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433화 (45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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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타펠 영지 (3)

* * *

LB소프트 기획 팀의 휴게실.

두 남자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기획 3팀의 대리 나지찬과 그의 후임 기획자인 임철우였다.

“대리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순조롭게 진행돼서 다행이기는 한데……. 너무 기획을 운에 맡겨 놓은 거 아닙니까?”

“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렇잖습니까. 뮤란의 크리스털이 애초에 랜덤 드롭인데……. 만약 이안이 아니고 능력 없는 유저가 그거 먹었으면, 시나리오 다 망가질 뻔한 거 아닙니까?”

임철우의 의문에 나지찬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뮤란의 크리스털이 랜덤 드롭이라고 누가 그래?”

“네? 드롭율이 따로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나지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특정 조건을 만족시켜야 드롭되는 템이야 그거.”

“……?”

“생각해 봐. 아무리 드롭율이 낮다고 해도 랜덤 드롭이었으면, 지금까지 딱 한 번 드롭됐을 리가 있겠냐고.”

“그, 그것도 그러네요.”

기획 팀에 들어온 지도 어언 반년이 지난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에 철우의 두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리고 나지찬의 말이 이어졌다.

“결론부터 얘기해 주자면, 뮤란의 크리스털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거야.”

“조건이라면 어떤……?”

“나도 전부 다 알지는 못하는데, 평균 퀘스트 달성 등급부터 시작해서 스킬 활용 능력. 거기에 컨트롤 능력까지. 데이터로 수집된 모든 조건이 충족돼야 뮤란의 크리스털을 얻을 수 있지. 그리고 진행해 온 퀘스트 방향성도 맞아떨어져야 하고.”

나지찬의 말에 임철우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선배.”

“또 뭐?”

“조건을 충족시켜 뮤란의 크리스털을 얻은 유저가, 그걸 다른 유저에게 팔거나 양도해서 그 유저가 전직할 수도 있잖아요. 이안이 운 좋게 그걸 산 유저일 수도…….”

“설마 그걸 누가 팔았겠어……가 아니고, 멍청아. 뮤란의 크리스털은 계정 귀속 아이템이거든?”

“아……. 그랬지, 참.”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뮤란의 크리스탈로 전직한 유저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능력이 검증된 유저라고 할 수 있어. 어지간한 퀘스트 해결 능력은 갖췄다고 볼 수 있는 거지.”

“그렇군요. 그럼 다른 전직 템의 경우에도 뮤란의 크리스털처럼 조건부 드롭 템이 존재하겠네요?”

“그런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

“아하…….”

나지찬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임철우는 아예 수첩을 꺼내어 받아 적었다.

카일란의 경우 스케일 자체가 워낙 방대해서, 반년이 넘게 회사를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수인계받지 못한 내용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략적인 시나리오의 골자를 전부 이해한 임철우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리듯 나지찬을 향해 입을 열었다.

“대리님, 이제 뮤란의 안배까지 발동했으니, 이번 시나리오는 더 걱정할 게 없겠네요?”

나지찬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겠지. 뭐, 이안이 퀘스트 해결능력이 부족한 유저도 아니고……. 아마 순조롭게 진행이 될 거야.”

하지만 대답과 다르게, 나지찬의 마음 한구석에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안이 종잡을 수 없는 유저이기는 하지만……. 뭐,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 * *

콜로나르 대륙의 동남쪽.

역사상 최초로 대륙을 통일할 뻔했던 강대한 제국.

루스펠 제국의 수도였던 ‘뮤란’에는, 아직까지도 제국의 잔재가 남아 있었다.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늘을 찌를 듯 세워져 있는 웅장한 황성.

그 성곽을 따라 늘어서 있는 화려한 구조물들까지.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잔재일 뿐, 지금의 뮤란은 그저 ‘유적지’라고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던 도시에는 사람 대신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았고, 곳곳에는 던전까지 생겨났다.

하여 지금의 뮤란은, 그저 대륙 동남쪽에 있는 수많은 사냥터들 중 한 곳일 뿐이었다.

300레벨도 넘는 고레벨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상위권 유저들의 훌륭한 사냥터.

