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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 (3)
* * *
이안을 중심으로 황금빛의 광휘가 퍼져 나갔다.
전신이 금빛으로 물들어 버릴 정도의 찬란한 금빛 물결과, 구 형태로 은은하게 퍼져 있는 얇고 투명한 막.
‘무적’ 상태를 의미하는 이펙트가 떠오르자마자, 이안은 하르가수스의 등을 박차고 전장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엘카릭스를 소환한 데다 하르가수스까지 박차고 앞으로 나섰으니, 이안은 그야말로 완벽히 혈혈단신이 되었다.
타탓-!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안은 귀룡의 방패까지 착용 해제해 버린 것이다.
-‘귀룡의 방패’아이템을 착용 해제하셨습니다.
-방어력과 피해 흡수량이 대폭 감소합니다.
-감소했던 ‘정령왕의 심판’아이템의 모든 능력치가 원래대로 복구됩니다.
-전투 능력이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아무리 등급이 낮은 스켈레톤이라 하더라도, 레벨이 400레벨에 육박하는 이상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다.
때문에 이안으로서도, 귀룡의 방패 없이 이들에게 둘러싸이는 건 무척이나 위험한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도, 이안에게는 그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한 계획이 있었다.
‘장비 스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겠어.’
카일란은 시스템 상 장비 스왑에 대한 패널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투 중의 장비 스왑이 쉬운 것도 결코 아니었다.
장비를 교체하는 순간 잠시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며, 그 사이에 어떤 공격이라도 당하면 장비가 교체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장비를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충 1초 정도.
그 사이에 어떤 공격이라도 받으면 장비 스왑이 캔슬되는 것이다.
무적의 상태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대미지가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션이 방해 받는 것이 문제였으니까.
지금 이안의 계획은 간단했다.
무적이 뜨는 순간 귀룡의 방패를 집어넣었다가, 무적이 풀리기 직전에 다시 방패를 착용하는 것.
방패를 착용 해제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었지만, 만약 다시 착용하는 과정에서 캔슬이라도 당한다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방패 없이 무적이 풀리게 되면, 순식간에 생명력이 빠져나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클수록 돌아오는 것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법.
‘사냥 속도를 더 끌어올리려면 이 방법밖엔 없어.’
과감하게 방패를 해제한 이안이 정령왕의 심판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뛰어났다.
쾅- 콰쾅-!
-‘스켈레톤 아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셨습니다!
-‘스켈레톤 아처’의 생명력이 2,508,008만큼 감소합니다.
-‘스켈레톤 아처’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귀룡의 분노’버프 스텍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양손무기의 공격력이 온전히 적용받으니, 공격력이 미친 듯이 뻥튀기된 것이다.
이쯤 되자 일부러 해골들의 ‘영혼의 그릇’을 노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적당한 약점에 창날을 꽂아 넣으면, 마치 두부처럼 바스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무적’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은, 방어나 회피에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비록 5초라는 짧은 지속 시간에 불과하지만, 방어를 도외시한 이안의 무차별 공격은 주변의 해골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빠각-! 콰아앙-!
-‘스켈레톤 아처’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스켈레톤 워리어’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스켈레톤 아처’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스켈레톤 나이트’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스켈레톤 중 방어력이 가장 강력하다는 ‘스켈레톤 나이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방은 어찌 버티더라도, 연속 공격이 들어가면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어어어-!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스켈레톤들은 까만 재가 되어 사라져 갔다.
순식간에 열 마리에 가까운 스켈레톤을 박살 낸 이안의 주변은 휑해졌고, 이안은 재빨리 귀룡의 방패를 다시 착용했다.
다시 적들이 다가오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만 했다.
-‘귀룡의 방패’ 아이템을 착용하였습니다.
-양손 무기인 ‘정령왕의 심판’의 모든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방어력과 피해 흡수량이 대폭 증가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깔끔하게, 장비 스왑까지 성공한 이안.
우우웅-!
그 뒤로 무적 효과가 사라졌지만 상관없었다.
귀룡의 방패를 다시 착용한 이상 무리하지만 않는다면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안은 슬쩍 시선을 돌려 퀘스트 달성 목표치를 응시했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좋아, 일곱 마리 정도 벌렸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다시 달려드는 언데드들을 향해, 이안의 양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쾅- 퍼퍼퍽-!
막고, 휘두르고.
피해 흡수율이 거의 90퍼센트에 육박하는 이안의 정확한 방패 막기를 보고 있노라면, 기사 클래스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원래 90퍼센트대의 피해 흡수율은, 정확도 보정 패시브를 가지고 있는 기사 클래스들의 전유물이었으니까.
심지어 피해 흡수가 끝이 아니었다.
-‘스켈레톤 워리어’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습니다.
-10,981만큼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피해 흡수율 95.24퍼센트)
-‘귀룡의 방패’의 영혼력이 작용합니다.
-23,450만큼의 피해를 추가로 흡수합니다.
-생명력이 0만큼 감소합니다.
귀룡의 방패는 에고 웨폰Ego Weapon이었고, ‘영혼력’이라는 특수 옵션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총 23만 정도가 들어왔어야 했던 강력한 스켈레톤 워리어의 공격이 한순간에 솜방망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위용을 뿜어내는 와중에도, 데스나이트와 같은 상위 언데드들은 철저히 피하는 이안이었다.
