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37화 (45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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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임과의 재회 (1)

느닷없이 뮤란으로부터 받은 히든 퀘스트.

하지만 이것은 히든 퀘스트라기보단 마치 숨겨진 지뢰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미 이안은 그 지뢰를 밟았다.

이제 이안이 발을 떼기만 한다면, 곧바로 터지게 될 강력한 지뢰 말이다.

이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퀘스트 창을 한 차례 다시 정독했다.

‘뭐 이딴 미친 페널티가 다 있는 건데……?’

보상이 좋은 히든 퀘스트들 중에는, 종종 이렇게 클리어 실패 시 부여되는 페널티가 함께 딸려오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페널티라고 해 봐야 경험치 삭감이나 명성 하락. NPC와의 친밀도 하락과 같은 정도인 것이 보통이다.

무려 보유하고 있는 히든 클래스의 티어를 한 단계 떨어뜨린다는 페널티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강도의 것이었다.

히든 클래스의 티어를 떨어뜨린다는 것.

이것은 노력으로 복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티어 상승이란, 노력이 베이스에 깔린 상태에서 여러 가지 퍼즐이 맞춰져야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이안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한편, 타들어가는 그의 속을 알 턱이 없는 뮤란은 흡족한 표정으로 이안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어쩌면 나의 안배는 괜한 짓이었을지도 모르겠군. 후대에 자네와 같은 든든한 영웅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마음 편히 쉬어도 될 뻔했어.”

가슴이 따뜻해지다 못해 타들어갈 것만 같은 뮤란의 격려가 이어졌고, 옆에 있던 엘카릭스는 그 위에 휘발유를 콸콸 쏟아부었다.

“우와와, 역시 우리 아빠가 짱이야!”

엘카릭스는 뭐가 그리 신이 나는 건지, 이안의 등에 매달려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이안에게 작금의 사태는, 엘카릭스의 귀여운 목소리조차도 약 올리는 것으로 들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후우우…….”

이안은 냉정을 되찾기 위해 한차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 미친 퀘스트가 발발함으로 인해, 앞으로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엘리카 왕국 정복을 나중으로 미뤄야 하게 생겼어. 길드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빨리 병력을 정비해서 유피르 산맥으로 향해야겠군. 그리고 친분을 최대한 활용해서 랭커란 랭커들은 죄다 끌어모아야…….’

이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퀘스트임은 분명했지만,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인 이상 피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분명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최대한 성공률을 높이는 것이다.

포기 같은 것은 이안의 플레이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이안의 머리가 복잡해져 있던 그때, 고민에 빠져 있던 것은 이안뿐만이 아니었다.

이안이 다른 파티원들에게도 퀘스트를 공유했던 것이다.

다른 파티원들도 이 괴랄한 난이도의 퀘스트 창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보상과 페널티는 이안과 완전히 달랐지만, 나머지 퀘스트 내용은 거의 동일했다.

파티원들은 급기야 슬금슬금 이안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레미르를 시작으로 파티원들이 조심스레 의견을 피력했다.

“이안아, 이 퀘스트는 공유받지 않아도 될까?”

레비아와 유신까지…….

“이안 님, 저도 한 타임 쉬어 갈게요. 히든 퀘스트를 공유해 주셔서 고맙긴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

“미안하군, 이안.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어서 세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이안의 눈앞에 떠올랐다.

-파티원 ‘레미르’가 퀘스트 공유를 거부하였습니다.

-파티원 ‘레비아’가 퀘스트 공유를 거부하였습니다.

-파티원 ‘유신’이 퀘스트 공유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안은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나, 레비아 님, 유신!”

하지만 세 사람은 이안의 시선을 슬금슬금 외면하고 있었다.

“크윽…….”

이안은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그를 위로하는 손길이 하나 있었다.

“형님, 전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흘러나온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비장한 표정을 한 훈이가 서있었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훈이의 행동에 파티원들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오, 이걸 훈이가……?”

“정신 차려 훈아! 과도한 사냥 스트레스로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지?”

하지만 놀란 파티원들과 달리, 오히려 이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훈이가 이러는 이유를 이안만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버하지 마, 짜샤. 넌 어차피 나랑 한 배를 타고 있었던 거잖아.”

“…….”

그랬다.

훈이는 이미, 본인의 4티어 히든 클래스의 전직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리치킹 샬리언을 처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제한 시간이 끝나는 시점도 거의 비슷한 상황.

물론 이안처럼 실패 시 강력한 페널티가 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훈이의 영원한 상전인 이안은, 이미 그의 퀘스트 목록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후, 내 진심을 몰라주다니. 너무해…….”

본심이 간파당한 훈이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당연히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시끄럽고. 일단 뇌옥부터 빠르게 클리어하자.”

훈이에게 핀잔을 준 이안이, 이번에는 다른 파티원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간담이 서늘해질 만큼 무시무시한 협박을 감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내가 어떻게든 전부 데려갈 테니까 말이야.”

딱히 근거 같은 것은 없는, 밑도 끝도 없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이안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결코 허투루 들을 수는 없었다.

* * *

“아오, 미치겠네. 이놈은 대체 왜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는 적이 없는 거야?”

