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빛의 신룡, 엘카릭스를 찾아서 -1 >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신룡 루가릭스를 테이밍하라.’ 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돌발 퀘스트.
하지만 직관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뭐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퀘스트가 다 있는 거야?’
이안의 시선이 눈앞에 있는 거대한 드래곤을 향해 다시 움직였다.
그 외형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주는,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
지금의 전력으로는 이기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 무지막지한 녀석을 길들이라는 퀘스트 내용에, 이안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혹시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어, 퀘스트 창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 보았을 정도.
하지만 퀘스트의 내용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펜타 S등급의 난이도라……. 후, 그나마 시간제한이 없는 게 다행인 건가?’
만약 시간제한이 걸려 있었더라면, 이 퀘스트는 아예 클리어가 불가능한 퀘스트였을 것이다.
무려 히든 클래스의 티어상승 이라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그림의 떡처럼 쳐다보기만 해야 했을 터.
그러나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 가지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다.
리치 킹 샬리언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루가릭스의 버프가 풀리고 나면 시도해 보는 것이다.
카데스의 버프가 얼마나 오랜 시간 지속될지는 알 수 없으나, 버프인 이상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물론 버프가 풀린다고 해서 ‘쉽다’라고 말할만한 것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0%에 수렴했던 가능성이 10%정도로는 올라갈 수 있을 듯 보였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좋게 생각하자고. 신룡 테이밍에 성공하면 신화등급 최초 테이밍 보상도 얻을 수 있겠지!’
이안은 이미 ‘신화’등급의 소환수를 둘 씩이나 가지고 있다.
신룡인 카르세우스와, 어비스 드래곤이자 차원의 중재자인 뿍뿍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적인’ 소환수를 테이밍한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가 퀘스트 창에 명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LB사의 실수일까?
답은 당연히 ‘NO’였다.
이안이 보유하고 있는 신화등급의 소환수들은, 두 녀석 모두 이안이 직접 진화시켜 신화등급이 된 소환수들 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뿍뿍이는, 유일등급부터 시작하여 신화등급까지 차근차근(?) 진화한 특별한 케이스.
신화등급 몬스터의 테이밍은, 이안조차도 처음 시도해 보는 하드코어한 미션이었다.
‘휘유. 정말 이름값 하는 히든클래스 미션이네.’
테이밍 마스터 라는 자신의 히든클래스를 새삼 떠올린 이안이, 피식 하고 실소를 흘렸다.
처음 퀘스트를 확인했을 때 떠올랐던 당황스러움은 이제 희석되었고, 반대로 의욕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일단 이 퀘스트는 묵혀둔 채 리치킹과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하다보면, 루가릭스 길들이기에 대한 단서도 얻을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던 이안의 상념을 깨우는 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이제 뭐 부터 해야 하지? 다시 헤인츠 고원으로 가면 되는 건가?”
“어? 자, 잠깐만.”
다른 생각을 하던 이안이 당황하여 말을 더듬자, 옆에 있던 레비아가 입을 열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잖아요.”
그제야 기억난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맞다! 빛의 신룡 엘카릭스……. 그를 먼저 찾으러 가야 하는군.”
이안의 말이 떨어지자, 파티는 다음 일정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둠의 신룡 루가릭스도, 다시 새하얀 빛으로 산화하더니 인간 형태로 폴리모프 하였다.
그런데 인간형이 된 루가릭스의 모습이, 뭔가 좀 달라졌다.
이전에는 조금 우락부락한 느낌을 가진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었다면, 이번에는 훈이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사내아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아역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무척이나 귀여운 모습을 한 루가릭스!
의아한 표정이 된 이안이, 루가릭스를 향해 물었다.
“어, 근데 루가릭스. 왜 아까랑 다른 모습으로 폴리모프된 거야?”
폴리모프라는 마법은, 그 특성상 사실 외형 변화에 대한 제약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루가릭스가 어떤 모습으로 폴리모프하던, 사실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안이 지금까지 겪어온 바로, 드래곤들이 인간으로 폴리모프할 때에는 항상 같은 모습이었다.
