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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카릭스와 루가릭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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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릭스는 강력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안은 정확한 루가릭스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
‘신화 등급의 드래곤이니, 당연히 브레스와 드래곤 스킨은 장착하고 있을 거고……. 마법의 일족 능력도 가지고 있겠지.’
경험치 버프가 끝나기 전까지 최대한 루가릭스의 능력을 뽑아먹기 위해서는 최대한 정확하게 루가릭스의 스킬들을 알아야만 했다.
때문에 이안은, 아직까지 뚱한 표정이 되어 있는 루가릭스를 향해 슬쩍 운을 떼었다.
“루가릭스, 너 지난번에 쓰던 광역 마법, 그거 뭐야?”
“뭐 말인가.”
그리고 이안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방해꾼이 한 발 빨리 대화에 끼어들었다.
“꼬맹이, 너 자꾸 우리 아빠한테 반말할래?”
“우씨, 넌 좀 빠져 있어! 오라버니 말씀하시는데.”
“우쒸.”
티격태격 다투기 시작하는 두 남매.
그에 이안은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엘아, 내 편 들어주는 건 좋은데…….’
뭔가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정신이 없었다.
두 꼬맹이의 신경전으로 인해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이안이 중재에 나섰다.
엘카릭스를 안아들며, 할 수 있는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를 타이른 것이다.
물론 엘카릭스의 편을 들었음은 당연했다.
“우리 착하고 예의바른 엘이가 좀 이해해 주자. 이 꼬맹이 태생이 좀 버릇없어서 그래.”
그에 엘카릭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흐응, 그렇다고 해 두죠, 뭐.”
물론 루가릭스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말이다.
“아니야! 버릇없다니! 대체 누가?”
“여기에 엘이랑 나 말고 또 누가 더 있어? 너지, 짜샤.”
“우쒸.”
그의 말에 루가릭스의 입이 삐죽 나왔지만, 이안은 개의치 않았다.
한 번 강하게 나가기로 한 이상, 중간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기어오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의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대답이나 해, 꼬맹아. 지난번에 썼던 그 회오리 같은 마법, 뭐야?”
케이튼 영지의 전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던 것은 이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안의 기여도가 가장 컸던 것은 아니다.
워낙에 유명한 랭커인 데다 선봉에서 어둠군대의 진영을 무너뜨렸기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을 뿐.
사실상 500레벨인 루가릭스나 카미레스보다 더 많은 기여를 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소환수들이라도 전부 소환해 놓았으면 모를까 엘카릭스의 레벨 업을 위해 아무 소환수도 소환해 두지 않았었으니, 어떤 면에서는 훈이나 레비아 같은 랭커보다도 기여도가 더 낮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승리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누구였을까.
그것은 놀랍게도, 카미레스나 용기병단이 아닌 루가릭스였다.
특히 마지막 몬스터 웨이브에서 소환했던 거대한 어둠의 회오리는,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떡대의 어비스 홀이 블랙홀이라면, 루가릭스의 회오리는 ‘움직이는 블랙홀’이랄까.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부수고 지나가는 위력적인 cc기이자 공격 마법이다.
게다가 루가릭스가 구사하는 고유 능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루가릭스는 이안이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능력들을 구사했었다.
때문이 이안은 그 스킬들의 구체적인 스펙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 스킬들을 제대로 활용하면, 사냥 효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드래곤 남매의 신경전이 일단락되고 나자, 루가릭스는 우쭐대며 스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 스킬. 그건 내 고유 능력이라기보다 마법이야.”
“마법?”
“그래. 9서클의 흑마법인 소울스톰이지.”
“9서클이라고……?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신룡이 언제 거짓말하는 것 본 적 있어?”
“뭐, 거짓말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그나저나 놀랍네, 9서클이라니…….”
“후후, 엄청나지? 내 흑마법 실력은 대단하다고.”
이어서 설명을 들은 이안의 머리가 재빨리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안의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거대한 어둠의 폭풍.
9서클의 마법이라면 그만한 위력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직까지 인간 마법사 유저들 중에는, 9서클의 마법을 구사하는 유저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고유 능력이 아니라 마법이라면……. 마법의 일족 능력으로 배운 마법이라는 말이겠고.’
더해서 흑마법이 강력한 공격력을 가지려면, 루가릭스의 전투 능력치도 엘카릭스처럼 지능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안은 더 많은 정보를 캐내기 위해 루가릭스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잘만 구슬리면 루가릭스의 스킬들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엘카릭스에게 가르칠 9서클 스킬들을 구할 방법까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안은 목소리 톤부터 바꾸었다.
“우와, 루가릭스, 보기보다 엄청난데? 그런 마법은 어디서 배우는 거야?”
지능 수치와 별개로 단순하기 그지없는 루가릭스다.
그리고 이런 루가릭스는, 칭찬과 약 올림에 무척이나 약할 게 분명했다.
그것은 이안이 그간 소환수들을 키워 오며 얻게 된 통찰력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안의 예상처럼, 우쭐한 루가릭스가 정보를 술술 풀기 시작했다.
“엣헴. 이 몸의 대단함을 이제야 깨달은 거야?”
