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어둠 속의 음모 -2 >
* * *
“오옷…! 나대리님! 명계 컨텐츠 관련 퀘스트 획득한 유저가 추가로 등장했습니다! 빨리 와 보세요!”
“오, 그래? 누구지? 이번으로 세 번째인가?”
기획3팀의 모니터링실.
대리로 승진한 뒤 부사수까지 생긴 나지찬은, 기획 3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거듭나 있었다.
매번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 해결해 내니, 기획팀으로서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나지찬의 부사수가 된 신입사원 윤지영은, 그런 그를 존경(?)했다.
‘나대리님 뒤에만 잘 붙어있으면, 초고속 승진이 보장될 게 분명해…!’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꿈!
모니터링실로 들어온 나지찬에게, 윤지영이 상황설명을 시작했다.
“대리님, C섹터 17번 화면 보세요. 저 여자, 사제 랭킹 1위라던 레비아 맞죠?”
“오호, 그러네. 이렇게 되면… 이안, 훈이에 이어서 세 번째 인물인가?”
“그런 것 같아요, 대리님.”
윤지영이 가리킨 화면을 보며, 나지찬의 한 쪽 입 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명계 컨텐츠가 드디어 오픈되려 하는군.’
지금까지 카일란 기획팀은, 이안이 새로운 컨텐츠를 오픈하려 할 때 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채 야근을 해 왔었다.
항상 생각지도 못 했던 방향으로 움직여, 준비도 덜 된 컨텐츠를 오픈시키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랭커들을 필두로 해서 빨리 명계가 열렸으면 좋겠어. 이거 준비한다고 거의 일 년을 붙들고 있었는데 말이지.’
이미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준비되어 있는 컨텐츠가 바로 명계 컨텐츠였던 것.
랭커 유저들이 명계 컨텐츠에 접근한 시점부터 해서, 접근루트까지.
거의 90%이상 기획팀에서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리퍼를 통해 명계에 대한 단서를 얻은 이안만이 약간 특이 케이스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당황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후훗, 이번에는 다들 고생 좀 할 테지.”
나지찬의 중얼거림에, 윤지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고생이요? 랭커들이 명계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고생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나지찬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 다른 것 다 차치하고라도, 일단 리치 킹 샬리언이 너무 큰 강적이니까.”
“에이, 그래도 지금 랭커들 다 모이고, 로터스 길드 전력 총동원해서 길드레이드 걸면 충분히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해?”
윤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지금까지 랭커 유저들이 힘을 합쳤을 때, 100레벨 이상 높은 보스급 몬스터들도 여러 번 이겨왔잖아요. 현재 최상위 랭커들 레벨이 350언저리까지 올라왔으니…. 조금 힘들 수는 있다고 해도 다 함께 힘을 합치면 500레벨 보스몬스터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충분히 설득력 있는 타당한 추론.
하지만 나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리치 킹 샬리언이, ‘그냥’ 500레벨이라면 지영씨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 하지만 샬리언은 단순히 레벨로 판단할 수 있는 보스가 아니야.”
“네…?”
“후후, 그런 게 있어. 아직 완벽하게 완성이 덜 된 시스템이라 말해줄 수는 없지만….”
나지찬의 시선이 다시 화면을 향했다.
그리고 화면의 안에는, 새하얀 날개를 펼친, 순백의 천사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랭커들이 만약 무턱대고 리치킹에게 덤빈다면, 볼 것도 없이 몰살이야. 아무리 이안갓의 컨트롤이 대단하다고 해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지.’
나지찬의 한 쪽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카일란의 세계관과 환경. 모든 걸 완벽히 이용해야만 명계 컨텐츠를 오픈할 수 있을 거다. 마계와의 차원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처럼 말이야.’
* * *
현재 유저들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는 인간계의 거대한 땅덩이는, 크게 북부대륙과 남부대륙으로 나뉜다.
