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빛의 가디언, 밀로스 -1 >
소환수가 사망하면, 유저와 마찬가지로 24시간 후에 재소환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노예나 가신의 경우는 다르다.
사망한 가신은 일주일이 지나야 영지에서 부활하게 되며, 노예는 3일이 지나야 다시 소환이 가능하다.
때문이 지금 카카가 사망한 것은, 이안에게 적잖은 타격이었다.
‘으, 앞으로 상대해야 할 언데드가 산더미같이 많은데, 3일이나 카카 없이 싸워야 한다니…….’
빛 속성의 공격을 제외한다면, 카카를 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반대로, 빛 속성의 공격에 한 없이 속수무책인 존재가 바로 카카였다.
한데 카카가 찾으러 간 존재가 바로 빛의 신룡 엘카릭스였으니, 카카가 사망한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안일했어. 빛의 신룡이 아직 알 상태일 것이라 생각해서 카카를 보냈던 거였는데…….’
빛의 신룡이 알 상태일지언정, 그 알이 잠들어 있는 곳은 신룡의 레어이다.
아니, 아직까지 레어 안에 신룡의 알이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겠지만, 어쨌든 카카가 찾아간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빛의 신룡의 레어인 것이다.
그리고 루가릭스 레어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드래곤의 레어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하물며 빛의 신룡의 레어라면, 카카가 비명횡사 한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입을 열었다.
“이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에 레비아가 바로 되물었다.
“네?”
“카카가 죽었거든요.”
“……?!”
“카카가 엘카릭스의 레어를 찾은 것 같습니다. 카카를 해칠 수 있는 존재는, 빛 속성을 가진 존재 뿐이니까요.”
“아…….”
이안의 말을 이해한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고, 더욱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수록 언데드들은 많아졌고 강력해 졌지만, 확신이 생긴 이상 이안 일행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렇게 두 세 시간 정도를 움직인 끝에, 그들은 엘카릭스의 레어를 찾아낼 수 있었다.
* * *
새하얀 설산의 바위벽에 있는 아담한 동굴.
거대한 입구를 자랑하던 루가릭스 레어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레어의 크기에, 훈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긴 루가릭스의 레어에 비해 좀 조촐한 느낌인데……?”
그리고 그 작은 목소리를 들은 루가릭스가, 팔짱을 끼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나 루가릭스님의 레어가 좀 웅장하기는 하지. 후훗! 내 레어로 말하자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랑을 시작하려던 루가릭스.
이안이 그 말을 자르며 핀잔을 주었다.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이 레어나 살펴봐 루가릭스. 여기 엘카릭스의 레어가 맞을까?”
그에 루가릭스의 입이 댓발 튀어나왔고, 이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곳에서 나왔다.
“맞는 것 같뿍. 이 안에서 신룡의 기운이 느껴진다뿍!”
목소리의 정체는, 라이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던 뿍뿍이.
루가릭스도 뒤늦게 대답했다.
“마, 맞다. 여기가 엘카릭스의 레어가 맞는 것 같다 이안아.”
이안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뿍뿍이가 먼저 대답했거든! 뒤늦게 숟가락 얹기는.”
이안의 냉정한(?) 반응에, 루가릭스의 커다란 눈망울이 흔들린다.
“우, 우쒸. 원래 나도 말하려고 했다! 나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이안이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걸 어떻게 믿어?”
무척이나 당황한 루가릭스의 모습.
루가릭스는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에, 엘카릭스는 내 쌍둥이 동생이다! 내가 내 동생의 레어를 모를 리 없잖아?!”
흥분한 나머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꺼내는 루가릭스.
의외의 정보를 입수한 이안의 두 눈이 살짝 커졌고, 훈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루가릭스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너는, 엘카릭스의 레어가 어딘지 알고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었다는 거지?”
훈이의 추궁에, 그제야 자신의 말실수를 깨달은 루가릭스는 더욱 울상이 되었다.
“그런 게 아니고……!”
“아니긴! 딱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이 거짓말쟁이!”
“나, 난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그럼 왜 말하지 않은 건데? 네가 알려줬으면 더 빨리 올 수 있었잖아. 카카도 잃지 않고 말이지.”
“그, 그건……!”
루가릭스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입을 꾹 다문 루가릭스가 삐죽거렸다.
