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빛의 가디언, 밀로스 -2 >
* * *
[빛의 결계는 어둠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결계입니다.]
[결계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던전 밖으로 이동합니다.]
[잠시 동안 ‘무기력’ 상태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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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빛이 번쩍인 뒤, 훈이의 눈 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그리고 약간의 어지럼증과 함께, 시야가 비틀어졌다.
잠시 후 훈이의 눈앞에 들어온 풍경은, 던전의 외부.
훈이가 인상을 살짝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결국……. 신이라는 존재마저도 나의 내면에 가득한 어둠의 기운들이 부담되는 것인가.”
이어서 쓴웃음을 짓는다.
“크큭, 빛과 어둠은 본래 하나의 양면이거늘……. 신씩이나 되는 녀석이 어둠을 배척하다니, 참으로 편협한 그릇이로다.”
엘카릭 산맥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절벽 앞으로 다가간 훈이가, 고독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빛과 어둠의 정의는 결코 다르지 않거늘…….”
뭔가 자신만의 세계에 다시 심취하기 시작한 훈이.
그런데 그 때.
훈이의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다. 어둠의 군주여.”
그리고 갑자기 들려온 그 목소리에, 훈이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으, 으악!”
바둥거리다가 발을 헛디뎌, 절벽 아래로 떨어질 뻔 한 훈이.
나뭇가지를 붙들어 위기를 모면한 훈이가, 헛기침을 하며 놀란 가슴을 추슬렀다.
“에, 엣헴.”
체면을 구긴 훈이가 멋쩍은 표정으로 눈 앞에 나타난 루가릭스를 응시했다.
‘맞다, 저 녀석……. 어둠의 드래곤이었지.’
자기 혼자만 던전에서 튕겨 나온 줄 알고 폼을 잡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란 것이다.
정신을 차린 훈이에게 다가온 루가릭스가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신은 결코 편협하거나 어리석지 않다. 그들은 그 자체만으로 완전무결한 존재. 그들이 행하는 일에는 항상 깊은 뜻이 있는 법이지.”
훈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한다.
“그, 그래?”
“그렇다. 적어도 마신과 같은 탐욕적인 악신에 의해 물들지 않았다면 말이다.”
어둠의 신 카데스를 생각하는 것인지, 루가릭스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진다.
그리고 잠시 후, 루가릭스의 입이 다시 열렸다.
“우리는 엘카릭스의 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리 나름대로 할 일이 있다 어둠의 군주. 그리고 그것이 바로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님의 안배.”
훈이가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그게 뭔데?”
루가릭스가 엘카릭스의 레어를 슬쩍 응시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리치 킹 샬리언은 빛의 신룡이 깨어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겠지.”
“그렇기에 이렇게 많은 언데드로 하여금 이 엘카릭 산맥을 지키게 하였던 것이고.”
“아하……. 그래서……?”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훈이는, 상황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어둠이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빛의 결계라는 것은, 리치킹을 막기 위한 것이었군.’
더해서 빛의 신룡을 적대시해야 하는 어둠의 군대들이, 이 엘카릭 산맥을 지키고 있었던 이유도 곧바로 설명이 된다.
고개를 끄덕이는 훈이를 보며, 루가릭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면, 어둠의 군주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해야 할 일……?”
훈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하지만 훈이가 답을 찾기 전, 루가릭스의 말이 먼저 이어졌다.
“그것은 바로 퇴로를 뚫는 것이다.”
잠시 뜸을 들인 루가릭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지금 쯤 리치킹도 우리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터, 더 강력한 어둠의 군단들이 이곳을 향해 몰려올 테지.”
이어서 훈이의 눈 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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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군대 섬멸 (히든, 돌발 퀘스트)-
리치킹의 군대는 강력하다.
때문에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두 신룡의 힘이 필요했다.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와 빛의 신룡 엘카릭스.
