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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룡 칼리파의 비밀 (5)
* * *
쿠웅-!
칼리파의 등짝에서부터 커다란 소리가 퍼져 나갔다.
뭔가 쨍한 소리라기보다는, 묵직한 느낌이 드는 파열음.
그리고 어느새 칼리파의 등에는 이안의 소환수가 두 마리나 소환되어 있었다.
-크아아악-!
칼리파의 입에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그의 등 위에 소환된 이안의 소환수 중 한 녀석이, 무척이나 거대하고 무거운, 게다가 단단한 녀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환수의 정체는 다름 아닌 떡대.
한동안 세리아의 손에 맡겨져 있던 떡대가 정말 오랜만에 이안의 손에 소환된 것이다.
그어어어-!
떡대가 괴성을 지르며 칼리파의 양쪽 날갯죽지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칼리파의 등에 떡대가 엎드린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 함께 소환된 소환마수인 ‘크르르’가 재빨리 올라탔다.
두 소환수의 소환을 시작으로, 이 모든 움직임이 이뤄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초.
그 사이 이안이 탄 마령의 드래곤이 칼리파의 지척까지 날아들었고, 이안이 크르르를 향해 소리 질렀다.
“크르르, 파령섬! 파괴광선!”
다른 소환수들에 비해 부족했던 크르르의 레벨도 어느덧 340에 도달했다.
아직까지 전부 따라잡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소환수들의 레벨 대비 90퍼센트 이상을 따라온 것이다.
그리고 단일 스킬 계수만큼은 최강을 자랑하는 크르르의 고유능력들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크르르의 ‘파령섬’ 스킬이 즉발 스킬이기 때문이었다.
발동시키는 즉시, 대상에게 마염이 피어오르기 시작하여, 적이나 자신 중 하나가 사망할 때까지 결코 꺼지지 않는 죽음의 불꽃.
마령의 드래곤이 불꽃에 휩싸이기가 무섭게, 크르르의 입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
계수가 4,000퍼센트에 가까운 무지막지한 공격 스킬인, ‘파괴광선’이 발동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안이 타고 있던 새끼 드래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소환마수 ‘크르르’의 고유 능력인 ‘파괴광선’이 발동합니다.
-‘마령의 드래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령의 드래곤’의 생명력이 897,918만큼 감소합니다.
-‘마령의 드래곤’을 성공적으로 처치하셨습니다!
-‘마령의 드래곤’을 처치하여 칼리파의 생명력이 15퍼센트만큼 감소합니다.
키아아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른 마령의 드래곤이,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미 이안에게 받은 공격으로 인해 생명력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던 녀석이, 크르르의 무지막지한 마기 공격을 버텨 낼 수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그림 같은 멋진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겼다.
마령의 드래곤이 사라지며, 그 위에 매달려 있던 이안이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훈이와 레비아의 입에서 단발마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형!”
“이안 님!”
하지만 순간적으로 당황했을 뿐, 두 사람은 곧 평정을 찾았다.
랭커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의 게임 센스를 가지고 있는 이안이, 이 정도의 당연한 상황도 예측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예상처럼 이안은 이미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공간왜곡!”
이안이 스킬을 발동시킴과 동시에, 이안과 크르르의 신형이 파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공간왜곡 스킬을 펼쳐, 크르르와 자신의 자리를 바꿔 버린 것이었다.
우우웅-!
마룡 칼리파의 위.
정확히 말하자면, 그 위에 있는 떡대의 등짝으로 이안의 위치가 옮겨졌다.
이로써 죽었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 완벽하게 모면되었다.
그렇다면 이안 대신 낙사하게 생긴 크르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 간단했다.
이안이 소환 해제를 해 버린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난리가 나서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와, 오졌다! 진짜 미쳤다!
-아니, 솔직히 입으로야 누구든 할 수 있는 플레이기는 한데,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저걸 할 생각을 하는 거지?
-생각까지도 할 수 있다고 쳐요. 근데 진짜 해서 성공시킨 게 미친 거죠. 진짜 대박이다ㅋㅋㅋ
-헐;; 난 모니터로 보고도 어떻게 된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방금 드래곤 하나, 대체 왜 녹은 거죠? 그리고 떨어지던 이안은 갑자기 어떻게 칼리파 위로 나타난 거고요?