언데드들을 쓸어 담으며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얘기는, 죽어도 하기 싫은 루가릭스였다.
* * *
“오르덴, 이 쪽이 확실해?”
“그런 것 같다, 주인. 조금만 더 북동쪽으로 가면 나의 고향 프릴라니아 계곡이다.”
“휘유. 그럼 여기서 잠깐 쉬었다 갈까?”
“알겠다, 주인. 그럼 저 봉우리 위에 내려앉겠다.”
“그래, 그러자.”
북부대륙의 북쪽 끝.
숨을 쉬는 것 만으로도 폐부가 얼어버릴 것 같은 사나운 바람이 부는 이 설원의 하늘에, 새까만 드래곤 한 마리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한 남자.
그는 바로 오클리의 후계자이자 드래곤 테이머인, 소환술사 카노엘이었다.
펄럭- 펄럭-
거대한 드래곤의 날개가 한 번 움직일 때 마다, 거세게 불던 바람이 회오리친다.
그리고 카노엘을 태운 드래곤 오르덴이, 봉우리 위에 내려앉아 커다란 날개로 주인을 감쌌다.
거센 한파로부터 주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리라.
“괜찮아, 오르덴. 이 정도 바람에는 끄떡없다고. 하린 누나가 준 요리도 가져왔으니까.”
인벤토리에서 주먹밥 하나를 꺼낸 카노엘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그것을 노려(?)보았다.
밥알 한 알 한 알이 새빨간 것이, 마치 날치 알 덩어리 같기도 한 생김새를 가진 주먹밥.
그것을 본 오르덴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노엘에게 물었다.
“정말……. 그거 먹을 생각인가 주인.”
카노엘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머, 먹어야지. 이걸 먹으면 그래도 추위에선 벗어날 수 있으니까.”
잠시 망설이던 카노엘이 용기내서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먹었다.
그러자 그의 눈 앞에 주르륵 하고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띠링-!
[‘마그마 라이스볼’ 음식을 섭취하셨습니다.]
[용암을 삼킨 것과 같은 매운 맛이 밀려옵니다.]
[매운 맛에 대한 저항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30분간, 초당 20 만큼의 피해를 입습니다.]
[매운 맛 저항이 영구적으로 2만큼 상승합니다.]
[냉기 저항력이 2시간 동안 30%만큼 상승합니다.]
[화염 저항력이 2시간 동안 15%만큼 감소합니다.]
하지만 카노엘은,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없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스템 메시지의 표현처럼, 마치 용암을 삼킨 듯 한 어마어마한 매운 맛!
“으…… 으으!!”
식도가 전부 녹아내리는 듯 한 매운맛을 느낀 카노엘이,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바위 위에 쌓여 있던 눈을 퍼먹기 시작했다.
[‘차가운 설원의 눈’을 섭취하셨습니다.]
[주의! 먹는 음식이 아닙니다!]
[냉기 저항력이 5분 간 1%만큼 하락합니다.]
[냉기 저항력이 5분 간 1%만큼 하락합니다.]
:
:
그리고 그것을 본 오르덴이, 질린 표정으로 카노엘을 위로했다.
“괜찮다, 주인. 그럴 수 있다. 나는 이해한다.”
블랙 드래곤 오르덴의 별명은, 미식 드래곤이었다.
그의 취미는 바로, 하린이 새로 개발한 음식을 시식해 보는 것!
때문에 오르덴은 이미 ‘마그마 라이스볼’도 먹어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파이로 영지의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을 다섯 마리(?)쯤 잡아먹은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던 오르덴.
오르덴은 주인 카노엘의 기행(?)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삼분 정도가 지났을까?
쉴 새 없이 눈을 퍼먹던 카노엘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우, 이거……. 언데드들이랑 싸우는 것 보다 다섯 배 쯤 힘든 것 같아, 오르덴.”
“맞다, 주인. 아마 리치킹에게 주먹밥을 먹일 수 있다면 그를 쉽게 처치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휘유. 어쨌든 이제, 확실히 추위는 느껴지지 않네. 효과만큼은 탁월한 것 같다.”
주먹밥의 효과에 감탄한 카노엘의 모습에, 오르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입을 열었다.
“속이 너무 아파서 추울 틈이 없을 것 같다, 주인.”
“…….”
어쨌든 한 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정비를 마친 카노엘이 다시 오르덴의 등에 올라탔다.
