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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밍 마스터-411화 (430/1,027)

< (5). 마룡 칼리파의 비밀 -1 >

*          *          *

민족의 대 명절인 추석연휴.

끝없이 밀리는 고속도로 덕에 귀성길 지옥을 경험한 세미는,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캡슐방을 찾았다.

할머니 댁으로 들어갔다가는, 다섯 명이나 되는 조카들을 놀아줘야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고속도로 위에서 진이 다 빠져버린 지금, 조카들의 습격을 당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게 분명했다.

‘추석 당일은 내일이니까, 오늘은 좀 놀다 들어가도 할머니께서 이해 해 주시겠지.’

시내로 나온 세미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켜서 캡슐방의 위치를 검색했다.

그런데 문득, 세미의 뇌리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제발, 휴일이라고 전부 닫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시골이라 캡슐방이 아예 없을 수도 있나?’

다행히도, 캡슐방은 지도 위에 두 곳이나 검색되었다.

하지만 역시,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법.

두 군데의 캡슐방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다.

“흐윽…….”

세미의 가볍던 발걸음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 댁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세미의 목적지는, 캡슐방의 옆에 있던 피씨방이었다.

피씨방에 들어 온 세미가, 알바생을 향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 두 시간 선불이요.”

“……응?”

당황한 표정으로 되묻는 알바생.

그에 세미가,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다시 말해주었다.

“열 두 시간 선불이라구요, 언니. 열. 두. 시. 간.”

한창 피씨게임을 즐기던 중학생 시절, 세미는 한번 피씨방에 들어가면 열 시간은 채우고 나오는 것이 기본이었다.

스무살이 넘었다 해서 그 버릇이 어디 도망갔을 리는 없었다.

“흐음, 피씨방은 정말 오랜만이네. 예전에 하던 게임이나 좀 해 볼까?”

카일란을 못 하게 된 슬픔에 우울한 표정이 된 세미는, 칠팔년 전에 하던 피씨게임들을 한 번씩 플레이 해 보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재밌던 게임들이, 지금 플레이하니 너무 밋밋하고 금세 질려버렸다.

“에이, 그냥 카일란 커뮤니티나 구경해야겠어. 오랜만에 정보수집이나 해 볼까……?”

능숙한 손놀림으로 라면과 음료수를 시킨 세미는, 인터넷을 열어 카일란 공식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커뮤니티 메인에 떠있는 큼지막한 배너로 향했다.

[카일란 공카 추석 이벤트!]

[카일란 공식 카페에서 선정한 유저 영상 중, 인기순위 1~3위까지의 영상이 카일란 특집 방송에 실리게 됩니다!]

[마음에 드는 영상에 투표할 시, 공카 포인트 300p를 드립니다. 지금 바로 투표하세요!]

배너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문구를 읽은 세미는,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호오……?”

그리고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세미의 마우스가 배너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딸깍-

이어서 세미의 모니터에, 바둑판 형식으로 수십 개가 넘는 영상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세미는 능숙하게 화면 구석에 있는 정렬 버튼을 눌러, ‘최신순’으로 되어있던 것을 ‘인기순’으로 바꿔보았다.

‘분명 상위권에 이안느님 영상이 올라와있겠지?’

세미가 찾는 것은 오로지 이안의 전투영상.

심지어 올라와있는 영상들을 보니, 대부분이 따끈따끈한 라이브 영상이었다.

이안의 라이브영상을 실시간으로 관전할 수 있다면, 캡슐방에 가지 못한 아쉬움도 많이 희석될 것 같았다.

그런데 잠시 후, 세미의 커다란 두 눈이 더 크게 확대되었다.

“어……?”

당연히 최상위권에 랭크되어있을 줄 알았던 이안의 영상이 10위권 안쪽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스크롤을 조금 더 내리자, 20위권 정도에 랭크되어있는 이안의 영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상의 옆에는, 올라온 지 1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뜻하는 ‘NEW!’라는 문구가 빨갛게 떠올라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안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의 골수 팬이었던 세미는, 뿌듯한 표정으로 영상을 클릭했다.

이어서 옆에 걸려있던 헤드폰을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영상 관람을 시작했다.

화면에 떠오른 배경은 새하얀 설원.

그리고 그 위에서, 이안을 비롯한 몇몇 랭커들이 수 많은 어둠의 군대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하얀 설원이 새카맣게 뒤덮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언데드 군단의 위용.

