 7층이라니…….’
뮤란이 등장한 뒤 거의 30~40분 동안 이안 일행은 일사천리로 던전을 돌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끝을 보지 못했으니, 이안은 간담이 서늘한 것을 느꼈다.
‘뮤란이 없었다면 최소 2시간은 더 걸렸겠지.’
만약 2시간이 걸렸음에도 끝을 보지 못한다면, 이안은 던전 공략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 말인 즉 뮤란이 없었더라면, 이미 이안 일행은 던전을 포기하고 귀환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콰쾅- 쾅-!
할리의 등에 올라탄 이안이 창으로 쉴 새 없이 허공을 가르며 언데드를 타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기계적인 움직임이었다.
“키에엑, 인간 주제에 강력하군!”
어둠의 악령들은 절규하며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이안은 열심히 창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지형을 파악했다.
‘좌측으로 뚫고 들어가면 길이 열리겠군. 그나저나 통로가 좁은 걸로 봐서는 이번에도 보스 방은 아닌 것 같은데……. 다음 층이 또 있는 건가?’
카일란의 던전 구조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때문에 이안의 짐작은 아마 맞아떨어지리라.
“카카, 먼저 가서 정찰 좀 부탁해.”
“알겠다, 주인아.”
빛 속성의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턱이 없는 지하 뇌옥 던전이었기에, 이안은 카카의 정찰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안 일행은 순조롭게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아, 이쪽으로!”
“크, 카카, 잘했어!”
“카카 이 녀석, 길 찾는 실력이 날로 일취월장하는걸.”
파티원들의 칭찬에 우쭐한 표정이 된 카카가, 기분 좋은 날갯짓을 하며 이안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엣헴, 원래 내가 못하는 건 별로 없다고. 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거든.”
그런데 그때, 그 옆에 걷고 있던 엘카릭스가 양 볼을 부풀리며 카카를 째려보았다.
“아니거든! 내가 제일 똑똑하거든!”
“누가 그래?”
“아빠가 그랬거든!”
엘카릭스의 반론에 카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엘카릭스, 혹시 하얀 거짓말이라고 알아?”
엘카릭스의 심기를 살살 건드리는 카카의 발언.
하지만 엘카릭스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카카, 넌 혹시 하얀 꿀밤이라고 알아?”
“……?”
“이쪽으로 와 볼래? 내가 꿀밤 한 번만 때려 보게.”
“히, 히익!”
빛의 신룡인 엘카릭스의 꿀밤은, 카카에겐 그야말로 재앙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카카의 잘난 척을 간단히 제압한 엘카릭스는 그제야 만족스런 표정이 되었다.
“아빠, 나 잘했죠?”
“그러엄, 우리 엘이가 무조건 잘했지.”
“…….”
어쨌든 작은 소란을 뒤로한 채, 이안 일행 전원이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실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그 순간, 파티원 전원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지하 뇌옥의 최하층을 발견하셨습니다.
-강력한 어둠의 힘이 느껴집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케이, 드디어 최하층이군.’
어쨌든 다음 층이 최하층이라는 확실한 정보를 얻었으니, 보스룸을 찾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심리적인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안 일행의 눈앞에 추가적인 메시지가 몇 줄 더 떠올랐다.
-어둠의 하수인 ‘라카메르’가 당신들의 존재를 알아채었습니다.
-라타펠 영지의 숨겨진 비사를 발견하였습니다.
이어서 이안들의 시야가 새카맣게 어두워졌다.
* * *
라타펠 영지의 심처에는, 어둠의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어둠의 성소가 존재한다.
그리고 어둠의 성소 바로 옆에는, 영지의 죄수들을 감금하는 지하뇌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때문에 리치킹 샬리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지하 뇌옥을 눈독들이고 있었다.
성소의 힘이 닿는 이 지하 뇌옥이라면, 어둠의 군단을 육성하기 아주 적합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성소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어둠의 힘은, 어둠의 씨앗들이 더욱 빠르고 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하여 샬리언은, 자신의 하수인인 ‘라카메르’를 의도적으로 죄를 짓게 하여 라타펠 영지의 지하 뇌옥으로 보내었다.
-라카메르, 너를 믿겠다.
-황송합니다, 어둠의 주인이시여.
그리고 원래도 강력한 흑마법사였던 라카메르는, 지하 뇌옥을 빠르게 장악하고 안에서 몰래 힘을 기르기 시작했다.
-크큭, 멍청한 인간들…….
라카메르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지하 뇌옥은 라카메르가 성장하기에 최상의 조건을 곳이기 때문이었다.
흑화하여 어둠의 의식을 치를 만한 죄수들이 계속해서 공급되었으며 바로 옆에는 어둠의 성소가 자리하고 있었으니, 흑마법사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입지였던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샬리언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라카메르는 결국 ‘리치 메이지’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라카메르가 리치가 되던 날, 샬리언이 그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하명하십시오, 나의 군주시여.
-영지군을 장악하고 라타펠의 영주를 납치하라.
-알겠나이다.
-나는 그를 하수인으로 만들어, 이 영지를 어둠의 영지로 삼을 것이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미 라카메르로 인해 썩을 만큼 썩어 있었던 라타펠 영지는 손쉽게 리치킹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이것이 바로 어둠의 왕국의 시발점이었다.
샬리언과 라카메르는, 라타펠 영지를 시작으로 엘리카 왕국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게 10분 정도에 걸친 짧은 영상은 끝이 났고, 이안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토리 자체는 흥미로웠으나, 뜬금없이 비하인드 스토리가 등장한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관련 퀘스트를 진행 중인 것도 아닌데?’
그리고 이안이 의문을 품기가 무섭게, 일행의 눈앞에 퀘스트의 발동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돌발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엘리카 왕의 눈물’ 퀘스트가 발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