하지만 사냥터로 전락한 도시의 중심에는, 특이한 공간이 하나 존재했다.

그 어떤 몬스터도 접근하지 않는, 마치 성역聖域과 같은 느낌의 공간이랄까.

거대한 동상 하나가 우뚝 세워져 있는 위치를 중심으로 반경 50미터 정도의 공간에는, 그 어떤 몬스터도 발을 딛지 않는 것이다.

하여 이 특별한 공간은, 사냥을 나온 유저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사냥터 한복판에 존재하는 안전지대이니,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유용할 수밖에 없는 구역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갓 290레벨에 도달한 영훈과 세미는, 이 안전지대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었다.

원래는 두 사람의 능력으로 버거운 사냥터인 이곳을, 안전지대 덕에 사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영훈아, 여기는 대체 왜 몬스터들이 들어오지 않는 걸까?”

“글쎄. 아무래도 이 동상의 영향이 아닐까?”

세미의 물음에 영훈은 솟아 있는 동상을 툭툭 건드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흙먼지가 쌓이고 곳곳이 파손되기는 하였으나, 용사의 동상은 아직까지도 웅장한 위용을 뿜어내고 있는.

말에 올라탄 채 검을 뽑아들고 있는 동상의 정체는 다름 아닌 영웅 뮤란이었다.

과거 루스펠을 통치했던 절대자이자, 대륙의 영웅으로 칭송받은 용사인 뮤란.

영훈의 대답에 세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영웅이었던 뮤란의 기운 같은 게 남아서 몬스터들의 접근을 막는 건가?”

“글쎄. 그런 디테일한 부분이야 기획자들만 알고 있겠지, 뭐.”

영훈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장비의 내구도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때, 세미가 당황한 표정이 되어 영훈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여, 영훈아.”

“아, 왜 또?”

“도, 동상이 움직였어……!”

그 말에 덩달아 당황한 영훈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동상은 방금 전 영훈이 봤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영훈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가만히 있던 동상이 왜 움직여, 짜샤? 아까는 사냥하다가 졸더니 이제는 헛것까지 보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고! 진짜라니까?”

“됐거든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피곤하면 잠이나 자러 가. 난 사냥 좀 더 하다가 잘 거니까.”

영훈은 핀잔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미가 아닌 다른 곳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몬스터다!”

“뭐야? 안전지대에 갑자기 몬스터가 왜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그 비명 소리에, 세미와 영훈은 얼른 전투할 준비를 갖추었다.

안전지대에 몬스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두 사람이 쉬고 있는 이곳에도 언제 몬스터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그러게. 몇 달 동안 한 번도 몬스터가 들어온 적이 없는 안전지대였는데?”

세미는 중얼거리듯 대꾸하며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그런데 세미의 말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쿠르릉- 쿠쿠쿵-!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두 사람의 뒤쪽에 서 있던 동상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결국 어둠이 도래하였다는 말인가…….

도시, 뮤란의 하늘.

반투명한 형체를 가진 한 남자가 허공에 뜬 채, 근심어린 표정으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의 외모는, 방금 무너져 내린 동상의 그것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샬리언……. 그 사악한 자가 결국 마계에서 풀려나다니…….

눈을 지그시 감은 남자는, 양손을 천천히 가슴 앞으로 모았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한 자루의 대검이 되어 그의 눈앞에 솟아났다.

-이제는 나의 모든 걸 전해 줄 때가 되었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린 남자는, 커다란 대검을 등 뒤로 둘러메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 떠 있던 그의 모습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하얀 구름만이 남아 바람을 타고 흘러갈 뿐이었다.

* * *

콰쾅- 콰콰쾅-!

-‘어둠의 흑기병’ 몬스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19,827,198만큼 획득합니다!

-‘다크 살라멘더’ 몬스터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를 13,875,421만큼 획득합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라 할 수 있는 랭커들의 파티 사냥.

거의 최강이라 할 수 있는 파티 구성원에 500레벨의 신룡 루가릭스까지 가세하니, 뇌옥 던전은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잔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유신, 도발 타이밍 방금 너무 빨랐어. 마지막에 어그로 풀려서 몬스터 몇 마리 빠져나갔잖아!”