“캬아아오! 인간, 싸우자!”
“싫어!”
상대할 자신이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1초의 시간이라도 낭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데스나이트를 잡건 스켈레톤 아처를 잡건, 퀘스트 달성 목표치에 반영되는 건 똑같이 한 마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15분 정도가 더 지났을까?
띠링-!
드디어 이안이 기다렸던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용기사단장 카미레스의 시험’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퀘스트 달성시간 : 27분 23초/90분 00초 (SSS)
-목표 : 언데드 150기 처치. (완료)
-유저 달성율 : 150/150 (100퍼센트)
-카미레스 달성율 : 231/250 (92.4퍼센트)
-최종 클리어 등급 : SSS
-돌발 퀘스트를 완수하셨습니다.
-전투가 끝난 뒤, 용기사단장 ‘카미레스’로부터 퀘스트 완료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이안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 * *
근래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 중, 단연 최고의 규모였던 케이튼 영지의 전투.
거의 20시간에 걸친 엄청난 규모의 영지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엎치락뒤치락 하던 끝에 결국 영주 성까지 적들을 밀어내었고, 비로소 케이튼 영지가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케이튼 영지의 영주였던 ‘케이튼 백작’은 엘리카 왕국의 다른 영지로 피신했고, 때문에 영주성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하르가수스의 등에 올라탄 이안이, 천천히 영주성 안으로 입성했다.
이안의 뒤로는 몇몇 로터스의 수뇌부 유저들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따각따각.
그러자 이안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들이 주르륵 하고 떠올랐다.
띠링-!
-‘케이튼 영지’의 점령율이 1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엘리카 왕국’의 영향력이 전부 제거되었습니다.
-‘케이튼 영지’가 ‘무정부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안의 입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의도치 않은 전쟁의 시작이었지만……. 오히려 더 나은 상황이 되어 버렸군.’
로터스 왕국을 건국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난 상황.
전륜왕의 퀘스트를 진행하던 도중 ‘황제의 옥새’까지 손에 넣은 이안으로서는, 당연히 제국을 건국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엘리카 왕국’의 정복이었다.
로터스 왕국과 가장 넓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 바로 엘리카 왕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언데드 군대의 창궐은, 로터스 왕국의 입장에서 오히려 호재로 다가왔다.
원래 엘리카 왕국을 정복하려면 다른 주변국들의 눈치도 봐야 하는데, ‘리치킹 군대의 창궐’이라는 확실한 명분 덕에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지금은 대륙의 모든 왕국들이 언데드 군단을 막아 내기 바쁜 상황이었고, 때문에 로터스 왕국이 영토를 넓히는 것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리치킹 에피소드가 끝나기 전에, 엘리카 왕국을 전부 정복해 버려야겠어. 엘리카 왕국만 흡수해도 왕국의 전력이 배는 강해지겠지.’
엘리카 왕국을 정복한 뒤에는 리치킹 에피소드가 끝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때쯤이면 이미 주변국과의 전력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져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정복 전쟁의 시작일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제국 건국의 요건을 충족하려면, 최소 5~7군데 이상의 왕국은 흡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로터스의 힘이 강해진다면, 그들이 동맹을 맺을 확률도 분명히 있었다.
“읏-차.”
하르가수스의 등에서 내린 이안은, 영주성의 안쪽에 있는 내전으로 향했다.
영지를 정복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를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이때가 기분이 제일 좋단 말이지.”
이안의 중얼거림에, 뒤에 있던 훈이가 투덜거렸다.
“폼 잡지 말고 빨리 끝내자 형. 졸려 죽겠으니까.”
프릴라니아 협곡 퀘스트부터 시작해서 벌써 20시간도 넘게 꼬박 게임을 한 탓인지, 훈이의 눈은 이미 반쯤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안이 피식 웃으며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훈이를 놀려 주기 위해서였다.
“흐음……. 요즘 훈이가 자꾸 기어오르네. 이거 케이튼 영지 영주는 노엘이한테 줘야 하나……?”
“……!”
효과는 굉장했다.
표정이 돌변한 훈이가 재빨리 이안에게 달라붙어 실실 웃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졸음 따위는 싹 달아난 듯싶었다.
“헤헤, 형님, 제 마음 아시죠?”
“뭘 알아, 인마.”
“이 훈이가 형님 존경하는 거 말입니다.”
“잘 모르겠는데…….”
“아, 형……!”
달라붙는 훈이를 떼어 낸 이안이,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깃발을 꺼내어 들었다.
로터스 왕국의 상징인 그리핀, ‘핀’의 늠름한 자태가 수놓인 깃발이었다.
그것을 치켜 든 이안은, 내성에 있는 엘리카 왕국의 깃발을 뽑아들고 그 자리에 로터스의 깃발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깃발이 꽂힌 자리를 중심으로, 어두침침하던 영주성의 내부에 새하얀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우웅-!
-‘케이튼 영지’를 정복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케이튼 영지’는 로터스 왕국에 소속됩니다.
-‘케이튼 영지’에 소속되어 있던 모든 유저들과 NPC들의 국적이 ‘로터스 왕국’으로 전환됩니다.
-‘케이튼 영지’의 새로운 영주를 임명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로터스 제국’의 건설을 위한 첫 단추가 성공적으로 꿰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