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빛의 신룡, 엘카릭스를 찾아서 -3 >
* * *
쾅-!
로터스 왕국의 왕성.
국왕의 집무실 탁상 옆에 선 헤르스가, 금빛 서신 위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도장이 찍히자마자, 서신에서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하얀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걸로 된 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헤르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르스의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로터스 왕국, 국왕의 옥새를 사용하셨습니다.]
[왕국 전체에 ‘왕명(王命)’이 발동합니다.]
[엘리카 왕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로터스 왕국은, 엘리카 왕국 소속의 모든 유저들과 NPC들을 PvP 패널티 없이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왕국의 상태가 ‘전시상황’으로 설정됩니다.]
[‘징병’ 탭을 이용하여 100레벨~200레벨의 유저, 혹은 NPC를 병사로 징집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징병 가능한 최대 인원 : 54250]
[병사 징집 시, 매일 LV*20 만큼의 골드를 봉급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유저를 징병할 시, 매 시간마다 LV*15 만큼의 봉급을 플레이 타임에 비례하여 자동으로 지불합니다.)]
[징병할 병사의 인원을 설정하십시오.]
주르륵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들을 읽어 내려가던 헤르스는, 일단 징병 인원을 최대치까지 맞춰 보았다.
“최대 인원을 징병한다.”
그러자 이어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징병할 병력의 유저/NPC 비율을 설정해 주십시오.]
메시지를 본 헤르스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유저가 확실히 병사들보다 낫기는 한데…….’
십인장 이상으로 올라가면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일반 병사들의 경우 같은 레벨의 유저가 가진 전투력의 절반도 갖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기사 정도까지 올라가야, NPC도 평범한 유저들과 동등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는 병사 NPC의 부족한 인공지능에 비해 똑똑한 유저들이 훨씬 도움이 되는 것.
유저들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이 NPC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고용할 가치가 있었다.
“흐음…….”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던 헤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저 20% NPC 80%로 맞춘다.”
총 5만명 중 20%면, 무려 만 명 이나 되는 유저를 징집하겠다는 이야기.
아니나 다를까, 시스템 메시지가 불가능함을 알려왔다.
[현재 로터스 왕국에 거주중인, 징병 가능한 유저의 숫자는 5798명입니다.]
[유저 비율을 더 줄여야 합니다.]
헤르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10%?”
[징집 가능한 비율입니다.]
[결과를 산출합니다.]
[예상 소모 비용 : 288742450 골드 (대략적인 수치임으로, 10%정도 변동될 수 있습니다.)]
[징집 비용에는, 식량과 병장기 등, 모든 소모비용이 전부 포함됩니다.]
[징집을 진행하시겠습니까?]
하루에 억 단위가 넘어가는 징집비용을 확인한 헤르스가, 잠시 멈칫 했다.
“으, 뭐 이렇게 징집 비용이 비싼 거야?”
사실 징집 비용은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왕국에서 매달 걷히는 세금이, 이제 500억 골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 왕국을 건설했을 때와 비교하더라도 2배 이상 상승한 수치.
그렇기에 한 달 내내 전쟁을 하더라도, 한 달 치 세금이면 거의 메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전쟁비용으로 세금이 전부 다 쓰이게 되면, 국가 성장이 멈추게 된다는 리스크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 징집되는 유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적은 돈이기도 했다.
시급으로 따지자면 2~3천원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봉급 말고도 명성이나 아이템, 전쟁 공헌도 등.
추가로 챙길 수 있는 전리품이 없었다면 아마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으리라.
잠시 고민하던 헤르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징집을 진행했다.
“그래, 뭐……. 전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전쟁자금으로 쓴 골드의 몇 배 이상은 벌어들이고도 남을 테니까.”
헤르스의 말은 절대로 과장이 아니었다.
만약 로터스 왕국이 전쟁에서 대승하여 엘리카 왕국을 집어삼킬 수만 있다면, 단숨에 국가의 덩치가 두 배로 거대해 지는 것이다.
물론 전쟁이 끝난 직후에는 복구 작업에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어가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2배 이상의 세금이 걷히게 될 터.
이것은 왕국을 넘어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될 터였다.
“그나저나, 이안 이 녀석은 국왕이라는 놈이 대체 어딜 쏘다니고 있는 거야?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전쟁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이안의 존재는 필수적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야, 피 같은 세금이 조금이라도 덜 들어갈 것 아닌가!
그리고 이안과 함께하면, 뭔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생기는 것은 덤이었다.
“어휴, 이 옥새 다시 돌려주던가 해야지.”
헤르스는 오른손에 들려있던 황금빛 옥새를 보며 투덜거렸다.
옥새를 위임하는 것은, 국왕으로서의 권한을 전부 양도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때문에 이안이 빌려줄 때는 좋다고 받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귀찮은 일들을 모조리 떠넘기려 했던 것이 분명했다.
“으으……. 이건 쓸 데 없이 뭐 이리 복잡한 거야?”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은, 영지전과 또 다른 차원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내정 파트에서도 설정해야 할 것이 태산 같았고, 헤르스는 울상이 된 표정으로 계속해서 국정(?)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띠링-!
[‘출정’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출정하시겠습니까?]
드디어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고, 로터스 왕국과 엘리카 왕국의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북부대륙의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언데드들의 숫자는 더 많아졌고 레벨은 더 높아졌다.