시작부터 흥미진진한 상황인데다 화면 구석에 띄워져 있는 LIVE라는 문구가, 세미를 영상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크, 역시 이안갓은 다대 일 전투에서 최강이지.”

훈이와 레비아의 서포팅을 받으며, 파죽지세로 언데드들의 포위를 뚫어 나가는 이안의 신위!

본인의 캐릭터를 하드하게 컨트롤하면서도 소환수들에게 일일히 오더를 내리는 모습은, 같은 소환술사 유저가 보았을 때 더욱 소름 돋는 광경이었다.

소환술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록, 이안의 컨트롤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의 300레벨에 가까운 제법 높은 레벨의 소환술사인 세미 또한, 이안의 영상을 전부 이해하며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한참동안 영상을 관람하던 세미는, 채팅창을 열어 다른 유저들의 반응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 하, 내 블러디 펜리르는 어둠의 군단 상대로 딜 몇 만 정도 겨우 나오던데……. 이안이 쓰는 펜리르는 무슨 단일 딜이 몇 십만 단위로 터지네.

- 님 펜리르 랩 몇인데요?

- 270이요.

- 이미 레벨차이부터가 넘사벽이네. 비교할 걸 비교해야죠.

- 이안이 키우는 펜리르 레벨 몇인데요?

- 정확한 건 아니지만, 최소 350은 넘는 걸로 알고 있음요.

- 헐? 드래곤 말고 펜리르 레벨이 350이라고요?

- 네. 이안이 쓰는 소환수들 평균레벨이 한 그 쯤 될 거에요.

- 미쳤네;;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 그야 이안 캐릭터 레벨 자체가 350이 훌쩍 넘으니 가능한 거죠.

- 아니, 주력 소환수 레벨이 캐릭터 레벨이랑 비슷한 건 당연한 건데, 저 많은 소환수들 레벨이 전부 350이 넘는다니 어이가 없어서 그러죠. 무슨 버그도 아니고…….

채팅을 읽어 내려가던 세미가, 피식 웃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 버그는 아니고, 이안이죠.

- 크, 윗님 ㅇㅈ합니다.

- 맞음. 버그보다 더 버그스러운 게 이안인듯.

일반적인 소환술사들은, 주력으로 키우는 소환수 하나를 정해서 경험치를 몰아주며 성장시킨다.

경험치가 분산될수록 레벨업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소환수의 숫자와 사냥 속도가 정비례한다면 소환수가 많을수록 좋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소환수가 많을수록 컨트롤이 힘들어지며, 그것은 곧 사냥효율의 감소로 이어지니 말이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소환술사들의 소환수 레벨 분포는, 100레벨 유저를 기준으로 주력 소환수가 90~95레벨정도.

서브 소환수 2~3마리가 70~80정도인 것이 보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달랐다.

이안의 경우에는, 모든 소환수들의 레벨을, 캐릭터 레벨의 90~95% 정도로 항상 맞춰 올리며 사냥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안이 동 레벨 대 소환술사들에 비해 강력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안의 라이브 전투 영상을 관전하기 시작하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20,30분이 지나가는가 싶니, 어느덧 너 댓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넓은 설원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전투를 거듭하던 이안 일행도, 어느덧 협곡에 도달하여 새로운 퀘스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슬슬 끝없는 전투가 지겨워지려던 차에, 처음 보는 류의 흥미로운 퀘스트가 시작되자 세미의 집중력은 다시 상승했다.

“오, 이 퀘스트는 뭐지? 드래곤 빌리지라고?”

소환술사 유저이기에 더욱 흥미진진한 퀘스트 내용.

그렇게 신이 나서 영상을 관람하던 세미는, 문득 생각하지 싫은 가정(?)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진성선배가 정말 이안은 아니겠지……?’

이미 가상현실과 내에서는 기정사실이 되어있는 명제를 아직까지 홀로 부정하는 중인 세미.

그리고 20위권이었던 이안의 라이브 영상은, 어느새 압도적인 랭킹 1위로 올라 서 있었다.

*          *          *

그린 드래곤 레리카는, 마치 이 연속적인 퀘스트 내에서 진행요원과도 같은 존재였다.

레비아에게 상처를 치료받은 뒤, 녹색 머리를 한 궁사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여, 이안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레리카는, 이전까지와는 다르게 이안을 ‘마스터’라 부르며 존칭을 사용했다.