이안의 카르세우스만 하더라도, 항상 같은 모습의 대검전사로 폴리모프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안의 의문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궁금증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별 생각 없이 던진 이안의 질문에 루가릭스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아, 그게…….”
몽실몽실한 입을 우물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루가릭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안의 뒤쪽에 서 있던 카르세우스로부터 나왔다.
“저게 루가릭스의 본 모습이다 주인.”
“응……? 이게 본 모습이라고? 본 모습은 드래곤 아니야?”
“이 세계에 실재하는 형상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영혼의 본 모습을 말함이다.”
예상치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에, 어느새 훈이화 레비아도 카르세우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시 뜸을 들인 카르세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드래곤에게 폴리모프는, ‘영혼의 거울’ 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혼의 거울?”
“그렇다. 다른 어떤 형체를 떠올리면 그 형태로도 폴리모프할 수 있긴 하나, 무의식중에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하면 영혼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게 되지.”
“아하.”
지금의 상황이 대략 이해된 이안의 시선이, 다시 루가릭스를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정의를 내려버렸다.
“그러니까 쟨, 원래 초딩이었다는 거네? 아까는 센 척 하려고 다른 모습을 사용한 거고.”
이안의 말에 발끈한 루가릭스가,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아니다! 난 초딩…… 이 아니야!”
“너, 초딩이 뭔 줄은 알아?”
“모, 모르지만……! 아무튼 초딩은 아니다!”
“…….”
씩씩거리는 루가릭스를 보며, 이안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고 레비아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자, 어쨌든 이제 움직여 보죠? 여기서 이러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네요.”
그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빨리 움직여야 자기 전에 뭐라도 하나 더 진행하죠.”
그리고 이안의 시선이, 다시 루가릭스를 향했다.
“초딩, 너도 빨리 따라와라.”
훈이도 괜히 신나서 한 마디 거들었다.
“이 형님 뒤만 잘 따라오면 돼. 알겠지?”
루가릭스의 양 볼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 * *
[아, 이것은 재앙일까요, 아니면 축복일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여러분! 이 끝도 없이 밀려드는 언데드들을 보세요! 이 어마어마한 언데드들을 과연 전부 다 막아낼 수 있을까요?]
[막아낼 수만 있다면 정말 엄청난 축복일 텐데 말이죠. 저는 지금 저 언데드들이, 전부 전설등급의 장비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전설등급이라뇨. 저 새까만 녀석들 공헌도 전부 다 모으면 신화등급 무기상자도 여러 개 뽑을 것 같은데요?]
[그, 그렇군요. 신화등급의 장비상자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하핫.]
아그작- 아그작!
어둡고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모니터 앞에 앉은 나지찬이, 여느 때처럼 감자칩을 집어 먹으며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지금은 금요일 저녁 열한 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치맥이라도 마시면서 불금을 즐기고 있을 만한 시각.
일주일 내내 카일란 관련 업무를 한 나지찬이었건만, 그는 도대체 질리지도 않는 건지, 집에 오자마자 또 모니터로 카일란 관련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크크, 저게 전부 공헌도로 보이나보지?”
나지찬이 보고 있는 방송은, 유명 인터넷 BJ의 실시간 카일란 중계 영상이었다.
그는 높은 레벨을 가진 BJ는 아니었으나 어지간한 기자들보다도 발 빠르게 움직이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제법 많은 시청자들이 그의 방송을 찾곤 했다.
“빨리 랭커 길드 소속 왕국이나 영지로 도망치는 게 나을 텐데…….”
감자칩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리는 나지찬.
자신이 기획한 시나리오 속에서 유저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그에게 있어 무척이나 즐거운 취미생활이었다.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어, 잠시만요 BJ님!]
[왜 그러시죠?]
[이거, 방어선이 벌써부터 뚫리고 있어요!]
[오오옷! 시청자 여러분! 저기 보이십니까?! 저 거대한 드레이크의 위용! 고스트 드레이크입니다! 카일란에 처음 등장하는 몬스터인 것 같은데요!]
나지찬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고스트 드레이크 보고 감탄할 때가 아닐 텐데……?”
[아니, 이 양반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조금 있으면 방어선 다 뚫리고 우리 죽게 생겼다고!]
[자, 잠깐. 잠시만요. 방어선이 다 뚫렸다고요?!]
