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테이밍 마스터-395화 (415/1,027)

< (7). 어둠의 군단 -2 >

우우웅-!

훈이의 손에 들려있는 칠흑빛의 완드가 강렬하게 진동한다.

이어서 완드의 끝을 타고 흘러나오는 새카만 연무(煙霧).

신비한 기운을 지닌 그 까만 연기들이 훈이의 손짓을 따라 춤을 추더니, 기이한 뱀 모양의 문양을 만들며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것을 본 릴슨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이야, 그거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신기하다. 흑마법사는 다 할 수 있는 거야?”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속사포처럼 말을 잇는 릴슨.

훈이가 씨익 웃으며 완드를 까딱 까딱 흔들었다.

이안의 팀킬(?) 덕에 뜻밖에 획득할 수 있었던 신화등급의 무기상자.

그 상자에서 얻은 소중한 완드였다.

“이 완드로만 가능한 거야, 형. 이거 무려 신화등급이거든.”

그 말에 릴슨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잘났다 잘났어. 에휴, 나는 언제 신화등급 무기 가져보냐. 그러고 보니 이안이 무기도 신화등급이어서 번개가 번쩍번쩍 거리는 건가?”

“아마 그럴지도…?”

릴슨의 호기심을 풀어준(?) 훈이는, 무척이나 집중한 표정으로 같은 행동을 연달아 반복했다.

하지만 곧,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것을 본 릴슨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찾은 것 처럼 신난 표정이더니, 갑자기 왜 시무룩해졌어?”

대충 고서 정리 작업이 끝났는지, 훈이의 옆에 같이 주저앉는 릴슨.

훈이가 입이 삐죽 나온 채 대답했다.

“찾으면 뭐 해. 읽을 수가 없는데.”

“음?”

“형이 이 책 한번 봐.”

훈이는 들고 있던 책을 릴슨을 향해 가볍게 던졌고, 릴슨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슬쩍 훑어 본 릴슨이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래?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책인데.”

훈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다음 장. 한번 펼쳐 봐.”

“응?”

“봉인이라도 되어 있는 건지, 저 뒤로는 펼쳐지지가 않아. 펼치려고만 하면 그 이상한 뱀 문양만 반짝반짝 빛나고 말이야.”

릴슨은 훈이의 말대로 한번 해 보았다.

그러자 정말 페이지는 넘어가지 않았고, 그 아래쪽에 새겨진 특이한 뱀 문양만 보랏빛으로 반짝일 뿐이었다.

훈이가 방금 전까지 열심히 연기를 이용해 만들어보던 바로 그 문양.

릴슨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버림받은 어둠의 군주와 지저(地底)의 제국이라…. 이 부분만 안 펼쳐지는 거지?”

훈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만 뜨면서 그 부분이 안 열리더라고.”

“크, 이거 진짜 궁금하게 만들어놨네. 그 얘기 들으니까 나까지 궁금해진다, 야.”

“그러니까 말이야.”

실소를 흘린 릴슨이, 훈이를 톡톡 건드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거 먼저 읽는 게 어때?”

“응?”

“이거 말고 다른 서적 말이야.”

“오, 분류가 다 끝난 거야?”

훈이의 물음에 릴슨은, 대답대신 일어나 손을 쫙 펼쳤다.

“짜잔, 여기 이 책들. 전부 네가 말했던 내용들과 관련된 서적들이야. 그러니까 그 부분 안 펼쳐진다고 너무 심란해 하지 말라고.”

“…!!”

훈이의 앞에 놓인 셀 수 없이 많은 고서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낡은 고문서들을 보며, 훈이는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 이게 다 관련된 유물들이야?”

릴슨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훈이는 울상이 되었다.

아무리 카일란의 모든 것이 흥미롭다 하여도, 기본적으로 독서를 싫어하는 훈이에게 이것은 너무 많은 분량의 책이었으니까.

“하아…. 이걸 어쩐다….”

펜타S등급의 퀘스트를 받았을 때 만큼이나 난처한 표정이 된 훈이.

그런데 그 때.

훈이의 눈 앞에 생각지도 못 했던 시스템 메시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띠링-!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스토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숨겨진 에피소드, ‘어둠의 비사(秘史) Ⅰ’ 이 오픈됩니다.]

[비공개 에피소드이므로, 조건을 충족한 이에게만 에피소드가 공개됩니다.]

이어서 훈이의 앞에 놓여있던 수십 권의 책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어어…?!”

당황한 표정이 되어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훈이.

그리고 훈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의 시야가 까맣게 어두워졌다.

“…?!”

이어서 어두워진 훈이의 시야에, 새로운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인간은 평균적으로 백년 이내의 수명을 갖는다.

하지만 그 중, 비정상적으로 긴 수명을 갖게 되거나 경우에 따라 영생을 누리는 특별한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의 케이스가 바로 신의 사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으로부터 소명(召命)을 받고 ‘그의 일’을 돕는 동안, 생사의 제약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소명을 다른 이에게 넘기거나 신에게 다시 회수당하지만 않는다면, 영생이나 마찬가지의 삶을 얻게 되는 게 바로 신의 사자였다.

그렇다면 신의 사자가 되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방법은 위에서 언급했던 단 두 가지였다.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거나, 기존에 있던 사자의 소명을 잇는 것.

그리고 카데스가 선택한 ‘신의 사자’였던 임모탈은, 자신의 소명을 물려주려 했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자신의 제자였던 일곱 명의 흑마법사들 중 ‘가장 실력이 부족했던 한 명’에게 말이다.