이안의 황당한 결정을 확인한 나지찬은, 그야말로 어이없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타이밍까지 딱딱 맞아떨어지며 순조로운 플레이를 해 나가던 이안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에서 예측을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거저’ 주겠다는 4티어의 히든 클래스를 포기하겠다니.

이런 전개를 나지찬뿐 아니라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건 아니야, 이건…….”

나지찬은 안절부절 못 하는 걸음걸이로 모니터링실을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이안의 이 생각지 못한 선택은, 기획 팀에게 또 하나의 일거리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콘텐츠 소모를 최대한 늦춰야 하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이안의 이러한 선택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환영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4티어 클래스인 것을 떠나서, ‘서머너 나이트’에는 리치킹을 상대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가 담겨 있었다.

때문에 이 열쇠 없이는 아무리 이안이라 하더라도 리치킹을 처치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이 말인 즉, 리치킹 에피소드를 더 오래 우려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안이 이 선택으로 인해 얻게 된 ‘영웅의 책임’이라는 히든 퀘스트였다.

이 퀘스트는 사실, 기획 팀에서 기획한 퀘스트가 아니었으니까.

영웅의 책임은 원래 ‘없었던’ 퀘스트였다.

‘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안이 기획 팀이 생각하지 못했던 범주의 플레이를 해 버렸기 때문에, 제멋대로 퀘스트가 생성되어 버린 것이다.

카일란의 시스템은, 기획 팀에서 미처 기획하지 못한 범주의 상황에 대해 나름의 알고리즘으로 판단하여 대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하여 뮤란 또한, 가지고 있는 AI를 활용하여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고, 그 판단의 일환으로 퀘스트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후, 멋대로 퀘스트를 만들 거면 좀 정상적인 것으로다가 만들든가…….’

나지찬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퀘스트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유니크 듀얼 클래스’라는 부분이었다.

뮤란이 퀘스트를 줄 때 제멋대로 넣어 버린 보상인 ‘유니크 듀얼 클래스’.

이건 애초에, 있지도 않은 종류의 클래스 부여 방식이었으니까.

‘진짜 골치 아프네. 이안 하나 때문에 이 유니크 듀얼 어쩌고를 기획해야 되는 거야? 그 힘든 밸런스 조정 작업 하나하나씩 다 해 가면서?’

차라리 신규 히든 클래스 하나 추가하는 것이 오히려 쉬울 지경이었다.

신규 히든 클래스는 기존에 있는 기획 베이스에 새로운 스킬과 특성을 몇 가지 추가하면 되는 것이지만, 아예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은 뜯어고쳐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끄으…….”

카일란의 기획 팀에서 일한 지도 벌써 햇수로 5년.

카일란이 오픈하기도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일한 나지찬은, 본인의 멘탈이 다이아몬드에 버금갈 정도로 단단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한데 이안 덕분에, 벌써 두 번째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과거 이안이 용의 제단에서 차원의 문을 찾을 뻔했을 때가 첫 번째 위기였고, 이번이 두 번째 위기였다.

“후……. 그냥 다 내려놓고, 이안이 퀘스트 실패하길 기도해 볼까?”

솔직히 나지찬이 생각하기에, 서머너 나이트 클래스 없이 이안이 퀘스트를 완수할 확률은 1할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때문에 이 도박은, 어쩌면 괜찮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안이 퀘스트를 실패하기만 한다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테이밍 마스터 클래스의 티어 하락도 사실 너무 과한 페널티였지만, 그건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추후에 보상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티어 상승 기회를 쥐어 주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나지찬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만약 1할의 확률로 이안이 퀘스트를 성공시키기라도 한다면, 그 끝은 그야말로 파국이다.

나지찬이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 10퍼센트의 확률 때문에……. 우린 결국 철야를 해야겠지.”

이안의 퀘스트 제한 시간은 30일이었지만, 기획 팀에게 부여된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그보다 더 부족했다.

이안이 당장 퀘스트를 완료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며칠의 여유는 남겨 두고 리치킹 공략에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27일, 아니 25일……? 그 안에는 전부 만들어서 세팅해 놓아야 돼.’

아무리 야근을 즐기는 변태(?) 나지찬이라 하더라도, 이쯤 되면 즐겁게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건 야근을 넘어서 고문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컵라면 사리는 어느새 불어 터져 우동사리가 되어 있었다.

후루룩-!

나지찬은 남아 있던 컵라면을 국물까지 남김없이 흡입하였지만,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퀭한 눈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듀얼클래스랑 기획 콘셉트가 겹쳐서도 안 되고……. 메인 클래스랑 어떤 식으로 연계시켜 줘야 할지도 생각해야겠지…….”

이안이 히든 클래스를 거절하던 그 잠깐 사이에, 최소 10년은 늙어 버린 기분이었다.

모니터링실의 문을 연 나지찬이, 나가기 전 스크린을 다시 한 번 응시했다.

화면에는 이안의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떠올라 있었다.

“크, 이안갓은 지금 본인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을까?”

적어도 오늘 만큼은 이안갓의 안티가 되고 싶은 나지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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