“훈이, 넌 소울디케이 캐스팅할 시간에 단일 스킬 날렸어야지. 방금 같은 상황에서는 광역기 효율이 떨어진다고.”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며, 레미르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진짜 별종이 따로 없다니까.”

레미르의 중얼거림을 들은 레비아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레미르 님, 틀린 말은 하나도 없잖아요?”

“그, 그렇기는 하죠…….”

“그리고 경험치 게이지 한 번 확인해 보세요. 그럼 불만이 쑥 들어갈걸요?”

“……!”

레비아의 조언에 따라 경험치 게이지를 확인한 레미르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의 사냥 속도도 절대로 느린 편이 아니었건만, 평소보다 경험치 쌓이는 양이 한 배 반은 많았기 때문이었다.

솔플과 파티플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말도 되지 않는 수치라 할 수 있었다.

‘이러니까 새벽같이 불러도 다 튀어올 수밖에…….’

마치 마약처럼 달콤한 경험치의 유혹은, 이안의 마수를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파티플을 한 번 뛰고 나면 다시는 안 해야지 하다가도, 이안이 부르면 자신도 모르게 달려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후회를 할 때쯤이면, 이미 사냥이 한참인 시점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어느새 자기합리화를 시전하는 레미르였다.

그녀는 이안의 지시에 따라 착실히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좋아, 30분 내로 지하 3층 클리어하고 밑으로 내려가자고!”

신나서 소리치는 이안을 향해, 훈이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형, 아직 3층 절반 가까이 남았는데 어떻게 30분 안에 클리어해? 아니, 할 수 있다고 쳐도 굳이 그렇게 빨리 사냥할 필요가 있어? 우리 한 10분만 쉬고 하자.”

하지만 이안은 훈이의 애절한 부탁을 냉정하게 외면해 버렸다.

“여긴 적진이야, 인마. 언제 라타펠 영지군이 알아챌지 모르잖아. 최대한 빨리 클리어하고 던전 끝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야 돼.”

이번에는 유신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라타펠 영지군이 어떻게 알아채?”

“음?”

“경비병부터 시작해서 쥐새끼 한 마리까지 남기지 않고 싹 다 잡았는데……. 뭐라도 도망쳐야 영지군이 알아챌 거 아냐.”

제법 그럴싸한 반론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재고할 여지도 없다는 듯,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시끄러.”

“…….”

간단하게 파티원들의 불만을 잠재운 이안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엘카릭스도 1인분 이상을 거뜬히 해 주고 있었으니, 사냥이 더욱 흥겨운 이안이었다.

“엘, 빛의 속박!”

“엘, 드라고닉 베리어!”

“잘했어, 우리 엘이!”

그리고 이안과 모종의 거래를 한 엘카릭스는, 스파르타식 사냥 일정에도 군말 없이 잘 따라왔다.

“헤헤, 아빠. 역시 제가 최고죠?”

“그러엄! 엘이 네가 오빠보다 스무 배쯤 나은걸.”

“헷, 빨리 여기 클리어하고 경매장 가고 싶다. 아빠가 예쁜 옷 사 주기로 했는데.”

“…….”

소소한 잡음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안 일행은 순조롭게 던전을 클리어해 나갔다.

던전의 난이도는 켈스가 있었던 지하 뇌옥과 비슷했으니, 그때보다 전력이 한층 강력해진 이안 파티로서는 순조로운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대략 30여분 정도가 지나갔고…….

“오, 저기 계단이다!”

“후유, 진짜 30분 만에 돌파가 가능할 줄이야.”

“내 말이…….”

뇌옥 지하3층을 클리어한 이안 일행은, 4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로운 듯 보였던 그 순간…….

쿠쿵- 쿠쿠쿵-!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어, 어어……?”

던전 전체가 거세게 흔들리더니, 일행의 앞에 검보랏빛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우웅-!

커다란 공명음과 함께, 굵직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이다니!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그런데 그 목소리는, 어쩐지 낯익은 남자의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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