아직까지도 전부 개척되지 않은 북부대륙인 말라카 대륙과, 처음 카일란이 오픈되었을 때부터 유저들의 주요 터전이었던, 남부대륙인 콜로나르 대륙.
그리고 여기서 남부대륙은, 또 다시 세 파트로 분류된다.
대륙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막.
유저들 사이에서 ‘중부대륙’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지역으로 인해, 남부대륙이 동부와 서부 중부로 분류되게 된 것이다.
초창기에는 금역으로 불리우며 그 누구의 접근도 허하지 않던 중부대륙.
이 중부대륙이 거의 100%에 가깝게 개척되면서, 적어도 콜로나르 대륙의 안개는 거의 다 걷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직 미지의 땅이 한 군데 남아있었다.
그곳은 바로, 중부대륙의 북쪽과 북부 말라카대륙을 잇는 길목.
분명히 월드 맵에는 표시되어 있었지만 진입하는 방법에 대해 전혀 알려진 곳 없는 그 지역만이,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었던 것이다.
유저의 발걸음이라고는 닿은 적 없는 황량한 대지.
사막지역과는 또 다른 의미의 새하얀 황무지에, 사박사박 발걸음이 울려 퍼진다.
“이곳이 유피르 산….”
은빛의 장식들이 수놓아진 새하얀 사제복.
한 눈에 보아도 고급스런 장비들을 몸에 두른 여 사제 하나가 험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레비아.
또 그녀의 옆에는, 판금갑옷으로 중무장한 한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녀의 복장과 대비되는 칠흑같은 색감에, 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급스런 갑주.
그는 기사 클래스의 비공식 랭커인 로무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뒤로는, 그들의 가신인 듯 보이는 열 명 정도의 npc도 따라오고 있었다.
“휴, 어찌어찌 들어오기는 했는데, 여기 맞는 거지 레비아?”
로무르의 말에, 레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에르네시스 여신의 신전이 나올 거야.”
“이번 퀘스트만 끝나면, 내 전직퀘 도와주기로 한 거다?”
“알겠으니까, 그만 물어봐라 좀. 내가 언제 약속 안 지키는 거 봤어?”
두 남녀는 티격태격하며 황량한 산 속을 계속 헤메었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적들을 빠르게 해치웠다.
산속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대는 거의 400레벨에 준하는 수준.
하지만 모두 다 언데드 몬스터였기 때문에, 사제 클래스인 레비아에게는 너무도 손쉬운 상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주 무기인 신성계열의 공격스킬들이, 언데드들에게는 그야말로 지옥같은 데미지를 선사했으니까.
쿠구궁- 쿠쿵-!
새하얀 빛의 기둥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새까만 재가 되어 산화하는 415레벨의 스컬 가고일.
로무르가 기분좋은 웃음을 지으며 가고일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회수했다.
“크으, 여기 경험치 한번 죽이는데? 레비아, 사냥 좀 더 하고 가면 안 될까?”
“시끄러, 로무르.”
로무르의 너스레를 한 마디로 일축시킨 레비아는, 주변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이제 좌표상으로는, 목적지인 에르네시스 신전이 보여야 할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레비아의 커다란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로무르! 이쪽으로!”
말을 마친 레비아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떠오른 채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움직이는 레비아의 신형.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마법사의 플라이 마법인 줄 알겠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레비아는 사제 클래스였고, 플라이 마법은 사제가 배울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단지 레비아의 부츠에 붙어있는 고유능력인 ‘고속비행’일 뿐이었다.
“아오! 같이 가, 레비아!”
빠르게 움직이는 레비아를 툴툴거리며 쫓는 로무르.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의 앞에 거대한 회색 빛깔의 신전이 나타났다.
본래의 색상은 분명 새하얀 백색이었을, 하지만 왜인지 빛이 바래버린 아름다운 신전.
그 앞에 선 레비아가, 돌연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다이아몬드를 연상케 하는, 순백색의 기운을 머금은 보석이었다.