[이쪽입니다, 마스터! 저 쪽에 있는 혈석을 파괴해야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호칭이 못마땅했는지, 훈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왜 저 형만 마스터고 나는 그냥 인간인건데?”

그에 훈이의 뒤를 따르던 루가릭스가 입을 열었다.

“그야 이안이 이 파티의 마스터이기 때문이지.”

“음? 이안형이 파티의 마스터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저 형을 마스터라고 인정한 적이 없는데?!”

앞장서서 걷던 이안이, 훈이의 불만을 짧게 일축했다.

“내가 파티장이잖아 멍청아.”

“아, 파티장…….”

어딘가 나사 하나쯤은 빠진 듯 보이는 실없는 대화내용.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연속적인 임무들은 긴박함 속에서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명성을 5만 만큼 획득합니다.]

[다음 임무로 이어집니다.]

[최종 클리어까지 남은 제한 시간 - 00:59:22]

이안 파티는 단 1초라도 아끼기 위해, 전력을 다해서 프릴라니아 협곡의 임무들을 수행해 나갔다.

퀘스트의 달성율 같은 것을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 랭커의 파티 플레이의 진가는 더욱 더 돋보였다.

“내가 라이랑 같이 들어가서 레버를 돌릴게, 훈이 네가 루가릭스랑 같이 마룡들을 맡아.”

“오케이, 알겠어!”

“레비아님은 허공에서 타이밍 좀 재 주세요. 서포팅도 부탁드리고요.”

“그러도록 하죠.”

협곡의 양 쪽 절벽을 잇는 철판교(鐵板橋).

다음 임무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절벽을 건너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직각으로 서 있는 철판교를 움직여 다리를 놓아야 했다.

철판교를 놓지 않으면 절벽 아래쪽에서 거센 소용돌이가 뿜어져 올라오기 때문에, 비행으로 건널 수도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타탓- 탓-!

이안을 태운 할리가 쏜살같이 움직여 어두운 동굴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이어서 그 뒤를, 라이가 바짝 붙어 쫓아갔다.

그런데 잠시 후, 이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이거, 뭔가 느낌이 안 좋은데.’

철판교를 움직일 수 있는 레버는 좌측 절벽에 난 동굴 안쪽에 존재했다.

그런데 레버가 있는 위치의 바로 앞쪽에, 강철로 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기관장치.

그리고 이안의 느낌 상, 레버를 내려 전면의 철판교를 움직이는 순간 차단기가 내려오며 퇴로가 끊길 것 같았다.

‘저거 분명 떨어져 내릴 텐데.’

하지만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이안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콰쾅- 쾅-!

동굴 입구를 지키는 하급 마족들을 단숨에 때려잡은 이안은, 빠르게 판단을 마치고는 라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시간을 아끼려면 과감하게 결정할 필요도 있었다.

“라이, 네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레버를 내려.”

“알겠다, 주인.”

이안의 계획은 간단했다.

라이에게 대신 레버를 내리게 한 뒤, 자신은 동굴 바깥으로 빠져나갈 생각을 한 것이다.

타타탓-!

버프 스킬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할리보다도 민첩성이 빠른 라이가 순식간에 레버를 향해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레버를 아래로 당겨 내렸다.

그르륵- 그그극-!

그러자 이안의 예상대로, 차단기가 내려가며 라이가 그 안에 갇히고 말았다.

쿵-!

원래대로라면 파티원 중 한 사람의 발이 묶일 수 밖에 없는 퀘스트 구조.

하지만 이안이 영리하게 파악한 덕에, 소환수 하나의 전력이 잠시 묶이는 것으로 페이즈 하나를 넘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환수야 소환해제한 뒤 다시 소환하면 되기 때문에, 이안으로서는 최적의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정시간 라이를 사용할 수 없는 정도는, 감수하면 될 일이었다.

띠링-!

[다섯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셨습니다!]

[명성을 5만 만큼 획득합니다.]

보는 이조차 숨이 막힐 정도로 쉴 틈 없는 퀘스트의 전개!

그렇게 차근차근 임무는 완수되어갔고, 결국 열 개 정도의 연속 임무가 완수되었을 때.

드디어 연계 임무가 전부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 (5). 마룡 칼리파의 비밀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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