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36화 (45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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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뇌옥 (3)

* * *

‘후우,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건 무조건 콜 해야 되는 상황이긴 한데…….’

생각지도 못했던 뮤란의 등장과 그가 제안한 상위 티어 히든 클래스 전직 기회.

‘서머너 나이트’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새로운 히든 클래스 또한 매력적인 소환술사 클래스임이 분명했다.

애초에 카일란에서는 다른 직업군으로의 전직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뮤란의 크리스털’ 덕에 공짜로 생긴 것이나 다름없는, 4티어 히든 클래스로 전직할 수 있는 신이 내린 기회였지만 이안은 갈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이유는, 당연히 퀘스트 창에 들어 있는 ‘테이밍 마스터’ 클래스의 티어 상승 퀘스트 때문이었다.

‘테이밍 마스터 클래스의 티어가 상승하건, 서머너 나이트로 전직하건 둘 다 같은 4티어이긴 한데…….’

어떤 클래스가 더 좋은지는 지금 상황에서 알 수 없었고, 차이점을 따지자면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차이점은 바로, 클래스의 분류.

테이밍 마스터는 자체적으로 티어가 상승하는 진화형 히든클래스라면, 서머너 나이트는 처음부터 4티어라는 최상위 티어를 가진 클래스였다.

어차피 같은 직업군에 한해 상위 티어의 클래스로 갈아탈 수 있는 카일란의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뭐가 낫다고는 딱히 정의내릴 수 없다.

하지만 희소성의 측면에서는 진화형 클래스가 조금 낫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차이점은, ‘4티어’에 대한 불확실성.

서머너 나이트의 경우 이안이 퀘스트를 수락하기만 하면 그대로 전직하는 것이지만, 테이밍마스터가 4티어가 되기 위해서는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를 테이밍해야만 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큰 것이다.

루가릭스가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별로 상관이 없겠지만, 그는 무려 신화등급인 데다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네임드 몬스터이다.

아직까지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과연 테이밍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조차 불확실한 것이다.

‘으, 서머너 나이트라…….’

고민에 빠진 이안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하지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 * *

LB사의 카일란 기획 팀.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하던 나지찬은, 따끈따끈한 물을 부은 컵라면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역시, 야근엔 컵라면이지.”

기획 팀 내에서 유일하게 야근을 즐기는 인물.

오늘은 거의 일주일 만에 야근이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지찬은 회사에 남아 있었다.

“좋아, 모니터링실에는 아무도 없겠지?”

끼이익.

주변을 두리번거린 뒤 모니터링실의 문을 살짝 연 나지찬은, 실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모니터링실에 있는 수십 개의 모니터를 틀어 놓고 랭커들의 영상을 구경하며 컵라면을 먹는 것은, 나지찬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다만 다른 직원들이 상주할 때에는 모니터링실에 컵라면을 들고 들어갈 수 없었기에, 이것은 홀로 야근할 때만 가능한 소소한 일탈 같은 것이었다.

“읏차.”

가장 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등받이를 뒤로 쭉 밀어내린 나지찬은, 리모컨을 들어 모니터를 하나하나 켜기 시작했다.

핑- 핑- 피핑-.

모니터들이 작은 전자음을 내며 하나씩 켜지자, 나지찬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조작하여 원하는 랭커들의 개인영상을 하나씩 세팅하기 시작했다.

“지금이 저녁 9시니까 어지간한 랭커들은 전부 접속 중이겠군.”

랭커들이 오늘은 또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을지, 또 자신이 기획해 놓은 콘텐츠들 중 어떤 것들을 플레이 중일지, 나지찬은 설레는 마음으로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지찬이 세팅한 첫 번째 모니터에 떠올라 있는 유저는 이안이었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지찬은 항상 이안의 개인 영상을 가장 먼저 확인했으니까.

이안의 영상을 유심히 살핀 나지찬이 작은 감탄사를 터뜨렸다.

“오호, 리치킹의 지하 뇌옥을 또 찾았네? 예상보다 많이 이른데……. 어떻게 찾았지?”

나지찬이 기억하기로 현재 유저 길드에서 가지고 있는 영지에는, 더 이상 리치킹의 지하 뇌옥이 존재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정복 전쟁이 더 진행되지 않는 한, 리치킹의 지하 뇌옥을 추가로 찾을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구조를 보니 라타펠 영지에 있는 던전인 것 같은데……. 로터스가 벌써 라타펠까지 뚫었나?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나지찬은 주저리주저리 중얼거리며, 항상 지니고 다니는 본인의 태블릿PC를 켰다.