때문에 이안 일행은 적잖이 고생을 했으나, 결국 북쪽 끝에 있는 엘카릭 산맥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띠링-!
[‘엘카릭 산맥’에 입장합니다.]
간결하게 떠오르는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
그것을 본 훈이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어휴, 무슨 북부대륙 뚫는 게 이렇게 힘들어?”
그에 레비아가 맞장구치며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이 정도면 거의 헤인츠 고원이랑 비교해도 될 수준 아닐까요?”
레비아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엘카릭 산맥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정말 400레벨에 가까운 언데드들도 심심치 않게 보일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어떤 때는 오히려 헤인츠 고원이 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사내아이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루가릭스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크큭, 그대들은 내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으리라. 후후.”
그에 이안이 피식 웃었다.
루가릭스가 없었더라도 엘카릭 산맥에 올 수는 있었겠지만, 그의 도움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니 딱히 반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때.
훈이가 루가릭스의 주장을 속사포처럼 반박(?)했다.
“아닌데? 아닌데~ 아닌데!”
그야말로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응!
하지만 루가릭스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는지 무척이나 분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크흑!”
이안과 레비아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 응시했고, 훈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이안이 레비아에게 조용히 메시지를 보냈다.
[쟤들 대체 뭐 하는 걸까요?]
[그, 글세요. 저도 잘…….]
그 뒤로도 루가릭스와 훈이는 티격태격했지만, 일행은 별 탈 없이 엘카릭 산맥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맥 자체가 워낙 넓은 탓에, 엘카릭스의 레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소환수들을 분산시켜 한번에 넓은 범위를 수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산맥 여기저기에도 강력한 언데드들이 많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안의 일행 중, 유일하게 홀로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존재.
이안은 카카에게 명령을 내렸다.
“카카, 정찰 좀 부탁할게. 엘카릭스의 레어 좀 찾아 줘.”
“알겠다, 주인. 찾게 되면 어둠의 군주를 통해 시야를 공유하도록 하겠다.”
“부탁해!”
카카를 서쪽으로 보낸 이안 일행은, 동쪽 지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삼십분 정도가 지났을 때, 이안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음, 왜 이 쪽으로 갈수록 언데드 숫자가 줄어드는 거지?”
이안의 의문에, 훈이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게 왜? 몬스터 줄어들면 탐색 속도 빨라져서 좋은 거 아니야?”
훈이에게 삐진 루가릭스가 틱틱거렸다.
“이안은 지금 리치킹의 군대와 싸우고 싶은 거다, 겁쟁이 어둠의 군주 놈아!”
“아닌데? 아닐 건데?!”
“우쒸!”
한편 티격태격하는 둘과는 별개로, 이안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가설이 떠오르고 있었다.
‘혹시……. 이 수 많은 언데드들이 엘카릭스의 알을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설을 떠올린 이안은, 지금까지 북부대륙을 돌파하면서 있었던 전투들을 되새겨봤다.
‘생각해 보면, 엘카릭 산맥으로 향하는 방향에만 언데드들이 계속 등장했었어.’
물론 북부대륙 전체적으로 리치 킹의 군대가 젠 되어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북부대륙에서 사냥하는 유저들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만한 수준의 언데드 몬스터들.
그런데 유독 엘카릭 산맥으로 향하는 맵에만, 수준 높은 언데드들이 그 길목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왠지 맞는 것 같은데? 엘카릭 산맥으로 들어오기 직전에는, 정말 여기가 헤인츠 고원인 줄 착각할 정도였으니 말이야.’
그리고 이 가설이 맞다면, 지금 이안 일행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리치 킹의 군대들이 엘카릭스의 레어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 레어의 근처로 갈수록 더 강력한 언데드들이 많이 포진해 있을 테니 말이다.
‘내 감을 한번 믿어보자.’
생각을 정리한 이안이 일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쪽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훈이와 레비아가 동시에 되물었다.
“응……?”
“네? 왜요?”
하지만 이안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 모두 납득한 표정이 되었다.
“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정말?”
“그러네요. 저도 왠지, 이안님 가설이 맞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지금까지 심통 난 표정을 하고 있던 루가릭스도, 어느새 흔들리는 눈빛을 한 채 이안을 응시하고 있었다.
“또, 똑똑한 인간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거의 제갈공명의 환생을 보기라도 한 듯, 입을 쩍 벌린 채 이안의 추리에 감탄하는 루가릭스!
그렇게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파티원들은, 이안의 그럴싸한 가설에 매료되어 다시 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안의 가설이 정말 맞는 것인지, 서쪽으로 갈수록 등장하는 언데드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빠르게 이동했지만, 갈수록 이동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 것.
엘카릭 산맥에 진입한지 세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이안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카카 이 녀석은 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지? 만약 동쪽이 맞았다면, 지금쯤 뭐라도 발견했어야 하는 시간인데……?’
이안은 고개를 갸우뚱 하며 훈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카카에게 연락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시야공유를 한번 써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안이 입을 열려던 그 순간!
[노예, ‘카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카카의 생명력이 전부 소진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망한 노예는, 72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소환할 수 있습니다.]
“……?!”
그야말로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고, 당황한 이안의 두 눈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 (2). 빛의 신룡, 엘카릭스를 찾아서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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