“에르네시스 여신이시여….”
이어서 낮게 울려퍼지는 레비아의 목소리.
그러자 다음 순간, 보석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웅-!
그리고 사방에 퍼져나간 그 빛은, 신전의 꼭대기를 향해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새하얀 형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빛나는 새하얀 섬광!
레비아와 로무르는,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3분 정도가 지났을까?
휘이잉-!
어디선가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에르네시스 여신의 신전을 가볍게 감싸기 시작한다.
황량한 주변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잔잔하고 따뜻한 미풍(美風).
이어서 하늘 높이 떠 있던 새하얀 빛이, 레비아의 앞으로 뻗어 내려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천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한 명의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님을 뵙습니다.”
레비아는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며 예를 취했고, 뒤쪽에 있던 로무르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여신 에르네시스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나의 아이야. 이곳까지 용케도 찾아왔구나.]
마치 은쟁반 위를 구르는 옥구슬이 연상될 정도로, 청량하고 아름다운 에르네시스의 목소리.
그 미성에 취해 잠시 정신을 놓고 있던 레비아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떼었다.
아니, 입을 떼려 했다.
시스템 AI가 그녀의 몸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만 아니라면 말이다.
AI에 통제받기 시작한 레비아는 에르네시스의 앞에 가볍게 한쪽 무릎을 꿇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에르네시스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찾아왔나이다.”
로무르는 그저 둘을 지켜볼 뿐이었고,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구나. 이 황량한 곳에 묻혀있는 나의 신전을 찾아주다니 말이다.]
“아닙니다, 에르네시스님. 당신의 자녀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잘했다, 나의 아이야. 그렇지 않아도 인계에 드리워지는 어둠의 힘을 느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단다.]
휘이잉-!
따스한 바람이 다시금 불어와 신전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에르네시스의 신전을 중심으로, 잔잔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포근하고 따스한 손길로, 황량한 대지를 어루만지기 시작하는 새하얀 바람결.
이어서 바람결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 황량함이 걷히며 녹음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 때.
레비아의 귓전에 익숙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띠링-!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의 신전을 최초로 발견하였습니다.]
[명성이 30만 만큼 증가합니다.]
[신성력이 영구적으로 5만 만큼 증가합니다.]
[칭호, ‘여신의 사자’를 획득합니다.]
:
:
레비아의 시야에 줄줄히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레비아의 개인 시스템 메시지가 끝나자, 이번에는 월드 메시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빛의 여신 에르네시스가 축복을 내립니다.]
[어둠의 기운으로 봉인되어 있던 유피르 고원이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합니다.]
[인간계를 수호하는 새로운 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신 에르네시스가 다시 힘을 되찾는다면, 왕국 이상의 거점에서 ‘에르네시스교’를 국교로 지정할 수 있게 됩니다.]
[콜로나르 대륙 어딘가에 빛의 신룡이 잉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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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잠시 후.
정신없을 정도로 많은 메시지들이 지나간 뒤, 에르네시스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비아, 나의 아이야.]
“하명하세요, 여신이시여.”
[이 유피르 고원을 넘어 죽음의 대지에, 강력한 어둠의 힘이 잉태되고 있구나.]
“알고 있습니다, 여신님. 그리하여 여신님의 힘을 빌리고자합니다. 인간계의 질서와 균형을 무너뜨리려는 어둠의 씨앗들을 물리칠 힘을 주옵소서…!”
레비아와 에르네시스의 눈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여신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나의 날개를 선물해 주마. 그 빛의 힘을 빌어 리치 킹 샬리언을 물리치고, 명계에 봉인되어 있는 나의 힘을 되찾아오도록 하라…!]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던 레비아의 등에, 새하얀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레비아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놀랍게도 그녀의 등에 하얀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레비아의 시야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추가로 떠올랐다.
띠링-!
[‘리치 킹 샬리언 제거’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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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둠 속의 음모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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