“그렇다니까? 난 9서클의 마법이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후후, 그럴 수밖에. 인간계에는 9서클의 마법이 없으니 말이야.”
“오오, 그래?”
“9서클의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말이지…….”
그리고 루가릭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놀라운 것들이었다.
지금껏 카일란을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었을 정도의 고급 정보들.
“9서클의 마법서는, 인간들의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초월적인 존재들만의 영역이라 할 수 있지. 때문에 ‘중간계’에 가야만 9서클 이상의 마법들을 구할 수 있어.”
“중간계라면……?”
“중간계는 하나의 차원계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야. 그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루가릭스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원계를 세 가지의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설명하였다.
그 첫 번째 분류가 바로, 인간계나 마계와 같은 차원계가 속해 있는 ‘지상계’.
지상계에는 가장 많은 차원이 존재하며, 심지어 인간계와 마계도 하나가 아니라고 하였다.
마우리아 제국이 있었던 남섬부주나, 과거 ‘할리’를 테이밍했던 고대의 차원계까지도.
같은 차원계가 몇 개나 존재하는지 루가릭스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안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서버’였다.
‘인간계와 마계가 여러 개 존재한다는 건, 어쩐지 다른 나라의 서버들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었지만, 어쩐지 그럴싸하다는 추측이었다.
그리고 이안이 그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원계의 두 번째 분류에 대한 루가릭스의 설명이 다시 이어졌다.
루가릭스의 입에서 방금 전에 나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며, 이안이 카미레스로부터 얻은 ‘용기사의 징표’ 아이템 설명 창에도 쓰여 있었던 바로 그 중간계였다.
“지상계만큼은 아니지만, 중간계 또한 여러 가지 차원이 존재해. 정령계나 명계, 천계. 그리고 우리 드래곤들의 고향인 용천龍天과 같은 곳이 바로 중간계지. 나도 모든 차원계를 아는 건 아니니까 다 설명해 줄 수는 없어.”
중간계와 지상계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같은 차원계가 여러 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전의 가정이 맞다는 전제 하에, 이안은 또 하나의 가정을 세워 볼 수 있었다.
‘만약 지상계의 수많은 차원계가 서버를 의미하는 거라면, 각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중간계에서는 다른 서버의 유저들을 만날 수도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안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한국 서버의 랭커들도 충분히 강력하지만, 다른 나라 서버의 랭커들과도 경쟁할 수 있게 된다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콘텐츠도 정말 무궁무진할 것이었다.
‘이거 정말 기대되는데?’
그리고 이안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루가릭스의 마지막 설명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중간계의 위에는, 천상계라는 곳이 있어.”
“천상계?”
“응.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할 게 많지 않아.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이기도 하거니와, 천상계는 단 하나의 차원만 존재하거든.”
“……?”
“천상계를 다른 말로 ‘신계’라고 하거든.”
루가릭스의 설명은 여기서 끝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안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상태였다.
앞으로 카일란을 플레이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산더미같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카일란의 세계관에 대해 무척이나 유익한 정보들을 들은 이안은 루가릭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짜식, 생각보다 똑똑한데?”
“그, 그럼! 난 아는 게 정말 많다고.”
“그러게. 의외로 똘똘한 구석이 있어.”
“뭔가 기분이 나쁜데……. 그거 칭찬이지?”
“당연하지.”
처음에는 그저 엘카릭스에게 가르치기 위한 마법을 얻어 보려고 시작했던 루가릭스 구슬리기였다.
하지만 이렇게 스케일이 커진 이상, 이안은 궁금한 것들을 더 물어보기로 했다.
“그럼 루가릭스, 너는 중간계 중 어디어디를 가 본 거야?”
“나야 용천龍天을 제외하면 가 본 곳이 없지.”
“그래? 그럼 다른 곳에는 가는 방법을 모르겠네?”
“응, 다른 중간계로 가는 방법은 몰라.”
“흐음, 그래도 용천에 가는 방법은 당연히 알겠지?”
“물론.”
하지만 루가릭스는 용천에 가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용신이 내린 지고한 명령 때문.
하지만 기분이 좋아진 덕분인지, 약간의 힌트는 던져 주었다.
“용의 제단. 그 어딘가에 용천으로 통하는 힌트가 있을지도 몰라. 내가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그래? 용의 제단이라……. 어디서 들어 본 것도 같은데.”
이안은 루가릭스의 말을 한번 곱씹어 보았다.
새로운 정보는 머릿속에 정확히 넣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안의 두 눈이 돌연 크게 확대되었다.
하나의 기억이 순간적으로 이안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용의 제단……! 그 깊숙한 곳에 있었던 차원의 문!’
남섬부주, 세이치 고원에 있던 널찍한 필드인 용의 대지.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거대한 첨탑이, 이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이안이 여의주를 훔치기 위해 들어갔던 바로 그곳.
‘용의 제단’이라는 이름의 던전이 이안의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랐다.
‘그래. 그때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었던 차원의 문이, 용천이라는 중간계로 통하는 문이었던 거야!’
단지 사냥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시작했던 ‘루가릭스 구슬리기’.
이것이 이안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굵직한 정보들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