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35화 (45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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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뇌옥 (2)

* * *

루스펠 제국의 인장과 로터스 왕국의 인장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둘 다 그리핀을 본떠 만든 인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안이 데리고 있는 ‘핀’은 과거 루스펠 제국 인장의 모델이었던 그리핀의 새끼였다.

그러다 보니 닮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여 처음 등장한 남자의 갑주를 확인한 직후, 이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화려한 갑주에 새겨진 그리핀의 형상을 확인하고는, 순간 로터스 왕국의 NPC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레벨을 확인하고는, 그것이 아님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왕국에 500레벨이 있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저 녀석은 루스펠 왕국의 NPC일 확률이 높은데…….’

루가릭스나 카미레스.

리치 킹 샬리언과 동등한 레벨을 가진 순백의 기사.

이안은 그의 정체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헬라임을 제외하고도 루스펠 제국에 저만 한 기사가 있었던가?’

느닷없이 루스펠의 기사가 등장한 뒤 몇 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이안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지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탓-!

묵직하기 그지없는 판금갑주를 걸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며 대검을 휘둘렀고, 곧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콰쾅- 쾅-!

그의 검격劍擊 한 번 한 번에, 데스 나이트들의 생명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간 것이다.

하지만 놀라고만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안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파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비아 님, 버프 저기다 몰빵해 주세요!”

“알겠어요!”

“누나랑 훈이는 저 기사가 타깃팅하는 대로 따라다니면서 딜 지원해 주고, 유신은 나 따라와!”

“오케이!”

“좋아!”

빠르게 명령을 내린 이안은, 소환수들을 컨트롤하여 로젠을 향해 움직였다.

로젠의 통솔력이 힘을 잃기 위해서는, 최대한 그의 손발을 어지럽게 해야 한다.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로젠을 엄호하기에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을 테지만, 어차피 목적은 제거가 아니었다.

‘야금야금 생명력을 빼면서 기다리면 돼.’

최대한 많은 데스나이트들을 묶어 놓기만 하면, 저 무식하게 강력한 NPC가 데스나이트들을 하나씩 줄여 줄 것이었다.

막타를 신경 쓰지 못하는 점은 좀 아쉬웠지만, 지금은 빠르게 이 던전을 돌파하는 게 우선이었다.

단 하나의 NPC가 등장함으로 인해, 전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어 버렸다.

‘데스나이트 로젠’이 분노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네놈은 누구냐? 감히 샬리언 님의 영역에 발을 들이다니!”

이안 일행을 처음 만났을 때와 거의 비슷한 로젠의 대사였다.

때문에 이안은 대사를 대충 흘려들었지만, 그 다음은 그럴 수 없었다.

의문의 NPC가 그에 대한 대답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사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멍청한 놈, 어둠의 힘 따위에 굴복하여 대선배도 몰라보다니.”

“……!”

“황실 기사단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음이다!”

역으로 로젠에게 일갈을 터뜨린 남자가 대검을 휘둘러 전방을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검이 마치 살아 있는 듯 허공을 휘저으며, 데스나이트들을 도륙내기 시작한 것이다.

콰쾅- 콰아앙-!

마치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놀라운 검예였다.

전투를 하다 말고 시선이 빼앗긴 이안은, 입을 쩍 벌리며 감탄했다.

‘미, 미쳤다. 저게 뭐야 대체?’

하지만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대검과는 별개로, 남자가 한 쌍의 검을 추가로 뽑아 든 것이다.

스르릉-!

남자의 등에 교차되어 메어져 있던, 두 자루의 검.

심지어 쌍검으로 사용할 만한 일반적인 검도 아니었다.

처음 꺼내 들었던 대검과 다를 바 없는, 무식하리만치 거대한 한 쌍의 대검이었다.

놀란 것은 당연히 이안만이 아니었다.

남자를 서포팅하기 위해 마법을 캐스팅하던 훈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이다.

“저게 말이 돼?”

세 자루의 대검을 동시에 휘두르며, 순식간에 데스나이트들을 제거하는 의문의 NPC.

잠시 당황했던 이안 일행도 얼른 그를 도와 전투를 이어 갔고, 그 결과 데스나이트들은 순식간에 제거되고 말았다.

“크, 크윽!”

데스나이트 로젠은 원통한 듯 이를 악물며, 의문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몇 시간은 걸릴 것 같았던 전투가 단 5분 만에 끝나 버린 놀라운 광경이었다.

“어둠에 물들기에는 아까운 녀석이군.”

알 수 없는 대사를 중얼거린 그는, 로젠을 향해 다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베기 위한 동작이라기보다는 후려치는 느낌의 동작이었다.

퍽-!

묵직한 검면으로 로젠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었다.

“커헉!”

이미 생명력이 거의 빠져 있었던 로젠은 그 한 방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데스나이트 로젠’이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뇌옥 지하 4층으로 가는 길이 오픈됩니다.

우우웅-!

공명음이 울리며, 이안 일행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어둠의 결계가 해제되었다.

하지만 이안 파티 중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알 수 없는 괴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섣불리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우군인 듯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훅-!

남자는 양손에 쥐고 있던 대검을 허공에 던져 올렸다.