그는 임모탈의 일곱 제자 중 막내였던 ‘라데우스’였다.

[라데우스, 나의 제자야.]

[하명하십시오, 스승님.]

[나는 이제 그만 업을 내려놓고, 어둠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구나.]

[스승님…!]

[하여, 네가 이 못난 스승의 소명을 이어주었으면 하는데….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그 소명이란 것이, 무엇이옵니까.]

[어둠의 신, 카데스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니라.]

신의 사자란, 과도한 욕망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신이 허락한 강력한 힘과 무한에 가까운 수명을 갖게 되기에, 그가 세속적인 욕망을 갖는 순간 인세에는 필연적으로 혼란이 찾아오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한 무욕의 존재가 될 필요는 없었으나, 적당한 선이라는 것을 지켜야만 했다.

그렇기에 임모탈은, 가장 품성이 올바른 막내제자에게 자신의 소명을 잇게 하려 하였다.

바르고 순수한.

그래서 흑마법사와는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아이.

라데우스는 자신이 없다며 한사코 거부했으나, 임모탈은 결국 그에게 소명을 넘기기로 결정하였다.

탐욕적인 다른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능이자 책임을 넘긴다면, 그 다음이 어떻게 될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라데우스는 스승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새로운 신의 사자가 탄생되는 듯 싶었다.

임모탈의 첫 번째 제자였던, ‘샬리언’의 욕심만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스승님께서 어찌 내게 이러실 수가…!]

샬리언은 어려서부터 임모탈에게 흑마법을 배운, 그의 수제자이자 아들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는 천재였고,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임모탈의 가르침을 흡수했다.

당연하겠지만 임모탈은 샬리언을 어여삐 여겼고, 그를 무척이나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그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고, 그가 하기 싫어했던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대신 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샬리언은 무척이나 탐욕적으로 자라났고, 임모탈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즈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탐욕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그러니 그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스승에게.

심지어 일곱 제자 중 ‘가장 보잘 것 없었던’ 막내를 선택한 스승에게 말이다.

[날 선택하지 않으신 것을, 후회하시게 만들어 드리리다!]

샬리언은 스승이 신의 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의 사자가 되면 강력한 힘과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샬리언이 언젠가 소명을 물려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그것을 물려받을 이는,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광분한 샬리언은, 금기를 선택하기에 이르고 만다.

[스승님께서 내게 주시지 않는다면, 나의 힘으로 갖고 말리라…!!]

영생,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

그것을 얻을 방법을, 샬리언은 한 가지 알고 있었다.

바로, 생사의 중간점에 있는 존재.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되, 망자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은 바로 리치였다.

[대사형! 그것만은 아니 됩니다!]

[그, 그렇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인과율을 어기셔서는 아니 됩니다…! 신께서 분노하실…….]

[닥쳐라! 듣기 싫다 이놈들!]

인간은 죽으면 망자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승의 모든 기억을 잃게 된다.

한마디로 모든 망자들은, ‘기억’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한데 리치는, 망자이되 기억을 가질 수 있는 존재이다.

망자이나 이승에 머물 수 있으며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규격 외의 존재.

흑마법으로 어둠의 그릇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금단의 비술을 사용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누리는 존재가 바로 리치였다.

그리고 천재였던 샬리언은, 스승 몰래 자신의 흑마법과 지식을 총동원하였고 이내 리치가 되었다.

스승의 소명을 이을 예정이었던 막내 라데우스를 제물로, 영혼의 그릇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결국 ‘편법’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인과율에서 자유로워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리치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차원의 질서가 뒤틀린 것을 어둠의 신인 카데스가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었고, 다시 바로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에 띄는 순간 샬리언은, 그대로 소멸할 지도 몰랐다.

그러나 샬리언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까지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사의 인과율을 관장하는 어둠의 신을, 나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한 번 금단을 저지른 샬리언은,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아예 다른 차원계, 마계로 눈을 돌렸다.

[마신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어.]

*          *          *

띠링-!

[숨겨진 에피소드, ‘어둠의 비사(秘史) Ⅰ’ 이 종료되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다음 에피소드를 오픈할 수 없습니다.]

[다음 조건이 충족된다면, ‘어둠의 비사(秘史) Ⅱ’ 에피소드가 오픈될 것입니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장장 한 시간에 걸쳐 이어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스토리.

까맣게 변했던 시야는 다시 밝아져 돌아왔지만, 훈이는 멍한 표정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영상을 통해 확인한 스토리를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 스토리대로라면 오히려 카데스가 임모탈 편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분명 영상의 마지막에서 카데스는, 인과율을 어긴 샬리언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애초에 샬리언과 카데스가 한 통속일 것이라 단정 짓고 있던 훈이로서는,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전제 자체가 뒤틀려버리고 말았으니까.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훈이가, 릴슨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 형도 방금 영상 본 거야?”

릴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한테도 영상 보이더라. 아마 고서들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보인 것 같아.”

“이거 대체……. 무슨 상황일까?”

영상을 확인하기 전, 릴슨 또한 훈이에게 대략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었다.

그렇기에 그 또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뭘까? 분명히 뭔가 있어.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릴슨과 훈이는 마주앉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마치 미제사건을 추리하는 명탐정이라도 되는 양, 방금 보았던 스토리 하나하나를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추리(?)가 시작된 지 10분도 채 지나기 전.

갑자기 훈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손뼉을 짝 하고 마주쳤다.

“아 맞다, 그거였어!”

< (7). 어둠의 군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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