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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 (2)
* * *
전장의 최전방에서, 그야말로 미친 듯이 창을 휘두르는 두 남자.
두 남자는 거침없이 스켈레톤들을 때려 부수며 언데드의 진영을 파고 들어갔고, 때문에 두 사람을 기준으로 진영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수천이 넘는 대규모의 언데드 진영에, 이안과 카미레스를 기준으로 송곳 같은 균열이 생겨 버린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그 화면을 지켜보던 BJ라오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밋밋한 영상으로 중계할 때가 아니야!’
지금 라오렌이 인터넷 방송으로 중계 중인 영상은,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서 스트리밍해 온 이안의 개인 영상이었다.
물론 이안 개인의 영상이므로 이안 중심으로 화면이 송출되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항상 같은 방향 멀찍한 곳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이안을 비추고 있다는 점.
이안 시점의 영상이라면 조금 어지럽더라도 박진감이 있었겠지만, 지금 송출되는 영상은 밋밋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라오렌은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빠르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가 전화를 건 대상은, 바로 이안 담당의 영상 에디터인 ‘소진’이었다.
-소진 님, 지금 통화 가능하시죠?
-네, 라오렌 님, 어쩐 일이시죠?
-아, 지금 이안 님 전투 영상 실시간으로 제 방송에 띄우려는데 도움이 좀 필요해서요.
-도움이라면……?
-가지고 계신 수정구 세 개만 케이튼 영지 쪽으로 띄워 주세요. 제 방송 주소로 스트리밍해 주시구요.
-띄워 드리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럼 채널 전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속사포처럼 말을 하던 라오렌은, 목이 타는지 마른침을 삼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소진 님께서 컨트롤하시면서, 채널 전환도 직접 좀 해주세요. 아무래도 수정구 컨트롤은 소진 님 전공이시니까요.
-그럼 제 컨트롤에 맞춰서, 알아서 해설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렇죠!
-이런 방식은 처음인데…….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한번 천만 뷰짜리 영상 만들어 보죠.
-……좋아요. 한번 해 보도록 하죠. 대신, 이안 님 몫 빼고 인센티브는 반반입니다.
-콜!
소진과 통화를 마친 라오렌은 황급히 자리로 돌아와 시청자 채팅창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그 잠깐 사이, 채팅 창에는 불만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아, 라오렌 언제 오는 거임?
-아니, 이 중요한 순간에 어딜 간 거야?
-똥 싸러 갔나 보죠.
-ㅇㅇ 급똥인듯.
-하아, 난 알못이라 해설 없으면 이해도 잘 안 되는데……. 누구 라오렌 대신 해설해 주실 고수님 안 계심?
하지만 라오렌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제 잠시 후면 모든 시청자들이 자신을 찬양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었다.
‘소진님의 수정구 컨트롤 실력과 내 해설 능력이 합쳐지면, 정말 최고의 방송을 보여 줄 수 있어.’
거기에 그 어떤 매드무비와 견주어도 꿇리지 않는 이 전투영상 콘텐츠라면, 실시간 BJ 랭킹 1위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었다.
‘이 기회에 구독자 수 한번 왕창 올려 보자!’
카미레스와의 경쟁으로 타오르는 이안의 의욕만큼, 라오렌의 의욕에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 * *
쎄에엑-!
이안의 금빛 창이 허공을 수놓음과 동시에, 샛노란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빠각- 콰콰쾅-!
이어서 새카맣게 탄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그대로 바스라져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정령왕의 심판의 고유 능력 ‘심판의 번개’가 발동합니다!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스켈레톤 워리어’의 생명력이 719,280만큼 감소합니다.
-‘스켈레톤 워리어’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찰나지간에 주르륵 하고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
하지만 메시지가 전부 나타나기도 전에, 이안의 창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퍽- 퍼퍼퍽-!
이안의 창은 마치 권투 선수가 잽을 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쇄도했다.
-‘스켈레톤 워리어’의 생명력이 572,450만큼 감소합니다.
-‘스켈레톤 워리어’의 생명력이 397,542만큼 감소합니다.
그리고 연속적인 창격槍擊에 스켈레톤이 균형을 잃으면, 이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대의 약점을 향해 창을 꽂아 넣었다.
콰아앙-!
이안이 노리는 스켈레톤의 약점은, 흉부의 갈비뼈 안에 위치해 있는 ‘영혼의 그릇’이다.
다른 이름으로 ‘내핵’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영혼의 그릇은, 모든 종류의 스켈레톤이 가진 약점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그곳을 공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최하급 스켈레톤들이면 모르되, 조금이라도 갑주를 착용한 스켈레톤들은 그 약점을 잘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아지경으로 창을 휘두르는 이안을 보고 있자면, 그것이 너무도 쉬워 보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창극이 내핵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스켈레톤이 균형을 잃어 흉부를 노출하기만 하면, 이안의 창극은 마치 유도탄처럼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콰아앙-!
그리고 제대로 내핵에 대미지를 입으면, 400레벨에 육박하는 스켈레톤 워리어조차도 그대로 바스라져 버리고 만다.
-‘스켈레톤 워리어’의 생명력이 1,642,152만큼 감소합니다.
-‘스켈레톤 워리어’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무려 164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피해량.
그런데 이 광경을 보면,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핵을 정확히 가격하였다 하더라도, 한손 무기로 이런 대미지가 나온다는 것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방패를 들지 않는 평소에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지금의 이안은 분명 왼손에 귀룡의 방패를 들고 있었던 것.