그러자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세 자루의 대검이, 동시에 날아들어 그의 등에 있는 검갑으로 꽂혀 들어갔다.

처척- 척-!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이안은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멋있는 건 혼자 다하네.’

하지만 불만스러운 이안과는 달리, 두 눈이 초롱초롱한 인물도 있었다.

그는 바로 훈이였다.

“크으……!”

느닷없이 등장한 기사의 ‘간지’에 반해 버린 훈이가 그를 향해 쪼르르 걸어 나왔다.

“나는 어둠의 군주 훈이. 죽은 자들의 제왕이지. 그대의 이름을 알고 싶군.”

그런데 훈이의 대사가 끝난 순간, 꽂혀 들어갔던 남자의 대검이 다시 스르륵 뽑혀 나왔다.

“아직 때려잡아야 할 녀석이 남아 있었나?”

그에 훈이는 사색이 되어 본능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워, 워. 나는 아니라고.”

“어둠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나, 난…… 리치킹을 처단하려 하는 정의로운 어둠이다!”

그리고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는 파티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요즘 훈이가 조용하다 했더니…….”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재밌네요.”

“…….”

그런데 훈이와 대화를 나누던 의문의 사내가, 문득 이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훈이가 다급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이름은 말해 주고 가야지!”

하지만 훈이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는 천천히 이안을 향해 다가왔다.

그에 당황한 이안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꿀꺽.

이어서 이안의 앞에 다가선 남자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네가 이안이로군.”

“……?”

이안은 순간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날 알아?’

남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반갑다, 나의 후예여.”

* * *

루스펠 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사.

과거 리치킹의 야욕을 저지하고 그를 마계에 봉인한, 위대한 인간계의 영웅.

용기사단장 카미레스와 비교하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무지막지한 강력함을 가진 이 기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뮤란’이었다.

“뮤란? 당신이 여길 어떻게…….”

하지만 이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뮤란은 이미 1천 년도 더 전에 사라진, 그야말로 고대의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자신이 뮤란이라 주장하는 눈앞의 이 남자는, 심지어 주름살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이었다.

거의 이안과 동년배로 보이는, 2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

이안의 의문에, 뮤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나,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한 이안은, 가까스로 말을 삼켜 내고는 뮤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과거에 해 놓았던 안배를 통해, 잠시 그대를 돕기 위한 역천을 행하였을 뿐.”

그리고 이 말을 듣자마자, 이안은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맞아, 뮤란의 안배! 그땐 무슨 소린가 했는데…….’

리치킹의 에피소드가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 이안은 뮤란의 안배와 관련된 시스템 메시지를 본 적이 있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달리느라 잊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시점에 도움을 받으니 뭔가 횡재한 기분이었다.

한편 이안의 파티원들은, 몹시 부러운 표정이 되어 있었다.

“뭐야, 저 형은 또 무슨 퀘스트를 했길래…….”

“와, 대체 어떻게 하면 1천 년 전의 NPC까지 데려올 수 있는 거예요?”

“내 말이…….”

이안은 입이 찢어지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뮤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날 도와주러 왔다고?”

“그렇다.”

“같이 리치킹이라도 때려잡아 주려는 거야……?”

이안은 한껏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뮤란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안타깝게도 이안의 기대를 벗어나 있었다.

“아니, 그건 아니다. 역천의 힘을 이용해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일 뿐.”

“쩝…….”

“그 안에 리치킹을 처단하는 것은, 나로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야 그렇겠지…….”

뮤란이 보여 준 전투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리치킹에게 닿기 위해서 남은 벽이 너무도 많았다.

“그럼 어떻게 돕겠다는 거야?”

이안의 질문이 이어졌고, 모든 파티원들의 시선이 뮤란을 향해 고정되었다.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안을 돕는다는 것은 파티원 전체를 돕는 일이 될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뮤란의 대답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내게 주어진 하루 동안 그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전해주려 한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이안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퀘스트 창이 주르륵 떠올랐다.

띠링-!

-영웅, 뮤란의 안배 (히든)

인간계의 위대한 영웅 뮤란.

과거 리치킹의 야욕을 저지했던 그는, 마계에 리치킹을 봉인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것으로 안심할 수 없었다.

그를 완벽히 소멸시키지 못하였으니, 언젠가는 다시 부활하여 야욕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여 그는, 그때를 대비한 안배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뮤란의 크리스털을 얻은 당신이 바로, 영웅 뮤란의 후예이자 안배이다.

리치킹이 부활하여 어둠의 군대를 일으킨 지금, 영웅 뮤란이 오랜 시간의 벽을 넘어 당신을 돕기 위해 나타났다.

그는 당신이, 자신의 진전을 이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만 동의한다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넘겨줄 생각이다.

이제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뮤란의 힘을 얻고 싶다면 그의 제안을 수용해야 하며, 테이밍 마스터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싶다면 거절해야 한다.

퀘스트 난이도 : 없음

퀘스트 조건 : ‘뮤란의 크리스털’을 사용하여 전직한 자.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4티어 히든 클래스 ‘서머너 나이트Summoner Knight’

퀘스트의 내용을 전부 읽은 이안은, 그야말로 울상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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