“그래도 북동쪽으로 움직일수록 언데드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오르덴. 너무 추워서 그런 건가?”
“언데드는 추위를 타지 않는다.”
“그, 그래? 뭐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카노엘이 등 위에 단단히 올라타자, 오르덴이 날개를 펄럭이며 다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로 북부대륙의 북쪽 끝에 존재하는 프릴라니아 계곡.
과거 마룡들의 침공에 의해 수많은 용족들과 테이머들이 묻힌 장소였다.
‘이제 프릴라니아 계곡만 찾으면……. 그들의 힘을 빌려 리치 킹의 군대와 싸울 수 있을 거야.’
오르덴의 안장을 꽉 움켜쥔 카노엘의 두 눈이, 설원에 반사된 빛을 받아 반짝였다.
* * *
[빛의 드래곤, 엘카릭스의 레어에 입장하셨습니다.]
[빛의 영역, 첫 번째 구역에 입장합니다.]
[‘엘카릭스의 레어’를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명성치가 5만 만큼 증가합니다.]
[던전의 최초 발견자가 되셨습니다.]
[앞으로 5일 동안 던전에서 획득하는 모든 경험치가 2배가 됩니다.]
[앞으로 5일 동안 던전에서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2배가 됩니다.]
:
: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이안의 두 눈에 이채가 어린다.
‘루가릭스의 레어는 분명 최초발견이 아니었는데, 여기는 최초발견이군.’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사실은 아니었다.
루가릭스의 레어는 사실 찾기 힘든 곳에 있는 던전이 아니었고, 지나가던 유저가 들어갔다가 식겁해서 도망쳐 나왔을 수도 있는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오랜만에 미 발견 던전을 찾았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었다.
이곳이 루가릭스의 던전과 비슷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면, 제법 쏠쏠한 경험치와 아이템을 쓸어 담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루가릭스라는 최고의 버스기사도 있고 말이지.’
칭찬만 한두 번 해주면 신나서 몬스터를 쓸고 다니는 루가릭스는, 그야말로 최고의 버스기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빛과 어둠은 서로 역속성의 관계였으니, 루가릭스의 공격이 빛 속성의 몬스터들에게 더 막대한 피해를 입힐 것이다.
물론 루가릭스 또한 빛 속성의 공격에 당한다면 증폭된 피해를 입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버스를 탈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오는 이안!
하지만 모든 일이 항상 뜻 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빛의 구역, 마지막 지역에 진입하셨습니다.]
[10초 후. 지하 1층을 지키는 가디언, ‘홀리 드레이크(Lv375)'가 등장합니다.]
“마지막…… 이라고?!”
엘카릭스의 레어는 루가릭스의 레어와 달리, 여러 층이 존재하는 던전이 아니었던 것!
수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하여 경험치를 쓸어 담겠다던 이안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콰르릉-!
거대한 진동음과 함께, 던전의 내부로부터 새하얀 기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고.
[‘빛의 결계’가 발동합니다.]
[빛 속성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생명력이 2350만큼 감소합니다.]
[어둠 속성을 가진 존재는 빛의 구역 안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안은, 카카가 사망한 원인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후, 이 빛의 결곈지 뭔지 발동해서 그대로 죽어버린 거 였구만.’
사실 이 정도의 피해는 두 자리 수 레벨의 흑마법사 클래스도 한 방에 죽일 수 없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카카에게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빛 속성이라면, 모기가 물어도 사망할 수 있는 게 카카였으니까.
“이거, 곤란하게 됐는걸……?”
주변을 둘러본 이안이 중얼거렸다.
결계가 펼쳐짐과 동시에, 어둠 속성의 드래곤인 루가릭스는 물론 훈이까지도 던전 밖으로 튕겨나갔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날개를 펼친 레비아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네요. 우리끼리 해 볼 수 밖에요.”
이안도 피식 웃으며 정령왕의 심판을 다잡았다.
“그래요 뭐. 설마 초딩 둘 없다고 드레이크 한 마리못 잡겠어요?”
그리고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던전 내부에서 새하얀 빛이 일렁이더니 거대한 드레이크가 등장했다.
캬아아오오!!
설원의 눈결같이 새하얀 비늘을 가진 홀리 드레이크.
레비아와 이안이, 드레이크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 (3). 빛의 가디언, 밀로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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