-모르시면 나중에 다시 돌려 보셈. 지금 전투 아직 안 끝나서 그거 설명해 줄 시간 없음. 집중해야 됨.
-으아아아! 찬양해, 이안갓!
그리고 시청자들뿐 아니라, 중계 중이던 BJ라오렌도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이, 이건…….”
닳고 닳은 인터넷 BJ인 라오렌은, 지금 타이밍이야말로 독자들의 캐시를 뜯어낼 절호의 기회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방금 머리로 이해한 이안의 스킬 연계를 쭉 설명하기만 해도, 신이 난 독자들이 캐시를 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안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은 지나갔지만 이안이 서 있는 곳은 여전히 적진의 한복판.
아직까지 이안은 위기를 완벽히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이안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이안느님의 플레이를 보며 안구를 정화합니다!”
짧게 멘트를 친 라오렌이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떡대는 대체 왜 소환한 거지? 크르르가 논타깃 스킬을 맞추기 편하도록 발판이라도 되어 준 건가?’
나름대로 그럴싸한 추측이기는 했지만, 고작 그 이유 때문에 떡대를 소환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라오렌의 감은, 느닷없이 소환된 떡대가 이안이 짜 놓은 설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뭘까?’
그런데 그때, 라오렌의 머리를 번개같이 스쳐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 이동속도……!”
거의 자신의 절반에 가까운 덩치를 가진 떡대를 태운 칼리파가, 무척이나 둔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어마어마한 무게와 덩치를 가진 떡대가 등에 매달리니, 칼리파의 움직임에는 커다란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떡대를 떼어 낼 수 있느냐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떡대를 떼어 내기 위해 몸을 뒤집기라도 한다면, 칼리파는 그대로 추락해 버릴 것이다.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이 확 쏠리면서,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굼벵이 같기만 하던 훈이의 데스 메테오들이 점점 속력을 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 * *
쾅- 콰쾅-!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습니다!
-마룡 ‘칼리파’의 생명력이 480,912만큼 감소합니다.
-마룡 ‘칼리파’의 생명력이 375,131만큼 감소합니다.
떡대의 어깨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안이, 칼리파의 등짝을 향해 맹렬히 창을 쑤셔 박았다.
그리고 그 대미지가 누적되자, 칼리파의 생명력 게이지도 제법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크아아! 이놈들, 모조리 소멸시켜버리겠다!
등에 올라탄 이안을 물리적으로 어찌할 방법이 없자, 칼리파가 새로운 고유 능력을 시전했다.
그러자 고막이 찢겨 나갈 듯한 강렬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생명력 게이지가 쭉 하고 깎여 나갔다.
-마룡 ‘칼리파’의 고유 능력 ‘마룡의 포효’가 발동됩니다.
-생명력이 1,293,098만큼 감소합니다.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잠시 동안 캐릭터의 통제권을 잃습니다.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떡대가 골렘이라 진짜 다행이네.’
‘무생물’에 속하는 떡대는, ‘공포’ 상태 이상에 완벽히 면역이었다.
때문에 마룡의 포효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덕분에 통제권을 잃은 이안이 마룡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룡의 포효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포효로 인해 들어온 대미지만으로도, 혀가 내둘러지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미친, 이런 단발성 광역기 대미지가 백만이라니.’
광역 공격기 한 방으로, 이안의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깜빡이기 시작한 생명력 게이지를 보며 이안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안의 시선이 훈이를 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훈이로부터 쏘아지고 있는 수많은 데스 메테오들을 향했다.
검정빛 구체들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칼리파를 맞추기에는 턱도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안이 생각해 둔 작전이 있기는 했으나, 그를 위해선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노엘이, 카르세우스 컨트롤해서 마령의 드래곤들의 접근을 막아! 뿍뿍이는 훈이를 지키고!”
카노엘과 뿍뿍이에게 명령을 내린 이안이, 남아 있는 유일한 비행 소환수인 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이안이 생각하고 있는 ‘각’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남은 제한 시간은 5분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아, 작전도 좋았고 전투까지 정말 예술이었는데……. 아무래도 제한 시간이 좀 부족하긴 한 것 같네요. 하지만 여러분! 저는 이안갓이 결국 퀘스트를 클리어할 거라고 봅니다!