[으, 으악! 난 먼저 튑니다! 방송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아야겠어!]
[잠깐! 잠깐만요!]
BJ가 촬영하고 있던 장소는, 콜로나르 대륙 북부에 있는 랭킹 1000위권 대인 길드의 작은 영지.
그가 그곳을 촬영지로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언데드 군단이 가장 먼저 밀려들 만한 장소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었다.
애초에 길드 병력이 언데드 군대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
하지만 그러한 오판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끽해야 200레벨 후반 정도로 구성된 길드 방어병력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으악! 살려줘!]
[제기라알……!!]
수없이 많은 언데드 군단들은, 그야말로 물 밀 듯 영지 안으로 밀려들어왔고, 어두워지는 화면을 본 나지찬은 그대로 ESC키를 눌러 화면을 꺼 버렸다.
“후후. 이거…… 다른 BJ를 찾아야겠는데?”
순식간에 영지 안으로 난입한 데스나이트들에 의해 BJ가 사망하면서, 방송이 강제로 종료된 탓이었다.
“어디보자, 로터스 왕국이나 타이탄 왕국 쪽에서 중계하는 BJ는 없으려나?”
싱겁다는 표정을 지은 나지찬은, 모니터에 나열된 수 많은 채널들을 아래위로 훑기 시작했다.
나지찬이 정말로 원하는 장면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직접 구상하여 만든 언데드 군단들과 랭커 유저들 간의 전투.
그 화려한 전투장면을, 나지찬은 한시라도 빨리 구경하고 싶었다.
* * *
루가릭스의 레어에서 나온 이안 일행은, 간단하게 정비를 마치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고 했다.
“잠깐. 근데 우리 어디로 가는 건데?”
이안의 물음에, 훈이와 레비아의 걸음이 동시에 멈춰졌다.
그리고 훈이가 대답했다.
“어디로 가긴. 빛의 신룡인지 뭔지, 찾으러 가야 한다며?”
“그러니까 어디로?”
“……?”
말문이 막힌 훈이.
곰곰히 생각하던 레비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빛의 신룡이니까, 아마 빛의 대지에 있지 않을까요?”
그에 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빛의 대지는……. 사제 클래스 직업 퀘 중에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잖아요? 레비아님이 그 퀘스트 하실 레벨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이안의 반문에, 세 사람 사이에는 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던 이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뿍뿍이라면 혹시 알고 있으려나……?”
하지만 이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뿍뿍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도 모른다뿍!”
“너, 다른 신룡들은 잘 찾아냈잖아?”
“어느 정도 근처에라도 가야 신룡의 기운을 느낄 수 있뿍! 여기서는 엘카릭스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뿍.”
“으음…….”
그런데 그 때.
잠자코 있던 훈이가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손뼉을 탁 하고 치며 입을 열었다.
“어, 잠깐!”
“응? 왜 그러는데?”
“생각해보니까, 이 산맥 이름이…… 루가릭 산맥이었잖아?”
“그랬지.”
“그럼, 혹시……. 엘카릭스의 레어가 있는 곳은 엘카릭 산맥이 아닐까?”
“어……?”
단순하기 그지없지만, 제법 그럴싸한 훈이의 추론!
심지어 엘카릭 산맥은, 북부 말라카대륙에 버젓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과거 이안이 드래곤 테이머 ‘오클리’를 만났던 곳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존재하는 산맥이었던 것이다.
레비아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 맞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왠지 맞는 것 같…….”
그리고 자신의 추리력에 감탄한 훈이가, 거만한 표정으로 완드를 치켜들었다.
“크하하핫! 아직 죽지 않았군. 이 간지훈이님의 추리실력!”
“…….”
레비아와 이안은,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훈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때, 훈이의 옆에 있던 루가릭스가 한 술 더 뜨며 추임새를 집어넣는다.
“과연, 놀랍군. 역시 어둠의 군주란 말인가……!”
훈이와 루가릭스의 듀오에 할 말을 잃어버린 이안은, 말없이 북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레비아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말라카대륙 북쪽에 있는 엘카릭 산맥이었다.
< (2). 빛의 신룡, 엘카릭스를 찾아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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