그리고 기획 팀에서만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흠, 역시……. 라타펠까진 아직 도달하지 못했군. 그렇다면 저기는 잠입해서 들어간 건가?”

나지찬은 더욱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이안이 저곳을 어떻게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왜 찾았는지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헬라임을 찾고 싶었겠지.’

나지찬은 헬라임에 대한 정보를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직접 그를 기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거물급 NPC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연히, 헬라임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이건 운이라고 해야 하나, 감이라고 해야 하나……. 만약 감이라면 정말 귀신같은 직감이로군.”

라타펠 영지 지하뇌 옥의 최하층.

이안이 짐작했던 것처럼, 헬라임은 분명 그곳에 있었다.

루스펠 제국 최고의 기사였던 헬라임.

사실 리치킹 에피소드가 완벽히 마무리되고 나면, 헬라임은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게 설계되어 있는 NPC였다.

리치킹이 소멸하고 어둠의 저주가 풀리고 나면, 어둠에 물든 헬라임을 정화시켜 그를 영입할 수 있는 퀘스트가 생성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유저가 헬라임을 얻을 수 있는 시점은, 리치킹을 성공적으로 처치한 후로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안이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숨겨져 있던 지하뇌옥을 발견했고, 이제는 퀘스트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크으, 역시 이안갓인가? 라타펠 영지군에 들키지 않고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기라도 하면……. 정말 헬라임을 얻어버릴 수도 있겠는걸.’

만약 그렇게 된다면, 로터스 왕국은 또 한 번 날개를 달게 된다.

헬라임 개인의 강력함보다도, 헬라임을 통해서 키워지게 될 왕국기사단의 수준이 말도 안 되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헬라임과 카이자르가 같은 레벨이라면 카이자르의 전투력이 조금 더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전투력 스텟일 뿐, 통솔력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특수 스텟들은, 헬라임이 훨씬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왕국의 신하로 영입하는 차원에서는, 헬라임이 카이자르보다 몇 배 이상 득이 될 인물이라는 것이다.

“후유, 이럼 또 강제 채널 고정인데…….”

후루룩-!

어느새 익은 컵라면을 흡입하며, 나지찬은 다시 리모컨을 조작했다.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메인 스크린에 이안의 영상을 옮긴 뒤, 나머지 모니터를 전부 꺼 버린 것이다.

랭커들의 상태를 싹 다 점검하려 했던 본래의 계획은, 완벽히 폐기되었다.

“후후, 파티 멤버가 최상급이기는 한데……. 그래도 쉽지는 않을 거다, 이안.”

언데드들을 차근차근 격파하며 이동하는 이안 일행.

그들을 보는 나지찬은 연신 히죽거리고 있었다.

본인이 기획한 던전을 랭커들이 격파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자신이 랭커들과 머리싸움을 하는 기분이 든 것이다.

특히 부단장 로젠을 비롯하여 데스나이트들과의 전투가 시작되자, 나지찬의 몰입도는 최고치까지 올라왔다.

“그렇지, 로젠! AI가 제대로 작동을 하는구나!”

로젠은 데스나이트를 하나하나 컨트롤하며 이안 일행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지찬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이안. 아마 2~3시간 내로 던전 클리어를 못 하면, 라타펠 영지군에 발각되고 말걸?”

급기야 모니터 속에 있는 이안과 대화까지 시도하는 나지찬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지찬은 당황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뮤란이 등장하여, 데스나이트들을 전부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미친……!”

그는 뮤란의 안배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으며 뮤란이 이안을 조만간 찾아갈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짓말 같은 타이밍은 나지찬의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와, 하필 이 시점에 뮤란이…….”

나지찬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뮤란이 이안의 일행을 돕는다면, 2시간이 아니라 30분 안에 던전이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뮤란의 전투력이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뮤란이 이안을 찾아온 이유이자, 이제 곧 이안에게 주어질 4티어의 히든 클래스인 ‘서머너 나이트’.

뮤란의 능력을 이어받은 이안은 4티어의 히든 클래스인 ‘서머너 나이트’로 전직하게 될 것이고, 전직하는 즉시 강력한 스킬들을 얻게 된다.

게다가 직업 스텟 또한 4티어의 히든 클래스에 맞춰 상향 조정될 터.