이미 루가릭스는 당신과 함께 하고 있으며, 이제 엘카릭스를 깨워 그녀의 힘을 얻어야 한다.
그렇기에 당신은 인간계의 영웅들과 함께 엘카릭 산맥을 찾아왔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항상 엘카릭 산맥을 주시하고 있던 리치킹의 군대가, 당신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다.
리치킹의 군대는 엘카릭스를 노리고 있다.
레어로 들어간 영웅들이 신룡의 영혼석을 가지고 나오면, 그들은 영혼석을 탈취하여 소멸시키려 할 것이다.
지금 수많은 어둠의 군대들이 엘카릭 산맥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영혼석을 가지고 레어에서 나오기 전에, 어둠의 군단을 섬멸하여 퇴로를 확보하자.
어둠의 군단은 강력하지만, 당신에게는 루가릭스라는 조력자가 있다.
그가 당신을 도와 그들을 물리칠 것이다.
퀘스트 난이도 : SSS
퀘스트 조건 :
레벨이 350 이상인 유저.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의 레어 던전을 클리어 한 유저.
‘빛의 신룡 엘카릭스’ 퀘스트를 진행중인 흑마법사 유저.
제한 시간 : 없음
보상 - 처치한 어둠의 군단의 숫자에 비례하여 달라집니다. (명성과 경험치 획득.)
* 퀘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획득하는 모든 경험치와 에피소드 공헌도가 2배로 적용됩니다.
* 전투 중 사망 시, 퀘스트에 실패합니다.
* 던전 내부에 들어간 파티원이 필드로 다시 나올 때 까지, 퀘스트가 지속됩니다.
*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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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퀘스트 창을 빠르게 읽은 훈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런 꿀 같은 퀘스트라니……!’
말 그대로 신나게 리치킹의 군대와 싸우면 되는 단순 무식한 퀘스트.
도중에 죽지만 않으면 성공하는 퀘스트 인 데다 루가릭스라는 버스기사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야 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격이지!’
퀘스트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외감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훈이는, 신이 나서 절벽 아래를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어느새 언데드들이 새까맣게 몰려 올라오고 있었다.
“좋았어! 다 쓸어버리는 거야!”
흥에 겨워 여기저기 언데드들을 소환하기 시작하는 훈이!
‘크흐흐. 루가릭스 레어 클리어하는 데도 거의 서너시간은 걸렸으니까……. 이번에는 최소 한나절은 걸리겠지?’
훈이의 계산법은 간단했다.
난이도가 비슷하다는 전제 하에 훈이와 루가릭스가 빠졌으니, 엘카릭스의 레어를 클리어하는 데는 두 배 정도의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한 것이다.
훈이는 예닐곱 시간동안 경험치를 독식할 생각에 흥분했고, 어둠의 군대를 맞은 루가릭스의 표정은 비장했다.
“어둠의 군주여. 나와 함께 저 이단들을 섬멸하자!”
훈이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좋지!”
* * *
한편 훈이가 청운의 꿈에 부풀어 있는 사이, 이안과 레비아는 너무도 순조롭게 홀리 드레이크를 처치해 내었다.
루가릭스의 레어에 있던 카오틱 드레이크보다도 훨씬 수월하게 사냥해 낸 것.
[‘엘카릭스의 레어’ 던전 지하 1층의 네임드 보스. ‘홀리 드레이크’를 처치하셨습니다.]
[명성을 15만 만큼 획득합니다.]
[잠시 후, 엘카릭스의 레어 지하 2층으로 이동됩니다.]
하얀 빛이 되어 산화하는 홀리 드레이크.
그런 그를 보며, 레비아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거 뭔가 너무 싱거운데요?”
이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러게요. 이대로 엘카릭스의 영혼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두 사람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던전이 강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깨어난 루가릭스를 처음 만났을 때 보다도 더욱 웅장하고 거대한 진동!
쿠궁- 쿠쿠궁-!!