BJ라오렌의 한마디에, 채팅창이 주르륵 하고 밀려 올라왔다.
-에이, 이안이라도 이번엔 무리임.
-무슨 소립니까, 윗분? 이렇게까지 해 놓고 퀘스트 실패가 뜰 리 없잖아요. 분명 이안갓이라면 방법을 만들어 낼 겁니다.
-엥, 윗 님. 아무리 이안이 좋아도 좀 냉정해 질 필요도 있는 겁니다. 15분 가까이 걸려서 칼리파 생명력 이제 40퍼 남짓 깠는데, 남은 5분 안에 어떻게 저걸 죽여요?
-방법이 하나 있죠.
-음?
-훈이가 소환한 데스 메테오들이 전부 들어가면 됩니다.
-지금 여기에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방법은 그것 하나밖에 없어 보였다.
그리고 라오렌이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 그것이었다.
‘이제 1분 정도면 데스 메테오들이 칼리파의 지척까지 다다를 텐데……. 그때 어떻게든 칼리파를 묶어 둘 수만 있다면……!’
물론 라오렌의 머리에, 칼리파를 묶어 둘 방법이 생각난 것은 아니었다.
막연히 이안이라면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고 있지 못하지만, 칼리파의 이동속도가 느려진 것만으로도 메테오가 격중할 확률이 배 이상은 올라갔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추기 힘들어 보인다는 것이 함정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 이번에는 또 어떤 미친 짓을 할 거냐!’
모니터 속의 이안을 바라보며, 라오렌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너무도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안이라면 뭔가를 보여 줄 것이라는, 아무 근거조차 없는 막연한 기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영상을 시청하는 수많은 유저들 중, 그 막연한 기대를 가진 사람이 라오렌만이 아닐 것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라오렌의 두 눈이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 * *
지금 전장의 구도는 레이드 보스인 칼리파를 중심으로 이안의 파티가 에워싼 형국이었다.
훈이를 태우고 있는 루가릭스를 비롯한 세 마리의 드래곤이 새끼 드래곤들을 견제하고 있었으며, 레비아와 밀로스는 뒤에서 그들을 서포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훈이는, 여전히 이안의 오더를 따라 데스 메테오를 소환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 눈에 보아도 훈이의 메테오들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생성된 메테오들 둥 3분의 1이 넘는 물량이, 칼리파를 지나 목적지를 잃은 채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이동속도가 느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칼리파가 어렵지 않게 투사체들을 피해 낸 것이다.
하지만 이안의 두 눈빛은 아직까지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두 눈빛은, 먹잇감을 노려보는 맹수의 눈빛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불쑥 나타난 황금빛 구름.
떡대의 팔을 붙들고 있던 이안이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환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핀, 분쇄!”
끼아아오오!
먼저 핀에게 명령을 내린 이안이, 구름을 밟으며 재차 도약하여 뛰어올랐다.
이안이 밟자마자 구름은 사라졌지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연이어 밟을 수 있는 구름들이, 한쪽 지역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구름을 밟으며 뛰어다니는 이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핀의 고유 능력인 ‘분쇄’와 ‘데스 메테오’가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것이, 가장 놀라운 장면이었던 것이다.
핀의 고유 능력인 ‘분쇄’는 거센 강풍을 일으켜 도트 대미지를 주는 광역 스킬이었고, 이 광풍은 당연히 투사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때문에 굼벵이처럼 움직이던 메테오들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유 있던 칼리파조차도, 이 연계 공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완벽히 피해 내고 있던 데스 메테오들이, 여기저기를 스쳐 지나가며 대미지를 주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아악! 하찮은 잔재주를 쓰다니!
하지만 아직까진 뭔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거의 두세 배 가량 투사체들의 속도가 빨라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데스 메테오들을 격중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라도 많이 남아 있으면 모르지만, 이제 이안 파티에게 남은 시간이라고는 고작 1분여 정도.
아직까지 30%도 넘게 남은 칼리파의 생명력을 생각해 본다면,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정신없이 구름을 밟으며 뛰어다니던 이안이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스킬을 발동시켰다.
“떡대, 어비스 홀!”
그리고 다음 순간, 전장에 널려 있던 수많은 칠흑의 운석들이 떡대를 향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