3티어의 히든 클래스를 가지고 있을 때와는 격이 다른 전투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뮤란의 전투력과 시너지를 내기 시작하면, 던전의 난이도는 절반 이하로 낮아질 것이다.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유, 이제 헬라임까지 얻겠네.”

타이밍 상 아직 헬라임은 흑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인 즉, 이안이 그를 구출하기만 하면 곧바로 등용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친밀도가 낮은 다른 유저라면 모르지만, 항상 로터스 제국군의 선봉에 서 있었던 이안이라면 헬라임과의 친밀도는 충분할 테니 말이다.

“쩝.”

흥미가 떨어진 나지찬은 다시 다른 모니터들을 켜기 시작했다.

아무리 이안의 영상이라 하더라도 결과가 불 보듯 뻔해지자 흥미가 떨어진 것이었다.

“에이 김샜네…….”

나지찬은 투덜거리며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지찬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의 귓전으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을 담은 이안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고맙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무슨……?

-너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고.

벌떡 일어난 나지찬이, 멍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 * *

“어째서지?”

“뭐가?”

“나는 강력하다. 뛰어난 소환술사인 네가 나의 강력한 능력을 이어받는다면, 분명 엄청난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겠지.”

“그런데 어째서 나의 힘을 거부하는가. 그대는 나의 안배를 이어받은 진정한 영웅. 이제 나의 모든 것을 이어받아 리치킹을 처단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거늘…….”

이안의 거절이 믿을 수 없는지, 뮤란은 멍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파티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안 님, 왜 그래요?”

“야,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4티어 히든 클래스가 뉘 집 개 이름인 줄 알아?”

훈이만 빼고 말이다.

“흠, 이 형이 드디어 자체 밸런스 패치를 시도하는 건가. 하긴 혼자만 잘나가면 게임이 재미없긴 하지.”

하지만 파티원들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이안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뮤란, 나는 테이밍 마스터의 길을 걷고 있다.”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길의 끝을 보지 못했다.”

“……?”

“‘서머너 나이트’또한 충분히 매력적인 길이라고 생각하나,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테이밍 마스터의 끝을 본 뒤, 그 뒤에 생각해 보겠다.”

“……!”

이안의 말이 끝나자 파티원 전원은 벙 찐 표정이 되었고, 뮤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뮤란에게 삽입되어 있는 인공지능으로서는, 도저히 이안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변수에 대처가 되어 있는 뛰어난 AI답게, 뮤란은 곧 정신을 차리고 이안의 말에 대응했다.

“역시 그대는 영웅의 자격을 갖추고 있군.”

“……?”

“자고로 대장부라면 그 정도의 뚝심과 포부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법.”

생각지 못했던 뮤란의 반응에 이안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 그렇지.”

뮤란의 말이 이어졌다.

“좋다. 그대의 선택을 존중하도록 하겠다. 다만…….”

“다만?”

“그 선택과는 별개로, 그대는 나의 안배를 이어 가야만 하는 존재.”

“무슨 안배……?”

뭔가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이안을 엄습했다.

“나, 뮤란의 뜻을 이어받은 영웅이여, 리치킹 샬리언의 야욕을 저지하고 그를 처단하여 인간계를 수호하라!”

띠링-!

경쾌한 퀘스트 알림음과 함께, 불길함은 곧 실화가 되고 말았다.

-영웅의 책임 (히든)

당신은 뮤란의 안배를 이어받은 영웅이다.

뮤란의 안배로 당신은 ‘테이밍 마스터’가 될 수 있었으며, ‘서머너 나이트’로의 길을 갈 기회를 부여 받았다.

이것은 뛰어난 인간계의 영웅인 당신의 권리.

하지만 권리가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당신이 비록 서머너 나이트로의 길을 거부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영웅으로서의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제 당신은 영웅으로서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뮤란의 안배를 이어받아 리치킹 샬리언을 처단하고, 인간계의 평화를 수호하자.

만약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SSS

퀘스트 조건 : ‘뮤란의 크리스탈’을 사용하여 전직한 자.

‘뮤란’의 인정을 받은 자.

제한 시간 : 30일.

보상 : 유니크 듀얼 클래스, ‘서머너 나이트Summoner Knight’

*퀘스트에 실패할 시, ‘테이밍 마스터’클래스의 티어가 한 단계 떨어집니다.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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