이안과 레비아는 바짝 긴장한 채 사방을 주시했고, 두 사람의 발 아래 지면이 쩍 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래 조심해요 이안님!”
이안에게 주의를 주며, 날개를 펼쳐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레비아.
이안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소환해 두었던 핀의 등 위에 올라탔다.
우르릉- 쿠구구궁-!
레어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진동했다.
그리고 그 진동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동공의 바닥을 이루고 있던 지면이 무너져 함몰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아예 바닥이 사라지겠는데……?’
난처한 표정이 된 이안은, 결국 핀과 카르세우스, 뿍뿍이만을 제외한 모든 소환수들을 소환해제 하였다.
그리하여 모두가 완벽히 허공으로 떠오른 이안의 파티.
잠시 후 이안의 예상처럼 바닥은 뻥 뚫려 버렸고, 그 아래로 끝 없이 깊은 낭떠러지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까마득한 곳에서부터, 하나의 찬란한 빛이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안과 레비아는, 숨을 죽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우우웅-!
작게 들리던 공명음이, 빛이 가까워질 수록 점점 크게 고막을 울린다.
레어 전체를 뒤흔들던 진동은 어느새 멎어 있었고, 빛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울림만이 장내에 울려 퍼지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빛의 덩어리인 줄만 알았던 것의 형상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안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뭐지? 저 여자가 빛의 신룡 엘카릭스인가……?’
새하얀 날개에 온통 하얀 빛깔의 갑주를 입은 여인.
금빛으로 빛나는 검과 방패를 손에 쥔 그녀는, 마치 차원전쟁 때 보았던 천군(天軍)들이 연상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 완벽히 같은 모습은 아니었으나, 비슷한 분위기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그 때.
멍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비아의 입에서, 나직한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발……키리……?”
이안이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발키리요? 그게 뭐죠?”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를 섬기는 존재예요. 인간계에는 나타날 수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레비아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발키리는 신의 권능을 일부 갖고 있는 반신(半神)이라 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사제 클래스의 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신화 속에서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익숙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발키리와 싸워야 한다면, 일찌감치 퀘스트를 포기하는 것이 나으리라.
이안이 발키리에 대해 묻기 위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어느새 두 사람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하얗고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입을 열었다.
“여신님이 말씀하신 빛의 사제가 바로 그대였군요.”
무척이나 부드러운 그 말에, 레비아가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대는 혹시 빛의 전사……. 발키리인가요?”
그에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밀로스. 빛의 전사이나, 발키리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답니다. 단지 그대들이 당도할 때 까지 엘카릭스를 지키라는 명을 받은……. 에르네시스님의 종일 뿐.”
잠시 뜸을 들인 그녀가 들고있던 검을 꽂아 넣더니 오른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그러자 그녀의 앞에, 하얀 빛의 덩어리가 커다랗게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이안이, 자신도 모르게 낮게 읊조렸다.
“신룡의 영혼석……?!”
색상과 풍기는 분위기는 달랐으나, 그것은 분명 과거 이안이 가지고 있었던 카르세우스의 영혼석과 같은 생김새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것.
여인, 밀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안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맞아요. 이것이 바로 엘카릭스의 영혼석이죠.”
“그렇군요.”
“제 짐작이 맞다면……. 그대들은 잠들어 있는 엘카릭스를 깨워 어둠의 군단을 물리쳐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겠죠?”
이안과 레비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빙긋 웃어 보인 밀로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프릴라니아 계곡.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세요.”
“……?!”
프릴라니아 계속에 대해 아예 모르는 레비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고, 반면에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이안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프릴라니아 계곡이라면……. 드래곤 빌리지를 말하시는 건가요?”
밀로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과거 드래곤 빌리지가 있었던 바로 그 곳. 나를 그 곳으로 데려다 주세요. 그럼 잠들어있는 빛의 신룡을 깨울 수 있답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안과 레비아의 눈 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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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빛의 가디언, 밀로스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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