방패를 들면 한손 무기의 위력은 현저히 낮아지는데, 지금 이안의 공격력은 방패를 들지 않았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버그일까?
그야 당연히 아니었다.
이 어마어마한 공격력의 비밀은, 다름 아닌 귀룡의 방패에 있었다.
‘크, 워낙 적이 많으니, 스텍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는구나!’
귀룡의 방패에 붙어 있는 두 번째 고유 능력인 ‘귀룡의 분노’.
방패 막기에 성공한 횟수가 누적될 때마다 0.5퍼센트 만큼의 공격력 버프가 추가로 걸리는 이 패시브 스킬을, 지금 이안이 극대화시켜 사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최대 100회 누적되며 15초 동안 지속되는 이 버프를, 이안은 계속해서 풀스텍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귀룡의 분노’ 고유능 력이 발동합니다.
-‘귀룡의 분노’효과의 지속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15초 동안 공격력이 0.5퍼센트(누적 50.0퍼센트)만큼 증가합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날아드는 화살까지 전부 막아 내니, 스텍이 떨어질 틈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막아 낼 때마다 지속 시간이 초기화되니, 지금 상황에서는 스텍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귀룡의 분노’효과가 100회 누적되었습니다.
-지금부터 5초 동안 ‘무적’ 상태가 됩니다.
방패 막기 성공이 100회 누적되면 5초 무적이라는 꿀 같은 추가 버프가 발동되는 것이다.
물론 무적 발동의 경우, 한번 발동되고 나면 무적 지속 시간이 끝나야 다시 처음부터 스텍이 쌓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안은 거의 3분에 한 번 정도는 무적을 띄워 내고 있었다.
2초에 한 번씩은 방패 막기에 성공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15퍼센트의 확률로 터지는 대미지 반사는,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콰쾅- 쾅-!
-방패 막기에 성공하셨습니다!
-피해량을 198,093만큼 흡수하셨습니다.
-99,046만큼의 피해를 돌려줍니다.
막고, 찌르고, 부수고.
이안의 움직임은 이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지만, 비주얼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컨트롤 자체도 현란한 데다 각종 이펙트가 연속적으로 터지니, 이안을 중심으로 폭풍이 휘몰아치는 느낌이었다.
콰콰쾅-!
미친 듯이 창을 휘둘러 대던 이안이, 시야 구석에 떠올라 있는 퀘스트 달성 목표치를 슬쩍 응시했다.
-유저 달성율 : 67/150 (44.66퍼센트)
-카미레스 달성율 : 116/250 (46.4퍼센트)
그리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젠장, 조금 뒤쳐지는군. 세 마리 정도 차인가?’
처음에는 질 것 같으면 소환수들을 소환할 생각으로 마음 편히 플레이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투 중에 우연히 엘카릭스가 마법으로 막타를 친 적이 있었는데, 달성률이 오르지 않은 것이다.
이를 악물며 창을 휘두르던 이안이, 뭔가 마음을 먹은 듯 엘카릭스를 소환 해제했다.
“엘카릭스, 조금 있다 다시 부를게.”
“알겠어요, 아빠!”
후우웅-.
커다란 공명음과 함께 새하얀 잔상을 남기며 사라지는 엘카릭스.
이어서 이안의 신형이, 하르가수스의 등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 * *
“이, 이안이 갑자기 허공으로 뛰어오릅니다!”
소진과의 커넥팅 후, 빠르게 방송을 재개한 라오렌의 개인 방송은 폭발적으로 시청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뭐지? 이안 갑자기 왜 하르가수스 버리고 튀어 나간 거죠?
-앞에 태우고 있던 엘카릭스도 소환 해제해 버렸는데요?
-아, 내 귀요미 어디 갔어!
-이번엔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지금 엘카릭스 렙 업하려고 저렇게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던 것 아님?
-ㅇㅇ그러게요. 아까 라오렌 님도 그렇게 설명하셨는데…….
이안의 소환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라오렌은, 이안이 엘카릭스만 소환한 이유에 대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여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뭐지? 레벨 업 시켜야 하는 소환수를 왜 소환 해제해 버린 거야? 그렇다고 다른 소환수들을 소환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라오렌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이안에 대한 이해도와 별개로, 그의 퀘스트 창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있었으니까.
지금 이안이 카미레스와 경쟁 중이라는 것을, 이안 말고 누가 알 수 있을까?
빠르게 머리를 굴린 라오렌은, 나름대로 추론하며 다시 해설을 시작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이안은 엘카릭스가 위험할 수도 있으리라 본 것 같습니다. 소환 해제는 재사용 대기 시간만 지나면 다시 소환할 수 있지만, 사망이라도 하게 되면 하루 동안 레벨 업을 시킬 수 없으니까요.”
-에이, 나 지금까지 엘카릭스 공격당하는 거 두 번 봤는데?
-그러게. 진짜 하나도 위험해 보이지 않던데.
-ㅋㅋㅋ 라오렌 님 감 떨어지신 거 아님?
-ㅋㅋ 근데 저 설명 아니면 말이 안 되잖음.
-그것도 그러네요.
채팅 창에 올라오는 내용들을 본 라오렌은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딱히 반박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하긴, 내가 봐도 엘카릭스는 위험해 보이지 않았으니까.’
이럴 때는 서둘러 화제를 전환해야 하는 법.
라오렌은 다시 전투 영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해설할 만한 내용이 뭐가 있을지,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흠, 또 무적 띄웠네. 하지만 이건 아까 설명해서 또 하면 욕먹을 텐데…….’
현장에서 전투 중인 이안만큼이나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라노엘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모니터를 응시하던 라노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